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2012년에 쓴 글

아~ 네모네! 2012. 12. 30. 15:23

2012년에 쓴 글입니다.

무한대의 지팡이

이현숙

7호선 건대입구역에서 2호선 열차로 갈아타려고 걸어가고 있었다. 한 남자가 어린 소년의 손을 잡고 간다. 둘 다 지팡이를 손에 들고 있다. 아버지와 아들인 것 같다.

이렇게 우툴두툴한 곳만 따라가는 거야.”

앞에 우툴두툴한 곳이 없으면 길이 없는 거야.”

그럴 땐 옆을 짚어 봐.” 하면서 자세히 일러준다.

  본인이 시각 장애인 것만도 서러울 텐데 어쩌다 아들까지 그런 운명을 타고 났을까? 지팡이 끝에서 전해오는 한 점의 촉각만으로 세상을 보는 이들이 얼마나 답답할까 싶다. 전후좌우 위아래를 둘러보는 나는 무한한 공간에서 오는 빛으로 세상을 본다. 마치 무한대의 지팡이를 가진 듯하다.

  이 아름다운 자연의 모양과 현란한 색깔을 보지 못하는 그들은 과연 불행할까? 어찌 보면 눈을 떴다고 해서 세상 모든 것을 다 보는 것은 아니다. 두 눈을 멀쩡히 뜨고 같은 길을 몇 년씩 오가면서도 의식하지 못하는 것이 허다하다. 어느 날 갑자기 발견하고는 깜짝 놀랄 때도 있다.

  우리 눈은 거의 장님 수준이라 너무 커도 볼 수 없고 너무 작아도 안 보인다. 그래서 이걸 보려고 망원경도 만들고 현미경도 만들었다. 하지만 이것으로도 못 보는 것이 허다하다. 태양은 빨 주 노 초 파 남 보의 색이 합쳐진 가시광선과 눈에 안 보이는 적외선, 자외선, 엑스선, 감마선 등 모든 파장의 빛을 내보낸다. 이 중에 우리가 감지할 수 있는 것은 가시광선뿐이다. 한 개의 지팡이로 한 점을 감지하는 것과 거의 같은 수준이다.

  수 십 억 광년의 거리에서 오는 별빛을 바라보는 우리는 그 별이 지금도 그 자리에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빛이 오는 동안 이미 그 별은 폭발해 버리고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 눈에 보인다고 다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눈에 안 보인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엑스레이는 눈에 보이지 않아도 우리 몸을 통과하여 우리 뼈를 찍는다. 초음파를 써서 뱃속에 든 아이가 남자인지 여자인지 알아보고 움직이는 모양도 다 볼 수 있다.

적외선 카메라로 캄캄한 밤중에도 사물을 찍을 수 있고 눈에 보이지 않는 전파는 온 우주공간을 돌아다니며 온갖 정보를 실어 나른다. 전파 망원경을 통해 눈에 보이지 않는 별도 찍을 수 있고 무선 인터넷으로 지구상의 모든 인류가 서로 소식을 전하며 살아간다.

  박쥐는 눈이 퇴화되어 볼 수 없어도 자신의 날갯짓을 통해 초음파가 물체에 부딪쳐 되돌아오는 모양과 시간차를 이용해 곁에 있는 물체의 모양이나 거리를 안다고 한다. 그래서 눈이 보이지 않아도 벽에 부딪치지 않고 훨훨 잘 날아 다닌다.

  우리의 귀도 마찬가지다. 너무 큰 소리도 못 듣고 너무 작은 소리도 못 듣는다. 초음파는 우리 귀로 감지할 수 없다. 우리가 볼 수 있는 것보다는 볼 수 없는 것이 훨씬 많고 우리가 들을 수 있는 것 보다는 들을 수 없는 소리가 훨씬 더 많다.

  시각 장애인들이 악기를 연주하는 걸 보면 볼수록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보이지도 않는 건반을 어떻게 딱 딱 정확히 짚어 소리를 내는지 신기하기 그지없다. 우리는 두 눈 멀쩡히 뜨고도 못하는데 말이다. 한 통로가 막히면 다른 통로가 더 넓어져 그쪽 감각이 더 발달하나보다.

우리 뇌의 용량은 비슷해서 한 쪽 감각을 잃었을 때 다른 감각으로 더 많은 것을 받아들이나보다. 어찌 보면 시각 장애인들이 두 눈 뜨고 다니는 사람보다 더 많은 것을 볼지도 모른다. 마음의 눈으로 볼 수 있는 세계가 훨씬 넓으니 말이다. 그들은 한 개의 지팡이로 무한대를 보는데 나는 무한대의 지팡이로 한 점만을 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주인석의 낀을 읽고

 

현숙이

주인석은 이름부터 특이하다. 평생 손님석에 앉을 일은 없겠다.

제목 또한 특별나다. 낀이 뭔가 궁금하여 자신도 모르게 책장을 펼치게 된다. 읽다보니 저자가 낀이라고 한 것은 한 가운데 끼었다는 뜻이다. 사실 우리는 항상 어딘가 끼어 산다. 사람 사이에 끼고 건물 사이에도 끼고 대화 사이에도 낀다.

이런 단어를 책 제목으로 잡을 수 있다는 발상이 기발 나다. 나 같으면 죽었다 깨나도 이런 생각 못 할 꺼다. 팔리는 책을 쓰려면 이런 기막힌 제목부터 잡을 줄 알아야겠다.

  본인이 직접 그림도 그렸다는 게 또 놀랍다. 남은 한 가지도 못하는데 이렇게 두 가지 다 잘하는 사람은 한마디로 죽일 년이다. 남 기죽일 일 있냐 말이다. 그림도 색깔이 안정적이면서도 고리타분하지 않고 신선한 감각이 살아있다. 글 내용에 딱 맞는 그림이 곳곳에 들어있어 책장도 잘 넘어가고 그림 내용도 재미있어 기분 전환이 된다.

젊은 사람이 웬 아는 것은 그리도 많은지 뙤창, 왈바리 등 난생 듣도 보도 못한 단어가 참 많이도 나온다. 맷돌의 손잡이를 어처구니라고 하는 것도 처음 알았다. 내가 너무 무식해서 그런가보다.

간절곶도 그렇다. 나는 네 번 이상 가고도 글 한편 못 썼는데 같은 장소를 가지고 글을 네 편이나 썼다. 행운목 하나를 가지고도 네 편의 글을 만들었다. 하여튼 기발난 여자다.

뽀뿌레는 또 어떤가? 뽀뿌레가 어느 나라 말인지는 몰라도 귀여운 인형이란 뜻이라고 한다. 국군 장병 아저씨께 쓴 편지가 인연이 되어 매주 편지를 주고받았고 사진도 교환했는데 비키니 옷을 입은 사진을 보고 그가 붙여준 별명이다.

나는 뽀뿌레는 커녕 답장 한 번 받은 일도 없다. 하긴 이 얼굴에 이 몸매를 가지고 어디 뽀뿌레란 언감생심 꿈도 꿀 수 없는 일이지만 말이다. 결국에는 편지를 발견한 엄마가 주인석이 학교 간 사이 아궁이에 모두 넣어 화형을 시키는 바람에 일장춘몽으로 끝나고 말았다. 참 깨소금 맛이다.

  문학적인 감각이나 기질도 타고 나는 모양이다. 주인석은 위문편지 하나에서 벌써 남을 끌어들이는 매력이 있었으니 말이다. 이 책을 보며 주인석의 내면에 열 두 번도 더 들어갔다 나온 기분이다.

수필의 매력은 바로 여기에 있는 듯하다. 말로 백 마디 듣는 것보다 글로 한 줄 읽는 것이 더 깊게 그 사람을 이해할 수 있다. 나도 주인석처럼 흡인력 있고 실력 있고 맛깔 나는 글 한 편 써 보고 싶다.

 

도시의 혈액 순환

소연 이현숙

슬라이드 글라스에 금붕어를 눕히고 몸통과 머리는 젖은 가제로 덮는다. 꼬리지느러미를 커버 글라스로 덮고 현미경으로 들여다본다. 붉은색 알갱이들이 쉴 새 없이 흘러간다.

자동차들이 도로에 가득 밀려간다. 붉은 색 미등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혈관으로 흘러가는 적혈구를 보는 듯하다.

전철에서 사람들이 쏟아져 나온다. 환승로를 따라가는 사람들의 행렬이 가득하다. 나는 혈관을 따라 흐르는 하나의 적혈구가 된다.

  도시의 혈관을 따라 모든 생물과 무생물이 순환한다. 마치 도시 전체가 하나의 생명체인 듯하다. 적혈구들은 혈관을 흘러가며 산소도 운반하고 영양분도 나르고 노폐물도 이동시킨다. 도시도 뭇 사람들과 물건들이 흘러가며 도시라는 생명을 유지한다.

우리 머리가 맑음을 유지하고 내장이 깨끗함을 유지하려면 필수적으로 방광이나 직장이 대소변을 저장해줘야한다. 쓰레기 적치장 같은 이런 기관이 없다면 우리 몸은 온통 독소와 세균으로 오염되어 생명을 유지할 수 없을 것이다. 입과 코만 있다면 어디로 이런 독극물을 배출한단 말인가?

  우리 사회도 이런 순환이 필요하다. 정신적 물질적으로 양분을 흡수하는 곳이 있다면 반드시 배출하는 곳도 있어야한다. 우리 사회의 노폐물을 배출하는 곳은 어디일까? 물질적으로는 쓰레기 처리장이지만 정신적으로는 알코올과 마약과 범죄에 빠진 사람들일 것이다. 이 사람들이 우리 사회의 모든 독극물을 저장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들이 이것을 지니고 있다가 어디론가 배출할 때 우리는 범죄자라고 손가락질 한다. 결국은 그것이 내 똥이고 내 오줌인데 말이다.

  범죄 건수는 인구수에 비례한다고 한다. 인구수가 늘어날수록 정신적 노폐물도 늘어나기 때문이다.

우리 내면에 일정량의 사랑과 미움이 존재하는 것처럼 우리 사회에도 일정한 분량의 선과 악이 존재하는지도 모른다. 사랑의 대상이 있어서 사랑하는 것이 아니고 내 안에 있는 사랑의 감정이 저절로 대상을 찾아 분출한다. 미움도 어떤 대상이 있어서 미움의 감정이 생긴 게 아니고 내 안의 미움이 아무 대상이나 만나면 퍼붓게 된다.

사회의 선과 악도 순환하고 내 안의 사랑과 미움도 순환한다. 순환이 없으면 나도 존재하지 못하고 이 도시도 파멸에 이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내가 이 글을 쓰는 것도 내 안의 노폐물을 배설하는 행위가 아닐까?

 

백수의 5단계

현숙이

 

퇴직 후 1: 권사 (권한이 없는 사람)

퇴직 후 2: 집사 (집에만 있는 사람)

퇴직 후 3: 장로 (장기적으로 노는 사람)

퇴직 후 4: 목사 (목적 없이 돌아다니는 사람)

퇴직 후 5: 전도사 (전혀 도움이 안 되는 사람)

 

수호천사가 나타났어요

이현숙

2월 기온으로는 65년 만에 강추위라고 합니다. 잠실역에서 전철을 타려고 승강장에 서 있었어요. 전철이 도착하기 전 문화센터에서 접수한 접수증을 넣으려고 헝겊으로 된 지갑을 꺼냈어요. 마침 전철이 들어오기에 안으로 들어가 자리에 앉았죠. 지갑에 접수증을 넣으려는데 지갑이 없었어요. 문 쪽을 보니 거기에 지갑이 떨어져있더군요. 빨리 가서 주우려는데 문이 닫혔어요. 지갑은 밖으로 떨어졌구요.

순간 앞이 캄캄해지더군요. 신천역에서 내려 반대편 정류장으로 달려가니 열차가 막 떠났어요. 속을 태우며 기다리다가 종합운동장역에서 만나기로 한 미영씨에게 전화를 했어요. 일이 생겨서 늦을 것 같으니 기다려 달라고 했지요.

전철을 기다리는 동안 오만가지 생각이 떠올라 머리가 터질 지경이었어요. 지갑이 철로에 떨어져 열차가 박살을 내지는 않았을까? 열차가 달리면서 멀리 날아가 버린 건 아닐까? 스크린 도어 밖으로 떨어져 누가 주워가지는 않았을까?

몇 분 동안 기다리는데 몇 시간은 되는 듯했습니다. 피가 머리로 치솟아 핏줄이 터질 지경이었지요. 그 지갑 속에는 카드도 있고 주민등록증도 있었죠. 은행에서 쓰는 도장도 들었고 현금도 20만원이나 들었거든요.

카드 회사에 전화를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은행에 인감 변경을 하려면 주민등록증이 있어야하는데 다시 만들려면 얼마나 걸릴까? 수첩에 적혀있는 여러 가지 정보는 어떻게 알아내나? 그야말로 피를 말리는 고문이었습니다.

  전철이 도착해 잠실역으로 돌아오며 생각하니 어디 가서 얘기해야하나 또 걱정이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매표소가 어딘지 생각이 나지 않았어요. 요새는 자동 발매기가 많아 매표소가 거의 눈에 띠지 않잖아요. 전철에서 내려 두리번거리니 SOS 비상 전화기가 보였어요. 비상사태도 아닌데 눌러도 되나 하고 자세히 보니 비상벨은 빨간색이고 안내를 위한 벨은 파란색이더군요. 파란색 단추를 누르니 역무원의 음성이 들려왔어요.

무슨 일이냐고 묻기에 떨리는 음성으로 신천역 방향으로 가는 열차를 타다가 2-1번문에서 지갑을 떨어뜨렸다고 했어요. 역무원은 그 자리에 서서 기다리라고 하더군요. 2-1 위치에서 잠시 기다리니 두 명의 남자가 나타났어요. 한 명은 열쇠뭉치를 들고 다른 한 명은 감 따는 것처럼 생긴 긴 집게를 들고 왔어요.

한 사람이 열쇠로 스크린 도어를 열고 바닥을 보니 그 밑에 내 지갑이 보이더군요. 다른 한 사람이 긴 집게로 집어 올려 나에게 건네주었어요. 나는 역무원이 직접 철로로 내려가 주워오는 줄 알고 엄청 걱정했는데 간단히 꺼내주더군요. 너무도 고마워서 감사합니다.”를 연발하며 머리를 조아렸어요.

그들은 당연한 일을 했다는 듯이 계단으로 올라가더군요. 나는 그들이 무척 귀찮아할 줄 알았어요. 내 실수로 남을 괴롭힌다는 생각에 미안해 어쩔 줄 몰랐지요. 그들의 굳은 얼굴을 상상하며 잔뜩 움츠러들었었는데 너무도 친절하게 너무도 선선히 내 어려움을 해결해준 이들이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수호천사 같았어요.

10년 아니 20년은 감수한 마음으로 가슴을 쓸어내리며, 마음 같아서는 큰 절이라도 올리고 싶었어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수호천사 보내줘서 감사합니다. 노래가 절로 나오더라고요.

 

송희의 아빠곰

이현숙

외손녀 송희가 아빠곰을 잃어 버렸대요. 유치원에 가져갔다가 두고 왔다네요. 이틀 후에 가보니 없어졌대요. 오빠와 함께 며칠 씩 울었다고 하더군요. 한 달이 넘었는데 어제 저녁에도 또 울었대요.

이 곰 인형은 송희가 태어나기도 전에 우리 부부가 제주도 놀러갔다가 테디베어에서 건희 선물로 사온 거예요. 건희가 가지고 놀다가 송희가 태어나자 송희 차지가 되었죠. 송희는 이 곰 인형을 유난히도 좋아해서 이름도 아빠곰이라고 하며 항상 손에서 놓지 않았어요.

밥 먹을 때는 떠 먹여주는 시늉을 하고, 잠 잘 때도 나란히 옆에 누이고 잤어요. 우리 부부가 가면 아빠곰을 손에 들고 안녕 안녕하며 까딱까딱 인사도 시키지요. 여자 아이들은 어려서 아빠를 사랑한다더니 송희도 그런 모양이에요. 아빠는 직장 다니느라 얼굴 대할 시간이 적은데 그걸 대신 채우느라고 아빠곰에 더 애착을 가졌나봐요. 사실 아빠하고 있는 시간보다 아빠곰과 지내는 시간이 훨씬 더 많죠.

하도 목덜미를 잡고 다니니 목에 때가 타서 새카매졌어요. 세탁기에 넣고 빨아도 잘 지지 않아요. 너무 너덜너덜해서 다른 곰 인형을 사다줘도 다른 것은 핑크곰, 연두곰이라고 하며 몇 번 가지고 놀다가는 다시 아빠곰만 갖고 놀아요. 더 크고 잘 생긴 인형은 놓아두고 작고 꼬질꼬질한 이 인형만이 영원한 아빠곰이지요.

  사위가 캄보디아로 발령 받아 이사를 갔는데 그곳까지 가지고 갔어요. 비행기 탈 때도 가지고 타더라고요. 자기의 분신처럼 달고 다니는 이 인형을 어쩌다가 손에서 놓았는지 모르겠어요. 어린 마음에 얼마나 상처를 받았을까 생각하면 내 가슴이 저려요. 더 멋지고 큰 곰 인형을 사다주고 싶지만 어떤 인형도 이 아빠곰을 대신할 수는 없을 거예요. 송희는 지금 마치 아빠를 잃은 심정인가 봐요.

  사람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무수한 만남과 헤어짐을 경험하죠. 부모도 만나고 형제고 만나고 친구도 만나지요. 많은 물건을 갖게 되고 또 잃어버리기도 합니다. 요즘은 애완동물 없이 못 사는 사람도 많아요. 애완견에게 옷도 사 입히고 머리에 예쁜 염색도 하고 파마도 해주지요. 멋있는 핀도 꽂아주고 앙증맞은 신도 신겨서 데리고 다녀요. 웬만한 인간보다 더 대접 받고 사는 강아지도 많죠.

며칠 전 신호등 앞에서 기다리는데 뒤에서 이리오세요. 이리오세요.” 하더군요. 웬 아기가 오나 했더니 강아지가 하수구 구멍에 발이 빠질까봐 옆으로 돌아오라는 소리였어요. 이젠 애완동물이라고 하지 않고 반려동물이라고 하더군요.

하지만 언젠가는 이별해야하는 것이 우리의 숙명이지요. 모든 가족과도 모든 물건과도 생이라는 문이 닫히는 순간 이별해야합니다. 그때를 대비해서 너무 정을 주는 것도 삼가야할 것 같아요. 정이 깊을수록 큰 상처를 받으니 말이에요.

하지만 평생 아무도 사랑하지 않고 무미건조하게 사는 것보다는 뜨겁게 사랑하고 아껴주며 사는 게 더 행복하겠지요? 이별의 아픔을 감수하더라도 사람이건 동물이건 정을 주고 보살펴주는 사람에게는 영원히 마르지 않는 생명수가 흘러나오는 것 같아요.

송희도 이제 아빠곰은 잊어버리고 새로운 대상을 찾아 사랑을 키워갔으면 좋겠어요. 하지만 오늘도 인형 가게가 보이면 아빠곰 같은 것이 없나하고 두리번거리게 되니 저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나봐요.

 

나도 똑 같은 선생님이었네

 

소연素演 이현숙

요즘 범죄와의 전쟁이 한창 관객을 끌어들이고 있다. 흥행순위 1위라 상영관도 여럿이다. 하지만 우리 노털들은 피곤한 것 보기 힘들다고 제일 인기 없는 스탠리의 도시락을 보았다. 관객은 우리들 세 명까지 총 다섯 명이다.

스탠리는 인도 뭄바이에 있는 한 학교의 어린이다. 엄마 아빠는 오토바이 사고로 사망하고 삼촌이 운영하는 식당에서 일하며 식당 조리대에서 잔다. 그러니 도시락이란 엄두도 못 낸다. 하지만 친구들이 도시락을 나눠주어 근근이 연명한다. 스탠리는 외모도 준수하고 공부, 노래, 춤 등 못하는 것이 없다. 자연히 반에서 인기 짱이다.

이 학교에는 식탐 대마왕이란 별명을 가진 베르마 선생님이 있다. 이 선생님도 도시락을 안 싸가지고 다니며 다른 선생님들과 학생들 도시락을 뺏어 먹는 사람이다. 스탠리가 도시락을 안 싸와서 자기가 먹을 음식이 없다고 스탠리에게 도시락 싸오지 않으려면 학교도 오지 말라고 소리 지른다.

거리로 내몰린 스탠리는 책가방을 지고 여기저기 배회한다. 친구들의 도움으로 성당교구에서 하는 공연에 참여하게 되고 거기서 큰 성공을 거둔다. 베르마 선생님의 비행이 드러나고 결국 선생님은 학교를 떠난다.

공연에서 늦게 귀가한 스탠리를 삼촌은 따귀를 갈기며 빨리 와서 일을 돕지 않았다고 소리 지른다. 묵묵히 일하는 스탠리를 주방장이 위로하며 남은 음식으로 도시락을 싸준다. 스탠리는 이 도시락을 친구들과 선생님들에게 주며 엄마가 싸 준 것이라고 자랑한다.

아무 것도 모르고 맛있게 먹는 선생님들을 보니 내 옛 모습이 떠오른다. 중화중학교에 근무할 때다. 나는 학생들에게 시킬 일이 있으면 제일 큰 아이부터 순서대로 시킨다. 순서대로 시키다가 돈 걷는 일이 좀 부족한 아이 순서가 되면 걱정이 된다. 하지만 옆의 친구들이 도와주며 잘 해 나간다. 아이들이 제일 싫어하는 일은 채변 봉투 걷는 일이다. 순서대로 돌아가다가 이걸 걷게 되는 아이는 질겁을 하지만 자기 순서가 됐으니 담담히 받아들인다. 1학년 담임을 하였는데 그 때는 새 학기가 되면 학생들에게 커텐을 빨아오라고 시켰다. 나는 제일 뒷 번호인 70번부터 한 개씩 가져다 빨아오라고 하였다.

