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2014. 9. 22. 독립투사 전형필

아~ 네모네! 2014. 9. 26. 14:47

독립투사 전형필

아 네모네 이현숙

 

  동대문 디지털플라자(DDP)에서 열리고 있는 간송문화전을 보러갔다. 예상대로 문이 열리기 전부터 사람들이 길게 늘어서 있다. 문이 열리면 곧 들어가는 줄 알았더니 한 번에 열 명 정도씩 끊어서 시간차를 두고 들여보낸다. 한꺼번에 넣어주면 시장바닥이 될 지경이니 좋은 아이디어인 것 같다.

  ‘문화로 나라를 지키다라는 부제에 걸맞게 간송 전형필은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이 강탈해가는 우리 문화재를 지킨 독립투사다. 몸 바쳐 싸우다 전사한 독립군들도 물론 애국자이지만 무지막지한 사재를 털어 문화재를 지킨 전형필도 걸출한 애국자요, 만세에 칭송 받을 위인이다.

  그는 부잣집에서 태어나기도 했지만 돈을 올바르게 쓸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의 부친은 몇 대째 운영해온 미곡상으로 많은 부를 축적하였다. 간송은 1906년에 태어나 196256세의 나이로 타계할 때까지 우리 문화예술사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했을 뿐 아니라 많은 문화재를 지켜냈고, 보성고보를 인수하여 후학의 교육에도 힘썼다.

  그토록 어려운 시기에 이런 인물이 나타난 것은 참으로 우리 민족의 복이 아닌가 싶다. 문화재 하나를 손에 넣기 위해 집 몇 채가 되는 거금을 투자하는가 하면 값을 따지지 않고 모조리 사들였다. 천 원을 달라고 하면 만원을 주고, 물건을 가지고 오는 짐꾼에게는 먼 길에 수고했으니 목이라도 축이라고 술값까지 얹어주는 통 큰 수집가였다.

  그는 1938년 성북동에 최초의 사립박물관인 보화각(지킬보 꽃화 문설주각)을 지어 꽃처럼 아름다운 우리 문화재를 이 집에 보관하여 지켜냈다. 거기에 있던 온갖 보화가 올해 76년 만에 처음으로 외부전시를 하는 것이다. 모처럼 나들이를 나온 보화를 보기 위해 사람들이 몰려드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보화라는 이름에 걸맞게 우리 눈에 익은 작품이 많다. 신윤복의 미인도와 단오풍정을 비롯하여 단원 김홍도의 풍속화, 추사 김정희의 서체, 겸재 정선, 장승업, 김득신 등 그야말로 기라성 같은 대가의 작품이 즐비하니 관람객들이 달라붙어서 움직이질 않는다. 학교 다닐 때 미술책에서 보았던 작품들을 실제로 보니 반갑기 그지없다.

  실물도 실물이지만 영상으로 확대하여 구석구석 보여주니 실물에서 보지 못했던 세세한 부분까지 볼 수 있어 그야말로 금상첨화다. 단오풍정에서 그네 타는 여인도 그렇고 목욕하는 기녀들의 풍만한 육체와 바위 뒤에 숨어서 엿보는 동자승까지 보면 볼수록 실제 상황을 보는 듯 생동감이 넘친다.

  김득신의 야묘도추도 도둑고양이가 병아리를 입에 물고 도망치는 모습이며 날개를 퍼덕이며 좇아가는 암탉, 긴 장죽을 들고 마루 아래달려 내려가는 남편의 모습, 마루에서 어쩔 줄 몰라 하는 부인의 표정까지 마치 비디오를 보는 듯하다. 장죽의 길이가 짧아 아무래도 놓쳤을 것 같다.

  하나하나 작품을 보는 동안 그것을 그린 화가나 도자기를 만든 도공의 마음이 가슴까지 전달된다. 어떤 마음을 가지고 어떻게 만들었을까 그의 심정과 만드는 모양이 눈에 선하다. 인생은 짧지만 예술은 길다고 하는 말이 실감난다. 인간이 영생하는 방법은 자식을 낳는 것과 자신의 작품을 남기는 것이라고 하더니 정말 그렇다. 이 작가들은 자신의 혼을 작품에 불어넣어 수백 년이 지난 우리와 호흡을 함께 하고 있다.

  두 시간 가량 서서 들여다보니 나중에는 허리가 아파 서 있기도 힘들다. 전시회도 더 나이 들기 전에 부지런히 다녀야겠다. 경로 할인을 괜히 해주는 게 아니다. 나이 들면 할인이 아니라 무료라고 해도 못 갈 것 같다.

  간송(澗松)은 계곡의 시내라는 뜻도 있지만 큰 수를 나타내는 말이다. 1036제곱을 나타내는 엄청난 숫자이다. 그는 계곡의 소나무처럼 싱싱하고 1036제곱처럼 무한한 배포와 열정을 가진 독립투사다. 관람을 마치고 나오려니 새삼 전형필에게 감사한 마음이 넘친다. 그는 우리 민족의 은인이요, 보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