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은 누가 만드는가?
아 네모네 이현숙
날렵하고 왜소한 몸매의 여인이 무대 위를 강타하며 온 관객을 사로잡는다. 수 십 명의 단원은 그녀의 몸짓에 홀린 듯 악기가 부서지도록 때리고 비비고 불어댄다. 다들 제정신이 아닌 듯하다. 관객도 거기에 빠져 숨 쉬는 것을 잊었다. 침 삼키는 것도 잊은 채 눈도 깜빡이지 않는다. 모든 것이 정지된 듯하다.
정적을 깨고 화산이 폭발한다. 마치 용암이 땅 속에서 끓다가 지각을 깨고 터져 나오는 것 같다. 몸부림치는 한나는 이승 사람이 아닌 듯하다. 이승과 저승을 넘나들며 춤을 춘다. 무아지경에 빠져 칼날 위에서 춤추는 신들린 무당의 표정이라고나 할까?
한나의 이끌림에 넋을 빼앗긴 단원들도 모두 저세상 사람들처럼 무아의 경지에 빠졌다. 자신을 잊었다. 지휘자와 단원 모두가 하나의 생물이 되었다. 함께 숨 쉬며 함께 소리 지른다. 한 생명체처럼 전체가 하나의 움직임을 만들어낸다.
바이올린은 앵앵 거리며 가슴 속 모세혈관을 잡아 끌어낸다. 첼로는 웅웅거리며 애간장을 녹이고 우리를 슬픔의 나라로 인도한다. 더블베이스는 우르릉 우르릉 천둥 같은 대지의 울음소리를 낸다. 플룻은 천상의 화원에서 춤추는 나비가 되고, 호른과 트럼펫은 천하를 호령하는 장군이 되어 우렁찬 함성을 질러댄다.
넋을 잃고 바라보다가 문득 음악은 누가 만드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작곡가가 만든다고 하겠지만 같은 음악도 지휘자에 따라 전혀 다른 음악으로 변신한다. 어떤 지휘자가 지휘하면 김 빠진 맥주 모양으로 전혀 맥아리가 없는 음악이 되고 어떤 지휘자가 하면 천지를 진동하며 터져 나오는 활화산이 된다. 지휘자는 음악에 생명을 불어넣는다. 오선지에 늘어선 콩나물 대가리가 살아서 튀어나온다.
장한나의 지휘는 말 그대로 활화산이다. 연주자나 관객이나 숨을 멈추고 손에 땀을 쥔다. 자신의 존재를 잊는다. 두 시간이 어떻게 지났는지 감각이 없다. 마치 죽어서 저 세상에 다녀온 듯하다. 어떤 음악이든 한나의 손에 들어가면 새로운 음악으로 거듭난다. 새 생명을 얻는다.
음악회를 마치고 나오는 내 발걸음이 휘청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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