  다른 아이들은 며칠 후 다 가져왔는데 70번 아이만 2주일이 넘도록 가져오지 않았다. 벌써 30년이 넘었으니 지금은 그 아이 이름도 잊어버렸다. 나는 그냥 가져오라고 하여 다음 아이에게 시켰다.

나중에 이 아이가 계속 결석을 하여 집을 아는 아이 몇 명을 데리고 가정 방문을 갔다. 그 아이 집은 고물상을 하는데 쓰레기 더미 같은 고물들이 산더미처럼 쌓인 한 귀퉁이에 작은 방이 하나 있었다. 한 평이나 될까 말까한 방이다. 가구도 없고 마당에는 새카만 냄비가 하나 뒹굴고 있었다.

아이들 말이 엄마는 가출하고 아빠는 주로 집에 없다는 것이다. 이 아이도 신문 배달을 갔을 거라고 하였다. 집으로 돌아오며 내 자신이 너무도 한심했다. 이런 아이에게 커텐을 빨아오라고 했으니 어떻게 빨아오겠느냐 말이다.

학생들의 속사정을 모르는 내가 얼마나 많은 아이들에게 얼마나 큰 상처를 주었을지 지금도 알 수 없다. 그저 어디에 있는지 무릎 꿇고 사죄하고 싶다.

 

여기 쓰래기 버리면 개아들

 

소연素演 이현숙

새벽에 교회 갔다 오는 길에 골목길을 지난다. 쓰레기봉투가 몇 개 놓인 옆에 누군가 골판지에 글을 써 붙였다. 뭔가 하고 흘끗 보니 여기 쓰래기 버리면 개아들이라고 써 있다. 비록 맞춤법도 틀리고 글씨도 개발 새발인데 개새끼나 개자식이라고 하지 않고 개아들이라고 한 사람의 심성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어찌 보면 더 심한 욕인 것 같고 어찌 보면 조금 부드러운 표현이란 생각이 들기도 한다. 말과 글은 인류의 무지막지한 유산이다. 교회에서 찬송을 부를 때마다 악보와 가사를 보며 일제히 같은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이 엄청 위대해 보인다. 이런 모양의 기호는 목과 입술의 모양을 어떻게 조절하여 어떤 소리를 낸다는 기억이 모든 사람의 뇌 속에 저장되어 있는 것이다. 콩나물 대가리가 이렇게 생겼으면 또 성대와 혀를 어떻게 조절하여 얼마나 길게 어떤 소리를 내야한다는 것을 우리 뇌가 기억하고 있다.

어린 아이들이 단어를 기억하는 것도 기가 막히다. 내 막내 동생은 어렸을 때 5자만 보면 창경원이라고 했다. 달력의 5자를 가리키면서도 창경원이라 하고 길 가다가도 5자가 보이면 창경원이라 했다. 왜 그런가했더니 그림책의 5권이 창경원이었다.

우리 아들은 어려서 용마산 올라갈 때

엄마는 앞장서서 가고 누나는 뒷장 서서 가. 나는 속장 서서 갈 거야.” 하며 가운데 서서 갔다. ‘이라는 글자가 가운데 낀 것을 의미하는 걸로 생각한 거다.

외손녀 송이는 툭하면 자를 붙인다. 나에게도

같이 놀자요. 술래잡기 하자요. 집에 가자요.” 한다. 나름대로 어른에게는 자를 붙여야 존댓말이 된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그 작은 뇌 속에서 무수한 단어의 개념들이 생성되는 중이다.

모든 생물은 나름대로 자신의 의사를 표현한다. 리어캣도 보초서다가 사자가 나타났을 때와 독수리가 나타났을 때, 재칼이 나타났을 때 내는 소리가 다르다고 한다. 우리가 알아듣지 못해도 자신들 만의 언어가 있나보다.

어쩌면 식물들도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는 방법이 있을지 모른다. 촉촉이 비를 맞은 새싹을 바라보고 있으면 즐거움에 겨워 우쭐우쭐 춤을 추는 듯하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살면 살수록 경이로운 곳이다. 새로 봄이 오면 만물이 일제히 소리를 지르며 세상 밖으로 나온다. 가을이 되면 모든 생물이 몸을 오므리며 긴 겨울을 견딜 준비를 한다.

삶이 힘들고 팍팍할 때 세상에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을 하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살아볼수록 이 세상은 아름답고 신비한 곳이다. 한 번쯤은 와 볼만한 곳이다. 두 번 와보고 싶지는 않지만 내가 이 세상에 나오도록 도와준 모든 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하고 싶다. 이 세상에 나올까 말까 고민하는 새 생명이 있다면 한 번쯤은 꼭 와보라고 권하고 싶다.

 

장영희의 이 아침 축복처럼 꽃비가를 읽고

 

素演 이현숙

장영희는 1952년 서울대 교수인 장왕록 박사와 이길자 여사의 15녀 중 셋째 딸로 태어났다. 생후 1년 만에 소아마비에 걸려 불구의 몸이 되었다. 여섯 살이 되던 해 연세대 재활원 부속 특수학교를 방문했으나 특수학교가 아닌 일반학교로 진학했다.

서울사대 부고를 졸업한 후 서강대 영문과에 진학하였다. 여기서 석사학위까지 받은 후 타 대학에서 박사과정을 밟으려 했지만 벽에 부딪쳤다고 하는 걸 보면 장애인이라고 거부당한 게 아닌가 싶다.

그 후 미국으로 건너가 뉴욕 주립대학에서 영문학 박사학위를 받고 모교인 서강대로 돌아와 교수의 길을 밟게 된다. 16년간 재직한 후 안식년을 맞아 하버드대학 방문교수로 가게 된다. 다시 고국에 돌아와 교수 생활을 계속하다가 2009557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하게 된다. 수많은 저서와 번역서, 교과서 등을 집필하였고 그 외에도 많은 논문과 칼럼을 발표하였다.

이 책은 제목처럼 표지부터 끝까지 꽃비가 내린다. 읽다가 눈이 피로할 때쯤 되면 그림이 나오는데 모두 꽃그림이다. 1장은 삶은 작은 것들로 이루어졌네.’ 인데 여기서는 장영희가 사랑한 주위 사람들과 풍경에 관한 얘기다. 대학동창, 조카 건우의 친구, 택시 기사 등 생활 속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그렸다.

건우의 친구 경민이와 떡볶이를 먹으며, 음식을 나누는 것은 친교의 기본 조건이라고 생각한다. 친구의 뜻을 가진 영어 단어 companioncom은 함께 라는 뜻이고, pan은 빵을 의미한다고 한다. 우리 롯데수필에서도 매주 한 번씩 함께 밥을 먹는 것이 친교에 엄청 도움이 되는 듯하다.

손뼉 치는 사람으로 뽑혔어요.’라는 글에서는 자신이 독신이라 늙어서 수발들어 줄 사람이 없으니 나중에 요양원 가려고 일흔 살에 타는 적금도 들어두었단다. 이렇게 노후를 준비했건만 60도 못 살고 간 장영희가 애처롭다.

글 곳곳에 장애인으로 사는 어려움이 나오는데 은행에 갔다가 어떤 청년이 목발을 슬쩍 건드렸다. 넘어지면서 머리를 정수기 모서리에 부딪쳐 목을 다친 이야기며 횡단보도를 건너다 나뒹굴어 일어나지 못하는데 빨리 비키라고 빵빵대는 자동차 운전자 이야기 등이 눈물겹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미국에서는 장애인이라고 귀빈 대접을 받았다는 얘기도 나온다. 하버드대에서는 지하에 있는 도서관에 가려면 엘리베이터를 타야하는데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면 비상문이 있고 여기에 경보장치가 설치되어있다. 다른 사람들은 계단으로 내려가니 아무 문제가 없는데 장영희는 엘리베이터를 타니 문제다. 그러자 도서관 직원이 장영희가 나타나면 경찰서에 전화해 경보장치를 풀고 장영희가 나가면 다시 경보장치 켠다.

살고 있는 아파트의 엘리베이터가 고장 나 목발 짚고 올라가는데 이웃집 아주머니가 911에 신고해 구조대원 여섯 명이 커다란 소방차 두 대를 타고 사이렌을 울리며 나타나 자신을 들어 올려주었다고 한다.

이걸 보니 우리나라의 장애인을 위한 편의시설이나 인식은 아직도 멀었다는 생각이 든다.

  2장은 이 아침 축복처럼 꽃비가라는 제목으로 장영희가 사랑한 영미문학이 나온다. 여기서는 그가 번역한 영시들이 나오고 그 작품에 대한 해설이나 자신의 느낌을 적었다. 에밀리 브론테가 쓴 폭풍의 언덕에서 캐서린이 히스클립에 대한 사랑을 하녀 넬리에게 고백하는 장면을 번역하고는 넌센스 퀴즈를 낸다. 김치만두가 김치한테 사랑 고백을 할 때 뭐라고 하냐는 것이다. 답은 내 안에 너 있다.’이다. 캐서린이 평생 히스클립을 사랑하며 자기 안에 히스클립이 살아있다는 고백을 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면서 여러분도 누군가를 그리며 마음속에 폭풍이 휘몰아친다면 먼 훗날 창밖에서 들어오는 차가운 손보다는 바로 옆에 있는 따뜻한 손을 잡으라고 충고한다.

  3장은 끝나지 않은 이야기들인데 장영희 사망 1주기를 맞이하여 이해인 수녀님과 박완서씨가 쓴 추모의 글이 나온다. ‘사진으로 추억하는 장영희코너에는 그의 아버지, 어머니, 친구들과 그가 사용하던 강의 노트 등이 나오고 어렸을 때부터의 사진이 쭉 수록되었는데 밝고 명랑한 표정이 전혀 장애인이란 느낌이 들지 않는다. 오히려 정상인 보다 더 깨끗하고 맑은 느낌이다.

  맨 뒤표지 안쪽에는 그녀가 어머니에게 보낸 마지막 편지가 나온다.

엄마…… 미안해

이렇게 엄마를 먼저 떠나게 되어서

내가 먼저 가서 아버지 찾아서

기다리고 있을게

엄마 딸로 태어나서 지지리 속도 썩였는데

그래도 난

엄마 딸이라서 참 좋았어.

엄마

엄마는 이 아름다운 세상 더 보고

오래오래 더 기다리면서

 

…… 나중에 다시 만나.

라고 끝을 맺는다.

책을 덮으며 마치 맑고 투명한 호수 속을 잠깐 들여다본 느낌이다.

 

나는 왜 쓰는가?

 

소연素演 이현숙

장수하려면 일 십 백 천 만을 실천하라는 말이 있다.

하루에 한 가지 선행을 하고

하루에 열 번 웃고

하루에 백 자를 쓰고

하루에 천 글자를 읽고

하루에 만 보를 걸으라는 것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이렇게 긍정적으로 살며 뇌운동과 육체적 운동을 하면 장수할 것 같다. 그런데 매일 100자씩 쓴다는 것이 쉽지는 않다. 어쩌다 몇 천자 쓸 수는 있겠지만 매일 쓰는 것이 어렵다.

어려서는 숙제를 하느라 일기를 썼고, 커서는 마음에 쌓이는 것이 있으면 가끔 끼적거렸다. 결혼해서는 울화가 치밀거나 울적할 때 글을 썼던 것 같다. 특히 남편이 전화도 없이 늦을 때 화가 머리꼭지까지 올라온다. 학교에서 하루 종일 지친 몸을 끌고 시장 봐서 저녁밥 해놓고 기다리는데 안 오면 속이 부글부글 끓는다. 나도 모르게 욕설이 튀어나오려한다.

에이 썅 개새끼 어디서 술 처먹다 콱 뒈져버려라.” 하면서 온갖 욕을 퍼붓는다. 이걸 입 밖에 낼 수는 없으니까 아무데나 마구 써내려간다. 이렇게 화 날 때마다 쓰다 보니 어느 덧 노트 몇 권이 되었다.

나중에 감정이 가라앉은 후 다시 읽어보니 이건 말씀이 아니다. 내가 토해놓은 오물을 보는 듯 악취가 진동한다. 누가 볼까 무서워 얼른 내다 버린다. 그러다 화가 나면 또 쓰게 된다. 어쩌다 남편이 이 글을 보았다. 그 다음부터 술 마시러 갈 때는 노트에 욕 많이 쓰라고 농담하여 나간다.

이렇게 배설 행위로서만 글을 쓰다 보니 좀 한심한 생각이 든다. 무턱대고 토해 놓을 것이 아니라 잘 소화시켜서 내보내면 좋을 텐데 하는 마음이 든다. 수필공부를 하며 내 안에 숨어있는 수많은 문제들이 하나하나 실타래 풀리듯 풀리는 느낌이다. 나도 인식하지 못하고 지내던 많은 문제들이 수면 위로 떠오르며 나도 모르는 사이에 치유된다.

내 동생들은 나를 보고 이제 사람 됐다고 한다. 그전에는 자기 자신 밖에 몰랐는데 이제 남도 돌아볼 줄 알고 많이 부드러워졌다는 것이다.

나는 기억도 없는데 내가 할 일 다 하면 동생이 딴 일을 하고 있는데도 불을 탁 꺼버렸다는 것이다. 내 자신이 나의 노예가 되어 남이 어디서 무얼 하는지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내가 생각해도 거의 정신병자 수준이다.

내가 전혀 쓰지 못한다면 아마 미쳐 버렸을 지도 모른다. 아니면 일일이 말로 토해내느라 지랄발광을 했을 것이다. 글은 나의 생존에 필수조건이요 나의 생존전략이다. 나는 왜 쓰는가? 살기 위해서 쓴다.

 

책 사기도 힘드네

 

소연素演 이현숙

예전의 책방은 구멍가게 수준이었다. 주인 혼자 지키고 있다가 손님이 책이름을 말하면 즉시 찾아주었다. 학교 앞 책방은 학생들이 단골이라 주인아저씨는 웬만한 학생들 얼굴은 다 알고 있다. 학생들이 가면 농담 따먹기를 하며 같이 논다. 하루 종일 책방에 앉아있으면 심심하지 않으냐고 물었더니 아니란다. 거리에 지나다니는 여자들을 보며 저 여자하고 한 번 자면 어떤 기분일까 생각하며 시간을 보낸단다. 그야말로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이라고 할 만하다.

지금은 어떤가? 책방들이 모두 수퍼급 대형으로 변신하여 보기만 해도 질린다. 도저히 수동으로는 찾을 수가 없다. 일단 컴퓨터에서 검색을 해야 한다. 재고가 몇 권이나 있는지 어느 위치에 있는지 간단히 알려준다. 일일이 메모할 필요도 없다. 인쇄를 누르면 작은 프린터에서 금방 출력되어 나온다.

이렇게 해줘도 쉬운 건 아니다. 도대체 코너가 하도 많아서 H1015가 어딘지 J739가 어딘지 찾을 수가 없다. 결국 직원에게 물어서 이리저리 헤매야한다. 그 코너에 가면 또 책이 책장에 가득하다. 윗칸에서부터 일일이 제목을 읽다보면 눈이 시려 눈물이 난다. 대충 가나다순으로 되어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집에 앉아 인터넷 주문을 하면 쉬우냐하면 그것도 만만치 않다. 회원 가입해야지 책도 비슷한 게 많아서 잘 보고 주문해야한다. 돈을 먼저 보내야하는데 이러다 사기 당하는 것 아닌가 불안해하며 수도 없이 클릭해야한다.

언젠가는 제목만 보고 그 위의 E-BOOK이라고 쓴 걸 못보고 신청했다. 아무리 기다려도 책이 오지 않는다. 다시 인터넷에 들어가 전화번호를 알아내어 전화를 했다. 그랬더니 그 책은 배달이 안 된단다. 인터넷에서 다운 받아 읽어야 한단다. 그런 거 못한다고 취소해 달랬더니 취소가 안 된단다.

다시 인터넷에 들어가 계속 버버거리다가 간신히 다운 받았다. 책 한 권을 컴퓨터로 읽으려니 눈알이 빠질 지경이다. 인쇄해서 읽자니 장수가 너무 많다. 결국 몇 날 며칠에 걸쳐 겨우 읽고 독후감 숙제를 했다.

이런 식으로 급변하다가는 어떻게 변할지 상상이 안 된다. 벌써 이렇게 어리버리하는데 한 10년 지나면 책도 못 살 것 같다. 도대체 책방이란 것이 계속 존재하기나 하려나 모르겠다. 모든 책은 인터넷 상에서만 거래될 지도 모른다.

책이 계속 존재할는지 그것도 의문이다. 웬만한 것은 인터넷에 다 들어있으니 책을 안 사려고 할지도 모른다. 나도 월간 산이란 책을 몇 년 동안 구독했다. 하지만 지금은 한국의 산하라는 사이트에 들어가면 온갖 산이 다 소개되어있다. 찾아가는 길이며 등산코스 지도, 갔던 사람들이 올린 산행후기, 사진 등 등 없는 게 없다. 그러니 책을 살 필요가 없다.

책이 없어지면 자연히 책방도 없어질 것이다. 그러면 우리 같은 노털들은 어떻게 책을 본단 말인가? 이렇게 되기 전에 빨리 저 세상으로 가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아직은

 

소연素演 이현숙

발왕산 다녀오다 복정역에서 전철을 탔다. 한 할머니가 경로석에 앉아 파를 다듬고 있다. 매운 냄새가 코를 찌른다. 옆의 아저씨가 집에 가서 며느리 시키라고 하니 아들이 장가를 안 가서 며느리가 없단다. 아저씨 옆자리가 비자 아저씨는 옆으로 옮겨가고 나를 보고 거기 앉으라고 한다.

앉아 있으려니 눈이 따가워 눈물이 나려한다. 할머니는 미안한지 냄새가 심하지요? 하고 묻는다. 괜찮다고 하니 계속 다듬는다. 자기는 나이가 칠순이다. 남편은 하늘나라 갔다고 하더니 도대체 한 둘이라야 말이지.” 한다. 여자가 많았다는 소리다.

나를 보고 산에 갔다 오느냐고 묻는다. 그렇다고 하니 산에 다니는 사람이 제일 복 많다고 한다. 남편 복 있는 사람이 자식 복도 많다고 한다. 할머니는 남편이 속 꽤나 썩였다고 한다. 그래도 남편이 있어 아들도 생기지 않았느냐고 하니 속 만 썩이는 아들이 뭔 소용 있느냐고 한숨 섞인 소리를 한다. 아들도 엔간히 골치를 썩이나보다. 할머니는 얼굴도 곱상하고 복이 많게 생겼는데 험난한 생을 살았나보다.

눈물 콧물이 쏟아져 눈 좀 감고 있으려 하면 또 말을 걸어온다. 눈을 뜨고 맞장구치는 것도 보통일이 아니다. 집에 가면 저녁 준비를 해야 하니 파 다듬을 시간이 없다는 것이다. 낮에는 단대오거리에 가서 일 하고 집에 가면 살림해야 한단다.

일을 마치고 오다가 쪽파가 하도 싱싱하고 싸서 한 단 샀다고 한다. 동네에서 사면 이것보다 훨씬 비싸다고 한다.

천호역까지 오는 동안 한 보따리나 되는 쪽파를 거의 다 다듬었다. 일을 많이 해서 그런지 손이 엄청 빠르다. 손톱으로 파뿌리도 뚝 뚝 잘 분지른다. 나는 집에서 칼로 자르는데 말이다. 그 많은 걸 다 자르는 걸 보면 손톱도 엄청 강한가 보다.

만원 전철에서 매운 냄새를 풍기는 게 미안한지 앞에 서 있는 청년에게 또 묻는다.

파 냄새가 심하지요?” “청년은 아니요 괜찮아요.” 하며 싫은 내색을 안 한다.

전철 안에 파 냄새가 진동하지만 다른 사람들도 아무 말이 없다. 이런 광경을 보니 그래도 아직은 우리 사회가 살 만한 세상이란 생각이 든다.

어떤 여자가 전철에서 담배 피우다가 말리는 노인에게 맥주를 뿌리며 행패를 부렸다는 뉴스를 보았다. 그 밖에도 종 종 전철 안에서 불미스런 일이 벌어진다. 아무리 그래도 그런 사람보다는 이 청년처럼 성숙하고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 더 많다. 이런 우리 사회는 아직 건강하고 살맛나는 세상이다.

천호역에서 부지런히 파 보따리를 들고 내리는 할머니가 안쓰럽다. 그 할머니가 어서 빨리 마음씨 착한 며느리 맞아 손주 안고 편안한 여생을 살았으면 좋겠다.

 

손가락이 닮았다.

 

소연素演 이현숙

아들 효석이가 결혼 11년 만에 아들을 얻었다. 미국에서 태어나 우리는 도무지 실감이 안 난다. 효석이가 보내준 사진을 보고 어렴풋이 짐작이 갈 뿐이다. 탯줄을 자르는 모습과 손자 이안이가 우는 모습 등을 찍은 사진을 메일로 보내줘 남편과 같이 보았다.

