나의 이야기

2015. 6. 12. 금이 간 인생

아~ 네모네! 2015. 7. 6. 16:44

금이 간 인생

아 네모네 이현숙

 

  같이 근무하던 선생님이 전화를 한다. 딸이 암으로 죽었단다. 분당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있다고 한다. 매달 모이는 사람들에게 문자를 넣었더니 단박 답장이 온다. 메르스 때문에 병원에 가기 겁난다는 것이다. 결국 여섯 명중 세 명만 갔다.

  장례식장에는 손님이 없어 한산했다. 이 선생님은 남편도 몇 년 전 돌아가시고, 사위는 미국 사람인데 몸이 아파서 못 오고 외손자도 없으니 손님이 적을 수밖에 없다. 그런 판국에 메르스까지 전국을 휩쓸고 있으니 병원에는 얼씬도 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많다.

  어찌 보면 우리 같은 세대는 살 만큼 살았으니 더 살려고 기를 쓸 필요는 없을 것 같기도 하다. 젊은 세대들에게 시부모 사망 적정 나이를 물으면 62세라고 한단다. 우리 모임의 사람들은 모조리 경로니까 다 저 세상으로 갔어야할 사람들이다. 한 마디로 금이 가서 언제 깨질지 모르는 볼 짱 다 본 인생이다.

  하지만 나 혼자만 생각할 수 없기는 하다. 한 선생님은 모임에서 부부 동반으로 화천에 12일 놀러 가기로 했는데 두 아들이 안 가면 안 되냐고 카톡에 올려서 할 수 없이 포기했단다. 안 가겠다고 했더니 두 며느리가 즉시 감사합니다.” 하는 댓글을 올렸단다.

  하지만 포기하고 나서 남편이 엄청 서운해 했단다. 이제 내가 내 인생도 주도적으로 살지 못하는 나이가 되어 서럽다는 것이다. 하긴 매일 손자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데려오니 만약 메르스에 걸리면 손자에게 옮을 수도 있다. 아들 며느리가 적극 만류하는 것도 이해가 간다.

  언젠가 커피 잔을 드는데 잔이 저절로 떨어져 바닥에 커피를 쏟은 일이 있다. 내 손에는 손잡이만 남았다. 어디 부딪친 것도 아니고 거칠게 든 것도 아닌데 소리 없이 떨어진 것이다. 손잡이와 컵 사이에 눈에 보이지 않는 금이 갔었나보다.

  절대 깨질 것 같지 않은 거대한 바위도 오랜 세월 모진 풍파에 금이 가고 부서져 흙으로 돌아간다. 우리 몸도 겉으로 보기에는 멀쩡해도 무수한 금이 갔을 것이다. 겉에도 내장 속에도 눈에 보이지 않는 금이 가 어느 순간 견디다 못해 부서질 것이다.

  몸도 마음도 무수한 금이 가 공중으로 산산이 부서지는 순간 우리는 한 없이 자유로운 존재가 되어 우주 공간으로 사라질 것이다. 50키로나 되는 무거운 몸뚱이를 내던지고 60여 년 동안 이리 저리 세파에 부딪쳐 금이 간 마음을 모두 다 버리고 날아갈 때 얼마나 경쾌하고 가볍고 희열이 넘칠까 상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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