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2014. 9. 12. 수건 이력서

아~ 네모네! 2014. 11. 14. 16:11

수건 이력서

아 네모네 이현숙

 

  화장실에 앉아 볼 일을 본다. 무심코 벽에 걸린 수건을 보니 남이중공업 방문기념 충남중학교 제 7회 동문회라고 쓰여 있다. 이것은 남편 중학교 동창이 운영하는 공장에 갔을 때 받은 것이다. ‘남임순여사 회갑기념 2008. 8. 5. 자 동현, 미영, 영미, 선자 드림이라고 쓴 것은 동서 환갑잔치에 가서 받은 거다.

  그 밖에도 빨랫줄에 걸린 수건들을 보니 예원학교, 서울예고, 스승의 날 기념, 체육대회 기념, 과학교사 직무연수 기념, 목사 안수 기념, 첫돌 기념, 회갑기념, 칠순기념 등등 별별 수건이 다 있다. 수건마다 날짜와 이름까지 소상히 적혀있다.

  결혼할 때 친정어머니가 수건 20장을 사주었는데 이렇게 많이 가져가서 뭐하냐고 열 장만 가지고 왔다. 그 후 여기저기서 수건이 생겨 지금까지 40년이 넘도록 수건을 산 기억이 없다. 사기는커녕 너무 넘쳐서 아들 딸 외에도 이 사람 저 사람 마구 나눠주며 살았다.

  수건은 홍보용이나 선물용으로 널리 쓰인다. 그래서 어떤 집에 들어가 보면 그 집 사람이 어떤 직업을 가졌으며 어느 학교를 졸업했으며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을 하고 다녔는지 소상히 알 수 있다. 수건은 그 집의 얼굴이며 오장 육부까지 훤히 들여다 볼 수 있는 투시기요 그 집안의 이력서다.

  인간은 언제부터 수건을 사용했을까? 아마도 옷감이 만들어지면서부터가 아닐까? 수건에는 손수건, 얼굴 닦는 수건, 어린아이 턱받이 수건 등 참 종류도 많다. 손수건은 모양도 다양하고 색채도 다양하다. 땀 닦는 용도로도 쓰이지만 음식 먹고 입 닦을 때나 등산 갈 때, 아쉬운 이별의 순간에도 손수건은 등장한다.

  예전에는 어린아이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 손수건을 왼쪽 가슴에 매달고 갔다. 물론 침 닦고 코 풀 때 쓰라고 부모들이 챙겨주기 시작했을 것이다. 지금 아이들은 콧물도 별로 안 흘리는데 예전 아이들은 왜 그리도 콧물을 흘렸는지? 소매 끝이 맨들맨들하도록 코를 옷에 쓱쓱 닦았다. 어른이 되어서는 상의 포켓에 멋으로 찔러 넣기도 한다.

  하지만 요새는 휴지가 하도 만연하여 손수건이 별로 쓰이지 않는 것 같다. 휴지는 한 번 쓰고 버리면 간단한데 손수건은 빨아서 다시 써야하니 번거롭다. 나도 손수건 써 본지가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웬만한 건 다 휴지로 해결한다. 걸레도 잘 안 쓰고 휴지 한 장 던져 놓고 발로 쓱쓱 문지를 때가 많다.

  물 티슈에 여행용티슈, 화장 지우는 티슈까지 온갖 티슈가 다 등장하여 수건, 행주, 걸레가 해야 할 일을 모두 독차지해 버렸다. 어린 아기가 똥 쌌을 때도 물로 잘 안 닦고 어린이용 물 티슈로 대충 닦아준다.

  이렇게 모든 것을 휴지로 해결하다가는 얼마 안 가 지구상의 나무가 고갈될 것이다. 인도 사람들과 중국 사람들이 화장지를 사용하면 지구상의 나무가 남아나지 않을 거라는 말도 있다. 정말 인도 여행 가서 보니 화장실에 휴지는 없고 조그만 물바가지만 있었다. 처음에는 이게 물 안 나올 때 물 퍼붓는 것 인줄 알았는데 나중에 들으니 그게 용변 후 물 받아서 휴지 대용으로 뒷처리하는 것이었다. 수동식 비데라고나 할까?

  그래서 인도 사람들은 산에 갈 때도 빈 페트병을 하나씩 가지고 다닌다. 산에서 용변을 볼 때는 계곡에서 물을 한 병 가지고 가서는 해결하고 온다. 어찌 생각하면 비위생적인 것 같지만 길게 생각하면 이게 자연을 살리는 길이라는 생각도 든다.

  우리도 휴지 사용을 줄이고 수건으로 대신하면 아마 펄프 수입에 드는 막대한 외화를 줄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