효석이는 이안이 눈이 할아버지를 닮았다고 하는데 내가 보기에도 좀 닮은 것 같다. 또 이안이 손가락을 찍은 사진에는 긴 손가락이라고 제목을 붙여 보냈다. 내가 보기에도 엄청 길다. 남편과 아이들은 모두 긴 손가락을 가졌다. 내 손가락은 나무토막 잘라 놓은 듯 뭉툭하고 짧다.

누가 함창 김씨 아니랄까봐 아이들도 손자도 모두 긴 손가락이다. 그런데 우리 고성이씨 형제들은 모두 친정아버지를 닮아 손가락이 짧다. 누가 볼까봐 나도 모르게 자꾸 손가락을 감춘다. ‘발가락이 닮았다라는 소설이 있는데 발가락도 닮기는 닮았을 꺼다. 남편은 발가락도 엄청 길다. 나중에 손자를 만나면 발가락도 확인해 봐야겠다.

손가락이나 발가락, 눈매 등이 닮는 걸 보면 참 희한하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정자와 난자 속에 어찌 이토록 많은 유전자가 들어있는지 상상이 안 간다. 그 많은 정보를 어떻게 기록하여 저장하고 있는지 그저 신비롭고 신기할 뿐이다.

DNA를 이룬 단백질 분자들이 정렬된 순서와 결합된 모양에 따라 달라진다고 하는데 도무지 실감이 안 난다.

그래서 옛 어른들은 다른 도둑질은 다 해도 씨도둑은 못 한다고 한다. 붕어빵처럼 똑 같이 닮아 나오니 어찌 남의 씨를 도둑질해 올 수 있겠느냐 말이다. 걸음걸이나 웃는 모습, 하품하는 모습까지 닮는 걸 보면 가히 상상을 초월한다.

내가 딸을 낳았을 때 남편학교 학생들이 와서 딸이 하품하는 걸 보고 깔깔 대고 웃으며 남편하고 똑 닮았다고 야단법석이었다. 아들도 남편의 걸음걸이를 그대로 닮았다. 박정희 걸음걸이처럼 팔을 약간 벌리고 곰처럼 걷는다.

외모뿐 아니라 성격도 닮는다. 남편도 효석이도 착하고 느긋한 성격인데 이안이도 이런 성격을 닮았으면 좋겠다. 나는 성격도 급하고 모가 나서 좌충우돌이다. 속으로 꽁~하는 성격이라 정신위생에도 안 좋다. 혼자서 속을 끓이다 보니 위염도 잘 생기고 체하기도 잘 한다.

이안이는 아들도 며느리도 다 성격이 좋으니 아마도 원만한 성격을 타고 났을 것 같다. 얼굴도 둥글넓적하니 편안하게 생겼다. 이안이는 요한의 다른 이름이고 ‘God is gracious.' 하나님은 자비하시다.‘ 라는 뜻이란다.

이안이를 얻은 것이 하나님의 자비로우심 때문이라 느꼈나보다. 이안이가 앞으로 살아갈 동안 이름처럼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받았으면 좋겠다. 손가락 뿐 아니라 성격도 효석이를 닮았으면 금상첨화가 될꺼다.

 

이대로

 

素演 이현숙

젊어서는 부부싸움을 자주 했다. 나는 한 번 성질이 뒤틀리면 잠이 안 오는데 남편은 코 골며 잘도 잔다. 이럴 때는 숨소리도 듣기 싫어서 홱 돌아눕는다. 남편의 다리 쪽으로 머리를 두면 코앞에서 숨소리를 듣는 것보다 조금 덜 거슬린다.

거꾸로 누워 뒤척이다 보면 별 별 생각이 다 든다. 내가 눈깔이 삐었지 어쩌다 이런 인간하고 결혼을 했나 하며 때 늦은 후회를 한다. 내 과거를 거슬러 올라가며 어디서부터 잘못 됐나 되짚어 본다.

대학교 1학년 겨울방학 때 강원도 횡성군 안흥면 강림리로 농촌활동을 갔다. 지금의 남편과 함께 경암회라는 동아리에서 활동하다가 같이 갔다. 농촌 활동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왔는데 며칠 후 편지가 왔다. 우리가 머물던 집 아들이 보낸 것이다. 우리가 떠난 후 빈방을 열어 보았을 때의 허전함과 아쉬움이 구구절절이 묻어나는 글이었다. 그 사연이 어찌나 애틋한지 글을 보는 순간 학교 그만 두고 시골 가서 살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서 이것을 행동으로 옮겼다면 지금쯤 농부의 아내가 되어 땅 파고 있을 것이다.

대학 산악회에도 열심히 따라 다녔다. 우리 1년 위의 국어과 선배가 있었다. 성격이 자상하고 섬세해서 항상 나를 잘 보살펴 주었다. 산에 다니며 점점 정이 깊어졌다. 어느 날 이 선배가 자기 엄마는 첩이었다고, 자기는 첩의 아들이라고 했다. 나름 자신의 약점을 고백하는 셈이었다. 집에 와서 엄마에게 무심코 이 선배 얘기를 하다가 첩의 아들이라고 했더니 엄마는 질겁을 하며 그만 만나라고 하였다. 그런 얘기를 들어서 그런지 내 마음도 차차 식어갔다. 이 선배는 후에 충북대 교수가 되었다. 이 선배와 결혼했다면 나는 지금쯤 청주에 살고 있을 것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용산중학교로 첫 발령을 받았다. 그 학교에 영어과 총각 선생님이 있었다. 여교사는 여덟 명이었는데 처녀는 나 밖에 없었다. 자연스레 같이 지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점 점 가까이 다가오는 이 선생님이 부담스러워 1학년 때부터 사귀던 결혼할 사람이 있다고 거짓말을 하였다. 사실 이 때까지 지금의 남편과 결혼할 생각은 하지 않고 있었다. 이 선생님과 결혼했다면 같이 서울서 교편생활하며 지금과 비슷한 생활을 하고 있을 것이다.

이렇게 오만가지 생각을 하다가 내가 타임머신을 타고 처녀시절로 돌아간다면 어느 길로 갈까 하고 엉뚱한 생각을 해본다. 내 나이 스무 살로 되돌아간다면 다른 길로 갔을까 곰곰이 생각해보지만 여전히 이 길로 오지 않았을까 싶다. 내 나름대로 최선의 길을 선택한 것이니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아마 같은 선택을 하게 될 것 같다.

다른 길로 가서 다시 고민하며 내 삶과 투쟁하는 것보다는 한 번 왔던 길 다시 오면 더 수월하게 잘 올 수 있을지 모른다. 다른 길이 더 좋다는 보장도 없는데 그냥 이 길에서 이대로 쭈욱 가는 게 상책이 아닐까 싶다.

 

언덕 위의 하얀 교회

 

素演 이현숙

제가 제일 좋아하는 교회는 야트막한 언덕위에 있습니다. 봄이면 야생화가 만발하고 여름이면 짙은 그늘을 드리워주는 느티나무가 몇 그루 서 있습니다. 가을이면 느티나무 단풍이 가슴 저리게 아름답고 겨울에는 흰 눈에 덮여 동화 속 나라로 들어온 듯 하지요. 교회 건물은 자그마하고 하얀색이랍니다. 언덕 위에 있으니 몇 킬로미터 밖에서도 잘 보이지요.

교회 문은 항상 열려있어 언제나 누구라도 들어갈 수 있답니다. 앞에는 하얀 십자가가 걸려있고 옆면의 창문에는 스테인드글라스가 있어 은은한 햇빛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뒤에는 긴 의자가 몇 개 놓여있고 앞에는 그냥 마룻바닥이랍니다. 무릎이 아픈 사람은 의자에 앉고 바닥이 편한 사람은 바닥에 방석을 깔고 앉지요. 구석에는 예쁜 꽃무늬 방석이 항상 준비되어 있어요. 비닐이 아니고 순면으로 만든 보송보송한 방석이랍니다.

스피커에서는 은은한 찬송이 흘러나오고 있어요. 찬송을 부르고 싶으면 따라 불러도 좋고 기도하고 싶으면 그냥 기도만 해도 돼요. 뒷문 옆에는 골방이 몇 개 있답니다. 혼자 기도하고 싶으면 방에 들어가 안으로 문을 잠그고 큰 소리로 기도해도 밖에서는 들리지 않죠. 성경을 읽고 싶으면 작은 등을 켜고 하루 종일 읽어도 누가 뭐라는 사람이 없고요.

성경을 읽다가 눈이 피곤하면 마당에 놓인 벤치에 누워 깊은 바다 같은 하늘을 바라본답니다. 흰 구름이 뭉쳤다 흩어졌다 하는 것이 마치 인간이 태어났다 사라졌다 하는 것 같군요. 흙이 뭉쳐져서 사람이 되고 그 안에 깃든 영이 본향으로 돌아가면 다시 흙으로 돌아가듯 말입니다.

이런 벌써 해가 서쪽으로 기울었네요. 하얀 교회가 붉은 교회로 바뀌려 합니다. 초저녁의 선선함이 몸으로 파고들면 서서히 일어나 집으로 향하지요. 붉은 교회가 서서히 빛을 잃어갈 때쯤이면 동쪽에서 달이 떠오르겠죠? 달빛을 받은 교회는 낮보다 더 하얀 빛을 발할 것입니다.

밤새 정적에 싸여 휴식을 취한 교회는 아침 해와 함께 몰려드는 사람들을 반가이 맞아주네요. 사람들의 열기와 찬송 소리로 교회는 후끈 달아오르고 있어요. 사방에서 인사하는 소리와 웃음소리로 떠들썩하군요.

아래층에서는 어린이 예배가 한창이네요. 병아리 소리 같은 찬송소리가 창문으로 새어나오고 있어요. 이 아이들이 자라 어른이 되고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는 것을 이 교회는 말없이 바라보겠죠? 그때쯤이면 그들의 손자 손녀들이 몰려와 지금처럼 또 떠들어대며 뛰어다닐 거예요.

누가 이런 교회 찾으면 저에게 연락 좀 해주세요.

 

채송화의 유혹

 

素演 이현숙

결혼하고 3년 만에 집을 사려고 복덕방 할아버지와 이집 저집 보러 다녔다. 면목동에 있는 한 집에 가니 53평 대지에 건평은 20평인데 30평 넘는 마당에 채송화가 가득 피었다. 아침 햇살을 환하게 받은 채송화 꽃잎이 어찌나 투명하고 맑은지 한 눈에 반했다.

집을 보고 나오며 저 집을 사고 싶다고 하니 할아버지가 말린다. 막다른 집이라서 집값도 안 오르고 투자 가치가 적다는 것이다. 길가의 코너에 있는 집을 보여주며 이 집을 사라고 한다. 나는 길가는 시끄럽다고 우기며 기어이 채송화가 있는 집을 샀다. 그 할아버지 말대로 그 집은 30년이 넘어도 얼마 오르지 않았다.

퇴직 후 아파트에 살아보고 싶어 아파트를 보러 다니는데 사위가 송파구로 오라고 한다. 송파구가 앞으로 전망이 있다는 것이다. 송파구에 가서 이집 저집 보러 다녔는데 산도 안 보이고 온통 집들뿐이라 가슴이 답답하고 어디 한군데 의지할 곳이 없었다.

다시 면목동으로 와 용마산 밑에 있는 한신아파트를 보았다. 13층에 있는 집 거실에 들어서니 용마산 정상에서 밑바닥까지 한 눈에 확 들어오는 것이 가슴이 탁 트이는 듯했다. 한 마디로 뿅 갔다. 다른 라인에도 같은 평수의 집이 나와 가보니 산은 안 보이고 시내만 보인다. 이번에도 산에 반해 3000만원을 더 주고 산이 보이는 쪽 집을 샀다.

매사에 현실감 없이 이런 식으로 하다 보니 도무지 재산 증식이 안 된다. 둘이서 30년이 넘도록 맞벌이 했다고 하면 남들이 볼 때 무슨 부동산이라도 좀 있을 줄로 착각하는데 우리 부부는 둘 다 어리버리 멍청해서 툭하면 보증서서 물어내고, 투자하면 사기 당하기 일쑤라 남은 것이 없다. 내가 생각해도 굶어죽지 않고 지금까지 살아있는 것이 기적이다.

사람마다 적성이 다르고 타고난 능력이 다르다. 공부를 잘 하는 사람이 있는가 운동을 잘 하는 사람이 있다. 사업을 잘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재산 증식에 남다른 감각을 가진 사람도 있다. 다 자기 그릇대로 살기 마련이다. 우리는 기본 그릇이 작아 아무리 부어주려해도 그걸 담지 못하고 넘쳐 흘려버린다. 그래서 조금 먹고 조금 싸며 산다.

많은 것을 가진 사람은 큰 고민이 있고 작은 것을 가진 사람은 작은 고민 하면서 산다고 한다. 그래서 세상은 공평한가보다. 남보다 앞서서 가려하고 남보다 더 많이 가지려고 하는데서 불행이 시작되는 것 같다.

그저 남보다 조금 뒤에서 가고 남보다 조금 덜 먹고 남보다 조금 덜 가지려하면 세상만사 오케이인데 그게 맘대로 안 되니 걱정 근심이 끊이지 않는다. 아마도 이 욕심은 내 영혼이 육체를 떠나는 날에나 사라질 것이다.

앞으로라도 채송화의 유혹이나 산의 유혹에 빠지지 말고 현실감 있게 좀 똑똑하게 살았으면 좋으련만 그게 잘 되려나 모르겠다. 아마도 제 버릇 개 못 준다고 평생 그렇게 살다 죽을 것이다.

 

수호천사가 나타났어요

소연 이현숙

잠실역에서 전철을 타려고 승강장에 서 있었어요. 전철이 도착하기 전 문화센터에서 접수한 접수증을 넣으려고 헝겊으로 된 지갑을 꺼냈어요. 마침 전철이 들어오기에 안으로 들어가 자리에 앉았죠. 지갑에 접수증을 넣으려는데 지갑이 없었어요. 문 쪽을 보니 거기에 지갑이 떨어져있더군요. 빨리 가서 주우려는데 문이 닫혔어요. 지갑은 밖으로 떨어졌고요.

순간 앞이 캄캄해지더군요. 신천역에서 내려 반대편 정류장으로 달려가니 열차가 막 떠났어요. 속을 태우며 기다리다가 종합운동장역에서 만나기로 한 미영씨에게 전화를 했어요. 일이 생겨서 늦을 것 같으니 기다려 달라고 했지요.

기다리는 동안 오만가지 생각이 떠올라 머리에 쥐가 날 지경이었어요. 지갑이 철로에 떨어져 열차가 박살을 내지는 않았을까? 열차가 달리면서 멀리 날아가 버린 건 아닐까? 스크린 도어 밖으로 떨어져 누가 주워가지는 않았을까?

몇 분 동안 기다리는데 몇 시간은 되는 듯했어요. 피가 머리로 치솟아 핏줄이 터질 지경이었지요. 그 지갑 속에는 신용카드도 있고 주민등록증도 있었죠. 은행에서 쓰는 도장도 있고 현금도 20만원이나 들었거든요.

카드 회사에 전화를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은행에 가서 인감 변경을 하려면 주민등록증이 있어야하는데 다시 만들려면 얼마나 걸릴까? 수첩에 적혀있는 여러 가지 정보는 어떻게 알아내나? 그야말로 피를 말리는 고문이었습니다.

  전철이 도착해 잠실역으로 되돌아오며 생각하니 어디 가서 얘기해야할지 또 걱정이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매표소가 어딘지 생각이 나지 않았어요. 요새는 자동 발매기가 많아 매표소가 거의 눈에 띠지 않잖아요. 전철에서 내려 두리번거리니 SOS 비상 전화기가 보였어요. 비상사태도 아닌데 눌러도 되나 하고 자세히 보니 비상벨은 빨간색이고 안내를 위한 벨은 파란색이더군요. 파란색 단추를 누르니 역무원의 음성이 들려왔어요.

무슨 일이냐고 묻기에 떨리는 음성으로 신천역 방향으로 가는 열차를 타다가 2-1번문에서 지갑을 떨어뜨렸다고 했어요. 역무원은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기다리라고 하더군요. 잠시 기다리니 두 명의 남자가 나타났어요. 한 명은 열쇠뭉치를 들고 다른 한 명은 감 따는 것처럼 생긴 긴 집게모양의 막대를 들고 왔어요.

한 사람이 열쇠로 스크린 도어를 열고 바닥을 보니 그 밑에 내 지갑이 보이더군요. 다른 한 사람이 긴 집게로 집어 올려 나에게 건네주었어요. 나는 역무원이 직접 철로로 내려가 주워오는 줄 알고 역무원이 내려갔을 때 전철이 들어오면 어쩌나 엄청 걱정했는데 간단히 꺼내주더군요. 너무도 고마워서 감사합니다.”를 연발하며 머리를 조아렸어요.

그들은 당연히 할 일을 했다는 듯이 계단으로 올라가더군요. 나는 그들이 무척 귀찮아할 줄 알았어요. 내 실수로 남을 괴롭힌다는 생각에 미안해서 어쩔 줄 몰랐지요. 그들의 굳은 얼굴을 상상하며 잔뜩 움츠러들었었는데 너무도 친절하게, 너무도 선선히 내 어려움을 해결해준 그들이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수호천사 같았어요.

10년 아니 20년은 감수한 마음으로 가슴을 쓸어내리며, 마음 같아서는 큰 절이라도 올리고 싶었어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수호천사 보내줘서 감사합니다. 노래가 절로 나오더라고요.

우리가 평생토록 살아가면서 무수한 수호천사를 만나는지도 모르지요. 내가 깨닫지도 못하는 위험에서 나를 구해주는 수호천사가 정말 있는 것 같아요.

 

아빠곰이 보고 싶어요.

소연 이현숙

외손녀 송희가 오늘 저녁에 갑자기 아빠곰이 보고 싶어요.”하며 눈물을 글썽였어요. 낮에 옛날 사진을 보다가 자기 손에 들려있는 곰인형을 보고 또 생각이 났나봐요.

벌써 아빠곰을 잃어버린 지 반년도 더 됐는데 아직도 미련이 남았나봐요. 작년에 사위가 캄보디아로 발령이 나 캄보디아에서 사는데 요새 우리 집에 다니러 왔어요. 그곳 유치원에 가져갔다가 두고 왔다네요. 휴일이 지나고 가보니 없어졌대요. 오빠와 함께 며칠 씩 울었다고 하더군요.

이 곰 인형은 송희가 태어나기도 전에 우리 부부가 제주도 놀러갔다가 테디베어에서 오빠인 건희 선물로 사온 거예요. 건희가 가지고 놀다가 송희가 태어나자 송희 차지가 되었죠. 송희는 이 곰 인형을 유난히도 좋아해서 이름도 아빠곰이라고 하며 항상 손에서 놓지 않았어요.

밥 먹을 때는 떠 먹여주는 시늉을 하고, 잠 잘 때도 나란히 옆에 뉘고 잤어요. 우리 부부가 가면 아빠곰을 손에 들고 안녕 안녕하며 까딱까딱 인사도 시키지요. 여자 아이들은 어려서 아빠를 사랑한다더니 송희도 그런 모양이에요. 아빠는 직장 다니느라 얼굴 대할 시간이 적은데 그걸 대신 채우느라고 아빠곰에 더 애착을 가졌나봐요. 사실 아빠하고 있는 시간보다 아빠곰과 지내는 시간이 훨씬 더 많았죠.

하도 목덜미를 잡고 다니니 목에 때가 타서 새카매졌어요. 세탁기에 넣고 빨아도 잘 지지 않아요. 너무 너덜너덜해서 다른 곰 인형을 사다줘도 다른 것은 핑크곰, 연두곰이라고 하며 몇 번 가지고 놀다가는 다시 아빠곰만 갖고 놀아요. 더 크고 잘 생긴 인형은 놓아두고 작고 꼬질꼬질한 이 인형만이 영원한 아빠곰이지요.

  작년에 캄보디아행 비행기를 탈 때도 가지고 타더라고요. 자기의 분신처럼 달고 다니는 이 인형을 어쩌다가 손에서 놓았는지 모르겠어요. 어린 마음에 얼마나 상처를 받았을까 생각하면 내 가슴이 저려요. 더 멋지고 큰 곰 인형을 사다주고 싶지만 어떤 인형도 이 아빠곰을 대신할 수는 없을 거예요. 송희는 지금 마치 아빠를 잃은 심정인가 봐요.

  사람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무수한 만남과 헤어짐을 경험하죠. 부모도 만나고 형제고 만나고 친구도 만나지요. 많은 물건을 갖게 되고 또 잃어버리기도 합니다. 요즘은 애완동물 없이 못 사는 사람도 많아요. 애완견에게 옷도 사 입히고 머리에 예쁜 염색도 하고 파마도 해주지요. 멋있는 핀도 꽂아주고 앙증맞은 신도 신겨서 데리고 다녀요.

하지만 언젠가는 이별해야하는 것이 우리의 숙명이지요. 모든 가족과도 모든 물건과도 생이라는 문이 닫히는 순간 이별해야합니다. 그때를 대비해서 너무 정을 주는 것도 삼가야할 것 같아요. 정이 깊을수록 큰 상처를 받으니 말이에요.

하지만 평생 아무도 사랑하지 않고 무미건조하게 사는 것보다는 뜨겁게 사랑하고 아껴주며 사는 게 더 행복하겠지요? 이별의 아픔을 감수하더라도 사람이건 동물이건 정을 주고 보살펴주는 사람에게는 영원히 마르지 않는 생명수가 흘러나오는 것 같아요.

송희도 이제 아빠곰은 잊어버리고 새로운 대상을 찾아 사랑을 키워갔으면 좋겠어요. 하지만 오늘도 인형 가게가 보이면 아빠곰 같은 것이 없나하고 두리번거리게 되니 저도 아직 미련을 버리지 못하나봐요.

