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2011년에 쓴 글

아~ 네모네! 2012. 1. 2. 14:06

2011년에 쓴 글입니다.

 

역경이 만드는 습관

이현숙

 

우리 아들이 초등학교 2학년 때 집안일을 도와주던 할머니가 딸네 집으로 갔다. 우리 딸이 낳기 한 달 전에 와서 11년간 우리 집에서 먹고 자며 아이들을 키워줬다. 우리 아이들은 친할머니나 외할머니보다 이 할머니를 더 좋아하며 따랐다. 할머니가 간 후 파출부를 둘까 했지만 아이들이 싫다고 하여 그냥 살았다.

  직장 생활하랴 살림하랴 갑자기 바빠졌다. 자연히 아이들 돌보기가 힘들어졌다. 저녁 먹고 설거지 하려면 아들은 교과서를 들고 와 받아쓰기 숙제가 있다고 불러달란다. 나는 귀찮아서

그냥 책보고 아무거나 써.” 하며 설거지를 계속했다.

과학 독후감 써야 한다고 어떻게 쓰냐고 하면

그냥 앞에서 조금 베끼고 뒤에서 적당히 골라 써.” 했다.

남의 아이들 가르치느라 지쳐서 내 새끼는 다 망치는구나. 이게 무슨 짓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런 환경이 오히려 아들에게 도움이 된 것 같다. 부모에게 해달라고 해봐야 아무 소용이 없으니까 웬만한 건 혼자서 다 해결한다. 남편, , 딸이 모두 일찍 나가버리면 혼자 일어나서 과일 먹고 등교한다. 점심 때 하교하면 누나는 도시락 싸가니까 빈 집에 혼자 와서 라면도 끓여먹고 계란 프라이도 해먹고 김치에 참치까지 넣어 비빔밥도 해먹는다.

  지금 생각하면 초등학교 2학년짜리가 어떻게 이렇게 했는지 모르겠다. 역경이 오히려 자립심을 길러준 것 같다. 누나와 2년 차이 밖에 안 나니까 방학 때도 실컷 놀다가 개학이 다가오면 누나 방학책 갖다 놓고 날씨 모조리 베끼고, 그림일기도 누나 것을 보고 말만 조금 바꿔서 그대로 베껴간다. 매사에 요령껏 잘 헤쳐 나간다.

  좋은 환경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니다. 어려운 환경이 오히려 자극제가 되어 더 좋은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가끔 TV에서 소년 소녀 가장이 나오는 걸 본다. 그들은 어린 나이에도 놀랄 정도로 꿋꿋하게 가정을 이끌어가며 잘 살아간다. 역경을 잘 활용하면 더 좋은 습관을 기를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시들지 않는 꽃

이현숙

 

모든 꽃들은 열매가 되고 싶어 한다. 그래서 벌 나비를 끌어들여 수정을 하려고 온갖 교태를 부리며 자신을 치장한다. 산수국 같은 것은 자신의 꽃이 작고 보잘 것 없어 눈에 잘 띄지 않자 가짜 꽃을 진짜 꽃 주위에 만들어 화려하게 보인다.

수정이 될 때까지 꽃잎을 벌리고 하염없이 기다리다가 수정이 되면 꽃은 곧 시들고 열매 맺을 준비를 한다. 좋은 열매를 만들기 위해 전력 질주한다. 열매를 맺으려면 꽃은 시들어야한다. 꽃을 계속 유지하면 열매를 만들 여력이 없다.

  모든 여인은 꽃이다. 남자와 만나 결혼하고 자식을 낳고 싶어 한다. 임신이 안 되면 인공수정에, 시험관 아기에 온갖 고생을 무릅쓰며 아기를 갖고자 노력한다.

그런데 여인들은 시들지 않으려고 별별 짓을 다 한다. 보톡스도 맞고, 성형수술도 한다. 태반 주사도 맞고 피부에 좋다는 기능성 화장품은 다 구해서 바른다. 좋은 열매를 맺기 원하면서 자신은 시들지 않으려는 것은 어찌 보면 과욕이다. 자연을 거스르는 일이다.

나도 링클 미백 크림도 바르고 염색도 한다. 그랬다고 주름이 안 생기는 것도 아니다. 눈가에는 주름투성이고 얼굴에는 저승꽃이 바글바글 피었다. 작년에는 점도 뺐는데 도로 다 생긴다.

염색을 해 봤자 일주일만 지나면 하얀 머리칼이 온통 들고 일어난다. 내가 봐도 참 추해 보인다. 하얀 머리에 곱게 늙은 할머니를 보면 부럽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하지 못한다. 나는 아직 그럴 나이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남들이 보면 할머닌데 혼자서만 아니라고 주장한다.

꽃은 시들어야 좋은 열매가 맺히고 마른 가지는 잘라내야 새 가지가 싱싱하게 자란다. 때가 되면 시들고, 때가 되면 사라져야 다음의 새 세대가 이 땅에서 충분한 영양을 받으며 건강하게 살아갈 것이다.

남들이 보면 때가 이미 지났는데도 자신은 아직 때가 아니라고 착각하고 사는 내가 어리석다. 앞으로 주제 파악 잘 하고 깨끗한 마무리를 했으면 좋겠다.

  시들지 않는 꽃은 죽은 꽃이다. 플라스틱 조화를 보면 너무도 삭막하다. 모든 생명은 시들고 죽기 때문에 아름다운지도 모른다.

 

무재주가 상팔자

이현숙

 

다섯 가지 재주를 가진 다람쥐가 궁하다.’는 속담이 있다. ‘무재주가 상팔자라는 말도 있다. 재주가 너무 많으면 이것저것 해보다가 이도 저도 다 놓치는 수가 있다. 한 가지 재주밖에 없는 사람은 이것저것 할 수가 없으니 한 우물만 파게 된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대가가 되고 명인이 된다.

나는 운전도 못하고 요리도 못한다. 운전을 못하니 어딜 가나 운전할 일이 없다. 그저 조수석에 앉아서 졸고 앉아있으면 종착점에 다다른다. 남편이 밤에 술집으로 와서 운전해 달라고 전화하는 일도 없고 어딜 가나 조수만 하면 되니 한 마디로 오뉴월 개 팔자다.

