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2014. 9. 4. 아버지의 절

아~ 네모네! 2014. 11. 14. 16:07

아버지의 절

아 네모네 이현숙

  93세 된 아버지가 절을 한다. 죽은 지 30년 된 엄마 제사상 앞에 쪼그리고 앉아 절하는 아버지 모습이 안타깝다. 우리는 아버지에게 절하지 말라고 해도 꼭 술 한 잔을 올리고 싶으시단다. 그러니 말릴 수도 없다.

  엄마는 나이 육십에 뇌졸중으로 갑자기 돌아가셨다. 저녁밥 다 해놓고 아버지 오시길 기다리며 운동화를 빨다가 갑자기 쓰러지셨다. 그날 밤에 돌아가시고 그 밥은 자식들이 먹었다. 엄마는 그 밥을 자기가 먹지 못할 줄 생각이나 했을까?

  엄마 장례식 때도 아버지는 제사상에 쪼그리고 앉아 절을 했다. 아버지는 갑자기 중심을 잃은 듯 어쩔 줄을 몰라 하며 눈물을 쏟았다. 우리는 그런 아버지 모습이 보기 싫었다. 엄마는 맏딸이고 아버지는 막내라서 그런지 정신적으로 엄마에게 많이 의지하고 있었던 것 같다.

  아버지는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일본 군대에 가서 혹독한 훈련을 받고, 전쟁에도 참여했다. 6.25 때도 전쟁에 나가 북한군과 싸웠다. 그 어려운 시절을 다 겪은 아버지가 어찌 저리도 나약해 보이는지 모르겠다.

  어려서 아버지를 잃었기 때문인가? 아버지는 본인이 너무 어릴 때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아버지 얼굴도 생각나지 않는다고 한다. 아버지 없이 커서 어려서부터 기가 죽었는지도 모른다. 친척 어른들 말을 들으면 아이들과 별로 어울리지 않고 주로 뒷동산에 올라가 연을 날렸다고 한다.

  아버지는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올라왔다. 둘째 큰아버지는 아버지보다 여섯 살 위인데 미리 와서 목수로 일했다고 한다. 제일 큰아버지만 시골에 계시고 밑의 두 아들은 서울로 보냈나보다. 둘째 큰아버지는 아버지를 한약방에 맡기고 가며 너무 애처로워 울었다고 한다. 아버지는 거기서 먹고 자며 약도 썰고 잔심부름을 하며 컸다. 후에는 이 약방 저 약방에 약을 대며 우리 칠 남매를 키웠다. 어린 아이가 타향에서 얼마나 외롭고 힘들었을까?

  엄마의 아버지와 아버지의 할아버지는 서로 만나 술을 마시다가 사돈이 되었다고 한다. 엄마는 아버지가 가마 타고 마당에서 내리는 걸 보고 애개~ 신랑이 조만해?” 하고 자기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단다. 아버지가 세 살이나 위였지만 아버지는 키가 작은 편이다. 거기다 잘 먹지도 못한 탓인지 몸도 말랐다. 엄마는 생활도 넉넉하고 편안하게 자라서 살이 찐 편이다. 엄마는 성격도 활달하여 술도 좋아하고 오는 사람 가는 사람 다 끌어들여 술 한 잔 하고 가라고 한다. 아버지는 항상 조용하고 내성적이다.

  엄마는 자식들에게 죽일 년 살릴 년 마구 욕을 해대지만 아버지는 년 소리 한 번 한 적도 없다. 그런 아버지에게 엄마는 자기만 나쁜 소리하게 만든다며 아이들에게 인기 끌려고 욕도 안 한다고 또 불평을 했다. 그러니 평생 큰 소리 한 번 내는 걸 못 봤다.

  아버지는 엄마가 살아있을 때는 결혼식 때 아니고는 절을 해본 적이 없을 것이다. 마당에 초례청을 차리고 맞절을 할 때는 이렇게 오래도록 엄마에게 절을 할 줄 상상도 못했을 꺼다.

  아버지는 엄마를 잃고 삼 년 후 재혼을 했다. 처음에는 누가 선을 보라고 하면 꼭 전날 밤 꿈에 엄마가 나타났다고 한다. 아마 마음에 걸려서 그랬을 꺼다. 우리도 처음에 누가 소개를 하려고 하면 엄마가 불쌍해서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살아있는 아버지가 더 불쌍했다. 그래서 딸들이 아버지에게 졸랐다. 더 늙고 병들면 누가 오겠느냐? 빨리 결혼을 해라 하며 만날 때마다 졸라대니 결혼을 했다.

  재혼을 하기 전에는 마음이 안 놓여 삼 년 동안 매일 저녁 전화를 했다. 10시가 넘었는데도 저녁을 안 드셨다고 하면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그러다가 새어머니가 생기니 마음이 턱 놓여 무슨 때가 아니면 전화도 안 한다. 재혼하고 벌써 27년을 살았으니 정말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지금까지 그냥 계셨으면 여태 살지도 못했겠지만 딸들이 얼마나 속을 태웠겠느냐 말이다.

  아버지도 이렇게 오래 엄마 제사상에 절 할 줄은 몰랐을 것이다. 그래도 절은 자식들이나 하라고 하지 왜 꼭 당신이 절을 하는지 모르겠다. 이번 추석 차례 상에도 또 절을 할 것이다. 딸들은 추석 다음 날 아버지를 찾아뵈니까 직접 눈으로 보지는 않지만 뻔한 일이다.

  아버지가 먼저 돌아가셨으면 좋으련만 마누라 뒤에 남아 제사상에 절하는 남편의 모습은 초라하기 그지없다. 딱히 애처가라서 그런 것도 아니다. 그저 엄마가 살아생전에 술을 좋아했으니까 제사상일망정 술 한 잔 주고 싶은 거다.

  일전에 이모 팔순 잔치에 갔다. 이모는 여태 살아서 칠순잔치도 하고 팔순잔치도 하는데 엄마는 왜 그리도 빨리 가셨나싶다. 꿩 대신 닭이라고 엄마를 많이 닮은 이모를 보며 대리만족을 한다. 이모라도 오래 사셨으면 좋겠다. 하지만 중풍으로 쓰러져 몇 년씩 고생하는 사람들을 보면 엄마가 복이 많다는 생각도 든다.

  아버지는 올해 상반기까지만 해도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셨는데 이번 이모 팔순잔치에서 보니 많이 쇠약해지셨다. 새어머니 덕에 여태 사신 것 같다. 새어머니는 아버지에게 이것 먹어라 저것 먹어라 하며 열심히 입에다 넣어준다. 그 모습이 싫지 않다. 열 효자보다 악처 하나가 더 낫다고 하지 않는가?

  하긴 몸이 더 안 좋아지면 마누라 제사상에 절도 못 할 것이다. 그저 절 할 수 있는 걸 다행으로 생각해야겠다. 앞으로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열 번만 더 하셨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