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2014. 11. 13. 조리질 하는 여자

아~ 네모네! 2015. 1. 5. 13:20

조리질 하는 여자

아 네모네 이현숙

 

  쌀을 씻는다. 세 번을 헹구고 조리질을 한다. 아무 것도 나오지 않는다. 요즘은 기계가 발달되어 돌과 뉘가 다 걸러져 나온다. 그래도 왠지 조리질을 하지 않으면 불안하다.

  결혼 전에 친정집은 쌀장사를 하였다. 석발기가 있어서 돌은 걸러져 나왔다. 하지만 뉘는 걸러지지 않아서 석발기에서 나오는 쌀을 노려보고 있다가 뉘가 발견되면 얼른 집어내야한다. 그 때는 쌀가게마다 석발기가 있어서 쌀이 들어오면 석발기에 붓 돌을 일일이 걸렀다.

  겨울에 석발기에서 나오는 바람은 손을 에는 것 같다. 아버지의 두툼한 점퍼를 입고 석발기 앞에 쭈그리고 앉아 뉘를 고르려면 손가락이 빠지는 것 같다.

  석발기가 헛도는 일이 없게 부지런히 쌀을 부어야한다. 석발기를 통과한 쌀은 다시 한 번 뉘가 없나 샅샅이 살핀 후 커다란 멍석 모양의 둥근 그릇에 보기 좋게 담아 놓는다.

  벌써 사십 여 년 전이니 됫박으로 쌀을 사가는 사람이 많았다. 됫박에 쌀을 살짝 붓고 둥근 막대로 싹 긁어낸다. 잘못해서 됫박을 건드리면 쌀이 푹 들어가니 기술적으로 잘 긁어야한다. 인정머리 없이 끝까지 긁어내지는 않고 귀퉁이에 조금 남기고 멈춘다.

  그때 뉘를 고르던 습관 때문인지 지금도 조리질을 멈출 수 없다. 조리질을 하며 내 눈으로 일일이 확인해야 직성이 풀린다. 몇 달에 한 번 뉘가 발견되거나 잡곡에서 쭉정이가 발견되면 희열이 느껴진다.

  딸이나 며느리는 조리질을 하지 않는다. 그런 걸 보면 어쩐지 이물질이 들어가는 것 같아 찜찜하다. 하지만 조리질 하라고 말하지는 못한다. 조리질 하는 것은 어쩌면 일종의 결벽증인지도 모른다. 그래도 안 하면 마음이 편치 못하니 아마도 늙어 죽을 때까지 해야 할 모양이다.

  어찌 조리질뿐이랴? 내 삶에서 쓸데없는 일이 부지기수일 것이다. 단지 습관 때문에 또는 마음에 걸려서 하는 일이 얼마나 많을까? 젊은 사람들이 보면 필요 없는 생각과 행동이 부지기수일 것이다. 노인들의 지나친 걱정과 참견은 실로 상상 이상이다.

  내 동생 시어머니는 물건을 사재기하는 게 심각한 수준이라고 한탄한다. 커다란 식용유도 급기야 여섯 병이나 사다 재었다고 한다. 기름이 찌들고 산화되면 버려야한다고 누누이 말씀 드려도 소용이 없단다. 조기도 몇 십 마리씩 냉동실에 있어도 또 사다가 쟁인단다. 다 먹고 사오라고 해도 금방 먹을 거라고 또 사온단다.

  오죽하면 늙으면 죽어야한다는 말까지 생겼을까? 더 이상 심각한 사태가 벌어지기 전에 나도 조리질을 멈춰야 하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