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2014. 6. 6. 욕쟁이 할머니

아~ 네모네! 2014. 11. 14. 15:47

욕쟁이 할머니

아 네모네 이현숙

  퇴근 후 팔이 빠지도록 무거운 시장바구니를 들고 집에 와 저녁을 준비한다. 저녁밥이 다 되어갈 쯤 전화벨이 띠리링 울린다. 저녁을 먹고 오겠단다. ‘에이 썅 개새끼온갖 욕이 목구멍까지 차 올라온다.

아이들 씻기랴 먹이랴 재우랴 온몸의 힘이 다 빠질 즈음 또 전화벨이 울린다. 술집에 있는데 좀 늦을 것 같단다. ‘어디서 술 처먹다 콱 죽어버려라또 욕설이 가슴에서 차고 넘친다.

  부글부글 끓는 울분을 가라앉히지 못해 아무 종이에나 갈겨댄다. 이렇게 속이 뒤집힐 때마다 위아래로 토해내고 싸대는 글이 노트 몇 권씩 쌓여갈 즈음 다시 한 번 들여다보면 그야말로 가관이다. 내 마음의 배설물이 풍기는 온갖 악취가 진동한다. 개새끼 소 새끼 하며 종이 위에서 난무하는 욕설을 누가 볼까봐 걱정된다. 내가 봐도 도저히 봐 줄 수가 없어 내다버린다.

  하지만 몇 달 지나면 또 쌓인다. 어쩌다 남편이 보고는 웃는다. 술 먹으러 나갈 때면

일기장에 많이 쓰시오~” 하면서 문을 나선다.

  퇴직 후 할 일 없어진 지금은 잘 나가지도 않는다. 어쩌다 친구들과 저녁 모임에 가도 빨리 들어온다. 이제 더 놀다 와도 되는데 말이다. 지금은 돌봐야할 아이도 없고 혼자 있는 게 홀가분하니 좋다.

내게 있어 글쓰기는 일종의 배설행위다. 뱃속에 똥오줌이 가득차면 괴로워서 마구 쏟아내듯 나의 글쓰기는 그저 배설에 불과하다. 문학성이고 무엇이고 생각할 겨를이 없이 마구 토해낸다.

  일전에 우리 자매들 카톡방에 한 동생이 ㄱㅅㄲ 이라고 썼다. 누군가를 욕하고 싶었나보다. 나는 척 보자마자 개새끼라고 해독했다. 그런데 4번 동생은 한참 있다가 이거 해독하는데 한참 걸렸다고 올린다. 그러자 3번 동생은 그때까지도 몰랐는데 이제야 알았다고 올린다. 아무래도 나는 욕쟁이 할머닌가 보다. 젊어서부터 하도 욕을 해댔더니 척하면 삼천리다.

  그런데 욕쟁이할머니가 하는 식당이 잘 되는 걸 보면 참 희한하다. 욕이란 미워서 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 욕에서 친근감을 느끼는 경우도 있다. 아니면 인간의 내면에 욕을 먹고 싶은 욕망이 있는 것일까?

  인간의 언어는 신비해서 단어의 뜻 보다는 억양에서 더 많은 것을 느낀다. 어쩌면 음파에서 나오는 진동으로 느끼는 지도 모른다. 아무리 아름다운 미사여구를 써도 속에 독침이 들어있음을 마음으로 느낄 수 있다. 온갖 욕설이 난무해도 그 안에 푸근한 인정이 들어있음도 알 수 있다. 인간의 감성은 참으로 오묘하고도 신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