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노트에서
아 네모네 이현숙
우리 집에서 같이 살던 사촌 오빠가 군대 가서 죽은 후 우연히 오빠의 책상에서 일기장을 발견했다. 호기심에 읽어내려다가 붓글씨로 쓴 한 줄의 글을 보았다. 큰 글씨로 한 장 가득 차게 쓴 글이다.
“叔母님 別世하시다.”
이것은 둘째 큰어머니가 돌아가신 날 쓴 일기다. 여러 말 하기에는 너무 충격적이었나 보다.
그날 아침 둘째 큰 집 민경이 오빠가 캄캄한 새벽에 우리 집에 와서
“작은 어머니~ 작은 어머니~.” 하고 불렀다. 엄마 아버지가 깜짝 놀라 나가니 오빠가 울먹이며
“엄마가 돌아가셨어요.” 한다.
웬일이냐고 물으니 엄마가 배가 아프다고 신음하다가 갑자기 돌아가셨다는 것이다. 아마 지금 생각하면 급성 맹장염이 아니었나 싶다. 이때 큰 아들인 민경이 오빠는 중학생이고 그 아래로 동생들이 여섯이나 줄줄이 있었다. 막내는 아마 세 살쯤이었던 것 같다.
그때는 전화도 없고 큰아버지는 시골에 사시니까 동생인 우리 집으로 오빠를 보낸 것이다. 그 후 둘째 큰아버지는 재혼을 하여 또 아들 둘에 딸 하나를 얻었다.
이미 고인이 된 오빠의 일기장에서 별세라는 글을 보니 느낌이 이상했다. 세상과 이별하는 것은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일이다. 나도 언젠가는 이 세상과 이별해야한다. 전 세상은 어디이고 저 세상은 어디일까? 우리는 에덴동산에서 쫓겨났다고 했으니까 전생은 에덴동산일까? 엄마의 자궁을 통하여 이 세상으로 온 것인가? 그렇다면 죽음의 문을 통과하면 다시 에덴동산으로 가는 것일까?
요한계시록에서 말하는 천국은 온갖 보화로 장식되고 일 년 열두 달 열매가 열리는 곳이라 한다. 그 곳은 더 이상 죽음도 없고 눈물도 없는 세상이라고 했다. 아픔도 고통도 없는 세상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이게 바로 에덴동산이 아니고 무엇일까?
거기 가면 다시 오빠를 다시 만날 수 있을까? 나는 오빠를 알아보겠지만 오빠는 나를 알아보지 못할 것 같다. 초등학생이 할머니가 되었으니 말이다. 오빠가 죽은 후 가끔 꿈속에 나타났다. 군복을 입고 휴가 나왔다고 대문으로 들어서곤 했다. 내가 오빠 죽었는 줄 알았다고 하면 안 죽었다고 한다. 기뻐서 날뛰다가 깨어나 현실로 돌아오면 너무도 허전했다.
저 세상에서 다시 오빠를 만난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3. 10. 20. 지젤이 기절했자냐~ (0) | 2013.10.21 |
---|---|
2013. 8. 1. 난 다 알아요. (0) | 2013.09.20 |
2013. 7. 20. 지하철 풍경 (0) | 2013.09.20 |
2013. 9. 15. 까막귀 (조수미 콘서트) (0) | 2013.09.18 |
2013. 8. 29. 윤동주문학관 (0) | 2013.08.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