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2013. 6. 16. 나무야 나무야 독후감

아~ 네모네! 2013. 8. 3. 16:59

도대체 뭔 소리여?

 

아 네모네 이현숙

 

  이 책을 받아 든 순간 탁월한 선택을 했다고 생각했다. 크기도 작고 얇아서 내 맘에 쏙 든다. 지금까지 숙제로 읽은 책 중 최고의 선택이다. 그런데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어도 도대체 뭔 소린지 모르겠다. 우선 제목이다. 나무에 관한 얘기는 소광리 소나무 얘기 밖에 나오지 않는데 왜 제목이 나무야 나무야 인가 말이다.

  제목 앞에는 국토와 역사의 뒤안에서 띄우는 엽서라고 했는데 도대체 누구에게 띄우는 것인가? 수시로 당신이란 말이 나오는데 이 당신이 누구인지 끝까지 이에 대한 설명이 없다. 당신이 누구인지 알기 위해 끝까지 눈에 힘주고 읽었어도 결국은 아무 것도 모르겠다. 실제 인물이 아닌 저자 마음속의 어떤 대상인지도 모른다.

  저자 신영복은 20년이 넘도록 징역살이를 한 이 시대의 교수이자 철학자다. 20대의 젊은 나이에 투옥되어 40대 후반에 출소했으니 말 그대로 청춘을 감옥에서 썩혔다.

  그런데 이 좁고 폐쇄된 공간에서 지낸 사람의 정신이 어찌 이리도 맑고 자유로울 수 있을까? 아니 오히려 이 사회에서 자유롭게 살아온 우리보다 더 자유롭고 깨끗한 정신을 지녔다. 현실에서 한 걸음 물러 선 자리에 있었기 때문일까?

  이 책은 199511월부터 19968월까지 중앙일보에 게재된 글이다. 19969월에 초판 인쇄되어 무려 55쇄를 발행하였다. 말이 기행문이지 실상은 철학 서적이다.

  나처럼 어디 가는 줄도 모르고 남들 따라 우루루 가는 여행이 아니고 미리 글 쓸 주제를 정하고 그 주제에 맞는 장소를 찾아간 여행이다.

  삽입된 그림도 그렇다. 저자가 직접 그린 것이다. 담백하고 심플한 그림이 저자의 심중을 그대로 드러낸다. 예를 들어 한명회가 머물던 압구정과 황희 정승이 머물던 반구정을 그린 것을 보면 압구정에는 아파트 하나 그려 넣고 반구정에는 임진강과 갈매기를 그렸다. 최소한의 메시지로 최대한의 효과를 얻는 그림이다.

  바다를 표현한 그림도 특이하다. 바다는 가장 낮은 물이고 가장 평화로운 물이지만 이제부터는 하늘로 오르는 도약의 출발점이라고 표현한 그는 바다를 물 위로 증발하는 무수한 수증기 분자들로 그리고 있다. 이런 예리한 감각은 어디서 온 것일까? 감옥 속에 있었기 때문에 오히려 감성의 촉수가 그대로 살아 있는 것이 아닐까?

  처음부터 끝까지 존댓말로 쓴 것도 독자로서 대우 받는 느낌이다. ‘이란 단어가 머리에 진 짐을 뜻하는 것도 처음 듣는 말이다.

  전남 화순의 폐교된 초등학교에서 고향을 잃은 현대인의 모습을 보았고, 서울역 광장에서 고향 친구를 찾아 전화를 거는 사람의 모습을 표현하는 방법 또한 기발 나다.      

  903855664902188744161034368660033841437739.으로 끝내는 발상은 나 같은 사람은 죽었다 깨나도 생각해 내지 못할 기법이다. 끝없이 이어지는 전화번호가 고향을 찾아 헤매는 현대인의 모습이다.

  저자와 함께 징역살이를 하던 노인 목수가 집을 그릴 때 주춧돌 먼저 그리고 그 위에 기둥, 들보, 서까래, 지붕의 순서로 그리는 것을 보고 자신의 서가가 한꺼번에 무너지는 낭패감을 맛본다. 발을 땅에 딛지 않고 허공에 떠서 사는 우리의 모습이다. 머리로만 일 하고 입으로만 밥벌이를 한 내 모습이기도 하다.

  섬진강 나루에서 섬진강을 바라보며 쓴 글도 우리의 과오를 꼬집는다. 물 탄 피의 이야기다. 대학병원에서 피를 팔기 위해 매번 찬물을 잔뜩 들이키고 채혈실로 들어간다는 어느 노동자의 이야기다. 이 사실만 가지고 보면 잘못했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는 일감을 얻지 못해 일당을 받지 못하고 집에 갈 수 없어서 피를 팔아 동생들의 끼니를 사는 노동자다. 조금이라도 더 많은 양을 팔려고 소처럼 물을 먹는다. 이 노동자를 어느 누가 책망할 수 있을까?

  진정한 지식과 정보는 오직 사랑과 봉사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으며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서서히 성장하는 것이라고 하는 그의 참된 민중 사랑을 느낄 수 있다.

  이 글을 읽고 보니 내 기행문은 기행문도 아니고, 기행 수필도 아니고 기행 잡담이다. 사람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잣대만큼 잴 수 있다는데 나는 1m되는 잣대로 바다의 깊이를 재고 있는 것 같다.

저자가 간 곳의 대부분을 나도 가기는 갔다. 모악산, 백담사, 온달산성, 청령포, 한산섬, 가야산 등 거의 다 갔다. 그런데 가면 뭐하나?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무턱 대고 가서 아무 생각 없이 걷다 온다. 이러니 무슨 글이 나온단 말인가?

  이 책을 읽으며 이현숙 참 출세했다는 생각이 든다. 신영복이란 인간이 있었는지 어떤 사람이었는지 전혀 모르게 무식이 통 통 튀던 내가 감옥으로 부터의 사색도 읽고 나무야 나무야도 읽고 신영복이란 사람에게 심취하게 되었으니 수필교실 참 잘 온 것이다. 앞으로도 쭈~욱 이렇게 나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