 

박영택의 얼굴이 말하다를 읽고

 

소연 이현숙

저자 박영택은 1963년 서울에서 태어나 성균관대학교에서 미술교육을 전공하였다. 현재 경기대학교 예술대학 미술경영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책 첫머리에 얼굴에 대한 견해를 얼굴은 책이다. 그가 살아온 삶의 이력과 상처들로 울울한 숲이다.’ 라고 밝히고 있다. 한 마디로 이 책의 결론이라고 볼 수도 있다.

머리글에도 산다는 것은 어떤 얼굴을 만나는 일이고 그 얼굴 속에 깃든 정신을 흡입하는 일이다. 그 얼굴과 내 얼굴이 만나 이룬 하나의 세계를 가설하는 일이다.’라고 밝히고 있다.

그는 사회적 얼굴, 밥 먹는 얼굴, 추억의 얼굴, 명상의 얼굴, 지워진 얼굴, 우는 얼굴, 욕망의 얼굴, 눈 없는 얼굴, 죽음의 얼굴, 가면의 얼굴로 나누어 그가 접했던 사진, 그림, 조각, 가면 등 모든 얼굴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고 있다.

사회적 얼굴의 첫 번째는 이승만 대통령과 김구의 얼굴이 겹쳐 있는 김동유의 그림을 가지고 역사적 사건과 두 인물의 정치적 성향 등을 생각해 본다. 한 혼혈아의 얼굴사진에서는 한국전쟁 당시 이 땅에 남겨진 많은 혼혈아들의 애환과 우리 사회의 그늘을 보고 있다.

이종구가 정부양곡 포대에 그린 아버지 얼굴을 보며 농부들의 피나는 고난을 생각한다. 또한 이 그림에는 농부들의 가난과 희생과 노동을 깔고 앉아 있는 도시인들에게 보내는 경고가 스며있다. 이런 얼굴을 보면 평생토록 쌀 한 톨 생산하지 않으며 하루 세끼 꼬박꼬박 밥 먹고 사는 나 같은 인간은 농부의 피를 빨아먹는 기생충이라는 생각이 든다.

서도호의 high school uni-face는 작가가 자신의 고등학교 졸업 앨범에 실린 3학년 1반 학생들의 사진을 모두 겹쳐 놓은 것이다. 그 당시 획일적이고 통제적인 교육을 받던 학생들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정원철의 회색의 초상은 치과용 드릴로 납판을 긁고 파내어, 죽음을 앞둔 위안부 할머니의 얼굴을 묘사했다. 힘겨운 할머니의 일생이 고스란히 묻어있다. 사람들은 저마다 살아온 삶을 자신의 얼굴 위에 새긴다. 혀는 거짓말을 쏟아내지만 얼굴은 진실로 향해있다. 내 얼굴은 나의 것이지만 남이 읽는다. 본다. 뜯어 먹는다. 그래서 얼굴은 사회적인 것으로서의 거울이 된다.

명상의 얼굴에서는 얼이 깃든 굴이란 제목으로 7개의 얼굴을 소개하고 있다. 배형경의 조각상을 보며 작가는 얼굴은 생각이 머무는 곳이고 얼이 깃든 굴이라고 생각한다. 저마다 자신의 얼굴에 그 만의 사유와 고뇌를 밀어 넣고 산다는 것이다.

지워진 얼굴 코너에서는 양유연의 숨바꼭질이란 그림을 소개하는데 책 표지에 있는 그림이다. 손가락으로 얼굴을 가렸지만 손가락 사이로 눈이 보인다. 사람은 절박한 상황에 맞닥뜨리면 얼굴을 가리는데 이것은 자신의 육체를 지우는 행위다. 알몸이 노출되는 상황에 처했을 때 사람들은 성기가 아닌 얼굴을 감싼다고 한다. 수치는 결국 얼굴에 매달려 있는 것이다.

몇 년 전 겨울 남한산성 성벽 길을 따라 걸었다. 눈이 많이 내려 온통 설국이었다. 갑자기 소변이 보고 싶었다. 대로에서는 아무래도 안 될 것 같아 성문 밖으로 나가니 발자국도 없고 길도 잘 보이지 않았다. 여기는 괜찮겠지 하고 바지를 내리고 볼일을 보는데 저쪽에서 웬 남자가 걸어온다. 갑자기 멈출 수도 없고 나도 모르게 얼굴을 확 숙여 버렸다.

한효석의 감추어져 있어야만 했는데 드러나고 만 어떤 것들에 대하여하는 그림은 얼굴의 막을 한 꺼풀 벗겨 낸듯한 그림이다. 어린 시절 도살장 근처에 살았던 한효석은 가축의 도살 장면을 자주 보았다. 그는 인간 역시 이런 살덩어리를 지닌 물질에 불과함을 여지없이 드러내주고 있다. 이 얼굴은 결국 우리가 저마다 가면을 뒤집어쓰고 다님을 우회적으로 폭로하고 있다.

박영택은 30개의 문헌을 참고하고, 69권의 화집을 뒤져가며 자신의 생각을 글로 풀어냈다. 한 가지 소재를 가지고 이토록 집착하면서 끈질기게 연구한 작가의 근성이 부럽다. 한 번 물면 끝장을 볼 때까지 물고 늘어지는 사냥개 근성이라고나 할까? 얼굴을 가르고 쪼개고 난도질하고 분쇄기에 넣어 박살을 낸 듯한 느낌이다.

얼굴 하나로 책 한 권을 쓸 수 있는 저력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그의 끝없는 집념과 열정을 배우고 싶다. 모름지기 진정한 작가란 이런 정신과 의욕을 가진 자를 일컫는 말일 것이다.

 

세상만사 내 인생사

소연 이현숙

요즘 청년 자살이 빈번하다. 유명 연예인들도, 학교 폭력에 시달리는 학생들도 자살했다는 뉴스가 끊임없이 보도된다. 이런 것을 볼 때면 저건 한낱 뉴스일 뿐 나와는 아무 관련이 없는 일이라고 무심히 보았다. 하지만 스물여덟 밖에 안 된 내 조카가 자기 집 지하실에서 목매어 자살했을 때 그건 남의 일이 아니라 바로 내 일이었다.

남의 아들이 시험에 떨어졌다고 하면 그럴 수도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 아들이 과고 시험에 떨어지니 그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주부 우울증에 걸린 아기 엄마가 신생아를 여관에 버려두고 나갔다거나 아파트에서 떨어져 죽었다는 뉴스를 보면 이건 먼 나라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내 딸이 우울증 치료를 받아보겠다고 하니 이건 아니지 하는 생각이 든다. 왜 이 아이가 우울증에 걸렸을까? 너무 어려서부터 떼어놓고 다녀서 정서불안이 생긴 것일까 아니면 내가 너무 무심해서 사랑이 부족해 그런 것일까 별별 생각이 다 든다.

알코올 중독으로 병원 신세를 지는 사람들이 TV에 나오면 별난 나라 사람들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뭔가 이상한 사람들이라고 한쪽으로 몰아붙였다. 그냥 덮어버리고 싶은 이야기였다. 내 동생이 알코올 중독으로 병원을 드나들자 이건 보통일이 아니다. 결국 이혼까지 하고 친정에 와 있으니 90이 넘은 아버지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툭하면 술 퍼먹고 뻗어버리니 오밤중에 아버지가 엠블런스 불러서 병원에 입원시키러 가야한다. 노인네가 참 딱하다.

요즘 주변에 암 걸린 사람이 너무도 많다. 환경이 오염되고 세상이 복잡해지니 스트레스가 심해서 그런지 유난히도 암 환자가 많다. 젊은 사람이 암에 걸렸다고 하면 더 마음이 아프다. 내 딸 나이 밖에 안 된 사람이 암 걸렸다고 하면 가슴이 저리다. 이런 소리를 부지기수로 들으며 살면서도 나는 괜찮겠지. 암이 나는 피해가겠지 하는 착각 속에 살아간다. 생각할수록 무식하고 오만 방자하기 그지없다는 생각이 든다.

  환갑 진갑 다 지나도록 살다보니 세상일이 내 일이고 내 일이 세상일이다. 이 지구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고 내 가족 내 후손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그래서 노인네들이 아무하고나 말 트고 전철에서 옆에 앉은 사람에게 자기 집 일을 미주알고주알 다 말하나보다. 이 세상 모든 일이 자기일 같으니 말이다. 간섭하지 않아도 될 일을 시시콜콜 간섭하고 젊은이들에게 훈계를 퍼붓는 것도 자기 자손을 생각해서 그러는 지도 모른다. 하지만 젊은이들이 어찌 이런 노인네 심정을 이해할 수 있을까? 그들도 노인이 되어 봐야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도 이 지구상에서 일어나는 세상만사는 남의 일이 아닌 바로 내 인생사다. 지구의 모든 공기가 순환하고 모든 물이 뒤섞이듯 세상만사 모두 뒤섞이고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 내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분명 나도 그 사람과 똑같이 행동했을 꺼다. 나는 결코 특별한 존재가 아니다.

 

부부는 전생의 웬수?

소연 이현숙

부부는 전생의 원수가 만난 것이고 자식은 철천지원수를 만난 것이라는 말이 있다. 부부간에 평생 아옹다옹 싸우며 사는 것과 자식 때문에 눈에 흙이 들어가도록 애태우는 실상을 보며 만든 말이지 싶다.

평생을 살면서 부부싸움 하지 않고 사는 사람이 있을까? 내 주위에서는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특히 신혼시절이 더 심하다. 서로가 살아온 환경이 다르고 자존심은 최고조에 달해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나도 신혼 때 제일 심하게 싸웠다. 주로 남편이 술 먹고 늦게 오는 일로 자주 다퉜다. 낮에 직장생활하고 팔이 빠지도록 시장 봐 집에 와서 저녁밥 해 놓았는데 어두워지도록 나타나지 않으면 피가 거꾸로 흐르듯 열이 치솟았다.

밥을 푸면서 에이 썅 개새끼 어디서 술 처먹다 콱 돼져버려라.” 하면서 속으로 욕을 퍼부었다. 사실 전화도 없을 때라 갑자기 일이 생기면 어쩔 수 없었으리라. 신경을 곤두세우며 칼을 갈고 있다가 늦게 들어온 남편에게 독설을 퍼부으면 남편도 지지 않고 남자가 그럴 수도 있지.” 하며 오히려 공세로 나온다. 나도 질세라 하나 차고 나왔다고 평생 더럽게 유세하네.” 하며 맞받아친다.

남의 속 뒤집어 놓고 코골며 자는 남편 숨소리를 들으며 속으로 저런 인간하고 다시는 같이 노나 봐라. 같이 놀면 내가 인간도 아니다.’하면서 이를 간다.

  지금 생각하면 사실 별 것도 아닌 걸로 서로 잡아먹을 듯 엄청 싸웠다. 며칠씩 말도 안하고 눈물 콧물 쏟으며 신경전을 벌였으니 말이다. 지금은 남편이 친구와 술 먹고 늦게 올수록 내 자유시간이 많아서 좋다. 이제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남편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고 했던가? 이렇게 싸우다가도 정작 큰일이 터지면 즉시 합쳐서 난국을 타개해나가는 게 부부다. 남편이 친구 카드 보증을 서준 일이 있다. 이 친구가 카드빚을 지고 갚지 않으니 자연 남편에게 빚 갚으라는 독촉이 왔다. 집을 저당 잡겠다는 둥, 월급 차압을 하겠다는 둥 계속 경고장이 날아왔다. 이걸 받을 때마다 정신적 스트레스가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이런 판국이니 내가 모아놓은 돈 몽땅 찾고, 적금 붓던 것 다 해약하고 해서 모두 갚았다. 그러면서 남편이 고의적으로 한 일이 아니니 용서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사실 부부는 항상 작은 걸로 싸운다. 큰일이 닥치면 합심한다. 그래서 부부인가보다.

점심 식사 후 두 잔의 커피를 타며 먼저 내 잔의 커피를 젓는다. 숟가락의 찬 기운이 물의 온도를 낮추기 때문이다. 남편에게 더 따끈한 커피를 주기 위함이다. 남편은 내가 이렇게 하는 것은 알지 못할 것이다. 하긴 알면 뭐하냐? 다 지 좋아서 하는 일인데.

 

<엮는 글>

새글이고 싶다.

미래수필이 어느 덧 열 번째 동인지를 출간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걸음마 수준을 벗어나 제법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할 때가 되었습니다.

솔로몬 왕은 전도서에서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연이어 말하기를 이미 있던 것이 후에 다시 있겠고 이미 한 일을 후에 다시 할지라. 해 아래에는 새 것이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라고 자신의 생각을 피력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모든 일이 평범한 일상의 반복인 듯합니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말도 있지만 영원히 변하지 않는 것도 있습니다.

요즘은 평균수명이 길어져 인생 칠십 고래희라는 말이 무색하지만 아무리 오래 산다고 해도 백년을 넘기기는 힘듭니다. 백년이란 세월은 영원의 시간 속에서 보면 찰나요 순간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 순간을 살다 가는 우리 인생은 어찌 보면 물거품처럼 허무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무엇인가 살다간 자취를 남기려고 몸부림치는지도 모릅니다. 어떤 사람은 자식을 낳아 이 땅에 자신의 유전자를 남기려 하고 어떤 사람은 불후의 명작을 남기려 합니다.

우리 작가들은 자신의 글로 이 세상에 영원히 남고 싶어 하지요. 물거품처럼 순간적으로 나타났다 사라지는 내 생각을 포착하여 글로 남기려 합니다. 순간을 포착하여 잡아두고 싶어 하는 것이 우리네 마음입니다.

내가 내 자손을 직접 얼굴로 대할 수는 없지만 내 글을 남기면 내 자손에게 내 마음만은 전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글을 씁니다. 세계 곳곳의 사람에게 내 말을 전할 수는 없지만 내 글은 인터넷으로 세상 어디든 갈 수 있습니다.

우리의 글도 솔로몬의 말처럼 헛되고 헛되고 헛된 글일지 모릅니다. 이미 수천 년 전부터 써온 많은 사람들의 글과 다름이 없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는 오늘도 열심히 글을 씁니다.

겉으론 모든 사람이 비슷해 보여도 나와 같은 유전자를 가진 사람은 전무후무 하듯이 내 글도 세상에 하나 뿐인 새 글이기를 희망합니다. 새 글이고 싶은 마음으로 쓴 우리의 글을 엮어 보았습니다.

  2013년 봄 미래수필 문학회

회장 이현숙

 

착각은 자유?

소연 이현숙

아이들이 어렸을 때 나란히 누워서 자는 걸 보면 장래 서울대생들이 누워 자는 구나하고 생각한다.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서울에 있는 대학에만 가다오. 중학교에 들어가면 지방대라도 좋으니 4년제 대학에만 들어가 다. 고등학교에 들어가면 전문대라도 좋다. 대학 문턱이라도 넘어다오 라고 생각한다.

누구나 어렸을 때는 자기 아이가 천재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살다보면 내 아이도 남의 아이들과 같이 평범한 아이임을 알게 된다. 6개월 된 아들에게 며느리가 하는 말 안아 너는 나중에 하버드대 가라.” 며느리도 지금 한참 착각에 빠져 있다. 모든 부모들처럼 자기 아들이 천재일 거라고 생각한다.

자식은 부모의 영원한 등불이요 희망이다. 나는 못했어도 내 아이는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거라고 착각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어느 아이도 부모의 기대만큼 할 수가 없다. 거기에서 갈등이 생기고 부모 자식 간에 골이 깊어진다.

나도 부모님을 참 많이 실망시켰다. 대학교 1학년 때 지금의 남편이 종종 우리 집까지 바래다주었다. 그걸 동네 아줌마가 보았나보다. 엄마에게 얘기를 했는지 엄마 머리에 뿔이 돋았다.

못된 송아지 응댕이에서 뿔난다더니 무슨 연애질이냐? 동네 챙피해서 얼굴을 들고 다닐 수가 없다.” 고 펄펄 뛰며 눈에서 퍼런 불이 번쩍였다.

대학교 졸업식 때 친구라고 소개했더니 무슨 비지죽도 못 먹은 놈 마냥 새카만 게 깜생이 같다고 엄청 실망하는 눈치다. 우리 엄마는 퉁퉁하고 허여멀건 남자를 좋아한다. 아버지가 작고 배짝 말라서 그런지도 모른다. 그런데 남자 친구라고 하는 게 까맣고 비쩍 말랐으니 맘에 들 리가 없다.

그래도 결혼하고 1년 만에 10kg이 늘어 인물이 훤해진데다가 엄마에게 술도 잘 권하고 어른을 공경하니 나중에는 이런 사위는 도시락 싸가지고 다녀도 못 얻는다고 싱글벙글하였다.

우리 아이들이 스카이대학에 들어갔을 때 나도 무슨 벼슬이나 한 것처럼 기뻐했다. 하지만 우리 딸은 전업주부요 우리 아들은 결혼한 지 10년이 넘도록 학생 신세다. 그래도 언젠가는 돈 잘 벌고 잘 나가는 사람이 될 거라고 믿고 산다.

요즘 이런 농담이 있다. 둘이 같이 살 때는 금수강산, 여자가 먼저 죽으면 적막강산, 남자가 먼저 죽고 여자 혼자 남으면 만고강산, 이러다 재혼하면 화려강산이란다. 어찌 보면 이것도 착각일 것이다. 지금은 남편이 내 앞에 걸리적거리는 짐처럼 보일지 몰라도 막상 내 앞에서 사라지면 엄청 적적하고 괴로울지 모른다. 그래서 있을 때 잘 하라는 말도 있지 않으냐 말이다.

우리는 일평생 살아가면서 끝없는 착각 속에서 살아간다. 내 남편은 안 그렇겠지 내 아이는 안 그럴 거야 앞으로는 나아지겠지 이렇게 꿈속에서 헤매다가 생의 마지막 날이 다다를 지도 모른다. 지금이라도 정신 똑똑히 차리고 착각의 늪에서 빠져나와야하지 않을까?

 

  나는 카인의 후예인가?

소연 이현숙

뉴질랜드로 여행을 갔다. 버스를 타고 시골길을 달린다. 무심코 창밖을 내다본다. 무수한 양들이 머리를 땅에 박고 풀을 뜯는다. 양들이 흙을 빨아먹는 듯하다. 농부는 뙤약볕에서 밭에 엎드려 일을 한다. 흙과 같은 색이라 언뜻 눈에 띄지 않는다.

풀은 흙을 빨아먹는다. 양은 풀을 뜯어 먹는다. 사람은 양의 젖과 고기를 먹는다. 결국 사람은 흙을 먹는다. 흙에서 양분을 섭취해 생명을 유지하다가 흙으로 돌아간다. 조물주가 사람을 흙으로 만들었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흙을 파먹고 살다가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 인간 본연의 자세다. 동생 아벨을 죽인 카인은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 땅에서 유리방황하는 자가 되었다. 이렇게 땅을 파지 않고 떠돌아다니는 나는 카인의 후예가 아닐까?

 

어깨를 넘지 못하다

아네모네 이현숙

친정 엄마는 요리를 잘 했다. 외할아버지가 복우물(지금의 성남시 복정동)에서 서울 큰 대감댁 마름(청지기) 노릇을 하여 항상 집안에 식량이 넘쳤다고 한다. 자연히 집에는 항상 손님이 끊이지 않았고 음식도 대량으로 준비했다.

손 큰 엄마는 아버지 생신이 돌아오면 마장동 도살장 앞 가게에 가서 온갖 고기를 무지막지하게 사온다. 허파, , 내장, , 천엽 등 큰 다라이 담아 마당에 앉아 고기 손질을 한다.

이것을 지지고 볶고 푹푹 끓여 엄청난 양의 안주감과 국을 만든다. 혼자 하기 힘드니까 동네방네 아줌마들을 다 끌어들인다. 며칠 전부터 담가 둔 막걸리를 마셔 가며 하하 호호 동네가 떠나가게 시끌벅적하다.

막걸리를 담글 때는 지극 정성을 다한다. 쌀을 깨끗이 씻어 물기를 뺀 다음 시루에 천을 깔고 김으로 쪄낸다. 고실고실하게 찐 밥을 잘 펴서 식힌다. 덩어리로 된 누룩은 잘게 부셔 가루로 만든다. 고두밥에 누룩가루를 넣고 잘 섞어준 다음 항아리에 넣고 물을 붓는다.

항아리를 아랫목에 잘 모셔두고 이불로 푹 덮어씌운다. 이삼일 지나면 슬슬 기포가 생기면서 막걸리 냄새가 올라온다. 일주일 정도 지나면 냄새가 온 집에 진동하고 방에 걸어둔 옷에서도 냄새가 난다. 교복에서도 냄새가 나니 이것을 입고 학교 가려면 공연히 가슴이 두 근 반 세 근 반 한다.

이걸 거르기 전에 긴 소쿠리모양의 용수를 항아리 가운데 박아둔다. 여기에 말간 동동주가 고인다. 밥알이 동동 떠서 동동주라고 부른다. 이건 물을 타지 않은 것이라 도수도 높고 맛도 좋다. 이쯤 되면 우리 엄마의 마당발 인심이 십분 발휘된다. 오는 사람 가는 사람 다 불러들여 한 잔하고 가라고 끌어들인다. 툭하면 딸들보고 계란을 부쳐 와라 무슨 안주거리 해 와라 하는 통에 골치가 아프다.

