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2013. 7. 1. 내 인생의 스프링클러

아~ 네모네! 2013. 8. 3. 17:05

내 인생의 스프링클러

 

아 네모네 이현숙

 

 

  몇 년 전 실크로드 여행을 갔다. 민펑에서 쿠얼러까지 800km를 달리는데 이중에 500km 정도가 타클라마칸 사막이다. 끝없이 이어지는 사막 길은 이글이글 타는 태양빛에 나무 하나 없으니 어느 한 곳 쉴 곳이 없다. 이렇게 낮에는 사람을 잡을 듯이 뜨겁다가도 해만 떨어지면 뼛속까지 추워진다.

  달리는 버스 속에서 밖을 내다보니 길 옆 땅바닥에 긴 호스가 10여개씩 늘어서 있고 호스 옆에는 풀인지 나무인지 메마른 식물이 자라고 있다. 자세히 바라보니 호스에서 물이 조금씩 나와 모래를 적시고 있다. 몇 시간을 달려도 이 호스는 계속 이어져 있다. 사막에서 풀 한포기 키우기가 얼마나 힘든지 짐작이 간다.

  휴게소도 없고 화장실도 없으니 가다가 아무데서나 서서 남자는 버스 오른쪽으로 가고 여자는 왼쪽으로 가서 단체로 볼 일을 본다. 우리 때문에 타클라마칸 사막이 조금 축축해졌을 것이다.

  500km의 사막을 횡단하니 드디어 사막횡단 도로 시점의 표지석이 나타난다. 중국석유에서 433km 구간에 호스를 설치하여 녹화사업을 했다는 안내판도 있다. 거의 서울에서 부산까지 호스를 깔았다는 소리가 되니 참 어마어마하다. 사막의 풀 한 포기에게 이 호스에서 떨어지는 물 한 방울은 곧 피요 생명이다. 이걸 먹으며 타는 목을 적실 것이다. 죽지 않으려고 안간 힘을 쓸 것이다.

  내 인생에서 나 자신이 스프링클러가 된 적이 있었던가? 거의 없는 듯하다. 억지로 찾아낸다면 학생들을 가르칠 때가 아닐까? 수업 시간에 어떤 개념을 설명하면 열심히 듣던 학생이

아아~ 알았다!” 하고 탄성을 지를 때가 있다. 이럴 때면 목마른 대지에 한 줄기 물을 부은 듯도 하고 바짝 마른 스펀지에 한 방울의 물이 순식간에 스며드는 듯도 하다.

  학생들이 아무 말 안 해도 내 말이 잘 흡수될 때는 쏙쏙 스며드는 느낌이 온다. 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무엇인가 스며들지 않는 느낌이 오고 학생들과 나 사이에 눈에 보이지 않는 벽이 느껴졌다. 감정과 정서의 소통이 어려워지자 내가 이제 교단에서 내려설 때가 되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내가 이 세상 누구에게 스프링클러가 되기는 다 틀린 것 같다. 내 자신이 바짝 말라버렸으니 다른 스프링클러에서 물을 받아 마실 수밖에 없다.

  나에게 스프링클러는 무엇일까? 산도 있고, 친구도 있고, 여행도 있겠지만 가장 강력한 스프링클러는 손자인 것 같다. 요새 2주 동안 딸과 아이들이 우리 집에 머물다 갔다. 밀물처럼 몰려왔다가 썰물처럼 가버리니 갑자기 집이 엄청 넓어진 듯하고 집이 죽은 것 같다. 절간 같은 정적이 감돈다.

  친손자도 그렇다. 외갓집에 살다가 일주일에 한 번씩 우리 집에 오는데 이 녀석이 오면 비상사태다. 온 집을 휘젓고 다니며 물통의 꼭지도 갑자기 돌리고, 컴퓨터도 순식간에 꺼버린다. 닥치는 대로 집어던지고 잡아당겨 고장을 내놓는다.

  아들이 결혼한 지 10년도 더 지나서 얻은 아이라 그야말로 마른하늘에서 단비가 내린 듯하다. 손자가 오면 온 집이 살아 움직인다. 바짝 말랐던 우리 마음이 촉촉한 봄비를 맞은 듯 넉넉하고 여유로워진다.

  우리 인생은 이렇게 누군가에게 스프링클러가 되어주고 누군가의 스프링클러에서 물을 받아 마시며 살아가는 것인가 보다. 앞으로도 누군가에게 스프링클러가 되는 인생을 살았으면 좋으련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