  요리도 마찬가지다. 나는 못한다고 천하에 공포하고 사니 주는 사람이 많다. 김장도 수 십 년 동안 안 했더니 으레 안 할 줄 알고 몇 포기씩 이 사람 저 사람이 준다. 딸과 며느리는 나에게 얻어먹을 꿈도 못 꾼다. 딸은 시집에 가서 김장하고 얻어다 먹고 며느리는 친정어머니에게 얻어먹는다. 친정어머니에게 얻은 걸 또 나에게 나누어 준다. 요새는 미국 가 있으니 친정엄마에게 전화해서 담가 주라고 전화까지 한다.

남편도 어디 가서 맛있는 걸 먹으면 같이 가서 사먹을 생각은 해도 나보고 해보라는 소리는 절대 안 한다. 손님이 와도 밖에서 사 먹이고 집에서는 차만 마신다.

  우리 아들이 어렸을 때 김치를 먹다가 새로운 맛이 느껴지면

이건 어디서 가져 온 거야?” 하며 묻곤 했다.

항상 맛없고 험한 음식만 먹였더니 외식하면 다 맛있다고 잘 먹는다. 어떤 음식점 주인은 어쩌면 이렇게 잘 먹느냐고 감탄하며 자기 아들은 너무 안 먹어 걱정이라고 부러워한다.

아들에게는 내 요리 솜씨 없는 걸 감사하라고 누누이 주장한다. 내 솜씨가 조금이라도 더 좋았으면 어쩔 뻔 했냐고. 아들이 결혼하기 전에는 그래도 체중이 두 자리를 유지하더니 결혼하고는 세 자리가 되었다. 며느리가 너무 잘 해먹이나 보다.

나 같은 사람 때문에 무재주가 상팔자라는 말이 생겼나보다. 하지만 그래도 가족들에게 미안하기는 하다. 특히 남편에게는 더 미안하다. 마누라 잘 못 만나 평생 맛없고 험한 음식만 먹고 사니 말이다. 어쩌다 남편이 맛이 없네 짜네 하면 먼저 시범을 보이라고 되받아친다. ‘남자는 손이 없냐 발이 없냐 여자보다 힘도 센데 왜 못하냐?, 하고 잔소리를 했더니 요새는 아무리 맛없어도 아무 소리가 없다. 내가 생각해도 나는 너무 민폐를 끼치며 사는 것 같다. 앞으로는 유재주가 상팔자라는 속담이 생겨야할 것 같다.

 

나그네의 안식처

이현숙

 

모든 인간은 나그네다. 어머니의 뱃속에서 나오는 순간부터 여행길은 시작된다. 인생길의 안식처는 어디일까? 시간이 멈추지 않으니 우리 인생길도 멈출 수 없다.

잠자는 순간에도 꿈을 꾸며 무의식의 세계에서 여행을 계속한다. 너무 힘들어 걸음을 옮기지 못할 때는 제 자리에 서서 시간이 가기를 기다린다.

시간이 쉬지 않고 간다는 것은 어찌 보면 크나큰 축복이다. 가슴 저린 슬픔도, 뼈아픈 고통도 시간의 강물이 싣고 간다. 내가 여기서 벗어나려고 몸부림 칠 필요가 없다. 나는 가만히 제자리에 웅크리고 있어도 세월의 강물에 다 흘러가고 추억만 남는다.

인생의 종착점을 지나면 그 너머에는 진정한 안식처가 있을까? 걷고 싶어도 걸을 다리가 없고 뛰고 싶어도 뛸 육체가 없으니 참된 안식을 누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종착역까지 갈 힘과 의욕이 없어 도중하차하는 사람도 있다. 시험을 못 봤다고, 실연을 당했다고, 취직이 안 된다고, 살고 싶지 않아서 등등의 이유를 붙여 자살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오죽 힘들면 자살까지 하겠느냐만 이는 주위 사람을 너무 아프게 한다. 아무리 힘들더라도 인생의 안식처인 죽음에 이를 때까지 참고 견뎌야 하지 않을까?

나도 죽고 싶을 때가 참 많았다. 연탄불을 방에 갖다 놓을까, 학교 실험실에 있는 청산가리를 갖다 먹을까? 별별 생각을 다 했다. 어떤 날은 잠자리에 들며 하나님 내일 아침에는 깨어나지 않게 해주세요.’하며 잠들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친정 엄마의 얼굴이 떠오르고 내가 자살하면 엄마가 동네에서 어떻게 얼굴을 들고 다닐까? 우리 아이들은 어떻게 되나? 하는 생각에 참고 또 참았다. 이런 때 마다 우리 칠 남매를 키우며 여태 살아준 부모님이 고맙다는 생각도 들었다. 지금까지 살아보니 이 세상은 힘들고 괴롭지만 그래도 한 번쯤은 와 볼만한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서로 믿고 의지하며 살아간다. 아니 서로 미워하는 척력이나 서로 사랑하는 인력으로 살아가는 지도 모른다. 인력도 없고 척력도 없으면 무저갱으로 끝없이 추락할 수밖에 없다. 서로 밀고 당기는 힘으로 서로가 엮여서 전체가 추락하지 않고 공중에 버티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지금도 영원한 안식처를 향해 한걸음 한걸음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언제쯤 종착역이 보이려나? 그 너머에는 영원한 안식처가 분명 있으려나?

 

송희의 아빠곰

이현숙

 

외손녀 송희는 손에서 곰 인형을 놓지 않는다. 이 곰의 이름은 아빠곰이다. 이 곰은 송희가 태어나기도 전에 우리가 제주도 테디 베어에 놀러 갔을 때 사다가 오빠인 건희에게 선물한 것이다.

건희는 몇 번 가지고 놀다 말았는데 송희는 자기보다 더 오래된 이 인형이 마음에 드는지 항상 목덜미를 잡고 다닌다. 우리가 가면 곰 인형을 들고 나와 인형 머리를 까딱까딱 숙이며 같이 인사한다. 밥 먹을 때도 곁에 두고 먹이는 시늉을 하고 잘 때도 옆에 누이고 잔다.

