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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2013. 7. 20. 지하철 풍경

by 아~ 네모네! 2013. 9. 20.

지하철 풍경

 

아 네모네 이현숙

 

  지하철을 타고 다니다 보면 시각장애인들을 자주 보게 된다. 지팡이 하나에 의지하여 더듬더듬 걸어 다니는 이들을 보면 얼마나 갑갑할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그 용기가 참으로 가상하다는 생각이 앞선다. 더듬거리다가 길이 아닌 쪽으로 가는 걸 보면 손을 잡아 길을 알려주고 싶기도 하지만 선뜻 손이 나가지 않는다.

  특히 등산 배낭을 지고 산에 가는 사람들을 보면 존경스럽기도 하고 우러러 보이기도 한다. 언젠가 동생들과 산에 갔다가 시각장애인들이 등산하는 걸 본 적이 있다. 등산 도우미가 손을 잡고 일일이 말로 앞의 길 상태를 말해주며 천천히 걷는다. 동생과 나는 저런 도우미라면 한 번 해볼만하다고 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실천하지 못하고 있다.

  얼마 전 사가정역에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가는데 한 여자 시각 장애인이 올라오는 것이 보였다. 화장을 어찌나 예쁘게 했는지 고운 얼굴이 더욱 돋보였다. 문득 저 여인은 어떻게 화장을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눈썹도 곱고 또렷하게 그리고, 입술도 도톰하게 잘 칠했다. 누가 대신 그려준 것일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아마도 자신이 직접 그렸을 것 같다.

  두 눈 멀쩡히 뜬 나는 그리기에는 젬병이라 아예 그릴 생각도 안 한다. 주제 파악도 못하고 다닌다고 흉 볼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사실 아무리 잘 그려도 거기서 거기일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기죽지 않고 활기차게 생활하는 사람들을 보면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사실 눈을 떴다고 다 보는 것은 아니다. 아무 생각 없이 다니면 몇 년을 다녀도 전혀 눈에 띄지 않는 것이 허다하다. 또 너무 눈에 보이는 것에만 집착하다보면 마음의 눈이 멀어 아무 것도 보지 못하게 된다.

  눈이 안 보이는 사람이 사색의 폭이 훨씬 넓고 깊다. 아마도 눈으로 들어오는 무수한 정보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특히 지하철 안에서나 길에서나 오로지 스마트폰에만 눈길을 주는 도시인들이 실상은 눈 뜬 장님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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