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2013. 8. 23. 엄마 죄송해요.

아~ 네모네! 2013. 11. 18. 17:04

엄마 죄송해요

 

아 네모네 이현숙

  엄마 죄송해요. 그때는 정말 몰랐어요. 엄마가 우리 아이들 옷을 사가지고 왔을 때 왜 입혀볼 생각을 못했을까요? 그저 저녁상 차리는 데만 신경을 쓰느라고 미처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지 못했던 것 같아요. 나중에 친정 동생이 하는 말을 들었어요. 엄마가 집에 가서 그 옷이 잘 맞는지 손주에게 입혀보고 싶었는데 말을 못했다고 하셨다죠?

  엄마 진작 말하지 그랬어요. 딸인 저에게 뭐가 어려워서 말을 못하고 그냥 마음에 품고 집으로 가셨나요? 엄마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불효를 용서하세요.

  미숙아빠 생일 때도 오셔서 잘 드시고 가셨죠? 그 때도 왜 친정집에 계신 아버지 생각을 못 했을까요? 엄마가 집에 가서 또 동생에게 말했다면서요? 잡채가 하도 맛있어서 친정아버지에게 맛보이고 싶었는데 차마 싸달라는 말을 못했다고요.

  엄마는 평소에는 그토록 용감무쌍하고 대범해 보였는데 왜 그리도 소심하셨나요? 며느리도 아니고 딸인데 왜 말씀을 못하셨나요? 운만 떼었어도 남은 반찬 다 싸드렸을 텐데 왜 그러셨어요?

  제가 어려서부터 말이 적고 남의 사정 잘 못 헤아리는 줄 뻔히 아셨을 텐데 왜 말을 못하셨나요? 환갑도 못 사시고 가실 줄 알았으면 더 신경 써서 잘 해드렸을 텐데 한 치 앞을 못 보는 저는 그저 눈물만 흘립니다.

  엄마가 가신지 벌써 30년이 되어가네요. 하지만 지금도 그 일이 제 마음 속에 자리 잡고 떠나지를 않네요. 엄마 죄송해요. 미련한 저를 용서하세요. 어디선가 다시 태어나셨다면 이번에는 맘에 두는 말없이 모든 것을 다 털어놓고 사세요. 저는 딸이잖아요. 딸에게 못할 말이 뭐가 있겠어요?

  그렇게 당당하게 모든 말 다 하고 사실 것 같던 엄마가 왜 그리도 소심하셨나요? 하고 싶은 말 못하고 속에 묻어두니까 뇌졸중에 걸렸나봐요. 저녁밥까지 다 해놓고 아버지 기다리는 동안 운동화 빨다가 갑자기 쓰러지셨다면서요.

  아래층 아줌마가 동네병원에 모시고 갔다가 집으로 오는 길에 다시 쓰러져 경희의료원으로 실려 가셨죠. 저도 저녁밥 먹고 설거지 하다가 미경이 전화를 받았어요. 엄마가 쓰러졌다고 하여 잠시 현기증이 나셨나 하고 가볍게 생각했어요. 엄마는 건강해서 제 기억에 엄마가 아파서 누워있는 것을 본 적이 없거든요.

  그런 엄마가 쓰러진 지 몇 시간 만에 눈 한 번 못 떠보고 말 한 마디 못하고 떠나셨을 때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았어요. 몸을 가누지 못해 휘청거렸죠. 도저히 이 사실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어요. 용서할 수가 없었어요. 엄마가 야속하기까지 했어요.

  엄마가 정말 이 세상에 있기나 했었나 정신착란을 일으킬 것 같았어요. 잔뜩 의지하고 있던 지팡이가 부러진 느낌이었죠. 사실 저는 엄마에게 전혀 의지하지 않고 잘 산다고 생각했었어요.

  혼자서 김장도 잘 담그고, 아이들도 잘 키우고 엄마보다 똑똑해서 세상일도 잘 처리한다고 착각하며 살았죠. 그런데 갑자기 엄마가 없어지니까 모든 것이 사라진 것 같았어요. 삶의 의욕이 다 사라졌어요. 왜 살아야하는지 모르겠더라구요.

  엄마의 제사상에 쪼그려 앉아 절하는 아버지 모습도 보기 싫었어요. 아버지는 어찌할 줄 모르고 우왕좌왕 하셨죠.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은 그 때 사우디에 가있어서 임종도 못하고 하관하기 직전에 겨우 장지에 도착했죠. 그 후 동생도 결혼하여 며느리도 생기고 친손자 친손녀도 생겼지만 엄마에게 보여드리지도 못했네요.

  동생 결혼식 때는 제가 한복을 입고 엄마 자리에 앉아 대신 시어머니 노릇을 했어요. 그 후 아버지는 재혼을 하여 새어머니가 생겼어요. 딸들이 아버지에게 더 늙고 병들면 누가 오겠느냐고 제발 빨리 재혼하라고 졸랐어요.

  엄마~ 섭섭하더라도 아버지 생각해서 마음 편하게 계세요. 저승에서라도 새어머니 만나면 새 동생을 본 듯 반갑게 맞아주세요. 엄마 살았을 때 엄마 속을 헤아리지 못한 저를 용서하세요. 엄마 죄송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