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2014. 11. 19. 면목있는 동네 살아요.

아~ 네모네! 2015. 1. 5. 13:23

면목 있는 동네 살아요

아 네모네 이현숙

 

  뚫렸어요. 5년 동안의 공사 끝에 오늘 드디어 뚫렸어요.

  면목동과 구리시를 잇는 용마터널이 오늘 뚫려서 박원순 시장님과 지역 유지들이 참석한 가운데 개통 기념식을 했어요. 기념식이 끝난 후 축하공연과 터널 걷기 행사도 했답니다.

  저는 터널 앞에 있는 용마한신아파트에 산답니다. 5년 동안 바위 깨는 소리에 귀청이 찢어질 지경이었죠. 먼지도 많이 나고 길도 새로 포장하느라 이리 저리 돌아다녔어요. 그래도 고생 끝에 낙이 온다고 오늘 드디어 끝을 보았죠.

  오늘은 차는 안 다니고 보행자만 들여보냈어요. 남편과 터널 걷기를 했죠. 터널 입구에서는 쿵작쿵작 노래 소리가 끊이지 않았고 터널 안으로 들어가니 환한 불빛에 많은 사람들이 활기차게 걷고 있었어요. 다들 기뻐하는 기색이 역력했죠. 멋진 터널을 걷는 동안 우리나라의 저력이 느껴졌어요.

  사실 면목동은 서울에서 아주 낙후된 지역이죠. 우리 딸이 백일도 안 되어 면목동으로 이사 왔는데 지금 마흔 한 살이 되었으니 벌써 40년째 살고 있네요. 우리 아들은 면목동에서 태어나 면목중학교 면목고등학교를 나왔죠. 면목대학교가 없기 망정이지 완전 면돌이가 될 뻔 했다니까요.

  남들이 어디 사느냐고 물으면 나도 모르게 기가 죽어서 면목 없는 동네 살아요.”하고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대답했죠. 처음 이사 왔을 때는 버스 다니는 면목동 구길 하나만 포장되어 있고 골목길은 모두 흙길이었어요. 말 그대로 마누라 없이는 살아도 장화 없이는 못 사는 동네였답니다. 왕복 2차선 길 하나 뿐이니 길도 많이 밀렸죠.

  몇 년이 지나 동이로가 뚫리더니 용마산길이 생기고 동부간선도로까지 생겼어요. 지하철 7호선까지 개통되니 사통팔달 사방으로 거침없이 다니게 됐답니다.

  집 앞 용마산 기슭에는 중랑문화체육관이 생겨 운동도 하고 노래교실도 다니고 노후를 즐겁게 보낸답니다. 체육관 앞에는 사가정공원도 조성되어 비가 오면 계곡에 물이 콸콸 흐르고 동네 꼬마들이 물에 들어가 물장난을 치고 놀지요.

  거실에서 내다보면 용마산의 사계가 눈앞에 펼쳐진답니다. 봄에 새싹이 파릇파릇 돋는가 하면 어느새 녹음이 우거지고, 울긋불긋 단풍이 드는가 하면 흰 눈이 온 산을 뒤덮어 동화의 나라로 초대하죠.

제가 너무 자랑이 심했나요? 자식 자랑은 팔불출이라고 하던데 동네 자랑은 해도 괜찮겠죠? 또 물가는 얼마나 싸다구요. 면목시장, 사가정시장이 근처에 있어 시장보기도 좋아요. 우리 동네 오는 사람들마다 물가가 이렇게 싼 곳은 처음 본 다고 다들 입에 침이 마를 지경 이예요. 우리 같은 서민들이 살기는 딱 좋죠.

  인심은 또 얼마나 좋은지요. 꼭 시골 사는 것 같아요. 오늘 수영이 끝나고 샤워를 하는데 누가 갑자기 이태리타월로 등을 밀어주는 거예요. 누군가 하고 돌아보니 전혀 모르는 사람이더라고요. 내가 수영복에 비누를 칠해 대충 씻었더니 타월을 안 가지고 왔냐고 하며 등을 벅 벅 밀어주는데 등이 화끈거려 혼났다니까요.

  이제 누가 뭐라고 해도 면목동만큼 좋은 곳이 없는 것 같군요. 고기도 놀던 물이 좋다고 적응이 된 탓도 있겠지만 객관적으로도 이만한 동네가 없는 것 같아요. 오늘도 창밖으로 보이는 용마산의 만추를 즐기며 이 글을 쓴답니다. 이제 면목 없는 동네라고 하지 말고 면목 있는 동네에 산다고 어깨 쫙 펴고 말해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