목덜미에 때가 타서 새카맣게 변했다. 세탁기에 수도 없이 들어가서 이제 때가 빠지지 않는다. 손에서 놓지를 않으니 외출할 때 얼른 세탁기에 집어넣었다가 집에 오면 다시 꺼내 준단다.

그 후에 다른 곰 인형을 많이 사 주어도 몇 번 가지고 놀다가 팽개친다. 왜 아빠곰이 되었을까 생각해 본다. 더 큰 인형을 사주어도 작고 보잘 것 없는 이 인형이 항상 아빠곰이다. 다른 곰은 핑크곰, 연두곰 하고 색깔로 부른다. 아마도 아빠는 출근하여 저녁 늦게 오니 아빠가 보고 싶어 이걸로 대리만족을 하는가 싶기도 하다.

대체 언제까지 이걸 가지고 놀려나 모르겠다. 이제 나달나달 떨어져서 언제 내장이 튀어나올지 모른다. 아빠곰이 부서지면 엄청 슬퍼할 텐데 그 때는 어떻게 달래야할지 걱정된다.

사람은 누구나 어느 한 가지에 애착을 가지고 산다. 먹는데 집착하는 사람도 있고, 입는데 집착하는 사람도 있다. 명품을 갖고 싶어 애를 태우는 사람도 있고 여행하는 재미로 사는 사람도 있다. 노름에 빠지는 사람도 있고 경마에 빠지는 사람도 있다. 연속극 보는 재미로 사는 사람도 있고, 한 인간에게 집착하는 사람도 있다. 어딘가에 집착하지 않으면 이 공허한 세상을 살기 힘들지도 모른다.

어찌 보면 한 가지에도 집착하지 못하는 인간은 삶의 의욕을 잃은 사람인지도 모른다. 어느 한 목표에 집착하며 나아가다 보면 삶의 공허함을 잊고 인생길을 나아갈 수도 있다.

자식 사랑에 온 정성을 쏟다가 자녀가 다 성장해서 품을 떠나면 우울증에 걸려 힘들어 하는 사람도 있다. 한 가지에 집착해서 살아가는 것도 좋지만 그것이 사라질 때를 대비하는 것도 필요하다.

송희도 이제 새로운 대상을 찾아 마음을 옮겼으면 좋겠다.

 

봄 맞으러 가는 길

이현숙

 

긴 긴 겨울 웅크리고 앉아

네가 오길 기다린다.

 

하루에 몇 킬로씩 밖에 올라오지 못하는

네 소식에 내 마음 다 녹는다.

 

아기 걸음마로 오는 너를 기다리다 못해

너를 맞으러 내가 길을 나선다.

 

서너 시간 달려가 매화마을에 다다르니

온 산등성이에 네 옷이 걸렸구나.

 

너를 만나 겨우내 말랐던 목을 축이고 돌아서는 나는

어느새 흡족히 젖을 빤 아기가 된다.

 

나의 세한삼우

이현숙

 

세한삼우(歲寒三友)란 혹독한 겨울의 세 친구를 말한다.

나의 세한삼우는 무엇일까?

옛 선비들은 소나무, 대나무, 매화를 꼽았다고 한다.

  나의 세한삼우는 이런 고상한 것이 아니다. 이런 고차원적인 친구가 아니고 아주 일차원적인 친구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등산이다. 등산 중에서도 특히 겨울 산행이 좋다.

눈이 펑펑 내리는 속을 헤치며 가는 맛도 일품이고, 새하얀 상고대가 가지마다 뒤덮인 능선을 걷을 때는 천상의 화원을 걷는 환상에 빠진다. 쪽빛 하늘을 배경으로 선 하얀 가지는 볼수록 눈부시고 그 푸른 빛 하늘 속으로 빠져 들어가는 듯하다.

  몇 년 전 덕유산 종주할 때는 상고대가 녹았다 얼었다를 되풀이 하여 나뭇가지가 온통 투명한 얼음으로 덮였다. 바람이 불 때마다 얼음 가지들이 부딪쳐 쨍그랑 쨍그랑 소리를 내는데 그 소리가 그렇게도 맑고 투명할 수 없었다. 마치 크리스탈로 만든 종이 울리는 듯했다. 지금도 그 소리가 귓가에서 맴돈다.

  온산에 가득한 눈을 온몸으로 맞으며 걷는 일은 나를 전율케 한다. 온종일 눈 속에서 헤맬 때면 이토록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신 분은 분명 지극히 아름다운 분일꺼란 생각이 든다. 이런 세상을 만들고 여기에 나를 보내준 조물주에게 감사한다. 이 세상에 태어나길 참 잘했다고, 나는 진정 행운아라고 생각한다.

 

이런 행운을 누리려면 세 친구가 필요하다.

두툼한 겨울 등산화와 아이젠과 스패츠다. 두툼한 등산화를 신으면 아무리 추운날도 발 시린 줄 모른다. 아이젠은 매끌매끌한 얼음판에서 뾰족한 날이 얼음을 찍어 미끄러지지 않게 내 발을 붙잡아 준다. 다리에 두르는 스패츠는 허벅지까지 오는 눈 속을 걸어도 등산화에 눈이 전혀 들어가지 않으니 양말 젖을 일이 없다.

이 세 친구만 있으면 어떤 얼음판이 나타나건 아무리 깊은 눈 속이건, 전혀 걱정이 없다. 이들은 천군만마보다 더 든든한 나의 아군이다. 이 세 친구들과 이 세상 마치는 날까지 동행하고 싶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

  이현숙, 윤중일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란 말이 있다. 수십 년을 함께 사는 부모 자식이나 부부는 어떤 인연일까? 전생의 원수를 만난 것이 부부이고, 철천지원수를 만난 게 자식이란 말도 있다. 그래서 부부는 평생 아옹다옹하고 자식은 평생을 두고 모든 걸 다 주어도 부족한 애물단지가 된다.

