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2014. 9. 27. 내 손 안의 도서관

아~ 네모네! 2014. 11. 14. 16:13

내 손 안의 도서관

아 네모네 이현숙

 

  중학교에 들어가니 도서관이 있다. 시험 때는 주로 시험공부를 했지만 그 외의 시간에는 소설책을 읽었다. 교과서나 문제집 밖에 없었던 나에게 서가 가득 꽂혀 있는 책들은 나를 흥분시켰다. 헤르만 헷세의 싯달따, 톨스토이의 부활,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 등은 나의 정신을 혼미하게 했다. 도서관에서 다 읽지 못하면 1주일씩 빌려주기도 해서 집에 가지고 가서 읽었다.

  정신없이 읽다보면 거기 빠져서 현실을 잊고 만다. 갑자기 엄마가 등짝을 후려치며 노려본다. 몇 번씩 소리쳐 불러도 대답을 안 했다는 것이다. 나는 전혀 듣지 못했는데 말이다.

  이렇게 소설 속 세상에 푹 빠져 그 안에서 배회하다가 책에서 눈을 떼면 갑자기 여기가 어딘가 무감각해진다. 현실로 돌아오기가 힘들다. 산에서 어떤 바위가 보이면 거기에 캐서린과 히스크리프가 서 있는 것 같다. 나이 30에 결핵으로 죽은 에밀리 브론테가 아깝다. 더 오래 살았으면 더 많은 작품을 남기지 않았을까? 아니 이런 대작을 만드는데 너무 정열을 쏟아 부어 모든 에너지가 소멸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평생에 오직 이 한 편의 소설 밖에 쓰지 못했고 출판도 못한 상태에서 죽어 아버지가 대신 출판해주었다고 한다.

  한 마디로 도서관은 나의 보화각이, 보물 창고요, 도깨비 방망이었다. 그 안에는 온 세상이 있었고, 온 우주가 있었다. 아무 절차 없이 서가에 있는 책을 꺼내보고 도로 꽂으면 그만이라 마음껏 이 책 저 책 뒤적일 수 있었다. 단지 분실을 막기 위해 책가방은 맡기고 들어가야 했. 물 만난 고기 마냥, 때 만난 메뚜기 마냥 나는 신이 나서 이 책 저 책 쑤셔대며 마구 읽어댔다. 요새는 서고와 열람실이 분리되어 대출신청을 하고 사서가 꺼내주어야만 읽을 수 있는 곳이 많아 좀 안타깝다.

  하지만 요즘은 더 편리한 도서관이 있다. 인터넷 도서관이다. 무엇이든 인터넷 사이트 검색창에 치기만 하면 바로 화면에 내용이 떠오르니 굳이 도서관에 갈 필요가 없다. TV를 보다가 모르는 말이 나오면 나도 모르게 스마트폰을 집어 들고 검색을 한다. 수필수업을 듣다가도 모르는 내용이 나오면 자동적으로 스마트폰을 집어 든.

  산에 가서 야생화 사진을 찍어오면 인터넷에 들어가 비스므레한 이름을 치면 그런 꽃의 사진이 줄줄이 뜬다. 그야말로 요술주머니요 요지경세상이다. 야생화 책을 뒤적일 필요가 없으니 굳이 살 필요도 없다. 이 사람 저 사람이 올린 사진이 있어 잎과 꽃과 열매까지 모조리 나온다. 책에는 도저히 다 올릴 수 없는 막대한 양의 사진과 설명이 있으니 내 사진과 비교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스마트폰은 이름 그대로 스마트하다. 내 손 안에 쏙 들어오는 도서관이다. 이게 앞으로 어디까지 발전해 갈지 어떤 세상으로 우리를 인도해갈지 그 끝을 상상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