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2014. 11. 27. 청바지가 안 어울리는 여자

아~ 네모네! 2015. 1. 5. 13:25

청바지가 안 어울리는 여자

아 네모네 이현숙

 

  청바지가 잘 어울리는 여자라는 노래가 있다. 청바지가 잘 어울리려면 일단 쭉쭉 빵빵 날렵한 몸매에 가늘고도 긴 롱다리가 필수다. 조선무처럼 짜리몽탁한 내 다리로는 아무래도 감당이 안 된다.

  청바지는 그저 젊고 늘씬한 얼짱 몸짱인 사람이 입어야 제격이다. 키도 작고 엉거주춤한 체형의 나는 감히 청바지를 입어볼 용기를 내본 적이 없다. 청바지가 주는 느낌은 젊고 발랄하고 신선하다. 그건 이라는 글자 때문인지도 모른다.

  청바지를 입으면 뭔가 청청한 푸르름이 느껴진다. 몸도 마음도 청년처럼 변할 것 같다. 남들이 청바지 입은 걸 보면 싱그러운 젊음과 상큼한 내음이 풍긴다. 팽팽한 긴장감도 느껴진다. 하지만 내가 입으면 청바지가 화 낼 것 같다. 청바지 스타일 구겼다고 말이다. 입어본 적은 없지만 안 입어도 비디오다. 내 주제에 청바지란 언감생심 꿈꿀 일이 아니다.

  어쩌면 이것은 일종의 트라우마일지도 모른다. 한 번 시도도 해보지 않고 일찌감치 포기하는 것은 늙은이들의 특성인 것 같기도 하다. 시장을 지나가다가 예쁜 청바지를 보면 한 번 저질러 볼까? 하다가도 내 머리를 생각하면 손이 주머니 속으로 쏙 들어간다. 머리는 허예가지고 청바지 입으면 다 늙어빠진 주제에 최후 발악을 한다고 남들이 웃을 것 같다. 사실 나에게 이 정도의 관심을 가진 인간도 없는데 말이다.

  나는 청바지가 안 어울리는 여자라는 생각이 평생 내 안에 똬리를 틀고 앉아있다. 얼마나 많은 고정관념이 나를 사로잡고 있을까? 이건 안 돼, 저건 안 돼, 이건 못해 저것도 못해. 끝없이 이어지는 부정적인 생각이 한 인간의 평생에 굴레를 씌워 이도 저도 아닌 인생을 살다가게 한다.

  어차피 한 번 사는 인생인데 한 번 해보자 하다가도 나도 모르게 목이 안으로 들어간다. 세상에는 남이 씌우는 굴레보다 내가 씌우는 굴레가 훨씬 많은 것 같다.

  앞으로 얼마나 더 살지 모르는데 이 색은 안 돼, 저 색도 안 돼. 이런 모양은 안 돼, 저런 모양도 안 돼, 하면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다. 관 속에 누워서 때 늦은 후회하지 말고 한 번 사고를 쳐볼까? 세계 거의 모든 사람들이 스스럼없이 입는 청바지 하나도 이렇게 고민하는 나 같은 인간은 어찌 보면 일종의 정신병자인지 모른다. 정신병자가 별거냐? 남들과 다르면 정신병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