  대학교 1학년 때 남편을 알게 되었다. 나는 산을 좋아해서 산악회에 들어가 정신없이 쫓아다녔다. 그 때 같은 과의 친구가 경암회라는 동아리에 들어가자고 했다. 농촌활동도 다니고 친목도 도모하는 동아리다. 나는 산악회 들었는데 뭘 또 드느냐고 했더니 두 개 들어도 되니 같이 들어가자고 했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이 친구와 함께 경암회에 들어가 농촌활동에 따라 갔다. 여기서 남편을 만났다. 남편은 전 년도에 상대에 응시했다가 떨어져 재수하고 사대로 왔다고 했다.

후에 생각해 보면 보이지 않는 끈이 우리를 묶어 잡아당긴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경암회라는 동아리가 있는 줄도 몰랐던 내가 거기 들어간 것도 그렇고, 상대에 떨어져 사대로 온 남편도 그렇다. 정말 인연이란 있는 것일까? 전생의 인연이라고 하는데 전생도 과연 있는 것일까?

하긴 무한한 시간의 흐름에서 같은 순간에 지구에 나타났다는 것도 보통 힘든 일이 아니다. 무한한 우주공간에서 같은 순간에 같은 장소에 서 있다는 것은 그 확률이 얼마나 작을지 계산할 수 없다. 그러니 옷깃을 스친다는 것은 보통 힘든 일이 아니다. 같은 시간에 같은 장소에 서 있어도 옷깃을 스치지 않고 지나가는 경우가 허다하다.

 

부모 자식 간의 인연도 그렇다. 결혼 초에 신우신장염이 걸렸다. 치료과정에서 잘 못 되어 임신 4개월 된 아이를 유산시켰다. 그 후 다시 임신하여 우리 딸이 태어나게 되었다. 딸을 볼 때마다 그 아이가 유산되지 않았으면 지금의 딸은 태어나지 못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여자의 몸에 있는 수많은 난자와 남자의 몸에서 평생 나오는 수십 수백억 개의 정자 중 둘이 만날 확률은 얼마나 되는 것일까? 생각할수록 한 인간이 태어나는 일은 기적이다. 수많은 내 조상들의 유전자가 조합되어 내가 되고 남편 조상의 수많은 유전자가 조합되어 남편이 만들어졌다. 그 둘이 다시 합하여 우리 아이들이 만들어졌으니 어찌 기적이 아닐까?

 

  가진 것 없이 불구였던 부모 밑에서 가난에 찌들려 초등학교 마친 후 진학도 못했다. 도시로 나가 낮에는 공장에 다니고 야간공민학교를 다녔다. 아내도 마찬가지였다. 2년 후배인 아내와는 시골에서 함께 초등학교를 다니며 교회 주일학교에서 회장, 부회장으로 만나 정을 키웠다.

아내는 중학교 전체 수석을 했지만 딸 둘을 둔 홀어머니 밑에서 그나마 겨우 중학교를 다녔고 고등학교 진학은 가난으로 포기했다. 우리 둘은 각각 도시로 나와 스스로 배우고 꿈을 키웠다. 도시에서도 가끔 만나 서로 격려하고 동생이 없던 나는 친동생처럼, 오빠가 없던 아내는 친오빠처럼 나를 따랐다.

어른이 되어 다시 만난 우리들은 숟가락 한 벌로 월세 방 한 칸에다 신접살림을 차렸다. 첫 아들을 얻고 아직은 신혼의 단꿈에 젖어 있던 1970년 여름 갑작스런 군 입대로 홀로 남게 된 아내는 파독간호사로 지원하여 그해 11월 독일로 날아갔다.

정부 간 계약기간은 3년이었지만 아내는 계속 버텼다. 한 번 다녀가기라도 하라며 꼬드겨 4년 만에 결국 왕복비행기표를 끊고 한국으로 들어왔다. 독일로 다시 들어갈 수 있는 유예기간은 1년이었다. 한사코 다시 돌아가겠다는 아내가 덜컥 임신을 하고 말았다. 아내는 낙태수술을 하겠다고 했다. 생명은 소중하다며 절대로 그럴 수 없다고 달랬다.

그리하여 둘째인 딸아이가 태어났고, 2년 후 다시 임신을 하게 되었다. 이번에도 완강하게 낙태를 하겠다고 했다. 이유는 살기도 힘든데 셋을 키우기란 버겁다는 거였다. 당시만 해도 산아제한이 있어 자식 둘이 대세였다. 또다시 아내를 달랬다. 어떻게든 살기마련이겠지 생기지 않았으면 모르되 이미 생겨버린 생명을 어찌 우리들 마음대로 끊을 수 있냐. 그건 벌 받을 일이라며 5개월간 수없이 달래서 막내아들을 얻었다. 이후 바로 아내는 물혹이 많아 자궁을 들어내는 수술을 했다.

가난한 집안에서 부모 잘못 만나 못 입고 맛있는 음식도 마음대로 먹지 못하고 자란 아이들도 운명이고 팔자다. 그러나 내 자식들만은 끝까지 공부시키려 최선을 다했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아내는 늘 미안해했다. 요것들을 지웠더라면 어찌되었을꼬. 내가 다시 독일로 돌아갔다면 두 녀석은 세상에 태어나지도 못했을 터. 안 가길 잘했지 했다.

무엇보다 첫돌박이 핏덩이를 두고 떠나 외할머니 손에 자라게 한 큰 아들 때문에 죄스러워 눈물 흘렸고, 그 때는 내가 왜 이걸 두고 떠나려 했던가 늘 미안해했다. 막내아들은 중학교 졸업 때까지 밤마다 오줌을 싸고 너무 병치레가 많았지만 묵묵히 뒷바라지에 최선을 다했다. 이제 21녀 자식들은 건강하게 잘 자라 모두 짝을 맺어 우리 곁을 떠났다. 부모에게 위안인 것은 자식들이 잘 사는 것이다.

