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2013. 8. 4. 예측불허 항공여행

아~ 네모네! 2013. 11. 18. 17:02

예측 불허 항공여행

 

아 네모네 이현숙

  몇 몇 지인들과 발트 연안의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벨라루스 그리고 코카서스 산맥 근처의 그루지아, 아르메니아 여행을 떠났다. 그 중에 아르메니아가 가장 인상적이다.

  그루지아 국경을 넘어 아르메니아 입국심사를 받으려는데 반대편에서 웬 여자가 이쪽으로 오라고 손짓 한다. 알고 보니 아르메니아 가이드 카린이다. 카린은 KBS2 영상앨범 산 프로에 박종완씨와 함께 출연했다고 한다. 526일에 방영된다고 하니 서울 가서 인터넷으로 봐야겠다.

  아르메니아 사람들은 아라랏산을 성스러운 산으로 여긴다. 아라랏산을 아버지, 세반호수를 어머니로 생각한다. 그래서 국기에도 아라랏산을 넣었다. 그런데 스탈린이 터키와 협상하면서 터키에게 주어버렸다.

  아라랏 산은 성경에 나오는 노아의 대홍수 때 방주가 물에 떠다니다가 처음 땅에 닿은 곳이다. 아르메니아인은 노아의 셋째 아들 야벳의 후손이라고 한다. 노아가 아라랏 산에서 방주를 나왔다면 이곳에서 살았을 확률이 크다.

  아르 사람들을 아르메니안이라고 하는데 아르메니안의 땅을 아르메니아라고 한다. 그래서 고려 사람을 코리안, 고려인의 땅을 코리아라고 하나보다.

  바나도르 마을로 이동하여 코카서스의 스위스라 일컫는 딜리잔 마을로 갔다. 이곳에는 예술가들이 작업하는 아름다운 공방과 예쁜 수공예품을 파는 가게가 많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딜리잔에서 나와 세반호수로 달렸다. 세반호수는 1900m 높이에 있는 길이 78km의 거대한 호수다. 세반은 검은색을 뜻하는데 워낙 높은 곳에 있는 관계로 구름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검게 보인다고 한다.

  과연 우리가 가는 날도 호수 주변의 산에 구름이 덮여 호수를 향해 기어 내려오고 있었다. 길 가에서 우리를 향해 양팔을 쫙 벌리는 사람들이 곳곳에 있다. 무얼 하는 사람들인가 했더니 그만큼 큰 고기가 있으니 사라는 것이란다. 그런데 실제로 가보면 30cm 정도 밖에 안 된단다. 일단 모션을 크게 하여 사람들의 흥미를 끌어 차를 세우려는 속셈이다.

  세반 호숫가에 있는 호텔로 들어가 방으로 가니 입이 딱 벌어지게 전망이 기막히다. 우리 방은 코너에 있는 방인데 한 쪽 창으로는 세반호수가 펼쳐지고 한 쪽 창으로는 구름이 흘러내리는 산이 펼쳐진다. 널찍한 거실과 소파가 있고 방도 두 개다. 방에는 오디오까지 있다.

  욕실에는 스파까지 갖추어져 모든 게 완벽하다. 세상에 이렇게 멋진 방 있으면 나와 보라고 하고 싶다. 세반 호수 위로 지는 일몰 또한 환상이다.

 

  다음 날 호텔 앞에 보이는 산으로 아침 산책을 나갔다. 산 아래는 아담한 세반 마을이 자리 잡고 있다. 마을길로 들어서니 한 할아버지가 소를 끌고 지나간다. 아침 꼴을 먹이러 가나보다. 집 앞 마당에는 토종닭들이 모이를 찾고 있다. 자연환경이 좋으니 닭들도 털이 반지르르한게 살이 통통하게 올랐다.

  산등성이로 오르니 소떼를 몰고 가는 사람들이 보인다. 멀리 가서 풀을 뜯게 하려나보다. 산에는 라벤더와 장구채 등 이름 모를 야생화들이 지천으로 피어있다. 마음 같아서는 산꼭대기까지 가고 싶지만 아침 식사 시간이 정해져 있으니 마을길로 내려섰다.

  한 집 마당에는 사과 꽃이 가득 피었다. 우리가 사진을 찍자 이층 베란다에서 차를 마시고 있던 할아버지 할머니가 들어오라고 손짓한다. 나는 그냥 가려고 했지만 성격 좋은 미숙씨가 들어갔다 가자고한다. 마당으로 들어가 이층 베란다로 올라가니 의자에 앉으란다.

  커피를 마시고 가라고 하며 할머니가 얼른 안으로 들어가더니 에스프레소 커피 두 잔을 내온다. 예쁜 그릇에 사탕과 초콜릿도 내온다. 나는 너무 써서 조금 먹고 말았는데 미숙씨는 맛있다고 내 것까지 다 마신다.

  할아버지가 우리에게 어디서 왔느냐고 하여 코리아라고 하니 쎄울?’한다. 서울에서 왔느냐는 것이다. 그렇다고 하니 예레반은 두 손가락, 모스크바는 네 손가락을 내밀며 쎄울?’ 한다. 서울은 얼마냐고 하는 건지 뭔지 도무지 못 알아듣겠다. 우리는 예레반은 가깝고 모스크바는 조금 머니까 아마 거리를 묻는 모양이라고 하며 열 손가락을 내밀었다.