용수로 동동주를 웬만큼 뽑아 먹은 다음 체와 천을 이용하여 항아리에 남은 것을 걸러낸다. 이때는 물도 섞어가며 농도를 맞춘다. 이게 막걸리다. 막 걸러서 막걸리라고 한다.

  아버지 생신날 이모와 이모부, 큰댁 식구들이 오면 엄마는 신이 나서 술과 안주를 대접한다. 저녁때면 점점 더 흥이 돋아 젓가락 장단으로 노래까지 부른다. 좁은 골목에 사는 우리 집에서는 밤늦도록 노랫소리가 흘러나온다.

아버지 생신이면 아버지가 즐거워야하는데 아버지는 조용하니 앉아 있고 엄마 형제들이 집안이 떠나가도록 웃고 떠들며 노는 것이 어쩐지 앞뒤가 바뀐 것 같다. 그냥 아무도 부르지 말고 우리 식구끼리 조용히 지내면 안 되나 하고 속으로만 중얼거렸다.

내성적이고 폐쇄적인 나는 막걸리 냄새도 싫고 사람들이 우리 집에 드나드는 것도 싫었다. 앞 단추를 풀고 사는 것 같은 엄마 모습이 창피했다. 그래서 이런 것을 배울 마음도 없었고 배울 생각도 안했다.

나이가 먹어가니 나도 막걸리를 좋아하게 되었다. 소주는 너무 독하고 맥주는 씁쓸하다. 막걸리는 순하면서도 달달하니 입에 착 감긴다. 두부나 동태찌개 먹을 때 한 잔 하면 시원하니 속이 쓰르르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어깨너머로 배워둘 걸 그랬다.

이제 와서 후회하면 무엇 하나?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을. 나는 결국 엄마의 어깨를 넘지 못하고 막걸리 만드는 법도 배우지 못했다. 엄마가 만든 막걸리를 먹어 본 적도 없다. 먹어보기라도 했으면 그 맛을 내기 위해 시도라도 해 보련만.

  나는 어깨가 아니라 품 안에서라도 내 딸이나 며느리에게 가르쳐 줄 것이 없으니 그게 더 큰 문제다. 요즘은 웬만한 요리 만드는 법은 인터넷을 뒤지면 다 나온다. 인터넷은 무슨 요술 방망이라도 되는 듯 검색창에 단어 하나만 치면 온갖 정보가 무더기로 올라온다. 어느 것을 보아야할지 너무 많아 고르기가 힘들다. 하지만 인터넷으로도 낼 수 없는 것이 손맛이다.

옛날 어른들이 음식 만들던 방법은 지금처럼 온도계로 재고 저울로 달고 하던 것이 아니라 그냥 감()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요즘 사람들이 올린 방법대로 하면 옛날 맛이 나질 않는다.

요즘 사람들은 인터넷만 있으면 무슨 도깨비 방망이라도 가진 것처럼 착각하고 있다. 금 나와라 뚝딱, 은 나와라 뚝딱 하면 다 나오는 줄 안다. 아무리 컴퓨터가 똑똑하다고 해도 인성과 감성을 가진 인간만 하겠는가? 예쁘다 예쁘다 하면 식물도 잘 자란다는데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지극정성을 다 하는 음식이 어찌 맛과 영양이 넘치지 않겠는가.

무슨 요리를 하던 사랑의 양념과 정성의 기()를 불어 넣으면 세상 어떤 음식보다 더 훌륭한 맛을 낼 것이다. 나도 아는 것은 없지만 사랑과 정성으로 가득 채운 맛깔스런 음식을 만들고 싶다.

 

나는 한 조각 구름인가?

소연 이현숙

7호선 지하철이 개통된 후로 용마산은 시장 바닥으로 변했다. 그전에는 한적한 동네 뒷동산이었다. 그때는 집을 나서서 용마산 정상까지 갔다 오는 동안 한 사람도 못 만날 때가 많았다.

용마산 정상에는 긴 의자가 있다. 시멘트로 조잡하게 만든 긴 의자다. 아무도 없는 산 정상 의자에 누워 하늘을 바라본다. 산 전체가 내 것인 듯 착각한다. 한 조각 흰 구름이 모였다 흩어졌다 하며 모양을 바꾼다.

물은 수증기 일 때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많은 수증기가 모여 물방울이나 얼음 알갱이가 되면 눈에 보인다. 우주의 작은 티끌들이 모여 별을 이루듯 무수한 물방울이 모여 구름을 이룬다.

잠시 형태를 이루었다 사라지는 구름을 바라보며 나를 생각한다. 한 순간 형태를 이루었다 사라지는 구름을 보며 나의 생성과 소멸을 생각한다.

나는 한 조각 구름인가?

 

가을이 문턱을 넘다

소연 이현숙

베란다에서 머뭇거리던 햇살이 문턱을 넘어 마루로 들어온다. 여름내 베란다를 달구던 햇살이 추분이 지나자 슬금슬금 마루 문턱을 넘더니 제법 마루 깊숙이 들어왔다. 이 햇살은 겨울이 다가오면 점점 더 깊이 들어와 마루 가운데 있는 식탁 밑에까지 들어올 것이다.

춘분이나 추분 때는 태양이 정 남쪽에서 떠서 정 서쪽으로 진다. 여름이 되면 북동쪽에서 해가 뜨기 때문에 우리 집에서는 해가 뜨는 것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겨울이 다가오면 해가 남동쪽에서 뜨기 때문에 마루의 소파에 앉아있으면 용마산 능선으로 떠오르는 해가 잘 보인다.

해가 질 때도 마찬가지다. 여름에는 북서쪽에서 지므로 북한산 능선 아래로 가라앉는 태양을 볼 수 있다. 해 질 무렵이 되면 부엌 창문으로 해가 들어와 가스대를 비춘다. 오후가 되면 가스대 위에 있는 냄비의 국이 상할까봐 햇빛이 들지 않는 전자렌지 위로 옮긴다.

추분이 지나 가을이 깊어 가면 해가 지는 위치는 점점 남서쪽으로 이동하므로 가스대에 햇빛이 들지 않는다. 이때가 되면 매일 냄비 이동시키는 작업이 끝난다. 겨우 내내 가스대에는 해가 들지 않는다.

여름에는 태양고도가 높아 수직에 가깝게 내리비추니 햇빛은 마루턱을 넘지 못하고 베란다에서 머문다. 하지만 겨울이 되면 태양고도가 낮아져 해가 낮게 뜨므로 마루 깊숙이 들어온다. 겨우내 마루에서 놀던 햇빛은 봄이 되면 살금살금 마루 문턱을 넘어 베란다로 나갈 것이다.

이게 모두 지구의 자전축이 23.5도 기울어진 탓이라고 한다. 이런 현상을 보고 지구의 자전축이 기울어져 있다는 사실을 알아낸 선조들의 지혜가 놀랍다.

겨울에는 집안 깊숙이 햇빛이 들어와 집안을 따뜻하게 덥혀주고 여름에는 햇빛이 들어오지 않아 시원한 날을 보낼 수 있으니 자연의 오묘한 이치가 신비롭다. 누가 이렇게 지구의 자전축을 기울여 놓았을까?

모든 자연을 만들어 사람이 살만한 환경을 만든 후 마지막으로 인간을 만들었다는 창조주의 배려가 고맙다. 황량한 지구에 인간을 먼저 만들었다면 어찌 사람이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오늘도 마루턱을 넘어 집안으로 들어오는 햇살을 바라보며 창조주에 대한 감사의 노래를 부른다.

 

미움도 사랑인가?

아네모네 이현숙

신혼 때는 참 많이도 싸웠다. 지금 생각하면 별 것도 아닌데 왜 그리 싸웠는지 모르겠다. 무슨 기()싸움을 벌인 것 같다. 그랬다고 누가 승자가 되는 것도 아니다.

한 번 틀어지면 며칠씩 말도 안하고 지낸다. 이럴 때는 어디를 봐도 밉다. 얼굴도 밉고 발가락도 길쭉하니 못 생겼다. 숨소리도 듣기 싫다. 내가 어쩌다가 눈알이 삐어서 저런 인간하고 결혼 했나 통탄을 한다. 앞으로 저런 인간하고 같이 놀면 나는 인간도 아니다 하면서 마음속에서 칼을 간다.

그런데 요즘은 싸울 일이 없다. 웬만한 일은 눈에 거슬리지도 않는다. 젊어서는 술 먹고 늦게 들어오는 것이 그토록 싫었는데 지금은 늦게 올수록 좋다.

20대 부부는 포개서 자고, 30대에는 마주 보고 자고, 40대에는 나란히 자고, 50대에는 등 돌리고 자고, 60대에는 딴 방에서 자고, 70대에는 어디서 자는 지도 모른다고 한다. 나는 아직 60대이면서도 남편이 어디서 자는지 모르고 항상 먼저 잠들어 버린다. 남편은 밤늦도록 거실에서 TV를 본다. 거기서 밤새도록 자는지 어디 가서 자고 오는지 방에 들어와서 자는지 알 수가 없다.

사랑이 식으면 미움도 사라지나보다. 이제는 사랑의 불꽃도 다 타버리고 재만 남아 미워할 정열도 남아있지 않다. 아니 미워하는 것도 피곤하고 귀찮다. 두 개의 자석이 만나면 밀던지 당기던지 할 텐데 이미 자성을 잃은 우리 부부는 한 낱 쇠붙이에 불과해 곁에 있어도 아무 반응이 없다. 아니 이미 내 마음은 한 조각 플라스틱으로 변했는지도 모른다. 어떤 강력한 자석이 와도 전혀 반응할 수 없는 불구의 마음이 되었나보다.

TV를 보면 사랑하는 사람이 변신하여 끔찍한 살인 사건을 저지른 경우가 종종 보도된다. 사랑한 만큼 미움도 크다. 이걸 보아도 사랑과 미움은 비례한다는 걸 알 수 있다. 미워하지 않는 사람은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다.

아니 사랑은 곧 미움이요 미움은 곧 사랑이다.

 

버버리 코트

아네모네 이현숙

겨울이면 밍크코트 입으려고 날씨가 더 추워지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있다. 요즘 밍크코트 없는 사람도 드물다. 특히 며느리 본 사람치고 밍크코트 없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나는 밍크코트는 고사하고 밍크 목도리도 없다. 모임에 가서 밍크코트 입은 사람을 보면 누가 뭐라고 하지도 않는데 공연히 기가 죽는다.

  나는 빨간색 버버리 코트가 있다. 영국제 명품 코트다. 이건 내가 산 것이 아니다. 남편이 예원학교 근무할 때 수위실에서 근무하는 직원에게 산 것이다.

그 직원의 부인은 남대문 시장에서 옷 수선하는 집에 다닌다. 그곳은 주로 명품 옷을 수선하는데 어느 날 한 여자가 이 코트를 수선하러 왔다. 자기가 보기에는 딱 맞는 것 같아서 수선하지 않아도 되겠다고 했는데 굳이 품을 줄여달라고 했다.

며칠 후 이 여자는 옷을 찾으러 와서 입어보고는 너무 작게 줄였다고 트집을 잡으며 물어내라고 했다. 결국 주인이 몇 백 만원을 물어주고 이 직원 부인이 25만원을 내고 이 코트를 가져 왔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부인도 옷이 작아 이 코트를 입을 수 없었다. 결국 25만원에 판다고 하여 남편이 사정 얘기를 듣고 딱하여 사왔다. 내가 입어보니 그런대로 품이 맞아 입을 만했다.

원래 명품과는 거리가 먼 내가 팔자에 없는 명품 코트를 입게 되었다. 그런데 명품을 입어도 짝퉁같이 보이는 얼굴인지라 이걸 입고 나가도 알아보는 사람이 없다.

길거리 패션에 길들여진 나는 이 코트는 집에 모셔놓고 지하철역에서 산 싸구려 코트를 더 애용한다. 이게 더 속 편하다.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한다고 나는 아무래도 싸구려가 더 잘 어울리는 싸구려 인생인가보다.

올 겨울에는 누가 알아보던 말던 옷걸이에 걸려 처량하게 울고 있는 빨간색 버버리코트를 입고 명품 인생을 한 번 살아볼거나?

 

나이는 억울해

아네모네 이현숙

50살만 넘으면 모든 잘못을 나이 탓으로 돌린다. 운동을 못해도 나이 탓, 공부를 못해도 나이 탓, 물건을 잃어 버려도 나이 탓, 음식을 태워도 나이 탓, 이름을 잊어버려도 나이 탓이다.

내가 나이라면 엄청 화 날 것 같다. 젊어서부터 못한 것도 자신의 탓으로 돌리지 않고 무조건 나이 탓으로 돌리니 얼마나 억울하겠냐 말이다. 사실 나는 젊어서부터 운동도 못하고 툭하면 뭘 까먹기 일쑤였다. 하지만 지금은 60이 넘고 보니 모든 죄를 나이에게 덮어씌운다.

처녀 때부터 추위를 많이 타 1년이면 7개월 이상 내복을 껴입고 살았으면서도 지금은 조금만 추우면 나이가 드니 체온 조절이 안 된다느니, 뼛속이 비어서 바람이 술술 들어온다느니 하면서 나이 탓만 한다.

수영도 마찬가지다. 나는 경로레인에서도 제일 꼴찌에서 허둥지둥 좇아간다. 꼴찌에서 따라가다가 앞 사람이 되돌아오면 가다 말고 홱 돌아서 따라온다. 젊어서 배웠으면 엄청 잘 했을 것처럼 나이가 들어 어쩔 수 없다고 한다. 순전한 거짓말이다. 나는 원래 몸치라서 잘 하는 운동이 한 가지도 없다. 사실 못해도 너~무 못한다. 달리기를 해도 꼴찌, 볼링을 하면 백발백중 도랑으로 굴러간다.

요가는 또 어떤가? 구부리라면 구부러지지를 않고 펴라고 하면 펴지지를 않는다. 그저 모든 동작이 엉거주춤 이다. 역시 나이가 들어 뼈가 굳어서 그렇다고 나이에게 모든 잘못을 밀어붙인다. 사실 나보다 나이가 더 많아도 다리가 짝 짝 벌어지고 가슴이 바닥에 탁 탁 붙는 사람이 많다.

주의력은 말 할 것도 없다. 일전에 동생 재숙이가 북한산 둘레길 가자고 구파발역에서 만나자고 두 번이나 문자를 보냈다. 당일날 전철역에서 아무리 기다려도 동생이 안 보인다. 핸드폰으로 서로 물어가며 막걸리 파는 파라솔 밑에 있다고 하니 서로 말이 안 통한다. 한참 싱갱이를 하다가 동생이

언니, 무슨 역이야?”한다.

불광역이라고 했더니 내가 언제 불광역으로 오라고 했느냐고 박장대소를 한다. 핸드폰을 다시 열어보니 두 번 다 구파발역이라고 되어있다. 문자를 보면서도 왜 불광역이라고 생각했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다.

요즘은 내가 무섭다. 언제 어디서 무슨 짓을 저지를지 상상이 안 된다. 사실 젊어서도 까마귀 고기를 먹은 것처럼 깜빡 깜빡했다. 이제 죄 없는 나이에게 모든 죄를 덮어씌우는 짓일랑 그만 두고 내 탓이요, 내 탓이요, 내 큰 탓이로소이다. 하고 솔직히 고백해야겠다.

 

이 겨울 민달팽이는 어디로 갔을까?

아네모네 이현숙

등산을 하다보면 가끔 바위 위를 느릿느릿 기어가는 민달팽이를 만난다. 발을 내 디디려다가 깜짝 놀라 얼른 피할 때도 있다. 어쩌다가 등산객의 발에 깔려 몇 방울의 누런 물로 변해 버린 것도 있다. 말랑말랑한 민달팽이가 보면 등산화는 철갑을 두른 탱크와 같을 것이다.

이 추운 겨울 민달팽이는 어디로 갔을까? 밖에 있으면 몇 분이 못 되어 냉동 달팽이로 변해 버릴 텐데. 다른 곤충들처럼 알을 낳고 죽는 것일까? 손가락으로 살짝 눌러도 터져 죽을 수밖에 없는 민달팽이는 어째 다른 달팽이들처럼 껍질이라도 하나 만들지 않았을까? 아니면 소라게처럼 다른 동물의 껍질 속에라도 들어가 살면 좋을 텐데.

  재작년 겨울에 내 동생은 아들을 잃었다. 28살 밖에 안 된 외아들이다. 자기 집 지하실에서 목을 맸다. 이틀씩이나 지하실에 매달린 것을 모르고 이 아이가 왜 안 오나? 친구 집에서 술 먹고 잠 들었나? 하며 동생은 막연히 걱정하며 기다렸다.

그러다가 아들 방에 가보니 핸드폰과 지갑이 책상에 그대로 있는 걸 보고 외출하지 않은 걸 알았다. 아무래도 지하실이 아닌가 싶어 다른 사람을 시켜 지하실에 가보니 거기에 있었다.

아들을 잃은 동생은 너무도 씩씩했다. 그전보다 더 말이 많아지고 더 웃음도 많아졌다. 슬픔의 늪에 빠지지 않으려고 안간 힘을 쓰는 것 같아 내 마음이 쓰리다.

슬픔에 겨워 쓰러져야 할 동생이 너무도 태연하게 잘 지내는 걸 보니 더 불안하다. 공중에 붕 떠서 서커스를 하는 것처럼 언제 떨어질지 몰라 노심초사 손에 땀을 쥐게 한다.

늙어서는 자식이 울타리라는데 민달팽이처럼 맨살을 내놓은 동생은 얼마나 춥고 뼈가 시릴까? 얼마나 많은 세월이 지나야 이 아픔을 잊고 평정을 되찾을 수 있을까? 민달팽이처럼 여린 내 동생의 마음이 낙타 무릎처럼 딱딱해져 어떤 아픔도 느끼지 못할 때가 빨리 왔으면 좋겠다.

우리는 살면서 무수한 슬픔과 고통을 겪는다. 하지만 오랜 세월이 지나면 세월의 더께가 켜켜이 내려앉아 웬만한 슬픔은 모두 하나씩 추억의 방으로 들어간다.

동생의 슬픔도 어서 속히 추억의 방으로 들어갔으면 좋겠다. 아니 민달팽이 같이 여린 맨살이 얼른 굳어져서 군화로 밟아도 끄떡없는 꾸덕살로 변했으면 좋겠다.

동생은 96살이 된 시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다. 손자가 죽은 것을 모르게 하려고 시누네 집으로 보낸 후 시신을 조용히 병원으로 옮겼다. 시어머니가 왜 손자가 보이지 않느냐고 하면 취직이 안 되어 미국에 사는 작은 시누네 집으로 보냈다고 거짓말을 한다. 왜 전화도 없느냐고 하면 가게로 자주 전화 온다고 또 거짓말을 한다. 동생 말로는 그걸 사실대로 말하면 돌아가실 지도 모른다고 이 겨울에 또 초상 치를 일 있느냐고 한다.

아들 방의 물건을 치우면 시어머니는 왜 짐을 치우느냐고 한단다. 그러면 오래 있다가 올꺼니까 아들이 치우라고 했다고 또 둘러댄다.

아들 사십구재나 제삿날이 돌아오면 시어머니 몰래 시누이가 장만해 온 음식을 가지고 산소에 다녀온다. 지금은 납골함에 넣어 땅에 묻었는데 납골당을 지으면 조상들과 함께 납골당에 넣겠다고 한다.

2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시어머니는 손자가 미국에 사는 줄 안다. 시어머니가 저승에 가서 손자를 만나면 어떤 기분일까? 거짓말 한 며느리가 괘씸할까 아니면 선의의 거짓말이라도 해서 마음의 고통을 덜어준 며느리에게 고맙다고 할까?

살다보면 거짓말이 필요할 때도 있다. 모르는 게 약이라는 속담도 어쩌면 이런 상황에서 만들어진 말일지도 모른다. 내 동생 시어머니가 돌아가시는 날까지 이 거짓말이 잘 유지되었으면 좋겠다. 진실로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이 상처 받을 말은 하지 않는 게 좋다. 일부러 알려서 평생토록 가슴에 못 박을 필요는 없다.

하나님이 사람의 죽을 날짜를 모르게 한 것은 참 감사할 일이다. 언제 죽을 줄 알면 그 사실에 억매여 평생토록 죽음의 그늘 밑에서 전전긍긍하며 살 것이다. 삶의 의욕도 모두 잃어버릴 것이다. 우리는 죽음이 1분 앞에 와 있어도 이걸 볼 수 없고 알 수도 없다. 그냥 천 년 만 년 살 것처럼 천하태평으로 살아간다. 이것이 인간이 받은 복 중에 최고의 복이 아닐까?

 

발아 미안하다

 

아네모네 이현숙

몇 년 전 산길을 걷다가 비스듬한 경사면에서 발을 딛는데 진저리가 쳐질 정도로 왼발에 통증이 왔다. 절뚝거리며 산을 내려와 다음 날 정형외과에 갔다. 엑스레이를 찍더니 뼈에는 이상이 없는데 인대가 늘어난 것 같다며 물리치료를 하자고 하였다. 근 한 달 간 물리치료를 받았지만 별로 나아지지 않았다.

한의원에 다니면 좀 나을까 싶어 한의원에 가서 매일 침을 맞았다. 여기서도 한 달 정도 치료를 받았지만 별 효험이 없었다. 다시 정형외과에 가니 신경종인 것 같다고 하며 수술해도 재발이 잘 되고 별 효과가 없으니 그냥 살라고 한다. 신경종이 무엇인가 인터넷에 찾아보니 신경에 생기는 종양인데 세 번째 발가락과 네 번째 발가락 사이에 잘 생긴다고 한다. 내 증상과 똑같다.