독일에 남았던 동료들은 거의가 실패한 인생이란다. 재독 한국인들로부터 소식을 들으면 우선의 안녕을 좇아 가족을 버렸던 그들은 대다수 끝내 행복하지 못하다는 소문이다. 생각하면 아내를 만나 오늘까지 우여곡절을 겪으며 함께 살아 온 것도 이 모두가 운명으로 엮어진 인연이리라.

  불가에서는 옷깃만 스친 인연을 1겁의 인연이라 한다. 1겁이란 1500m3의 됫박에 겨자씨를 가득 채우고 1년에 한 알씩 꺼내어 모두 없어지는 기간이라 한다. 아내를 만나 자식을 낳고, 자식은 또 자식을 낳고 대를 잇는 인연은 억겁(億劫)의 인연이리라.

우리는 어떤 일을 만나면 우연이라고 하고 또 어떤 일은 인연이라고 한다. 우리가 사는 인생이 우연인지 인연인지 어디까지가 인연이고 어디까지가 우연인지 생각할수록 아리송하다.

 

<독후감>

사라져가는 것들 잊혀져가는 것들 2를 읽고

 

이현숙

 

이 책을 쓴 이호준은 기자이자 아마추어 사진작가다. 여러 해 동안 카메라 한 대, 수첩 한 권을 들고 전국을 돌아다니며 이 땅에서 사라져가는 것들과 잊혀져가는 것들을 기록하고 있다. 그는 자신이 재직하고 있는 신문사의 블로그에 이 글을 연재했다.

2008년에 출간한 1편은 여름방학 추천도서’ ‘올해의 청소년 도서’ ‘올해의 우수 교양도서로 선정 되었다.

  이 책의 구성은 4묶음으로 되어 있는데

1묶음은 외나무다리 건너 고향집엔이란 테마로 외나무다리, 징검다리, 흙집, 사립문, 공동우물 등에 얽힌 진솔한 이야기를 썼다.

2묶음은 품앗이 그리고 새참의 추억이란 테마로 쟁기질, 손 모내기, 벼 베기바심과 길쌈 등 전국을 돌아다니며 취재한 인터뷰 내용을 수록했다.

3묶음은 월급봉투 그 안에 담긴 눈물이란 주제로 월급봉투에 담긴 추억, 장발 단속, 떠돌이 약장수 등을 낡은 사진첩처럼 그려냈다.

4묶음은 봉숭아빛 곱게 물든 저녁이란 주제로 소녀들의 봉숭아물들이기, 연날리기, 썰매타기, 금줄이나 지게에 담긴 사연들을 소개했다.

또한 글의 마지막 부분에는 기행수첩이란 이름으로 그곳을 찾아가는 방법, 그곳에서 느낀 점 등을 소개하였다.

이 책에는 내가 알고 있는 것도 많았지만 듣도 보도 못한 것도 많았다. 외나무다리 옆에 비킬 수 있는 다리를 비켠다리라고 하는 것도 처음 알았다. 글의 내용은 그곳 사람들에게 들은 내용도 있고 그냥 자신의 느낌이나 생각을 적은 것도 있다. 또 자신의 경험을 적은 것도 있다. 징검다리 같은 것은 황순원의 소나기 내용을 소개하며 소녀가 징검다리 가운데서 물장난 하고 소년이 바라보는 모습을 그렸다.

줄 배는 강 양 쪽에 줄을 매고 손으로 당겨 건너는 배다. 나도 동강의 어라연에서 타본 적이 있다. 필자는 섬진강의 마지막 줄 배를 찾았다. 섬진강의 매력에 푹 빠진 필자의 심정이 역력하다. 내가 보기에도 우리 남한에서 가장 아름다운 강이 섬진강인 것 같다. 섬진강은 볼 때마다 꿈속을 헤매는 것 같고 초록빛이 환상적이다. 마치 초록색 혈액을 가진 동물의 혈관을 보는 듯하다. 강 자체가 살아있는 거대한 생명체처럼 느껴진다.

! 괜히 딴 짓을 하는 바람에 하늘이 주신 모델을 놓치는구나. 부리나케 달려가 보지만 모자는 배에서 내린 뒤다. 무안해진 카메라가 하릴없이 물비늘만 찍어댄다.”

좋은 모델을 찍기 위해 동분서주 애를 태우는 필자의 심정이 그대로 드러난다.

  뒷간은 농사에 꼭 필요했던 숨은 보물창고라는 부제를 붙였다. 뒷간은 거름공장이다. 그래서 옛 어른들은 놀러나가는 아이들에게 똥은 꼭 집에 와서 누라고 했단다. 똥은 즉 밥이라고 했다.

어렸을 때 시골 큰집에 이런 뒷간이 있었다. 뒷간의 문은 집 안에 있었지만 거름을 퍼내는 쪽은 바깥마당으로 휑하니 뚫려 있었다. 그래서 누가 변을 보면 밖에서도 똥이 떨어지는 것이 직접 보였다. 한 번은 할머니가 뒷간에 들어가는 것을 보고 밖에 나갔다. 아이들에게 할머니가 똥 눈다고 했더니 아이들이 자로 생긴 긴 나뭇가지를 가져왔다. 할머니 똥구멍을 찌른다는 것이다. 미운 일곱 살이라고 왜 그렇게도 장난이 심했는지 모르겠다.

갑자기 할머니가 나오더니 수박만한 돌을 들고 우리를 좇아왔다.

이 못된 놈들~” 하며 좇아오는 바람에 뒷동산으로 냅다 도망쳤다.

할머니는 이 돌을 힘껏 던졌지만 우리는 더 빨리 내달렸다.

그 밖에도 탈곡기, 쟁기질, 도리깨질, 등 등 어렸을 때 본 것들이 무수히 많았다. 삼농사 짓는 법도 나오고 경순왕의 아들 마의태자는 나라를 잃고 마의즉 삼베옷을 입고 다녀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는 것이다.

