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2014. 5. 15. 지공선사

아~ 네모네! 2014. 6. 1. 16:59

지공선사

아 네모네 이현숙

 

  지하철 검표기에 카드를 댄다. 삐빅! 하고 두 음절의 소리가 난다. 순간 나도 모르게 주위를 둘러본다. 누가 쳐다볼까봐 얼른 카드를 가방에 넣고 안으로 들어간다.

  지난달까지 사용하던 카드는 검표기에 대면 삑! 하고 한 음절의 소리를 냈는데 경로자를 위한 교통카드는 소리가 다르다. 소리뿐 아니라 나타나는 숫자도 다르다. 항상 0으로만 표시된다. 검표기에 00으로 표시된 두 개의 숫자를 남들이 볼까봐 나도 모르게 얼굴이 굳어진다. 공연히 도둑질하다가 들킨 사람처럼 가슴이 철렁한다.

  젊은 사람들이 낸 돈으로 공짜로 타고 다니는 것 같아 젊은 사람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노인도 한 둘이라야 말이지 온통 노인 투성이니 이건 정말 심각한 문제다.

  미국에서 살다 잠시 다니러온 친구도 한국에 와서 놀랐단다. 미국에는 절대 공짜는 없다고 한다. 지하철 요금도 50%는 내야한단다. 어찌 보면 공짜가 소비를 더 부추키는지도 모른다. 내 돈 내면 안 갈 먼 거리도 주저 없이 다닌다. 하긴 집 안에만 처박혀 있으면 정신건강에도 안 좋고 육체적으로도 안 좋으니 다니기는 다녀야 한다. 하지만 젊은 사람들이 나날이 줄어드는 요즘 노인인구는 갈수록 늘어나니 젊은이들의 부담이 너무 커진다.

  이렇게 소심하게 기죽어 걸어가다가 스스로 치료를 한다. 나도 32년간 직장생활하며 세금 많이 냈으니까 이 정도는 누려도 된다고 세뇌를 시킨다. 이 직업을 갖기 위해 16년간 열심히 공부하고, 태어나서 학교 갈 때까지 부모님이 공들여 키웠으니 이 정도는 받아도 된다고 다시 한 번 우겨본다.

또 아들 딸 낳아서 40년간 키웠으니 이제 젊은이들에게 전철 값 정도 받아도 크게 잘못된 일은 아니라고 스스로 정당화한다.

  하지만 그래도 뭔가 석연치가 않다. 공짜 손님인 노인들이 별로 보기 좋은 것은 아니다. 오죽하면 지공선사라는 말까지 생겼을까? 지하철 공짜로 타고 앉아 선을 하는 사람이란다. 누가 오거나 말거나 눈 감고 졸고 있는 모양을 빗대어 한 말이다. 지공선사가 되지 않으려고 열심히 독서라도 해야겠다. 지공선사 대신 지공독사라도 되기 위해서다. 지하철 공짜로 타고 앉아 독서하는 사람 말이다.

국민 후생이 좋기는 좋은데 나라 살림 봐 가면서 적당히 해야 할 것 같다. 공짜라면 양잿물도 먹는다는데 나도 지하철 공짜로 타다 보니 벌써 타성이 붙으려한다. 솔 솔 깨소금 맛이 난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점 점 더 공짜를 바라게 되니 거지 근성이 생겼나보다. 이러다 머리 홀라당 까진 대머리 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진짜 거지가 되기 전에 정신 바짝 차려야겠다. 나이 들수록 베풀며 살라는데 베풀기는커녕 공짜만 바라는 내 모양이 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