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2013. 11. 14. 색치인가봐

아~ 네모네! 2013. 11. 18. 17:10

색치인가봐

 

아 네모네 이현숙

  “선생님 산 색깔이 어땠어요?”

갑자기 색깔을 물으니 생각이 나지 않는다. 같이 산에 가기로 했던 미술 선생님이 사정이 있어 못 갔다. 산에 다녀온 나에게 색깔을 묻는데 도무지 기억이 안 난다. 산의 모양은 눈에 선한데 왜 색은 전혀 떠오르지 않는 것일까?

  “할머니 대문 색깔은 뭐예요?”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어서 솔직하게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외손자 건희가 캄보디아에서 초등학교 다니는데 숙제로 조부모가 태어난 집에 대해서 알아오라는 것이다. 대문을 들어서면 왼쪽으로 부엌이 있고 그 안쪽에 안방, 안방 옆에 마루, 마루 옆에 건넌방, 제일 안쪽에 화장실까지 눈에 보이듯 확실하게 떠오르는데 색깔은 전혀 모르겠다.

  아무래도 난 색치인가보다.

이런 나에게도 색이 느껴진 적이 있다. 유럽 최고봉이라는 엘부르즈 산에 가려고 러시아에 갔다. 모스크바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가니 도시 전체가 회색빛이었다. 마치 화장하지 않은 여인의 맨얼굴을 보는 듯했다. 실제로 건물들이 회색은 아니었는데 내 눈에는 회색으로 보였다.

  작년 봄에는 폴란드 바르사바에 갔다. 하늘도 땅도 사람들의 얼굴도 온통 회색빛이었다. 자세히 보면 분명히 백인인데 왜 회색빛으로 보이는지 모르겠다.

  아프리카 킬리만자로 산에 오를 때 내 배낭을 져주던 아이는 분명히 얼굴색이 검은 색인데 오히려 밝은 색으로 보였다. 검은 색이 흰색보다 더 밝게 보이는 이유가 무엇일까?

  아프리카의 흑인이 폴란드의 백인보다 더 밝은 색으로 보이는 것은 얼굴에서 풍겨 나오는 표정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 나라 국민의 얼굴색은 그 나라의 역사가 만드는 게 아닐까? 러시아나 폴란드 사람의 어두운 색은 공산 치하에서 어두운 생활을 하는 동안 만들어진 색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일조량이 부족해서 그런 것일까?

  아프리카 소년의 환한 얼굴색은 아름답고 오색찬란한 자연이 만든 색인 듯하다. 색이란 무엇인지? 보이는 그대로가 아닌 내면의 색이 있는 듯하다. 우리가 보는 색은 표면의 색이 아닌 내면의 색일지도 모른다.

  외국인의 눈에 비친 우리들의 색은 어떤 색일까? 남들이 보는 내 얼굴의 색은 어떤 색일까? 나를 보고 남편이 중병에 걸린 사람인 줄 알았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지하철 옆자리에 앉은 사람이 세상은 그래도 한 번 살아볼만한 곳이라고 하는 걸보면 내 얼굴은 무척 어두운 색인가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