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2014. 12. 8. 할머니는 아무나 되나

아~ 네모네! 2015. 1. 5. 13:35

할머니는 아무나 되나

아 네모네 이현숙

 

  “할머니 손은 왜 그렇게 쭈글쭈글해요?

외손자가 내 손을 무심히 보며 하는 말이다.

  “늙으면 몸에 수분이 부족해서 이렇게 주름이 생기는 거야.” 하며 옹색한 대답을 한다. 이해를 했는지 못 했는지 아리송한 표정이다.

  살아오면서 나의 위치가 참 많이도 변했다. 딸이 엄마가 되고 이모도 되고 고모도 되었다. 작은 어머니도 되고 큰 어머니도 되었다. 외할머니도 되고 친할머니도 되었다. 결혼하면서 아가씨에서 아줌마로 변신하였다. 인간은 하나인데 명칭이 참 많기도 하다.

  아줌마가 된 후에도 아가씨라는 착각 속에 사는 사람이 많다. 남들은 다 아줌마로 알아보는데 본인만 모르나보다. 아가씨 같은 아줌마가 거리에 넘쳐난다. 요즘은 하도 가꾸어서 그런지 잘 먹어서 그런지 나이를 가늠하기 힘들다. 젊게 보이려고 박피를 하고 성형수술도 서슴지 않는다. 가끔 생명을 잃는 경우도 있어 안타깝기 그지없다.

  나는 25살에 결혼하여 26살에 엄마가 되었다. 애 낳고 한 달 만에 출근하였다. 퇴근 후 집에 오니 일하는 할머니가 딸에게 엄마 왔다~” 하는 소리가 너무도 생소하게 들렸다. 아참 내가 엄마구나 다시 한 번 입 속으로 되뇌곤 했다. 머리로는 엄마라고 인정하면서도 아가씨로 보이려고 머리와 옷에 신경을 쓰며 발악을 하곤 했다.

  왜 아줌마들은 아줌마이기를 거부하는 것일까? 겉모양이 추해서인가? 아니면 주책없이 떠들어 대며 무례하고 용감무쌍하게 쌈닭같이 돌진하는 모양이 혐오스러운지도 모른다. 웃음소리는 또 얼마나 대담무쌍한가? 주위의 시선은 아랑곳 하지 않는 거침없는 웃음이다. 여러 가지 복합적인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자식을 위한 엄마의 용기는 세상의 어느 장군보다 당당하고 한 마디로 천하무적이다. 세상에 못할 짓이 없다. 이 에너지가 아줌마라는 중성인 존재를 만들어 낸 것 같다.

  머리가 빨리 센 나는 아줌마는 고사하고 40대부터 할머니 소리를 들었다. 버스에 서 있으면 어린 아이들이 벌떡 벌떡 일어나는 바람에 깜짝 놀라서 뒤를 돌아보곤 했다. 이건 공해로구나 싶어 염색을 시작했다.

  이런 나를 닮았는지 우리 아들도 나이 들어 보인다. 4학년 때 용마산에 갔는데 어떤 꼬마가 우리 아들을 보고 아저씨 저 아래로 가면 약수터 있어요?” 한다. “너 몇 학년이니?”하고 물으니 4학년이란다.

  아들이 중 3 때 이동 쪽으로 놀러간 적이 있다. 검문소에서 검문을 하는데 헌병이 뒷자리에 탄 아들을 보더니 현역이십니까?” 한다. 내가 중학교 3학년인데요.” 하니까 기가 찬 듯 바라본다.

  사람은 나이 어릴 때는 나이 들어 싶어 하고 나이가 들면 젊어 보이싶어 한. 젊음이 아름답고 강하고 인생의 황금기이기 때문일 것이다. 청춘에 머무르고 싶어 파우스트는 영혼을 파는 일을 서슴지 않았을 것이다. 다른 동물도 젊음을 유지하려고 아니 젊은 척 하려고 이렇게 고심할까? 생로병사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인데 이것을 막아보겠다고 아니 가려 보겠다고 손으로 하늘을 가리는 인간은 심히 어리석은 존재다.

  염색도 하지 않으니 명실 공히 할머니다. 지하철 탈 때나 국립공원 입장할 때 신분증을 보자고 하는 사람이 없어 편하다. 나이에 비해 젊어 보이는 사람은 종종 신분증을 보자고 제지를 당하는데 말이다. 나는 머리가 신분증이니 다른 신분증 볼 필요도 없을 것이다.

  사실 할머니는 아무나 되는 게 아니다. 우선 내가 건강해야 자식을 낳고, 자식이 건강해야 손자를 낳는다. 또 자식이 결혼을 하지 않으면 이도 저도 도루묵이다. 결혼 후 10년이 넘도록 자식이 없는 아들을 볼 때 할머니가 되는 것은 축복이란 생각이 들었다.

  할머니가 되기 싫어하는 사람은 자기 아이들이 애 낳지 말라는 소리나 다름없다. 할머니가 되면 얼마나 편하고 좋은지 몰라서 그렇다. 앞에서 어리바리하고 우물쭈물해도 웬만하면 참아준다. 같은 잘못을 저질러도 어쩔 수 없는 인간이라고 눈감아준다.

  할머니가 얼마나 좋은지 돼본 사람은 다 안다. 세상 모든 여자들이 다 할머니가 되는 축복을 누렸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