남편이 외과의사인 친구에게 물어보니 수술하면 기브스를 6개월 정도 해야 하고 그러면 한 발로 걷다가 오른쪽 무릎이 망가질 테니 그냥 사는 게 낫단다.

외과 의사들이 이렇게 말하니 어쩔 수 없이 그냥 살고 있다. 지금은 통증은 많이 줄었지만 가끔씩 경사면을 딛다가 발이 한쪽으로 쏠리면 전기가 통하듯 찌르르 아프다. 또 오래 걸으면 쥐가 나듯 두 발가락이 뻐근하게 아프고 발 디딜 때마다 아프다.

눈은 온갖 좋은 구경 다 하고 입은 온갖 맛있는 음식 다 먹으며 호강하는데 발은 숨 막히는 등산화 속에서 무거운 내 몸을 실어 나르느라 비지땀을 흘린다. 공기가 안 통하니 여름이면 무좀도 생긴다. 깜깜한 신발 속에서 죽어라고 일만한다.

사람 사는 인생도 이와 같지 않을까? 어떤 사람은 부모 잘 만나 평생 호의호식하며 잘 지내는데 찢어지게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사람은 평생 가난을 대물림하며 비참하게 살아간다. 물론 자수성가하여 어려운 가정에서도 재벌로 성장하는 사람도 있지만 말이다.

인도나 에티오피아에 사는 어린아이들을 보면 한국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행운아라는 생각이 든다. 이 나라에서도 부모를 잘 만나 흰 세라복을 입고 학교에 가는 아이도 있지만 맨땅에서 맨발로 흙투성이가 되어 뒹굴고 있는 아이들이 태반이다. 인도에서 어떤 아이는 우리가 산에 올라갈 때 길 옆에서 바위를 깨어 작은 돌로 만들고 있었다. 그런데 며칠 후 내려올 때 보니 그때까지도 여전히 돌을 깨고 있다. 또 어떤 아이는 아스팔트 시커먼 액을 구멍 뚫린 깡통에 넣어 들고 가면서 도로에 뿌리고 있다. 뜨거운 뙤약볕 아래서 하루 종일 이렇게 아스팔트 위를 걷고 있다. 이런 아이들을 보면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으면 더 행복하지 않았을까 하는 의구심이 생기기도 한다.

하지만 아무리 비참하게 살아도 이 세상은 한 번쯤은 와볼만한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누가 들으면 배부른 소리 하지 말라고 할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눈이나 입처럼 아름답고 고운 삶을 사는 것도 인생이지만 발처럼 깜깜하고 숨 막히는 환경에서 평생 몸부림치는 삶도 역시 귀한 인생이다. 그래도 이왕이면 눈이나 입처럼 호강하는 삶을 살고 싶은 것은 모든 인간의 바램이다. 다 눈이요 다 입이 면 손은 누가 하고 발은 누가 할까? 모든 기관이 다 필요하듯 모든 인생은 다 합하여 하나의 완성체를 이루는 게 아닐까?

 

늑대는 억울해

 

아네모네 이현숙

흔히 늑대라고 하면 인정사정 볼 것 없이 무자비하고 짐승 중에서도 최악의 동물로 생각한다. 그런데 사실은 그게 아니란다. 늑대는 부부금슬이 어찌나 좋은지 한 번 짝을 맺으면 평생 반려자로 생각하여 그 곁을 떠나지 않는다고 한다.

늑대소년이라는 영화를 보았다. 처음 장면은 미국에 이민 가서 사는 순이라는 할머니에게 한국 화성군의 군청에서 전화가 걸려온다. 거기 있는 집이 순이 어머니의 명의로 되어 있다가 돌아가신 후 순이의 명의로 변경되었는데 이곳이 개발되니 파는 게 어떻겠냐고 한다. 순이 할머니는 한국으로 돌아와 손녀딸과 그 집으로 간다.

그 집에서 하루 밤 묵으며 47년 전의 일을 회상한다. 순이가 고등학생일 때 폐병에 걸려 어머니와 여동생 이렇게 세 식구가 요양 차 이곳으로 이사를 온다. 이사 온 날 밤 창문에서 어른거리는 동물을 발견하고 외마디 소리를 지른다. 하지만 엄마와 동생은 피곤에 지쳐 잠들어 있다.

다음 날 아침 집 밖의 한 구석에 숨어있는 거지 소년을 발견하고 집으로 데리고 들어온다. 이 소년은 말도 못하고 먹을 것만 보면 미친 듯 달려들어 입에 쳐 넣는다. 다른 식구들은 도저히 식사를 할 수가 없다. 이 소년은 국가의 목적으로 생물학 교수가 만들어낸 특수한 인간이다. 산골 외딴 집에서 교수는 연구하다가 심장마비로 죽고 소년은 혼자 짐승처럼 살아가다가 이 식구들을 만나게 된 것이다.

순이는 애완견 길들이기라는 책을 읽어가며 이 소년을 길들인다. 결국 이 늑대소년은 순이가 하라는 대로 기다리라면 기다리고 먹으라면 먹는다. 순이는 이 소년에게 글씨도 가르치고 말도 가르친다. 동네 아이들과도 같이 어울려 축구도 하고 달리기도 하며 즐겁게 지낸다.

하지만 순이에게 흑심을 품은 순이 아버지 친구의 아들이 늑대소년을 없애려고 온갖 사건을 일으켜 죄를 뒤집어씌운다. 결국 순이와 늑대소년은 산으로 도망가지만 경찰과 군청 직원들이 늑대소년을 사살하려고 산을 수색한다. 순이는 늑대소년에게 산으로 도망가라고 소리치지만 가지를 않는다. 순이는 늑대소년에게 네가 싫다고 가버리라고 돌까지 던지며 거짓말을 한다.

순이는 혼자 산을 내려와 사람들과 집으로 온다. 결국은 이사를 가게 되는데 순이는 기다려 내가 다시 올게라는 쪽지를 남기고 떠난다. 그 후 순이는 늑대소년을 잊고 다른 남자와 결혼하여 손녀까지 둔 할머니가 되었다.

마지막으로 이 집에서 하루 밤을 자다가 순이는 창고로 가보게 된다. 창고 앞에는 수많은 화분들이 꽃을 피우고 깨끗이 정리 되어 있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니 거기에 늑대소년이 기다리고 있다. 순이가 남겼던 쪽지를 소년이 순이에게 건네주자 순이는 미안하다고 이제 기다리지 말라고 눈물을 흘리며 사과한다. 소년은 순이가 어렸을 때 부탁했던 대로 순이에게 눈사람이 그려진 동화책을 읽어준다.

다음 날 순이는 손녀딸과 함께 차를 타고 돌아간다. 돌아가는 도중 군청에서 걸려온 전화에 순이는 그 땅 안 팔아요.” 하며 전화를 끊어 버린다.

마지막 장면은 함박눈이 펑펑 쏟아지는 벌판에서 늑대소년이 눈덩이를 굴리며 눈사람을 만드는 데서 끝이 난다.

이 영화를 보며 늑대소년은 늑대의 본성을 지녔기 때문에 반세기 동안 한 여인을 기다리며 순수한 사랑을 가꾸어 온 게 아닌가 싶다. 인간이라면 그 동안 벌써 장가가서 아들 낳고 딸 낳고 잘 살았을 것이다.

어쩌면 늑대는 인간보다 더 순수한 심성을 지녔는데 사람들이 일방적으로 극악무도한 짐승으로 매도했는지도 모른다. 사람들이 이렇게 늑대를 비하하는 줄 알면 늑대는 정말 억울할 것이다.

사람들은 모든 생물과 무생물을 자기 위주로 생각하고 아무 것도 모르면서 단정적으로 밀어붙일 때가 많다. 그 생물들의 말도 들어보지 않고 아니 들어 보지 못하고 멋대로 생각하는 태도는 우리 인간이 꼭 고쳐야할 마음 자세가 아닐까?

 

마크 트웨인 여행기를 읽고

 

아네모네 이현숙

이 책을 사자마자 후회막급이었다. 상 하 두 권으로 된 것도 그렇고 글씨도 작아 읽어도 읽어도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이거 읽는데 세 달 걸렸다. 다음에는 제일 짧은 책으로 골라야겠다. 어쩐지 책머리에 인내심을 가지고 끝까지 읽어주실 독자 여러분과 관대한 비평가 여러분에게 이 책을 바칩니다.” 라고 쓰여 있을 때부터 수상했다.

저자 마크 트웨인은 1835년 미국 미주리주 플로리다에서 판사인 존 마샬 클레멘스와 제인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본명은 사무엘 랭혼 클레멘스이다. 열 네 살 때 부친이 사망하여 가정형편이 어려워지면서 인쇄공, 뱃길 안내인, 의용병, 통신원, 기자 등의 여러 가지 일을 하였다. 이때의 다양한 경험이 톰소여의 모험, 허클베리 핀의 모험 등 그가 쓴 많은 글의 소재가 되었다. 버지니아의 엔터프라이즈 신문 통신원으로 일할 때부터 마크 트웨인이란 필명을 사용하였는데 이 이름은 두 길(Mark two fathoms) 이란 뜻인데 우리 나라말로 사람의 두 길 깊이 즉 12피트 깊이를 말하며 항해에 안전한 수심을 말한다. 1피트가 약 30.5cm니까 12피트는 약 3.66m가 된다.

32살 때 퀘이커 시티호를 타고 유럽과 중동을 여행하며 네일리 엘타 캘리포니아라는 일간지에 기사를 기고하게 되었다. 이 기사로 그는 전국에 명성을 떨치게 되었고 그 내용을 책으로 출간한 것이 이 책이다. 원래의 책 제목은 때 묻지 않은 사람들의 세계로 떠난 여행이다. 퀘이커 시티는 필라델피아시의 속칭이며 또한 이 배의 이름이다.

이 책에서 그는 유럽의 귀족성에 대한 적개감과 미국 여행객들에 대한 솔직한 비판도 담고 있다. 또한 거대한 유적 앞에서 때로는 아무 것도 느끼지 못했다고 솔직히 고백한다.

이 책을 보며 놀란 것은 시시콜콜 자세히 그것도 너~무 자세히 기록한 필력과 시기적절하게 삽입한 그림이다. 이 그림은 사진을 찍은 후 그것을 보고 그린 것인지 작가의 기억을 바탕으로 그린 것인지 모르지만 섬세한 표현과 사실적 묘사가 기막히다. 그것도 본인이 직접 그렸다는 것이 정말 놀랍다. 그 시대의 표현 방법이 그랬는지 한 문장이 너무 길어서 그 문장을 다 읽다보면 앞에서 뭘 읽었는지 모르겠다.

재미있는 표현도 많았는데 예를 들면 폭풍이 심해 뱃멀미가 났을 때 그가 갑판에서 한 시간 동안 받은 인사는 아이구 죽겠다 뿐이었다고 하며 뛰쳐나오는 노신사를 그림으로 그려 놓았다.

너무 솔직한 표현은 지금 같으면 인터넷에서 날벼락 맞을 만한 것도 많다. ‘이 지역은 확실히 포르투갈적이다. 말하자면 느려빠지고 가난하며 변동이 없고 졸립고 게으르다.’라고 쓰고 있다.

이탈리아 베니스의 곤돌라는 영구차 같다고 하며 시커먼 관의 몸체가 가운데에 턱하니 박혀 있는 듯한 꺼멓고 녹슨 오래된 카누이며 사공이란 작자는 공공연히 옷의 일부분을 드러낸 맨발의 넝마주이 같은 불결한 사람이라고 혹평한다.

툭하면 인신공격도 서슴치 않는다. 그 배에 탄 질문이 많은 사람을 그는 영민하지도 박식하지도 현명하지도 않다.’고 하며 질문쟁이라는 제목으로 얼굴까지 그려놓았는데 정말 멍청하고 바보 같은 표정으로 그렸다. 지금 같으면 명예훼손죄로 고소되었을 것이다.

그가 여행한 것은 약 150년 전인데 지금과 너무도 똑 같은 점이 있는가 하면 다른 점도 많다. 모로코의 탕헤르 시가지가 어찌나 좁은지 자신의 몸을 뻗으면 길을 막을 수 있다거나 흰 눈색 묘지 같은 집들로 빽빽이 들어찼다는 것은 지금과 거의 같다. 하지만 이때만 해도 여행자 한 명에 현지인이 세 명씩 달라붙어 피라미드 한 층 한 층을 끌어올렸다고 한다. 물론 엄청난 팁을 요구했지만 말이다. 나도 피리미드 앞에 섰을 때 한 번 올라가 보고 싶었다. 또 스핑크스의 얼굴까지 사다리를 대고 올라가 망치로 조각을 떼어낸다던가 하는 만행은 지금은 볼 수 없다.

이 여행에서 부러운 것도 있다. 그 때는 모든 것을 맘대로 볼 수 있었다. 베드로성당 돔의 꼭대기에도 올라가고 피사의 사탑도 꼭대기까지 올라갈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수박 겉핥기식으로 겉에서만 볼 수 있으니 안타깝다.

그리스 같은 데서는 입국허가를 해주지 않자 밤에 몰래 상륙하여 신전을 보고 온다던가 낙타, , 당나귀 등을 타고 사막이나 황무지를 몇 날 며칠씩 여행하는 모습은 정말 부럽고 나도 해보고 싶다.

가는 곳에 대한 해박한 지식도 놀랍다. 성경에 대한 지식이며 유적지와 유물에 대한 지식이 무궁무진하다. 자고로 제대로 된 여행기를 쓰려면 공부부터 해야겠다.

가이드가 일러주는 얄팍한 지식만 도용하여 써 온 나의 기행문이 부끄럽다. 모든 일에는 공을 들인 만큼 결과가 나오게 마련이다. 앞으로는 여행 갈 때 예습 복습을 철저히 하여 제대로 된 여행기를 써 봐야 겠다.

 

거울이 진범인가?

아 네모네 이현숙

산에 다니다보면 가끔 진범이란 야생화를 보게 된다. 오리 모양의 작은 꽃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앙증맞은 꽃이다. 이 꽃을 볼 때마다 어디서 무슨 죄를 지었기에 이런 흉악한 이름이 붙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실제 이런 뜻이 아닐지도 모르지만 발음상 항상 진짜 범인을 떠올리게 된다.

요즘은 집안 곳곳에 거울이 즐비해서 내 얼굴을 안 보고 살래야 살 수가 없다. 현관에 들어서면 신장에 붙어있고, 화장대에, 장롱에, 화장실에 온통 거울이 곳곳에서 나를 바라보게 한다. 그것뿐인가? 여자들 대부분이 핸드백 속에 작은 거울 하나씩은 가지고 다닌다. 수시로 꺼내들고 얼굴과 머리를 가다듬는다. 나는 핸드백에 거울은 안 가지고 다니지만 웬만한 건물 곳곳에는 무수한 거울이 있어 자동적으로 쳐다보게 만든다.

거울을 안 보았을 때는 아무 생각 없이 즐겁게 잘 지내다가도 거울을 보는 순간 내 얼굴에 핀 저승꽃과 무수한 점들과 쳐진 눈꺼풀이 눈에 들어온다. 까맣게 염색하고 아직도 젊은 줄 착각하고 있는 내게 주제 파악하라고 무수히 들고 일어나는 흰 머리도 보인다.

특히 머리 위쪽에서 빛이 비치면 속알머리 없는 내 머릿속이 훤히 들여다보여 나의 실체를 여지없이 드러내준다. 이럴 때는 거울이 야속하다. 누가? ? 거울은 만들어가지고 뭇 사람의 기를 죽이나 모르겠다.

요즘은 얼굴이나 몸에 손을 안 댄 사람이 드물 정도로 성형이 유행이다. 쌍꺼풀 수술은 기본이고 코를 높이는 것은 선택이다. 점을 뺀다거나 주근깨를 없앤다거나 박피를 하여 피부 관리를 한다. 넓적한 얼굴이 밉다고 턱뼈를 깎아내는 수술도 유행이다. 몸매를 예쁘게 한다고 지방흡입 수술을 안 하나, S라인을 만든다고 젖가슴에 실리콘을 집어넣지 않나 별별 짓을 다하니 몸이 만신창이가 된다. 이 모든 것의 진범은 거울이 아닐까?

거울이 없을 때는 자신의 얼굴을 볼 수 없으니 못 생긴 사람도 남의 얼굴을 보며 나도 저 정도는 생겼겠지 하며 즐겁게 살았을 것이다.

사실 예쁘고 미운 것은 뚜렷한 기준이 없다. 나라와 족속에 따라 미의 기준이 다르다. 팥쥐가 있어야 콩쥐가 빛이 나고 놀부가 있어야 흥부가 돋보이듯 모든 것은 서로가 합하여 온전한 형체를 이룬다. 내가 못 생겨서 남을 기쁘게 하고, 내가 못 나서 남의 기를 세워준다면 이보다 더 큰 선행이 없을 것이다. 이런 면에서 보면 나도 조금 선행을 한 것이 아닐까?

 

주고 싶은 도둑

아 네모네 이현숙

자식은 키워서 결혼시키면 의무가 끝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우리 아들은 결혼한 지 12년이 되어 가는데 아직도 AS가 끝나지 않았다. 미국에서 박사과정 공부를 하고 있는데 언제나 끝이 날지 아직도 끝이 보이지 않는다.

자식은 전생에 빚쟁이라서 부모 얼굴만 보면 돈 달라 돈 달라 한단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게 맞는 말인 것 같다. 그런데 주어도 주어도 더 주고 싶으니 이게 문제다. 자식은 도둑 중에서도 주고 싶은 도둑이다.

나는 결혼하면서부터 시어머니 돌아가실 때까지 16년 동안 내 월급 사분의 일 씩 보내 드렸다. 그 때는 왠지 아깝기도 하고 억울하기도 하고 그랬다. 그런데 나중에 내가 아들을 낳고 생각해보니 남편은 나의 남편이기 전에 시어머니의 아들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시어머니가 없었으면 좋겠다는 못된 생각이 문득 문득 들 때도 있었다.

아들은 내 연금을 몽땅 넣고 남편 돈까지 추가하여 보내줘도 아깝지 않으니 이게 무슨 조화인지 모르겠다. 남편은 나보다 한 술 더 떠서 집을 팔아야하나 궁리중이다. 하지만 내가 반대했다.

며칠 전 아는 목사님과 점심 식사를 했다. 목사님은 자신의 형님 얘기를 하며 자녀에게 너무 올 인하면 안 된다고 하신다. 그 목사님의 형님도 목사님인데 아들 유학 보내느라고 온 재산을 다 쓰고 지금은 빈털터리가 되었다. 자신들이 죽으면 장례비도 없어 두 분 다 시신을 기증하기로 하고 몸에 기증 카드를 지니고 다닌다.

그 목사님 사모님이 아들과 통화하다가 이 얘기를 하니 당장 취소하라고 했단다. 그래서 나 죽으면 네가 와서 장례 치러 줄꺼냐고 하니 아무 말도 안하고 가만히 있더란다. 그러면서 목사님은 자기 형님처럼 되지 않으려고 자녀들에게 지금부터 결혼 자금은 스스로 마련하라고 누누이 세뇌교육을 하고 계시다고 한다.

사실 우리나라 부모들의 자식사랑은 가히 세계 최고급이다. 이 교육열이 우리나라를 선진국 수준으로 끌어올렸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문제점도 있다. 자녀들이 끝없이 부모에게 의지하다보니 자립심이 부족한 나약한 성인이 되었다.

온실 속 식물처럼 비바람을 맞지 않고 커서 자생력이 부족하다. 조금만 어려움이 닥쳐도 부모에게 연락하여 도움을 청한다. 남의 일일 때는 나도 냉정하게 생각했었는데 내 자식 문제가 되니 도무지 상식이 통하질 않는다. 뻔히 잘못 된 줄 알면서도 끊지를 못한다. 내 동생들도 나만 만나면 딱 끊으라고, 아들 무능력자 만든다고 누누이 얘기하지만 직업도 없는데 끊으면 밥 굶을 것 같아서 도저히 끊을 수가 없다.

유산상속도 문제다. 유산을 미리 다 주면 굶어죽고, 반만 주면 쫄려 죽고, 안 주면 맞아 죽는다는 농담도 있다. 현 세태를 너무도 잘 반영한 말이다. 우리 친정아버지도 재산을 아들과 새어머니에게 다 주고 집도 절도 없는 빈털터리가 되었다. 나이 90이 넘어 구부정한 어깨와 엉성한 머리를 보면 내 가슴이 저리다. 저럴 때는 수중에 돈이라도 있어야 힘이 날 텐데…… 하는 생각 뿐 나도 별 도움이 안 된다.

엄마들 얘기는 한 술 더 뜬다. 딸 둔 엄마는 일 하느라 싱크대 앞에서 엎어져 죽고, 아들 둔 엄마는 문을 안 열어줘 대문 밖에서 얼어 죽는단다. 하지만 모든 부모들이 아무리 그래도 내 아이만은 절대 안 그럴 꺼라 생각하며 살아간다. 이 무조건적인 믿음을 어느 누가 깰 수 있을까?

나도 시어머니처럼 자식을 위해 모든 것 다 바치면 나중에 자녀에게 짐이 될 것이다. 그러면 내 아이들도 나를 싫어할 수밖에 없다. 지금부터라도 정신 바짝 차리고 노후대책을 세워야겠다. 이것이 나를 위하는 길이고 내 아이들을 위하는 길이다.

우리나라 부모들도 미국 사람들처럼 자녀가 성인이 되면 무조건 내 보내어 자수성가를 하게 할 날이 언제나 오려나?

