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2014. 6. 27. 부엌은 족쇄

아~ 네모네! 2014. 11. 14. 15:59

부엌은 족쇄

아 네모네 이현숙

  무얼 해 먹어야 하나?

결혼 후에 생긴 새로운 고민이다. 결혼 전에는 엄마가 해주는 밥 먹으니 아무 생각 없이 25년간 잘 먹고 잘 살았다. 무얼 먹었나 생각하면 딱히 생각나는 것도 없다.

  하루 세 끼 꼬박꼬박 돌아오는 끼니때는 그야말로 외나무다리에서 원수를 만나는 기분이다. 밥상에 숟가락만 놓을 수도 없고 뭔가 놓기는 놓아야하는데 할 줄 아는 것도 없고 하고 싶은 것도 없다. 하나님은 인간이 왜 하루 세끼씩 먹도록 만들었을까 원망스럽다. 어떤 동물들은 한 번 먹으면 일주일씩도 견디는데 말이다.

  이러다 보니 그저 식사 때 마다 대충 때운다. 웬만한 것은 시장에서 다 사다 놓는다. 김치는 물론이고 깻잎, 메추리알, 고추 졸임, 오이소박이 등 손이 많이 가는 것은 전부 반찬가게에서 사다가 진열해 놓는다.

  그런데 딸을 보니 나보다 한 수 더 뜬다. 요즘 딸이 두 아이를 데리고 우리 집에 와서 지내는데 아침이 되어도 일어나지를 않는다. 아이들은 습관이 되었는지 아침에 일어나 스스로 냉장고에 있는 빵을 꺼내 먹는다. 외손녀가 바나나 우유에 빨대를 잘 꽂지 못하면 오빠인 외손자가 직접 꽂아준다. 내 딸이니 뭐라고 할 수도 없고 며느리가 그랬으면 엄청 속이 뒤집혔을 것이다.

  하긴 이게 다 자업자득이다. 딸이 어렸을 때 송편좀 만들자고 하면 너 결혼하면 그 때 만들어 먹으라고 하고, 무엇을 만들어 달라고 하면 나는 그런 거 못하니까 네가 커서 요리학원 가서 배워가지고 만들어보라고 했다.

  우리 아들은 초등학교 다닐 때 늦게 일어나니까 우리가 출근한 후 혼자서 과일만 먹고 학교 갔다. 점심때도 빈 집에 와서 혼자 라면을 끓여 먹거나, 볶음밥을 해 먹곤 했다.

  저녁때 퇴근하고 와서 싱크대에 그릇이 있으면 나도 모르게 신경질이 치솟았다. 이거 처먹기는 누가 처먹고 설거지는 누구보고 하라는 거냐고 소리를 질렀다. 그 후론 점심 먹고 꼬박꼬박 설거지를 해놓았다. 지금 생각하면 초등학교 2학년짜리에게 너무 했다는 생각이 든다. 나 친엄마 맞나 모르겠다.

  평생 험한 음식만 먹였더니 아들이 자기 아내는 요리 잘 하는 5년 연상을 구해왔다. 며느리는 마음도 착하고 요리하기를 즐겨 해서 음식을 해도 예쁘게 장식을 해서 내놓는다. 그런데 먹기를 즐겨 하다 보니 체중이 세 자리 숫자가 되어 큰일이다. 결혼하기 전까지는 그래도 두 자리 숫자를 유지했는데 말이다.

  나도 이 모양이고 딸도 이 모양이니 외손녀가 주부가 되는 날에는 아예 부엌이 없어질지도 모른다. 모든 음식이 자판기에서 단추만 누르면 나오는 세상이 될 수도 있다. 아니 수돗물이 나오듯 각종 음식물이 꼭지만 틀면 나오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그런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부엌은 내게 즐거움이 아니고 족쇄다. 부엌은 도대체 누가 만들었는지 모르겠다. 아예 부엌이 없었으면 다른 동물처럼 그냥 요리하지 않고 먹었을 텐데그저 여기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뿐이다. 왜 여자들이 이 역할을 맞게 됐는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남편은 빨래 담당이라 아무 생각 없이 세탁기만 돌리면 되는데 말이다. 일주일만 바꿔서 하자고 해도 한 번 정했으면 그대로 해야지 절대 안 바꾸겠단다. 빨래는 일주일에 세 번만 하면 되는데 식사는 하루에 세 번씩 챙겨야하니 아무리 생각해도 불평등 조약이다.

  남편도 평생 제대로 된 음식 한 번 못 먹었으니 괴로울 것이다. 한 번 선택이 10년을 좌우하는 게 아니라 평생을 좌우한다. 하지만 어쩌다 뭐라고 한 마디 하면 그럼 시범을 보이라는 둥, 역할을 바꿔서 하자는 둥 역으로 공격을 해대니 찍소리 한 번 못하고 살고 있다. 아무래도 저승 가서 형편없는 음식 꾸역꾸역 억지로 먹는 벌 받을 것 같다.

  어찌 생각하면 내 손으로 밥 해 먹을 수 있는 게 행복인지도 모른다. 수족을 맘대로 움직이지 못해 남이 해주는 밥을 먹어야할 때가 되면 지금 이 때를 그리워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저 지금이 제일 좋은 때라고 생각하며 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