  필자는 이런 시골 풍경만 그린 것은 아니다. 서울의 피맛골, 월급봉투, 장발단속, 약장수, 아이스케키, 뻥튀기 등 도회지 풍경도 많이 담았다. 피맛골은 지금의 교보문고에서 종로 6가까지 이어진 뒷골목이다. 큰 육조거리는 임금행차나 벼슬아치들이 지날 때마다 머리를 조아리고 엎드려 있어야 하는데 한 번은 어떤 무지렁이가 어가 행차 앞을 내달렸다. 관헌이 잡고 보니 그날이 마침 마누라가 애 낳는 날인데 미역을 사러 왔다가 어가를 만나 급한 마음에 그냥 뛰었다는 것이다. 이를 들은 임금이 측은히 여겨 무지렁이들이 맘 놓고 다닐 수 있는 뒷골목을 만들어줬다는 것이다.

또 우리 곁에서 사라진 것 중 하나가 월급봉투다. 지금은 월급이 통장으로 직접 들어가니 온갖 명세서가 찍힌 월급봉투를 볼 수 없다. 남편들은 죽어라 소처럼 일만하고 통장은 아내가 관리하니 직장과 아내가 계약을 맺어 급여를 주고받는 꼴이 되어 버렸다.

하루 세 번 집에서 밥 먹으면 삼식이 새끼라 하고 한 번도 안 먹으면 영식님이라고 하는 농담도 월급봉투가 없어진 결과 생긴 게 아닌가 싶다. 밥은 먹지 말고 일만해서 돈만 벌어오라는 소리니 이게 칼만 안 들었지 완전 날강도가 아니고 무엇이랴. 그래도 월급봉투가 있을 때는 그날 하루만이라도 목에 힘주며 들어와 의기양양하게 봉투를 내밀었을 텐데 말이다.

그 밖에도 우리 주위에서 사라진 것이 무궁무진하다. 이렇게 많은 것이 사라진 줄 짐작도 못했다. 필자는 떠내려가는 강물에서 보물을 건지듯 무수한 추억을 찾아 책이라는 박물관에 전시해 두었다. 앞으로도 계속 사라져가는 것들을 찾아 헤맬 것이다. 하나의 주제로 책을 두 권씩이나 낸 것이 경이롭다. 아마 앞으로도 계속 나올 것 같다. 나도 앞으로 이런 좋은 테마를 찾아 책을 내보고 싶다.

 

도심 속 벚꽃놀이

이현숙

 

지난 달 거금 1500만원을 내고 남미 여행에 다녀왔다. 미친년 시리즈에 보면 10억도 없으면서 강남 살겠다는 년, 20억도 없으면서 자녀 유학 보내겠다는 년, 30억도 없으면서 유산 상속 걱정하는 년은 모두 미친년이란 말이 있다. 그런데 1억도 없으면서 뻔질나게 해외여행 다니겠다는 나 같은 년도 이 시리즈에 들어가야 할 것 같다.

면목중학교 근무할 때 45세 이상 먹은 선생님들 모임이 있었다. 늙었다고 노털이 모임이라고 하다가 듣기 좋게 로터리로 하자고 해 지금은 면목로터리 클럽이 되었다. 누가 들으면 진짜 로터리 클럽 회원인 줄 착각하게 생겼다.

4월 모임은 건대역에서 만나 점심을 먹고 어린이대공원으로 벚꽃놀이를 갔다. 젊은 연인들, 임산부, 아기 엄마 그야말로 인산인해다. 도심 속에도 이토록 환상적인 곳이 있는데 돈을 쳐 들여가며 지구촌을 쑤시고 다니는 내 모양이 우습다.

남미 갈라파고스에서 자이언트 거북이도 보고, 베네주웰라에 가서 세계에서 가장 높다는 엔젤 폭포도 보았다. 칠레와 아르헨티나 남쪽 끝 파타고니아에서는 남미에서 가장 크다는 웁살라 빙하도 보았다.

하지만 인간이 느낄 수 있는 아름다움도 한계가 있는지 그 때의 감동이나 어린이대공원 벚꽃을 볼 때 감동이나 큰 차이가 없다.

어쩌면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은 자연 자체보다는 보는 사람의 마음에 더 좌우되는 지도 모른다. 같은 경치를 보면서도 탄성을 지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껄렁하다고 툴툴 대는 사람도 있다.

마음이 말랑말랑하고 고운 사람은 어딜 가서 무얼 보건 항상 감동하고 감탄한다. 하지만 마음이 굳어진 사람은 웬만한 경치를 만나도 시큰둥하니 아무 느낌이 없다.

좋은 경치 보겠다고 세상천지 헤매고 다니지 말고 내 마음부터 감수성 풍부한 어린이 마음으로 되돌려야 겠다.

 

싱싱한 풋고추

 

남편의 모교인 충남중학교 7회 동창들이 봄나들이 갔다. 변산반도의 내소사와 새만금 방조제를 보러 가기로 했다. 뉴스에서는 천둥 번개가 친다는 둥, 120미리의 비가 쏟아진다는 둥 공포의 발표가 이어진다. 하지만 이런 협박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30명 가까운 동창들이 모였다.

하늘은 잔뜩 흐렸지만 빗방울은 떨어지지 않는다. 다들 비옷에 우산에 중무장을 하고 나타난다. 차에 오르니 김밥에 떡에 바나나까지 하루 종일 먹어도 다 못 먹을 만큼 음식을 나누어준다. 출발하기도 전에 김밥은 다 먹어 치웠다.

출발하여 조금 가다가 회장님 인사가 끝나자 총무님이 퀴즈를 낸다. 오늘이 불기 2555년 석가탄신일인데 석가모니의 뜻이 뭐냐고 한다. 아무도 대답을 못하자 한 수 가르쳐준다. 석가는 인도와 네팔 국경지역에 살던 사카족이란 종족이름이고 모니는 선견자, 영도자라는 뜻이란다.

연등을 다는 것은 부처님이 태어나자마자 일곱 발자국을 걸어갔는데 그 발자국 마다 연꽃이 피어난 것을 기려 연등을 단다고 한다.

휴게소에 내리니 안개비가 조금씩 내린다. 남쪽으로 갈수록 하늘은 밝아지고 길은 말랐다. 내소사에 이르니 석가탄신일이라고 입장료도 안 받는다. 공짜라면 양잿물도 먹는다더니 공짜로 들어가니까 더 깨소금 맛이다. 그 유명한 전나무 숲길에 연등이 가득 달렸다.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 드는 길이다.