 

입이 진범인가?

아 네모네 이현숙

4월이 잔인한 달이란 누명을 쓰게 된 것은 품속으로 파고드는 바람 때문이 아닐까? 지금도 봄바람이 칼날처럼 아린 날이면 30여 년 전 그 아이 얼굴이 떠오른다. 얼굴에 까만 사마귀가 있던 순둥이 같은 얼굴이다.

중화중학교에서 1학년 담임을 할 때다. 그 때는 커텐도 아이들이 빨아왔다. 새 학기가 되면 커텐을 빨았는데 나는 학급에 할 일이 있으면 키가 큰 아이 순서로 시켰다. 순서대로 돌아가다 보면 채변봉투 걷는 아이에게 제일 미안하다. 지금 같으면 학부형들이 자기 아이에게 그런 일 시킨다고 당장 전화할 것이다. 하지만 그 때는 학생이나 교사나 학부형이나 의례 그러려니 하고 생각했다.

한 교실에 커텐이 네 쪽이라 70번부터 네 명에게 한 짝씩 빨아오라고 시켰다. 다른 아이들은 다음 날 바로 빨아왔는데 그 아이는 2주일이 넘도록 가져오지 않았다. 나중에 할 수 없이 그냥 가져오라고 하여 다른 아이를 시켰다.

그 후 이 아이가 며칠씩 학교에 안 와서 그 집을 아는 아이들과 가정 방문을 하였다. 맙소사. 집이 아니고 고물상이었다. 고물이 산더미처럼 쌓인 옆에 한 사람 눕기도 힘든, 방도 아닌 방이 있고 마당에는 새카만 냄비 하나가 뒹굴고 있었다. 엄마는 가출하여 집에 없다고 했다. 그 아이도 신문 돌리러 가고 아무도 없었다.

이런 아이에게 커텐을 빨아오라고 했으니 그 아이는 얼마나 난감했을까? 더운 물도 안 나오는 맨땅에서 그 큰 커텐을 어찌 빨란 말인가? 아무 것도 몰랐던 나는 이 아이 가슴에 얼마나 큰 상처를 남겼을까? 30년이 지난 지금 생각해도 내가 너무 한심하고 가슴 저리다. 아무 말 없이 커텐을 가져가던 선량한 그 얼굴이 잊혀지지 않는다.

몇 년 전 네팔의 히말라야로 트래킹을 떠났다. 카트만두에서 짐을 풀고 잠시 쉬다가 힌두교 성지이며 화장터가 있는 파슈파티나트 사원을 보러 갔다. 사원 앞 개울가에는 많은 화장터가 있다. 화장터라고 해봐야 축대를 쌓고 위에 평평하게 시멘트로 발라놓았을 뿐이다. 담도 없고 지붕도 없다. 그래서 시신 타는 모양이 다 보인다.

이 사원은 시바 신에게 헌납된 것인데 파슈파티나트는 시바의 많은 이름 중 하나다. 파슈는 생명체를 뜻하고 파티는 존엄한 존재를 뜻한다.

네팔 사람들은 사람이 일몰 전에 죽으면 그날 바로 화장을 하고 일몰 후에 죽으면 다음 날 화장 한다. 날씨가 덥고 습한데다 냉동실도 별로 없어 시신이 썩기 때문인가 보다. 관을 쓰지 않고 대나무로 만든 들것에 시신을 싣고 와 갠지스 강의 지류인 이곳 바그마티강에서 발을 씻기고 화장한다.

살인자나 강도는 매장을 하는데 이것은 다시는 사람으로 태어나지 못하게 하려고 그렇게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는 저주받은 사람이나 매장한다. 티벳에서는 시신을 토막 내서 새에게 주는 조장(鳥葬)을 하는데 이것은 티벳이 고산지대라 나무도 없고, 건조해서 매장하면 썩지도 않기 때문이다. 지역의 특성에 맞게 장례문화도 발달한 것 같다.

2년 전에 왔을 때는 화장하는 시신이 하나도 없었는데 이날은 씻기려고 발을 내놓은 채 강가에 눕혀 놓은 사람, 화장을 기다리느라 장작 옆에 눕혀 놓은 사람, 지금 막 엠블런스에서 내리는 사람, 한창 타고 있는 사람 등으로 바글바글하고 연기가 자욱하다.

강물에 발을 씻기기 위해 물까지 내려가는 계단이 있다. 계단에 시신을 비스듬히 누이고 발만 내놓은 후 씻긴다. 발을 씻긴 후 입던 옷은 벗기고 노란색 천으로 덮은 다음 그 위에 붉은 가루를 뿌린다. 꽃으로 장식한 후 화장하기 위해 장작을 쌓아 놓은 화장터로 옮긴다. 장작 위에 올려놓고 얼굴을 내놓은 다음 입에 버터 같은 것을 넣는다.

벗긴 옷은 강에 버리는데 이걸 주으려고 새카맣게 그을린 아이들이 강물을 헤집고 다닌다. 이들이 버린 음식을 먹으려고 원숭이들도 강가에서 어슬렁거린다.

아들이 불을 들고 시신을 세 바퀴 돈 후 먼저 입에 불을 붙인다. 이것은 입이 가장 죄를 많이 짓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 후 장작 밑에 불을 붙여 깨끗이 태우는데 돈을 많이 낼수록 장작이 높다. 다 타면 재를 바그마티강에 버리고 아들은 3일 동안 경전을 읽으며 명복을 빈 후 집으로 돌아간다.

입에 붙은 불길을 바라보고 있자니 과연 입이 진범일까? 하는 생각이 든다. 입은 마음의 생각을 내보낼 뿐이다. 뇌가 입술을 움직이라고 명령하는 대로 움직였을 뿐이다. 하지만 입을 통해 모든 독설과 거짓이 배출되니 입이 죄를 뒤집어 쓸 수밖에 없다.

우리 속담에도 말이 씨가 된다는 말이 있다. 별 생각 없이 쏟아낸 말이 씨가 되어 그대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입방정 떨지 말라고도 한다. 입을 방정맞게 놀리면 일을 그르친다는 소리다. 밥 먹으면서 말을 많이 하면 가난해진다고 밥 먹으며 말하는 것도 금하였다. 침묵을 미덕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사람이 말 안하고 살 수는 없다.

우리 사회에도 입이 있다. 마음과 뇌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눈에 보이는 죄를 지은 사람만 죄인으로 인정하여 감옥에 보내고 사형을 시킨다. 사실은 우리 모두가 지은 죄를 단지 표현했을 뿐인데 말이다.

산에 다니다 보면 가끔 진범이란 야생화를 보게 된다. 진범은 옅은 미색으로 오리 같이 생긴 작은 꽃이 다닥다닥 붙어 한 송이를 이룬다. 너무도 앙증맞고 귀엽게 생겼다. 그런데 어쩌다 이렇게 흉측한 이름이 붙었나 모르겠다. 물론 진짜 범인이라는 뜻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발음상 진짜 범인을 떠올리게 된다. 사람들이 자기 이름을 부를 때마다 진범은 정말 억울할 것이다.

진범은 따로 있는데 항상 겉으로 드러난 죄인만 죄인 취급하는 것이 우리 들이다. 이 사회의 모든 죄악은 나의 내면에 있는 죄가 겉으로 나타난 것에 불과하다.

나도 중학교 교사를 하며 아이들에게 입으로 많은 죄를 지었다. 나도 죽어 화장을 할 때는 입에 버터를 잔뜩 넣고 입을 먼저 태워야 할 것이다. 다른 누가 아닌 내가 바로 진범이다.

 

톱니바퀴 인생

아 네모네 이현숙

수필교실이 있는 날이다. 부지런히 현관문을 나선다. 엘리베이터가 올라오고 있다. 중간에서 내려갈까봐 얼른 내려가는 단추부터 눌러놓고 다시 현관으로 와 문을 잠근다.

아파트를 나와 교차로를 보니 왼쪽에서 차들이 달려오는 중이다. 다음 순서는 내가 건널 횡단보도가 떨어질 차례다. 신호등에 맞추려고 달려간다. 깜빡깜빡하는 세모꼴 초록등이 다 없어지기 전 아슬아슬하게 횡단보도를 건넌다.

전철역에 와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가며 전광판을 본다. 다음 전철이 면목역에 도착해있고 2분 후 도착 예정이다. 에스컬레이터에서 또 겅중겅중 뛴다. 그 다음 계단을 걸어 내려가는데 전철이 들어오는 소리가 들린다. 또 뛴다. 마지막 계단을 내려서자마자 스크린 도어가 닫히기 전 용수철처럼 튀어 올라탄다.

건대입구역에 도착해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2호선 쪽으로 올라간다. 또 전광판을 보니 성수역 출발이다. 이번에는 계단을 장단지가 끊어져라 뛰어오른다. 사람이 너무 많아 승강장으로 올라서기도 힘들다. 사람들이 내리고 타면서 조금 공간이 생긴다. 여기 서 있다가는 문이 닫히게 생겼다. 줄이 짧은 쪽으로 잽싸게 이동하여 아슬아슬 문을 통과한다.

잠실역에 내려 핸드폰을 꺼내 시계를 본다. 계속 연결을 잘 한 관계로 일찍 도착했다. 지하 1층에서 문이 닫히려는 엘리베이터를 잡아타고 11층으로 올라간다. 이제 마음의 여유가 생긴다. 이제 탈 것은 다 탔다.

갑자기 내가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엘리베이터, 신호등, 에스컬레이터, 전철 등이 거대한 톱니바퀴인 것 같다. 톱니바퀴 사이에 끼어서 돌아가는 나도 하나의 톱니가 된다. 강의실 의자에 앉아 커피 한 잔을 손에 들면 나도 모르게 휴우~하고 한숨이 나온다.

눈에 보이는 톱니바퀴도 있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시간의 톱니바퀴도 있다. 나는 32년간 중학교 교사로 근무했다. 학생으로 16년간 학교생활 한 것까지 합치면 48년 동안 학교에서 살았다. 그야말로 땡~ 하면 들어가고 땡~ 하면 나오는 생활의 연속이었다. 시간의 톱니에 물려 빈틈없이 맞물려 돌아갔다. 어떤 때는 숨 막히는 이 생활이 나를 짓눌러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지금은 명퇴하여 명실 공히 백수가 되었다. 이제 그야말로 자유를 만끽해야 할 텐데 또 톱니를 만들어 그 속에서 허덕이고 있다. 월 수 금요일은 요가와 수영, 화요일은 등산, 목요일은 수필교실, 토요일은 여러 가지 모임, 일요일은 교회, 일주일 내내 빡빡한 스케줄을 짜 놓고 동분서주한다. 내 스스로가 만든 톱니이니 누굴 원망할 수도 없다. 평생 톱니바퀴 속에서 살다보니 바퀴 밖으로 나가는 자유가 두려웠는지도 모른다.

어떤 영화에선가 수십 년 감옥에서 살던 죄수가 형을 다 치르고 출옥할 때가 되자 자유로운 생활이 두려웠다. 결국 그는 출옥 날짜를 며칠 남기고 감옥에서 자살하고 만다. 아마 나도 이미 톱니바퀴 생활에 익숙해져 여기서 나가면 블랙홀로 빨려 들어가는 별처럼 중심을 잃고 끝없는 무저갱으로 추락할지 모른다.

그래도 어떤 때는 이 톱니 사이에서 빠져 나가고 싶다. 하지만 물질문명이 발달할 대로 발달하여 한번 바퀴사이에서 빠져 나가면 영원히 다시 들어오지 못할 것 같다. 서울이라는 도시, 한국이라는 나라, 온 세계가 거대한 톱니바퀴다. 지름은 서로 다르지만 전체가 맞물려 있어 안 돌아갈래야 안 돌아갈 수가 없다. 아마도 내가 이 육체를 떠나는 날 이 톱니바퀴에서 영원히 빠져나갈 수 있겠지? 그러면 참 자유가 있을까?

 

눈으로 말하다

아 네모네 이현숙

우리 아들은 유난히 식탐이 많다. 어렸을 때 야쿠르트 두 개를 내놓으면 손으로 저울질하여 무거운 듯 느껴지는 건 제가 먹고 다른 건 누나에게 준다. 과일도 무조건 큰 것은 제가 먹어야한다.

우리 집에서 일하는 할머니는 자신의 아들이 없어 첩에게 남편을 빼앗겼다. 결혼한 지 3년 만에 남편이 새 여자를 데리고 집으로 들어왔다. 이 할머니는 마음이 너무도 착해 안방에 이부자리를 깔아주고 자기는 부엌에서 잤다. 내가 그 말을 듣고 그년 머리끄댕이라도 잡아 땅에다 패대기치지 그랬냐고 하면 그럴 수 있느냐며 피식 웃는다.

그렇게 몇 년을 살다가 그 집에서 나와 몇 십 년 동안 남의 집 식모살이를 하며 지냈다. 그래서 그런지 아들을 선호한다. 무엇이든지 좋은 것은 아들에게 주고 누나에게 양보하라고 한다. 딸은 천성이 착해 아무 소리도 하지 않는다.

사실 딸은 아들보다 15개월 빨리 났을 뿐인데 누나라는 한 가지 이유로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것 같다. 할머니는 아들만 업고 다니며 딸에게는 누나니까 걸어 다니라고 한다. 이렇게 키우다 보니 아들은 뭐든지 좋고 큰 것은 자기가 먹으려고 한다.

내가 학교에서 근무하고 돌아오면 아들은 빵 먹고, 계란 프라이 해먹고 소파에 누워 씨익 씨익 코를 골며 자고 있다. 나는 처먹지를 말 던지 자지를 말던 지 그렇게 잔뜩 먹고 자니 살이 안 찌느냐고 소리를 지른다.

이렇게 먹어대니 초등학교 5학년 때 벌써 허리가 34인치나 되는 바지를 입게 되었다. 학교에 가니 담임선생님이 바지 사이즈를 보고는 운동좀 시키라고 한다. 아들에게 운동좀 하라고 하면 학교에서 체육시간에 운동하면 되지 무얼 더 하느냐고 한다. 아들 앨범을 보면 한 장 넘길 때마다 찐빵처럼 부풀어 오른다.

초등학교 때 모처럼 학교에서 수영장에 간다고 했다. 저녁에 수영 잘 했느냐고 물으니 아이들 짐 지키고 수영은 안 했다고 한다. 아이고 두야~ 무슨 구실이라도 대어 안 움직이려고 하니 내 속이 탄다.

먹을 때는 너무 즐거워서 콧소리 흥 흥 내며 신나게 먹는다. 보다 못해 내가 몸 생각해서 그만 먹으라고 하면 딱 멈추고 나를 쳐다본다. 순간적으로 그 눈에 물이 고인다.

안타깝고 당혹스럽고 어찌할 줄 모르는 그 눈이 내 가슴을 찌른다. 벌써 30년이 넘었지만 그 눈이 잊혀지지 않는다. 눈은 입보다 더 많은 말을 한 순간에 뱉어낸다. 입으로 말하는 것보다 더 진실하고 솔직하고 다양하다. 입은 거짓말을 할 수 있어도 눈은 거짓을 말하지 못한다. 그래서 거짓말을 할 때는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외면을 하게 되나보다.

 

사랑인가 폭행인가

아 네모네 이현숙

구구단에 이런 것이 있다.

2×9=18 (이십대에는 1주일에 8)

3×9=27 (삽십대에는 2주일에 7)

4×9=36 (사십대에는 3주일에 6)

5×9=45 (오십대에는 4주일에 5)

6×9=54 (육십대에는 5주일에 4)

7×9=63 (칠십대에는 6주일에 3)

8×9=72 (팔십대에는 7주일에 2)

9×9=81 (구십대에는 8주일에 1)

이렇게 부부간에 잠자리를 같이 하라는 말이다.

우리 부부는 몸은 육십 대인데 부부관계는 이미 팔십 대가 되었다. 몇 주일씩 무사통과다. 그런데 모처럼 새벽에 남편이 내 몸을 더듬는다. 갑자기 몸에서 신호가 왔나보다. 날이면 날마다 하는 것도 아니고 가물에 콩 나듯 하는 일이라 앞으로 몇 번이나 더 할 수 있으랴 싶어 그냥 순순히 따른다.

사실 갱년기가 지나니 마른 장작개비 같이 몸에 물기가 바짝 말라 좀 고통스럽기는 하다. 하지만 요리를 잘 하나, 빨래를 잘 해주나, 그렇다고 얼굴이 예쁘기를 하나 아무것도 내세울 것이 없으니 이거라도 잘 해야겠다고 생각한다. 일을 마치고 물로 닦으려면 밑이 따끔거리고 아프다. 그런데 일을 치르자니 문득 이게 사랑인가? 폭행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며칠 전 돈 크라이 마미 (Don’t cry mammy)라는 영화를 보았다. 고등학교 1학년 여학생이 남학생들에게 성폭행을 당한 후 정신적 충격으로 우울증에 걸려 괴로워한다. 결국 딸은 엄마의 생일 케잌에 Don’t cry mammy라고 써서 냉장고에 넣어 놓고 자살한다.

딸의 장례를 치른 후 엄마는 케잌을 발견하고 통곡한다. 그 후 엄마는 딸의 스마트폰에 들어온 폭행 장면 동영상과 또 오지 않으면 이 동영상을 인터넷에 올리겠다는 협박의 글을 본다. 미친 듯 울부짖던 엄마는 이 남학생들을 찾아 하나하나 살해한 후 자신도 자살한다.

성폭행은 우리 사회의 암과 같은 존재다. 시간 불문, 장소 불문으로 이런 일이 도처에서 일어난다. 이 여학생이 내 딸이라면 나도 이렇게 했을 것 같다. 그런데 이 남학생들이 내 아들이었다면 나는 어떻게 했을까? 철없는 아이들이 아무 것도 모르고 한 행동이니 용서해달라고 사정했을 것 같다. 죽이는 것까지는 너무 심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성행위는 참으로 이상한 행동이다. 똑같은 행위인데 어떤 사람과 하면 사랑이고 어떤 사람과 하면 폭행이다. 본인이 원해서 하면 사랑인데 원하지 않으면 폭행이 되니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춘향이가 이도령과 하면 사랑이고 변사또와 하면 폭행이다. 결혼 한 부부가 하면 사랑이고 다른 사람과 하면 간음이요 간통이다. 하지만 이건 사람이 인위적으로 만든 굴레인지도 모른다.

다른 동물들은 어떨까? 동물의 왕국 같은 걸 보면 힘센 수놈이 무조건 여러 암컷을 독차지한다. 암컷의 의사는 별로 반영되지 않는 것 같다. 성폭행이라고 무리가 지탄하지도 않는다. 힘없는 수컷은 무리에서 쫓겨나 쓸쓸히 방황하다가 홀로 죽어간다.

법적인 부부도 없으니 간통죄도 없다. 유독 인간만이 해골 복잡하게 여러 가지 법과 제도를 만들어 스스로 굴레를 씌운다. 인간은 유난히 복잡하고 미묘한 감정과 지성을 가졌기 때문일까?

성행위는 필요불가결한 모든 동식물의 과제다. 자신의 유전자를 남기기 위한 유일한 수단이다. 그러니 목숨 걸고 쟁취하려고 애를 쓴다. 움직일 수 없는 식물들은 온갖 교태를 부리며 벌 나비를 유혹하여 자신의 목적을 달성한다. 미모가 안 받쳐주는 은행나무나 소나무 같은 것들은 바람을 이용해서 자신의 꽃가루를 멀리 멀리 암나무의 암술까지 날려 보낸다.

자신이 원하는 상대에게만 날리는 것은 아니다. 상대를 가리지 않고 무조건 많이 멀리 멀리 보낸다. 자연히 사랑싸움도 없을 것이다. 그러니 사랑인지 폭행인지 아무 구별이 없다. 암꽃도 자신이 원하는 대상을 고를 수가 없다. 어디서 온 꽃가루인지도 모르고 그냥 받아들인다.

암수가 한 송이로 된 꽃도 있고 짝짓기 없이 무성생식으로 그냥 분열하여 새 개체를 이루는 생물도 있다. 어떤 때는 암수 한 몸인 꽃처럼 그냥 남녀가 한 몸이었으면 얼마나 편하고 좋을까 하고 생각한다. 그러면 서로 싸울 일도 죽일 일도 없이 평화롭게 살 수 있을 텐데 말이다. 하나님은 아담을 만든 후 왜 갈비뼈를 꺼내 여자를 만들어 암 수 딴 몸을 만들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냥 처음 상태로 두었으면 훨씬 안정적인 작품이 되었을 텐데. 또 짝을 찾아 헤맬 일도 없을 텐데…….

 

이형준의 세계시골마을을 읽고

 

아 네모네 이현숙

이 책을 받아 든 순간 손에 쏙 들어오는 크기가 맘에 들었다. 그런데 크기가 작다보니 글씨까지 작은 게 문제다. 작은 글씨를 읽으려니 이마에 주름이 잡히고 눈이 시큰거려 눈물이 나온다. 그래도 간간이 들어있는 멋진 사진이 눈의 피로를 덜어준다.

작가 이형준은 중앙대학교 사진학과를 졸업한 후 현재 프리랜서 여행 작가활동 중이. 작가의 얼굴 사진이 없어 어떤 인간인지 좀 궁금하기도 하다. 사람의 얼굴은 말 한마디 없이 그 사람에 대해 90%는 말해 주는 것 같다.

그는 1988년부터 지금까지 전 세계를 여행하며 사진을 찍고 글을 써서 신문 잡지 등에 기고해왔다. 일 년 중 절반을 외국에서 보내는 그는 지난 24년 동안 130여 개국 2500 곳에 자신의 발자취를 남겼다.

