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2013. 1. 14. 내게 온 그녀

아~ 네모네! 2013. 8. 3. 13:55

 

내게 온 그녀

아 네모네 이현숙

 

  아들이 대학교 다닐 때 밥 먹다 말고 갑자기 묻는다.

엄마는 며느릿감으로 몇 살 차이까지 받아들일 수 있어?”

“±5

  세련된 척, 우아한 척, 아량이 넓은 척 아무 생각 없이 내뱉었다. 그런데 하필이면 +5년이 될게 뭐란 말인가? 몇 년 후 아들이 5년 연상인 아가씨와 결혼하고 싶다고 했다. 아이고 내가 내 도끼로 내 발등을 찍었구나 하며 후회막급이었다.

  하지만 엎질러진 물을 담을 수는 없는 법. 남편은 내가 한 달 밖에 안 된 핏덩이를 내 팽개치고 직장 다녀서 그런 모양이라고 한다. 엄마 사랑을 못 받아 연상의 여인에게 모성애를 느낀 것 같다고 담담히 말한다.

  군대 갔다 오면 자연히 헤어지겠지 생각했다. 여자애가 나이도 많은데 기다릴 것 같지 않았다. 그런데 제대를 한 후에도 계속 만나는 눈치다. 오랜 기간 헤어지지 않았는데 이제와 반대하면 무얼 하나? 늙어서 며느리에게 구박이나 받지 하는 생각에 그냥 결혼을 시켰다.

  헌데 결혼 생활하는 걸 가만히 보니 잘 했다는 생각이 든다. 어린애들 같이 바가지 박 박 긁지도 않고 웬만한 건 다 포용하는 듯하다. 결혼 후 1년이 되었을 때 아들 집에 가니

  “YOU ARE THE BEST HUSBAND IN THE WORLD.” 라고 방문에 영어로 크게 써 붙였다. 당신이 이 세상에서 최고의 남편이라고? 깜짝 놀랐다. 나는 남편과 결혼하여 40년 가까이 살았어도 이런 생각은 한 번도 해 본적이 없었다. 최고(BEST)는커녕 더 나은(BETTER)이나 좋은(GOOD) 정도의 말도 머리에 떠올린 기억이 없다. 내 남편이 참으로 결혼을 잘못했다는 생각도 든다. 가구는 한 번의 선택이 10년을 좌우한다는데 결혼은 한 번의 선택이 평생을 좌우한다. 정말 내 남편은 순간의 선택을 잘못했나보다.

  이걸 보며 우리 아들이 참 결혼을 잘 했구나 생각했다. 물론 살다보면 부부싸움도 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 며느리는 근본적으로 생각이 깊은 아이다. 남을 배려하는 성품을 지녔다.

  특히 우리 가족의 부족한 점을 많이 지녔다. 우리 가족들은 하고 싶은 말도 남의 눈치 보느라고 잘 못한다. 기뻐도 슬퍼도 감정 표현이 서툴다. 그런데 며느리는 솔직하고 긍정적인 사고를 가지고 말도 스스럼없이 잘 한다.

  아들의 근황을 항상 며느리 입을 통해 듣는다. 미국에서 공부를 제대로 하는지 어떤지 궁금해도 물을 수가 없는데 며느리가 어떤 교수님이 어떤 칭찬을 해주었고, 어떤 과목시험을 패스했다고 하며 시시콜콜 알려준다.

  내 아이들이 내 유전자의 반을 가졌는데 며느리가 또 아들과의 사이에서 손자를 낳으니 손자는 내 유전자의 1/4을 가지고 태어났다. 한 가정의 며느리는 실로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 우리 집안 유전자의 반을 바꿔 버리는 무시무시한 존재다.

  생끗 생끗 웃으며 달려드는 손자를 볼 때마다 이 며느리가 아니었으면 어찌 이런 손자를 얻을 수 있었을까 싶다. 인간이란 생각할수록 오묘한 존재다. 몇 백만 년을 내려오며 무수한 유전자들이 섞이고 섞여 한 인간이 만들어진다. 그 기간 동안의 작업 없이는 결코 만들어질 수 없는 전무후무한 존재다. 그래서 한 생명은 천하보다 더 귀하다고 했나보다.

  내게 온 그녀는 실로 하나님이 보내준 천사다. 우리 집안의 취약점을 고루 갖춘 맞춤형 며느리다. 며느리를 볼 때마다 감사한 마음이 절로 우러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