대장금 촬영장소인 연못을 지나 대웅전을 향해 가니 연등이 지붕을 이루어 탄성이 절로 난다. 대웅전 앞에는 부처님이 그 나무 밑에서 해탈했다는 보리수가 있고, 그 옆에는 마야부인이 산고의 고통을 덜고자 붙잡고 해산했다는 무우수(無憂樹 : 근심이 없는 나무)의 사진과 설명이 있다.

대웅전 앞에는 이명박 대통령과 손학규 민주당 대표가 기증한 연등도 있다. 대웅전 안에서는 스님과 불자들이 모여 있고 마침 예불 시간이라 설법이 한창이다. 짚신 장수와 우산 장수 아들을 둔 어머니의 얘기를 하며 인생은 마음먹기 달렸다는 설교가 진행 중이다.

산신각과 조사당, 설선당까지 다 둘러보고 다시 연등 터널을 지나 주차장으로 돌아왔다. 곰소의 젓갈 집으로 가는 도중 정견씨가 나오더니 교가를 하잔다. 원래 교가는 식장산이 어쩌구저쩌구 하는 거지만 여행 갈 때 교가는 다르다고 하며 가르쳐 주겠단다. 산 할아버지 노래에 새로운 가사를 붙였으니 따라 하라고 한다.

 

~할아버지 나무를 하다가 잘~못하여 고추를 찍었네.

너무 아파서 엉엉 우는데 산신령이 나타 나셨네.

~고추가 네 고추냐? ~고추가 네 고추냐?

아닙니다. 제 고추는 싱싱한 풋고춥니다.

이 녀석 봐라. 동화책 읽었구나. 그렇다면 모두 가져라.

아닙니다. 잘못 하다간 밤일 할 때 헷갈립니다.

 

다들 웃음꽃을 피우며 따라 하다가 젓갈 집에서 동동주와 젓갈로 입맛을 다시고 젓갈을 사들고 버스에 올랐다. 옛날맛집에 들러 백합죽과 주꾸미로 포식을 하고 적벽강으로 향했다.

적벽강은 채석강 옆에 있는 붉은 색 절벽으로 중국 송나라 때 시인 소동파가 즐겨 찾던 적벽강과 비슷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바닷가로 내려가 고동도 잡고 수석도 찾으며 잘들 논다.

부안 변산 마실길을 따라 수성당에 오르니 까마득한 절벽 위에 사당 같은 집이 있고 배 모양을 만들어 제사를 지내게 해 놓았다. 수성당은 딸 여덟을 낳아 일곱 명은 팔도에 하나씩 나누어 주고 막내딸과 살았다는 계양(개양) 할머니의 전설이 깃든 곳이다.

개양 할머니는 키가 워낙 커서 서해를 걸어 다녀도 물이 버선목까지 밖에 차지 않았다. 서해를 걸어 다니면서 수심을 재고 길 잃은 배를 인도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이곳에서는 매년 음력 정월 초사흘이 되면 풍어와 무사고를 비는 제사를 올린다고 한다.

다시 버스로 돌아오니 일부 회원들은 쑥을 뜯고, 일부 회원들은 송화가루를 따며 다 모이기를 기다린다. 어려서 친구는 만년 동심이라 스스럼없이 언제 어디서나 잘들 논다.

부안을 떠나 그 유명한 새만금 방조제로 들어섰다. 길이 33km의 어마어마한 방조제다. 인공적으로 지도를 바꾼 이 방조제가 과연 자연 생태계에 얼마나 영향을 줄지는 오랜 세월이 지나 봐야 알겠지만 당장 보기에는 시원하게 탁 트인 바다가 아름답다.

전망대에서 안개 낀 바다를 바라보고 주차장을 나와 막 달리려는데 한 사람이 안탔다고 한다. 조금 기다리니 화장실 쪽에서 양수씨가 달려온다. 많이 가지 않고 발견한 게 천만 다행이다.

오다가 신갈에서 한 팀 내리고 죽전에서도 몇 명이 내렸다. 정견씨는 내리기 전에 또 교가를 복습시킨다. 가짜 교가를 몇 번씩 부르다 보니 언젠가 들었던 우스갯소리가 생각난다.

80대 할머니들이 동창회를 했다. 한참 수다를 떨다가 한 할머니가 교가를 부르자고 했다. 다들 아무리 생각해도 교가가 떠오르지 않아 끙끙대는데 한 할머니가 갑자기 동해~물과 백두산이하면서 노래를 하자 다들 맞다 맞아 하면서 신나게 합창을 했다.

이 할머니 의기양양하여 집에 와서 할아버지에게 자기가 교가를 기억해 다 같이 불렀다고 하며 동해~물과 백두산이하고 노래를 불렀다. 가만히 듣던 할아버지가

? 우리 학교 교가하고 똑 같네!” 했단다.

 

싱싱한 풋고추 같은 충남중 7회 동창들은 80이 아니라 99세까지 팔팔하게 9988로 잘 살다가 234 (2, 3일 앓다가 죽는다) 했으면 좋겠다.

 

비우는 여행자

이현숙

 

끝없이 이어지는 오솔길

끊어질 듯 이어지는 숲속길

숨이 찰만하면 나타나는 내리막길

아련히 사라지는 하얀 능선길

내 숨이 다하도록 이 길을 걷게 해다오

내 심장이 멎도록 이 길에 서게 해다오

 

모든 인간은 여행자다. 어머니 뱃속에서 나온 순간부터 우리는 어디가 끝인지 모르는 인생길을 간다. 어떤 사람은 평탄하고 편안한 길을 가다가 종점에 다다르는 사람도 있지만 험악한 환경에 태어나 숱한 고생을 하다가 종착역에 다다르는 사람도 있다.

  얼마 전 가수 채동하가 집에서 넥타이로 목을 매 생을 마감했다. 어머니는 내 아들이 그럴 리 없다고 오열했다. 축구선수 정종관 선수도 강남의 호텔방에서 자살했다.

