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2014. 6. 19. 50만원만 주고 싶다.

아~ 네모네! 2014. 11. 14. 15:54

50만원만 주고 싶다

아 네모네 이현숙

  나는 껌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껌 씹는 것도 노동인지 귀찮다. 그래서 누가 주면 대충 단물만 빨아먹고 버린다. 버리는 것도 그냥 버리면 안 되니까 휴지에 싸서 휴지통에 넣어야하는데 휴지통이 안 보이면 울며 겨자 먹기로 계속 씹는다. 그래서 내 돈 주고 껌을 산 기억이 없다.

 

  “껌은 씹지 않아요.”

할머니가 물끄러미 쳐다본다. 한 쪽 눈이 하얗다. 실명했나보다. 나머지 한 쪽 눈도 초점 잃은 공허한 눈이다. 이 하얀 눈 속에는 얼마나 많은 사연이 들어 있을까? 여기까지 오는데 얼마나 험난한 역경을 헤쳐 왔을까? 자식은 있을까? 순간적으로 무수한 생각이 내 머리를 스친다.

  7호선에서 2호선 쪽으로 연결되는 통로에 껌팔이 할머니가 있다. 조막만한 플라스틱 바구니에 껌 몇 통이 놓여있다. 무릎이 머리 위로 한참 올라와 있다. 추운 겨울에도 맨 바닥에 앉아 몇 년째 껌을 팔고 있다. 다들 바쁘게 걸어가느라 눈길 한 번 주지 않는다. 나 역시 한 번도 껌을 사지 않았다.

  그전에는 7호선에서 5호선으로 가는 통로에 있었다. 그곳은 사람들이 많으면 사람들 발에 밟힐 지경이다. 하지만 7호선에서 2호선으로 가는 쪽에는 계단 내려가는 뒤쪽으로 공간이 있어 안전하다. 그래서인지 작년부터 이쪽으로 옮겨왔다.

  몇 주 째 할머니가 보이지 않는다. 어디 아픈가? 아니 돌아가셨나? 별별 생각이 다 든다. 아무 관계도 없는 할머니지만 어쩐지 마음이 쓰인다. 맨 바닥에 앉아 하루 종일 그 껌을 다 팔아도 만원도 안 될 것 같다. 하지만 껌을 사는 사람을 본 적이 거의 없다.

  이렇게 할머니를 기다린 지 한 달이 더 지났는데 할머니가 보인다. 내심 너무 반가웠다. 얼른 천 원짜리 한 장을 꺼내들고 할머니 앞으로 갔다. 바구니에 천원을 넣으니 껌을 주려한다. 나는 껌을 씹지 않는다고 말하고 도망치듯 에스컬레이터 쪽으로 달려간다. 거지 취급을 하는 것 같아 미안하기도 하다.

  요즘은 할머니를 만난 것도 인연이란 생각이 든다. 영원한 시간과 무한한 공간 속에 같은 시각 같은 장소에서 만난다는 것은 기적에 가깝다. 인연이란 언제 이어져서 언제 끊어질지 모른다. 할머니와의 인연이 얼마나 이어질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할머니에게 자식이라도 있는지 누가 여기까지 데려다 주는지 알 수 없다. 혼자서는 일어설 수도 없을 것 같다.

  요새는 할머니 만나면 주려고 가방에 천 원짜리 한 장씩 따로 넣고 다닌다. 일주일에 한 번씩 수필수업 받으러 올 때만 만날 수 있으니 앞으로 얼마나 더 줄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할머니가 십 년을 산다 해도 1년이면 5만원, 10년이면 50만원 밖에 안 된다. 하지만 내 생각에는 1년도 못 살 것 같다.

할머니가 안 보이면 내 가방 속의 천 원짜리 지폐는 갈 곳을 몰라 몇 주일씩 나가기를 기다린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50만원만 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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