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2013. 1. 26. 내 삶의 도구는 종이 한 장

아~ 네모네! 2013. 8. 3. 14:00

내 삶의 도구는 종이 한 장

 

아 네모네 이현숙

 

  농부는 평생토록 삽과 호미로 땅을 파며 살아간다. 목수는 대패로 평생을 먹고 산다. 나는 무엇으로 여태 입에 풀칠을 하고 있을까? 가만히 생각해보니 종이 한 장으로 여태 먹고 살았고 앞으로도 죽을 때까지 이것으로 살아갈 것 같다.

  고등학교 3학년이 되니 대학을 어디로 갈까 하는 고민이 생긴다. 마음 같아서는 의대에 가고 싶지만 아들 딸 일곱 명을 먹여 살리느라 손발이 닳도록 고생하는 부모님을 보니 말이 안 떨어진다. 딸 여섯은 고등학교까지만 가르치겠다고 누누이 말하던 엄마의 표정을 살피니 더욱 더 용기가 안 난다. 언니는 엄마 말에 따라 고등학교 졸업하자마자 회사에 들어가 일하는데 그 비싸고 학업기간이 긴 의대에 간다는 건 내가 생각해도 말이 안 된다.

  이리저리 머리를 굴리다 생각해 낸 것이 국립사대다. 국립대는 수업료가 아주 싼데다 특히 사대는 수업료가 없다. 실험실습비와 학생회비 정도만 내면 된다. 엄마도 내가 이렇게 나오니 더 이상 반대를 못하고 허락했다.

  사실 대학교에 들어가 공부하면서도 선생 하겠다는 생각은 별로 하지 않았다. 졸업하면 어디 갈 곳이 생기겠지 했다. 그런데 어영부영 아이들과 몰려다니며 놀다 보니 4년이 후딱 지나가 졸업할 때가 되었다. 사회에 대해 아는 것도 없고 딱히 갈 데도 없었다. 할 수 없이 그냥 선생이나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졸업하자마자 용산중학교에 발령을 받았다. 결혼할 때까지만 할까? 아니 한 십 년만 할까? 하며 마지못해 시작한 교사 생활이 32년이나 하게 됐다. 나의 이런 무책임하고 사명감 없는 교사생활을 생각하면 그동안 내게 배운 학생들에게 미안하다. 학생들을 별로 사랑하지도 않고 지식만 전한 내 행위에 대한 죄의식이 나를 괴롭힌다.

  다른 사람들은 일평생 뙤약볕에서 땅에 엎드려 비지땀을 흘리는데 교사자격증이라는 종이 한 장 달랑 내밀며 입만 나불거린 내 모습이 부끄럽다. 지금은 퇴직하여 연금으로 살아간다. 직장생활하며 연금을 넣기는 했지만 그래도 국가에서 지원하는 액수가 많다. 앞으로도 죽을 때까지 이 연금으로 살아가야 한다. 평균수명은 점점 늘어 가는데 나 같은 연금수급자가 많아 국가재정은 날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젊은이들의 세금 부담은 늘어난다.

  이런 생각을 하면 사람들에게 연금 받는다는 말하기도 미안하고 눈치가 보인다. 사실 내가 생각해도 종이 나부랭이 한 장 달랑 내밀며 평생을 먹고 살겠다고 하는 내가 칼만 안 들었지 강도나 다름없다는 생각도 든다. 그저 모든 사람에게 감사하며 겸손하게 살아가는 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