연수를 대충 계산해 보건대 나보다 10년은 어릴 것 같은데 이렇게 많은 곳을 섭렵했다니 절로 탄성이 나온다. 여행한 곳의 내용을 쓴 책도 여섯 편에 이른다.

전공이 전공인 만큼 사진도 기막히다. 보면 볼수록 부러운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그의 여행목적도 재미있다. 자신이 태어난 지구라는 별을 한 바퀴 둘러보기 위해서란다. 그의 지구별 여행은 그의 생명이 다하는 날까지 계속되리라.

책 맨 앞의 여는 글에서 마지막에 발행 연도나 몇 월 며칠을 쓰는 대신 한여름을 앞 둔 어느 날이라고 쓴 것도 뭔지 모르게 멋져 보인다. 나도 나중에 또 책을 낸다면 새 봄을 앞 둔 어느 날이라고 써야겠다.

전체를 세 단원으로 나누었는데

첫째 창조적인 사람들의 숨결이 가득한 예술마을

둘째 치열한 삶의 흔적과 역사의 숨결이 배어 있는 문화마을

셋째 옛것을 지키는 찬란한 아름다움 전통마을

이란 제목으로 총 38곳의 마을을 소개했다. 이 중에 내가 가 본 곳은 7곳 밖에 되지 않는다. 평생을 다녀도 다 못 다니게 생겼다.

겉표지 안쪽의 속지에 작은 비행기와 비행기 꼬리의 흔적을 점선으로 표시한 것도 참신하고 작은 즐거움을 준다. (그림 1)

내가 가본 곳 중의 하나인 루마니아의 브란 성도 소개했는데 일명 드라큘라성이라고도 한다. 흡혈귀백작 드라큘라는 실존인물이 아니고 그 지역의 왕 블라드 체페슈를 모델로 했다. 그는 주민을 위해 헌신한 왕이었는데 그 지역의 상권을 움켜쥐고 폭리를 취하는 앵글로색슨 계 상인들에게 많은 세금을 부과하자 상인들이 반발했다. 분노한 왕은 이들을 나무 꼬챙이로 찔러 학살했는데 그의 이름 체페슈는 루마니아어로 꼬챙이란 뜻이다.

소설의 분위기와 비슷하게 음침하고 으스스한 분위기가 건물 전체에 흐른다. 어두컴컴한 건물 안에 있으면 어디선가 드라큘라가 나타나 내 목을 물고 피를 빨 것 같은 분위기였다. 작가 이형준도 나와 똑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적었다. 누구나 느낌은 비슷한가보다.

솔베지송의 작가 그리그의 체취가 남아있는 노르웨이의 홉에 갔을 때도 그의 작은 오두막과 무덤, 동상을 보며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리그의 동상은 실제 그리그의 몸과 같은 크기로 만들었는데 내 키만 했. 그래서 어깨동무하고 사진을 찍었던 기억이 난다.

사운드 오브 뮤직의 배경이 되었던 잘츠카머구트에도 갔는데 이곳은 소금광산으로 부를 축적한 곳이다. 잘츠부르그와 이곳 모두 잘츠라는 말이 들어있는데 잘츠는 솔트 즉 소금을 말한다.

요르단 페트라에 있는 카즈네피라움은 바위산을 깎아 만든 건물이다. 파라오의 보물창고라는 별명이 붙은 이 건물은 궁전처럼 아름답다. 더 안쪽으로 들어가면 원형극장이 있는데 8000명 정도 들어갈 수 있는 이곳도 바위산을 깎아 스탠드를 만든 것이다. 이토록 어마어마한 건축물을 일일이 바위를 파내어 만들었다는 것에 감탄을 금치 못한다.

작가가 소개한 곳 중 가장 가보고 싶은 곳은 캐나다 옐로나이프에 있는 오로라빌리지다. 여기서는 일 년 내내 오로라를 볼 수 있다고 한다. 시시각각 변하며 순간적으로 나타나는 오로라를 어떻게 찍었나 모르겠다. (사진2)

오로라는 새벽이란 뜻의 라틴어 아우로라에서 유래했는데 태양에서 발생하는 대전입자가 지구의 자기장과 만나 생기는 일종의 방전현상이다. 또한 이동속도가 어찌나 빠른지 초속 2km, 즉 시속 7200km 라고 한다.

그뿐 아니다. 여기서는 개썰매 타기, 설원 트래킹, 스노슈잉 등 다양한 놀이도 즐길 수 있다고 하니 그야말로 금상첨화다.

그밖에도 영국 웨일즈 지방의 헤이온와이에도 한 번 가보고 싶다. 온 마을이 온통 헌책방으로 도배를 했다는데 30여개의 책방에서 1년에 1000만권이상의 책이 팔려나간다고 한다.

갈수록 재력과 체력은 딸리는데 가고 싶은 곳은 점점 늘어나니 앞으로 한 200년은 더 살아야 다 볼 수 있으려나?

 

죽어서도 한 집에

아 네모네 이현숙

지난주에 친정 큰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올해 99세다. 큰아버지는 부인이 셋이다. 첫째 부인은 딸 하나에 아들 하나를 두었다. 아들은 군대 가서 사고로 죽었다. 친척들은 둘째 큰 집에 아들이 다섯이니 양자를 들이라고 하였다. 하지만 큰아버지는 재혼을 하여 한 집에서 두 부인을 다 데리고 살았다. 첫째 큰어머니는 졸지에 아들과 남편을 모두 잃은 꼴이 되었다. 지금의 성남시에 살았던 큰어머니는 툭하면 서울로 올라와 우리 엄마에게 신세한탄을 하며 울었다. 건넌방에서 남편이 밤에 자고 나오는 걸 보면 오장육부가 뒤집어 진다는 것이다.

이렇게 속을 끓이다가 첫째 큰어머니는 환갑에 갑자기 쓰러져 돌아가셨다. 둘째 부인도 오래 못 살고 아들이 초등학교 다닐 때 위암으로 돌아가셨다. 아들을 혼자 키우기 힘든 큰아버지는 다시 재혼을 하였다. 셋째 큰어머니는 그 아들이 청년이 되도록 살았지만 결혼까지는 못 시키고 돌아가셨다.

셋째 큰어머니는 자식도 없는 자신의 신세를 생각해서 화장을 해 산의 새들에게 먹이로 주라고 유언을 했다. 화장을 마친 유골을 분쇄한 후 밥에 넣어 잘 섞은 다음 산에다 놓아두었다. 며칠 후에 가보니 다 없어졌다고 했다.

큰아버지는 아들을 결혼시켜 손자 둘을 얻었다. 돌아가실 때까지 아들 며느리와 잘 살았다. 몸이 점점 쇄약해지고 정신이 혼미해지자 아들에게 유언을 하였다. 큰아버지와 첫째 큰어머니, 아들의 생모인 둘째 부인을 합장하라고 하였다.

우리 친정의 종중산은 분당에 있었다.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16대조 할아버지부터 170여기가 모두 생극 부근의 산을 사서 이장하였다. 우리 친정 엄마도 분당의 산소에 있다가 이장하게 되었다. 친정 엄마 산소에 가면 그 위쪽에 둘째 큰어머니 산소가 있고 아래쪽에는 첫째 큰어머니의 산소가 있다. 그걸 볼 때마다 큰아버지는 돌아가시면 어디로 가려나 궁금했다.

그런데 큰아버지는 아주 절묘한 방법을 찾으신 거다. 아들도 없고 딸도 큰아버지 보다 먼저 죽어 아무 자손이 없는 첫째 부인을 위해 셋이서 합장을 해달라고 한 것이다.

장지에 가서 묘를 만드는 것을 보았다. 첫째 부인은 그대로 두고 둘째 부인을 파내어 첫째 부인의 오른쪽으로 옮긴 다음 왼쪽에는 큰아버지 관을 눕혔다. 나란히 누워있는 관 셋을 보려니 만감이 교차한다.

그래도 큰아버지 옆에 첫째 큰 어머니를 모시고 그 다음에 둘째 부인을 눕힌 것이 내 맘에 들었다. 셋이 나란히 누워있는 관 위로 아들과 손자들이 흙을 퍼 넣고 한 개의 봉분으로 만들었다. 아들이 자신의 어머니 산소 벌초를 하다 보면 자연히 첫째 큰어머니의 산소도 함께 돌보게 되니 참 잘 됐다. 봉분이 세 개면 아들도 힘들 텐데 한 개로 만들었으니 훨씬 간편하고 수월할 것이다.

그런데 첫째 큰어머니의 심정은 어떨까? 살아서 한 지붕 밑에 있는 것도 괴로웠는데 죽어서까지 한 집에 사는 기분이 어떨까? 그래도 남편이 자기 옆에 있으니 좋으려나?

우리가 살아서 사는 집도 중요하지만 죽어서 깃들일 곳도 무시할 수 없다. 그래서 옛날부터 명당을 찾느라고 온 땅을 헤매고 다녔다. 예산에 가면 대원군의 아버지 남연군묘가 있다. 대원군은 자신의 아버지를 명당자리에 모시려고 절을 불태우고 절터를 뺏었다.

그는 풍수지리설에 따라 2대에 걸쳐 천자가 나올 자리라는 말을 듣고 원래 경기도 연천에 있던 아버지의 묘를 이곳으로 옮긴 것이다. 이곳에는 원래 가야사라는 절이 있었는데 절을 불태우고 탑을 부순 후 이장했다. 이장한지 7년 후에 차남 명복이 태어났는데 그가 곧 철종의 뒤를 이어 12세에 왕위에 오른 고종이다.

하지만 산 사람이 살 땅도 없어 고층아파트를 짓고 하늘 꼭대기까지 올라가는데 죽은 사람이 어찌 땅을 차지하고 누울 수 있겠는가? 더욱이 산소를 돌볼 사람도 없어 그냥 방치되는 산소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이제 화장이 대세다. 화장하여 납골당에 모시는 것도 자리를 차지하니 그냥 수목장을 하는 사람이 많다. 나도 나중에 화장하여 그냥 산에 뿌렸으면 좋겠다. 살아생전 산에 다니면서 많은 즐거움을 얻었으니 죽어서라도 산에 뿌려져 뭇 나무들의 밥이 되었으면 좋겠다.

 

나에게도 날개가 있다면

아 네모네 이현숙

집 앞의 문화체육관에 일주일에 세 번씩 간다. 사가정 공원을 통과해 가려면 비둘기들이 많다. 전깃줄에 잔뜩 올라앉아 있다. 그 밑에는 비둘기 똥이 항상 즐비하다. 여기를 지날 때마다 조마조마하다. 내 머리에 떨어질까 봐 걱정하며 걸음을 빨리한다. 저놈들이 볼 때 나는 화장실에 사는 동물이다. 생각할수록 기분이 나쁘다.

대학교 1학년 때 한라산에 갔다. 벌써 40년도 더 되었으니 까마득한 일이다. 그 때는 제주도를 관통하는 도로도 없었고 해안도로도 비포장의 먼지 풀 풀 날리는 좁은 길이었다.

해안가부터 걸어 올라가야하니 백록담까지 갔다가 넘어 오는데 23일이 걸렸다. 영실 쪽으로 내려와 수로를 따라 마냥 걸어 해안가까지 내려왔다. 여기서도 버스가 없어 모슬포까지 또 걸었다. 걷다가 볼일이 보고 싶어 한 농가의 화장실에 들렀다. 갑자기 꿀 꿀 소리가 들린다. 아래를 보니 꺼먹 돼지가 내 배설물을 먹으려고 달려온다. 순간 깜짝 놀라 나오던 것이 도로 들어간다.

순간 화장실에 사는 돼지는 정말 더럽고 추한 동물이라고 생각했다. 불쌍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요새는 똥개나 똥돼지를 더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으니 참 희한하다. 그게 정말 더 맛있나?

비둘기 똥을 밟으며 사는 내가 똥돼지가 된 기분이다. 저놈들이 볼 때 얼마나 기분 좋고 으쓱할까? 내가 돼지우리에 똥을 누어 벌 받는 것인가? 나도 새처럼 날개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새는 뼛속이 비어서 몸이 가벼워 날 수가 있다는데 골다공증이 걸려 골빈당이 된 나도 언젠가는 새처럼 날 수 있지 않을까?

날 수만 있다면 비둘기 위로 올라가 저놈들에게 똥 한 번 신나게 갈겨 줄 텐데. 갈겨주면 뭐하나 그 똥을 내가 도로 먹을 텐데. 사실 모든 동물과 식물은 서로 순환하며 살아간다. 내가 싼 것을 동물들이 먹고 동물이 싼 것을 식물이 먹고 식물을 또 인간이 먹으니 모든 물질이 서로 섞여 한 몸이 된다. 내가 뱉은 이산화탄소를 식물이 먹고 식물이 뱉어낸 산소를 내가 먹으니 우리는 한 몸이다. 모든 생물과 무생물이 유기적으로 연결된 하나의 생명체다.

 

나는 무단침입자

아 네모네 이현숙

숲속으로 들어갈 때마다 미안함을 느낀다. 남의 집에 무단 침입한 강도가 된 기분이다. 남의 집에 인사도 없이 맘대로 들어가서 웃고 떠들고 땅을 스틱으로 팍 팍 찍으며 맘 판 돌아다닌다.

지난 주 설악산에서 우리 회원들은 멧돼지를 만났다. 멧돼지가 다가오자 한 사람이 돌을 던졌다. 멧돼지는 사람 수가 많아서 겁이 났는지 슬슬 도망갔다. 적반하장도 유분수다. 멧돼지가 말을 못해서 그렇지 무단 침입한 도둑이 오히려 주인에게 돌을 던졌으니 얼마나 억울했을까? 그곳은 자기 집인데 말이다.

이뿐이 아니다. 사람들은 봄이 되면 산 속을 헤집고 다니며 온갖 나물을 뜯고 더덕도 캐고 달래도 뽑는다. 어쩌다 두릅이라도 눈에 띄면 가시에 찔려가면서도 순을 따 배낭에 챙긴다. 이것도 모자라 나무에 구멍을 뚫고 나무의 혈액을 뽑아내어 먹기도 하고 팔기도 한다. 우리는 숲에게 무자비한 수탈자다. 해주는 건 하나도 없으면서 말이다.

가을이 되면 또 다른 수탈이 시작된다. 숲을 쑤시고 다니며 달래도 따먹고 뽕나무 가지를 잡아당기며 오디도 따먹는다. 산초열매는 몸에 좋다고 따고 개복숭아는 술 담그면 좋다고 또 딴다. 도토리는 중금속 해소에 좋다고 눈에 띄는 대로 주워온다.

이렇게 난도질을 당하면서도 숲은 말이 없다. 오히려 숱한 수난과 수탈을 당하면서도 매년 변함없이 풍성한 잎과 열매를 맺는다. 아니 수탈을 당하면 당할수록 더 많은 열매를 맺어 숱한 동물들을 먹여 살린다. 숲은 그 넉넉한 품으로 뭇 생물을 품어준다.

숲은 주는 걸 좋아하나보다. 받는 것보다 주는 기쁨이 더 크다는 걸 일찌감치 깨달았나보다. 숲은 현자요, 성자다. 숲의 이 넉넉함을 배우고 싶다.

마음이 울적할 때나 온갖 잡념으로 머릿속이 복잡할 때 혼자 산에 들면 산이 말을 걸어온다. 세상만사 다 그런 거라고. 조금만 참으면 다 지나간다고. 한 없는 위로의 말을 들려준다. 저 아래서 지지고 볶는 모든 일이 다 한 순간이요 부질없는 일이라고. 조근 조근 속삭여주는 숲의 말을 듣다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 모든 근심 걱정과 울분이 눈 녹듯 사라진다.

숲은 나에게 만병통치 치료사이다. 그것도 공짜로 말이다. 나 같은 무단침입자도 말없이 댓가 없이 치료의 손길을 베풀어준다. 언제나 이 빚을 다 갚을 수 있으려나?

 

어머니의 꿈

아 네모네 이현숙

친정 엄마는 학교 가는 게 꿈이었다. 초등학교 다닐 때 외할아버지가 갑자기 학교에 못 가게 했다. 다 큰 계집애가 학교 운동장에서 남자 아이들과 뛰어 논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 후 엄마는 책 보따리 들고 학교 가는 아이들을 볼 때마다 부러움에 가슴이 아팠다.

그 아픔은 결혼을 해서도 이어졌다. 하얀 교복을 입고 학교 가는 여학생들을 바라볼 때마다 선망의 눈초리로 바라보았다. 본인의 꿈을 이루지 못한 엄마는 딸들이라도 학교에 보내려고 노력했다. 하얀 교복을 입혀 보란 듯이 내보내고 싶었다. 그래서 딸이 여섯이라도 어려운 살림에 다 교육을 시켰다.

하지만 가정형편이 어려워 딸들은 고등학교까지만 보내겠다고 누누이 강조했다. 그래서 언니는 고등학교 졸업하고 취직을 했다. 나는 의대에 가고 싶었지만 엄마 눈치와 언니를 보며 등록금이 가장 싼 국립사대에 가겠다고 했다.

그 시절 국립사대는 수업료가 없고 실험실습비 등만 냈다. 입학금까지 다 합쳐도 만원 정도였다. 그것이 시발점이 되어 내 동생들도 줄줄이 대학교에 갔다. 그것도 사립대에 갔으니 엄마 아버지의 허리가 휘어 등가죽에 붙을 지경이 되었다.

그렇게 되자 엄마는 언니가 맘에 걸렸다. 언니가 결혼하여 애를 낳고 살아도 언니에게 미안해했다.

그 때 어려웠어도 대학교에 보냈어야 했는데…….” 하며 누누이 혼잣말을 하였다. 언니도 50살이 넘도록 대학교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그런 언니를 보며 나도 미안함을 떨칠 수 없었다. 단지 언니라는 이유만으로 동생들 때문에 희생양이 된 것이 못내 마음에 걸렸다.

이제 엄마도 저 세상으로 갔고 언니도 저 세상에 갔으니 둘이서 만나 거기서 신세한탄을 하고 있으려나? 아니면 거기서라도 천국대학에 들어가 끝없이 공부하며 행복한 나날을 보낼 지도 모른다.

어떤 사람은 부모가 공부해라 공부해라 해도 지겨워서 옆길로 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공부가 하고 싶어 평생 가슴앓이를 하며 산다. 사람은 누구나 꿈을 가지고 산다. 우리에게 꿈이 없다면 이미 죽은 목숨인지도 모른다. 사람은 어쩌면 꿈을 먹고 사는 동물이 아닐까?

 

아기다리 고기다리

아 네모네 이현숙

우체부 올 시간이 되어간다. 자꾸 문 쪽으로 눈이 간다. 아무리 기다려도 편지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오늘은 우체부가 늦나? 아니 깜빡하고 우리 집을 그냥 지나갔나? 별별 생각이 다 든다.

대학교 1학년 때다. 남편은 집이 대전이었다. 방학을 하면 남편은 집으로 간다. 하루가 멀다 하고 편지를 주고받았다. 매일 편지를 기다리는 버릇이 생겼다. 지금은 우편함이 있어 우체부들이 함에 넣고 가는데 그 때만해도 우편함 같은 것이 없었다. 그저 문 안에 툭 던지고 갔다.

남편은 형편이 좋지 않아 완행열차를 타고 다녔다. 몇 시간씩 기차를 타고 가며 편지를 썼다. 편지 내용에 이런 것이 있었다.

아기다리 고기다리던 기차가 드디어 출발합니다.”

처음에는 이게 무슨 말인가 의아했다. 아기다리는 짧고 고기다리는 없으니까 잘 못 걷는 것처럼 기차가 느리게 간다는 뜻인가 보다. 그런데 아무래도 이상해서 다시 생각해보니 아 기다리고 기다리던 기차가 드디어 출발합니다.”였다. 일부러 띄어쓰기를 엉터리로 해서 나를 웃기려는 남편의 기지였다. 완행열차는 역에 서서 급행열차가 지나갈 때까지 기다렸다가 다시 출발하곤 했었다.

이렇게 방학 때마다 편지를 주고 받다보니 졸업할 때쯤에는 가방으로 한 가득 찼다. 나는 소중한 추억이라 안방 다락에 잘 넣어두었다.

어느 날인가 다락을 열어보니 가방이 없다. 엄마에게 물어보니 다 버렸다는 것이다. 황당했다. 부끄러워 뭐라고 항변도 못했다. 엄마는 내가 혹시라도 다른 사람과 결혼하게 되면 이 편지가 좋지 않은 영향을 줄 거라고 생각했나 보다. 내가 어디라도 놀러가려하면 남학생들과 사진도 찍지 말라고 했다. 내가 딸을 키워보니 엄마의 이런 심정이 이해된다. 혹시라도 이런 것이 딸에게 흠이 되지 않을까 걱정하는 거다.

우리 딸이 대학교 다닐 때 딸을 따라다니는 아이가 있었다. 우리 딸은 이 아이가 싫다고 하였다. 그런데 어느 날 이 남자 아이가 학교 강의실에서 자살하겠다고 약을 먹었다. 급히 병원으로 옮겨 별 탈은 없었지만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다. 사위가 이런 사실을 알게 될까봐 은근히 걱정 될 때도 있다. 모든 엄마는 자기 딸의 사소한 흠도 발견되는 게 두렵다. 그래서 무엇이든 감추려 하나보다.

우리는 평생 무엇인가를 기다리며 산다. 기다림이 삶의 활력소가 되기도 한다. 오늘 난 무엇을 기다리며 살아가고 있는가?

20121223 어머니의 꿈.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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