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2014. 9. 25. 춤 추는 바이올린

아~ 네모네! 2014. 9. 26. 15:25

춤추는 바이올린

아 네모네 이현숙

 

  매월 마지막 수요일은 문화가 있는 날이다. 예술의 전당에서 기획한 음악회를 보러갔다. 첫 곡은 차이콥스키의 사계 중 10월 가을의 노래다. 사계라고 하면 비발디의 사계만 있는 줄 알았더니 차이콥스키의 사계도 있다. 가을의 노래는 잔잔하고 애잔하고 무엇인가 우수에 젖은 느낌이다.

  테너 박경민이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내일위령제를 부른 후 소프라노곡 해방에 대한 설명이 있었다. 해방은 죽어가는 남편을 위해 부인이 부르는 곡이라고 하자 여자들의 웃음이 터져 나왔다. 우리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남편이 죽으면 남편에게서 해방 되는 것을 떠올렸다. 우리의 웃음소리를 듣더니 박경민은 자신도 웃으며 그런 해방이 아니라고 했다. 모든 삶과 육신의 고통에서 해방되는 것을 노래했다는 것이다. 과연 스크린에 나오는 가사를 보니 차원 높은 해방을 노래한 것이다.

  밤이라는 소프라노 곡도 어둠이 모든 사물을 서서히 삼켜가는 모양을 어찌나 아름답고 섬세하게 표현했는지 눈에 보이는 듯하다. 작사가 먼저인지 작곡이 먼저인지 모르겠는데 아무래도 작사가 이루어진 후 여기에 곡이 붙여지는 게 아닐까 싶다. 모든 예술가는 남들이 가지진 못한 한 가지 감각이 더 있는 모양이다. 오감을 가진 우리가 육감을 가진 예술가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어찌 보면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성악곡이 끝난 후 그리그의 바이올린 소나타 2G장조가 이어졌다. 권혁주의 연주다. 그리그는 노르웨이 사람이다. 노르웨이에 갔을 때 그가 살며 작품 활동을 했던 집에 갔다. 호수가 바라다 보이는 아름다운 곳이다. 그리그는 키가 153cm밖에 안되고 몸이 허약하여 평생 고생을 했다고 한다. 고종 사촌 여동생과 결혼하여 딸을 하나 낳았는데 10개월 되었을 때 죽었고 그 후에는 애기가 없어서 평생 둘이서 살았다, 두 사람의 돌무덤이 호수로 향한 암벽 위에 만들어져 지금도 호수를 바라보고 있다.

작업실에 있는 의자도 어찌나 작은 지 어린아이 의자 같았고 콘서트 홀 옆에 있는 동상은 실물 크기로 만들었다는데 어찌나 작은지 어린 아이 같다. 그리그 동상의 어깨에 어깨동무를 하고 사진을 찍었다. 딱 내 키 밖에 안 된다.

  콘서트홀은 200석 규모의 작은 홀이었는데 이 홀 의자에 앉으면 호수가 바라보인다고 한다. 이렇게 아름다운 곳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평생을 같이 했으니 그런 아름다운 음악이 나올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그의 집으로 들어가는 길에도 오래된 고목들이 울창했는데 그 길로 들어설 때부터 무엇인가 우리 마음을 사로잡는 독특한 매력이 있다. 그의 음악에서 배어 나오는 신비로움과 아름다움이 그의 집에서도 그대로 배어 나오고 있다. 바이올린 소나타 2번은 그의 불우했던 일생과 비슷한 느낌의 음악이다.

  권혁주의 바이올린은 연주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살아서 움직인다. 권혁주가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것 같지 않고 바이올린이 권혁주를 연주하는 것 같다. 권혁주가 춤을 추는 게 아니라 바이올린이 춤을 춘다. 활에 의해 피동적으로 소리를 내는 게 아니라 스스로 소리친다. 바이올린이 온 무대를 넘나들며 춤을 춘다. 그것은 하나의 살아있는 생물이다.

  마지막은 브람스의 피아노 4중주다. 네 명이 하는 연주라 조금 초라할 줄 알았더니 예상 밖이다. 무대가 꽉 찬 느낌이다. 챔버홀 전체가 보이지 않는 어떤 에너지로 가득 찼다. 수 십 명이 연주하는 오케스트라보다 더 충만하고 팽팽한 긴장감이 느껴진다. 연주를 마치자 관객들의 박수와 함성이 그치지 않는다. 계속 들락거리며 인사를 하다가 안 되겠는지 앵콜곡을 연주한다. 피아졸라의 리베르탱고다. 귀에 익은 곡이라 다들 환호성을 지르며 좋아한다. 탱고는 듣기만 해도 몸이 들썩거린다. 아름답고 귀족적인 춤이다. 인간 몸의 아름다움을 최대로 표현한 춤이다. 이런 예술 감각은 인간만이 신에게 선물 받은 것일까? 모처럼 생수를 실컷 마신 기분으로 연주 홀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