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2014. 12. 7. 엿 먹으라고?

아~ 네모네! 2015. 1. 5. 13:31

엿 먹으라고?

아 네모네 이현숙

  마루야마 겐지의 인생 따위 엿이나 먹어라는 참 대담한 책이다. 어느 누가 감히 인생에 대해서 이렇게 말할 수 있을까?

  책 표지의 그림이 내용을 대변한다. 긴 엿가락이 늘어진 밑에 사람의 그림자가 달려있다. 사람이 엿이라는 것인지, 엿이 사람이란 것인지 모르지만 발상이 기막히다. 책 제목부터 독자의 눈길을 끈다. 다들 인생은 심사숙고 하고 성실하게 살라고 하는데 인생은 멋대로 살아도 좋은 것이다.’라는 부제를 붙인 것부터 흥미를 끈다.

  책의 앞뒤에 있는 간지를 까만색으로 한 것은 죽음을 상징하는 듯도 하다. 또한 거의 모든 책에 있는 머리글이 없다. 구차하게 굳이 저자의 말을 하고 싶지 않았나보다. 한 마디로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독자적인 길을 가는 사람이다.

  그는 1943년생이다. 70을 넘긴 나이니 인생을 살만큼 살았다고 볼 수 있다. 그런 그가 한 말이니 한 번 들어볼만 하다는 생각이 든다. 스물한 살에 무역회사에 들어가 4년 정도 근무하고 25세에 귀향해서 문단과 선을 긋고 집필활동에만 전념한다고 한다. 용기 있는 사람이다.

  전체가 10장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한 장이 끝날 때마다 인생 따위 엿이나 먹어라.’로 끝난다. 엿 한 번 많이 먹었다. 전체적으로 보면 가족과 국가, 직장, 종교, 사랑에 관한 내용이다.

  우선 첫 장부터 다짜고짜 부모를 버리라고 한다. 부모가 자신을 망친다는 것이다. 부모란 작자들은 새로운 생명을 세상에 내보낸다는 중대한 문제에 대해 고민하지 않고 안이한 생각으로 자식을 낳았다는 것이다. 모든 부모들은 동물에 가까운 생물로서 아무 판단력 없이 이 잔혹한 세상에 자식을 내보내는 무자비한 짓을 저질렀다고 주장한다.

  하긴 나도 마찬가지다. 결혼 전에는 잠시 고민을 하긴 했다. 내가 결혼을 하면 자식이 태어날 텐데 이 험난한 세상에 한 인간을 내보내서 수십 년간 고생시키는 것이 과연 잘하는 일인가 고민했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결혼하고 애를 낳은 걸 보면 그게 정도일 것이라는 생각으로 결혼했고 아이도 낳았다. 그런데 우리 딸이 초등학교 1학년 때 학교 다니기가 힘들었는지 왜 내가 세상에 태어나서 이 고생을 하지?”하고 말할 때는 가슴이 뜨끔했다.

  젊었을 때는 살기 힘들어 자살하고 싶을 때도 많이 있었다. 학교 실험실에 있는 청산가리를 갖다 먹어버릴까? 연탄불을 방에 갖다 놓고 잠들어 버릴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럴 때면 친정 엄마 얼굴이 떠오르고 자식이 자살했다고 하면 엄마가 동네에서 어떻게 얼굴을 들고 다니나? 우리 아이들은 어떻게 될까? 하는 생각이 떠오르고 그냥 자연스럽게 내일 아침에 눈을 뜨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하며 잠자리에 들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아름다운 자연을 바라볼 때, 아이들이 깔깔대며 웃는 모습을 바라볼 때, 이 세상은 한 번쯤은 와 봐도 좋은 곳이란 생각이 든다. 비록 삶이 힘들고 팍팍할 지라도 한 번은 구경할만한 곳이다. 그래서 이제는 우리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별로 들지 않는다. 어차피 한 번이니까.

겐지의 부모는 살아있는지 죽었는지 모르지만 이 글을 보면 어떤 느낌일까? 내 아이가 이런 생각을 하면 정말 끔찍할 것이다. 하지만 전혀 틀린 말이라고 할 수도 없다.

  국가도 마찬가지다. 국민을 위하는 국가는 없다는 것이다. ‘국가는 당신을 모른다. 국가는 적이다.’ 라고 외친다. 소수의 특정인을 위해 국가가 존재하는 것이고 국민은 이를 위해 이용당할 뿐이라고 한다. 국민도 이런 인간들에게 한 표를 던졌으니 지은 죄는 같다고 몰아붙인다. 정말 할 말이 없다.

  국가는 적당한 바보를 원하고, 텔레비전은 국가의 끄나풀이며 국민은 우매한 백성이라고, 머리는 폼으로 달고 다니느냐고 질책한다. 신랄해도 너~무 신랄하다 못해 아주 비수를 꽂는다.

  직장도 마찬가지다. 직장인은 노예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노예의 처지에 깊이 물든 가축인간이라고 몰아붙인다. 상사는 부하를 출세의 도구로 밖에 생각하지 않는다고 하면서 직장은 인간 취급을 받을 수 있는 곳이 아니니 자영업을 하라고 소리친다. 그럼 모든 사람이 직원도 두지 말고 혼자서 일을 하라는 것인지 모르겠다. 하긴 나도 대학 졸업 후 별 생각 없이 교사생활을 시작했다. 나라에서 가라고 하니 그냥 간 거다. 아니 입에 풀칠하지 못 할까봐 두려워서 간 건지도 모른다.

  종교에 대한 비판도 기가 막히다. 신 따위 개나 주라고 하면서 신은 인간이 만든 것이라고 단정 짓는다. 종교단체는 불한당들의 소굴이고, 모든 신자는 사람의 나약함을 노리고 가만히 앉아서 한탕하려는 악당들에게 속아 넘어간 것이라고 소리친다. 종교는 악 그 자체라고, 모든 종교는 사기극이라고 단정 짓는 그의 단호함이 부럽기조차 하다. 나는 믿는다고 하면서도 끊임없이 흔들리는 데 말이다.

  연애도 그렇다. 연애는 식욕에 이어 너무도 리얼한 성욕을 중화시키기 위한 포장일 뿐이고 실상은 뱀의 교미보다 끔찍하고 난잡한 그저 암컷과 수컷의 뒤엉킴이라는 것이다. 어찌 보면 공감이 가기도 한다.

  스스로 의미를 찾으며 살아야하기 때문에 멋대로 살아야하는 것이라고 결론짓는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사는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마치 이 세상과 싸우기 위해 태어난 검투사 같다. 겐지의 의견에 모두 동의할 수는 없지만 너무 안이하게 살아왔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나라는 존재는 과연 무엇인지 젊었을 때 생각했던 고민을 다시 한 번 해봐야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