  미숙씨는 할머니의 성의가 고마워 무엇을 주고 싶은데 아무 것도 안 가져왔으니 어쩔까 하다가 손목에 낀 묵주 팔찌를 빼서 할머니 손목에 끼어준다. 한국 전통 문양의 팔찌라고 열심히 설명을 한다. 이것은 설악산 봉정암에서 산 묵주인데 가운데 탑이 그려져 있다. 할머니는 기뻐서 입이 귀밑까지 올라붙었다. 우리가 커피를 다 마시고 일어서려고 하자 사탕을 가지고 가란다. 우리는 세 개씩 호주머니에 넣고 그 집을 나왔다.

  아침 식사 후 호수 안쪽에 있는 세반느반크 수도원으로 갔다. 반크는 교회라는 뜻이다. 이곳은 원래 호수 안에 있는 섬이었는데 수위가 낮아지면서 육지와 연결되었다. 스탈린이 이 호수의 물을 터널로 통과시켜 러시아 각지로 보냈는데 그 결과 수위가 20m나 낮아졌고 섬도 육지와 연결된 것이다. 아르메니아인의 피난처요 항쟁지였던 이곳이 육지와 연결되자 아르메니아인은 매우 수치스럽게 생각하고 수위를 높이려 노력하고 있다.

  점심식사 후 가르니 협곡의 주상절리를 보러갔다. 계곡 입구에 도착하니 ‘SYMPHONY OF STONES’ 라고 쓴 안내판이 보인다. 어떻게 돌들이 교향곡을 연주하나 하는 마음으로 계곡으로 내려가니 어마어마한 주상절 리가 나타난다.

  마치 파이프 오르간의 건반처럼 늘어서 있는 절리가 보는 이를 압도하여 숨을 멈추게 만든다. 말 그대로 바위들이 교향곡을 연주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이건 인간의 말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신의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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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 날 아침 6시에 간단한 식사를 하고 예레반 공항으로 갔다. 박종완씨는 체크인 할 때 앞의 전광판에 나오는 숫자로 가서 수속을 밟는데 두 번째 손가락을 찍는 거라고 친절히 일러준다. 마지막까지 공부시키려고 아르메니아의 아르강한이란 뜻이라고 일러준다. 아르갓산은 아르메니아의 최고봉인데 강한 산이란 뜻이다.

  출입국 심사를 받으려면 지은 죄도 없는데 공연히 심장이 떨리고 주눅이 든다. 잔뜩 긴장하여 여권을 내밀고 손가락 찍고 시키는 대로 다 하고 기다리니 도장을 쾅 쾅 찍고 여권을 다시 준다.

안으로 들어와 여권을 보니 웬 종이가 끼어있다. 이게 무슨 종이인가 애란씨에게 물어보니 자기는 그런 거 없다고 연애편지인가 보다고 농담을 한다. 심사직원이 낙서하던 종이를 정신없이 끼워 넣었나보다.

  비행기 타기 전에 게이트에서 또 손가락을 찍는다. 아르메니아 사람들 손가락 찍기 엄청 좋아하나보다. 그새 사람이 바뀔까봐 그러나?

  파리 드골 공항에서 환승을 했다. 드골 공항은 하도 커서 갓 상경한 사람처럼 어리버리하는데 화살표도 이상하게 해 놨다. 앞으로 가라는 표시를 화살표를 아래 방향으로 해 놨다. 꼭 뒤로 되돌아가라는 것 같다.

  겨우 게이트를 찾아 비행기에 올랐다. 비행기 문이 닫히고 한참이 지나도 비행기가 움직일 생각을 안 한다. 웬일인가 궁금해 하는데 방송이 나온다. 기내에 환자가 생겼으니 의사는 앞으로 나오라는 것이다.

  마냥 기다리는데 또 방송이 나온다. 현지에서 의사가 오기로 했으니 기다려 달란다. 비행기 문이 다시 열리고 한참 만에 의사와 구급대원이 왔다. 아무리 해도 안 되겠는지 휠체어에 싣고 나간다. 40대쯤 되어 보이는 남자다.

  다시 문을 닫고도 움직이지 않는다. 추가 급유를 한다는 것이다. 두 시간 정도 시동을 걸고 있었으니 기름이 모자라나 보다. 급유를 하더니 이제는 공항에서 이륙 명령이 떨어지지 않아 더 기다려야 한단다. 이륙 스케줄이 빡빡하니 끼어들 틈이 없나보다. 결국 예정시간보다 3시간이나 지나서 비행기가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한다. 11시간 비행하려던 것이 14시간 걸리게 생겼다. 벌써 온몸이 뒤틀린다.

  예정보다 3시간 연착하여 인천공항에 내리니 10시가 넘었다. 집에서 기다릴 남편이 생각나서 3시간 연착했다고 문자를 보냈다. 그랬더니 3시간 기다렸다고 답장이 온다. 공항에서 기다렸느냐고 하니 그렇단다.

  짐을 찾아 나오니 남편이 다가온다. 미안하기 짝이 없다. 그래도 지하철 타고 가려고 마음먹었는데 편안히 가게 되어 좋기는 좋다. 애란 씨는 복도 많네~’ 하며 사라진다.

 

  이번 여행은 참 우여곡절도 많고 재미있고 신나는 여행이었다. 교통사고를 당해 몸이 아픈 상태라 걱정하며 떠났지만 무사히 마치고 오게 되어 더 기쁘다. 누가 가자고 그랬는지 정말 감사하다. 나 같은 짐 덩어리 노약자를 누가 가자하겠는가? 앞으로도 누가 가자고만 하면 무작정 따라 나서야겠다. 항공여행은 항상 예측을 불허한다. 그래서 더 재미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