요즘 젊은이들의 자살이 잦다. 채동하는 자신이 기대하는 만큼 성공하지 못해서 우울증에 시달리다 자살한 듯하다. 정종관 선수는 요즘 승부 조작 사건에 연루되어 검찰의 조사를 받았다 한다. 둘 다 이 사회가 주는 스트레스를 감당하기 어려웠나보다.

어떤 동물들은 개체수가 너무 늘어나면 집단으로 물속으로 돌진하여 죽음으로써 개체수를 조절한다고 한다. 아마 동물들도 개체수가 많아지면 과도한 스트레스를 받게 되고 그러면 집단 자살을 하나보다.

사람도 인구가 과밀하게 되면 정신질환자가 많아지고 범죄도 많아진다. 그래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인구 조절을 하려는 노력이 생기는 지도 모른다.

  얼마 전 속리산 형제봉에 갔다가 달마선원으로 내려왔다. 마침 달마도를 잘 그리기로 유명한 범우스님이 계셨다. 스님은 우리를 그의 방으로 불러 들여 차를 대접했다. 그 방은 전면에 큰 유리창이 있고 창밖으로는 푸른 녹음이 가득 차 있었다. 여기서 마시는 차 한 잔은 우리 머리를 식히는 청량제 같았다.

스님은 우리에게 건강하게 사는 방법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한 회원이 등산을 하면 몸이 건강해 진다고 대답하자 마음의 건강을 유지하는 방법을 설명했다.

마음이 건강하려면 스트레스를 받지 말아야 하는데 어떻게 하면 스트레스를 적게 받을 수 있을까 하는 방법을 물었다. 복잡한 사회에서 스트레스를 적게 받으려면 마음의 그릇을 크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마음 그릇을 크게 만드는 방법은 마음에 가득 찬 욕심을 버려 그릇을 비워야 한다는 것이다.

스님처럼 심산유곡에 들어앉아 있으면 가능할 것도 같다. 하지만 소용돌이치는 도회지에서는 마음을 비우기 어렵다. 남들과 비교하게 되고 남들을 따라가려하고 남들보다 앞서 가려하는 마음이 앞서 휴식을 취할 수 없다.

모든 사람이 시골로 들어갈 수도 없으니 시간 나는 대로 자연을 접하며 자연과 대화하는 가운데 마음을 조금이라도 비울 수 있지 않을까? 마음에 가득한 물질욕도 내려놓고, 남보다 더 높아지려는 명예욕도 내려놓고, 내 자식 내 가족만 잘 되게 해달라는 욕심도 내려 놔야겠다.

  결혼한 지 10년 된 아들이 여태 자식이 없다. 기도하려면 아들에게 자녀를 달라는 기도가 내 입에서 떠나지 않는다. 세상에 불임부부가 다섯 쌍 중 하나라는데 내 아들만은 여기서 벗어나고 싶은 게 내 욕심이다. 이 욕심은 내가 무덤 속에 들어갈 때까지 버리지 못할 것 같다.

며느리 나이가 올해 마흔 한 살이니 이제 두 손 들고 항복하며 이 욕심도 내려놔야 할 때가 됐다. 남들 같으면 벌써 포기했을 텐데 내 일 아니 내 자식 일이다보니 포기가 안 된다. 내 숨이 다하고 내 심장이 멎으면 이 욕심도 나를 떠나 어디론가 훨훨 자유롭게 날아갈 것이다.

  앞으로 나의 여행길이 얼마나 남았는지 알 수 없지만 마음을 다 비우고 행복한 꿈을 꾸며 나아가는 여행자가 되고 싶다.

 

그저 그런 오후 3

이현숙

 

내 일상의 오후 3시는 낮잠시간이다. 오전에 요가와 수영을 하고 집에 와 점심을 먹고 나면 잠이 솔솔 쏟아진다. 밤에 잘 자려면 낮잠을 자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소파에 앉아 책을 펴면 한 페이지도 읽기 전에 눈꺼풀이 절로 내려온다.

오후 3시라는 시간은 하루의 내리막길이요, 저녁식사 준비에는 좀 이른 시간이다. 이글이글 타는 태양도 기세가 꺾이는 시간이요, 기세등등했던 시어머니도 잠시 숨을 죽이는 시간이다.

60이 넘은 내 인생도 오후 3시가 아닐까? 1라운드를 치열하게 싸우고 2라운드를 위해 숨을 고르는 시간이다. 어차피 정상은 밟았으니 숨이 턱에 닿게 헐떡이며 오를 필요가 없다. 2라운드는 져도 좋고 이겨도 좋은 그저 그런 게임이다.

하는 일이라고는 해도 좋고 안 해도 좋은 별 볼일 없는 것뿐이다. 젖 먹는 애기가 있는 것도 아니니 죽어도 좋고 살아도 좋은 그저 그런 나이다. 그러니 급할 것이 뭐가 있겠는가?

영화를 봐도 별 재미가 없고, 멋진 경치를 봐도 시들하다. 아무리 맛난 음식이라고 해도 먹어보면 그저 그렇다. 모든 감각이 퇴화되어 자극이 줄어든 것인지도 모른다.

그랬다고 고무줄 늘어지듯 마냥 늘어져 살 수만은 없다. 언제 해가 질지 모르기 때문이다. 인생이 언제 끝날지 알면 그에 맞춰 정리를 하겠지만 남은 시간을 모르니 수 십 년을 뭉그적거리고 있을 수만은 없다.

그저 죽을 날 만 바라고 있을 수는 없으니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2라운드를 위해 뭔가 하기는 해야 한다. 보람 있는 일을 하려면 부담스럽고 허구한 날 노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인생의 오후 3시는 무엇인가를 하기는 늦은 것 같고 그랬다고 아무 것도 안 하기는 이른 시간이다. 재수 없으면 100살까지 산다는데 그럴 경우를 대비하여 뭔가 하기는 해야 할 것이다.

일단 낮잠을 자며 휴식을 취한 후 다시 생각해 봐야겠다. 당장 먹고 살기 힘든 사람이 이런 소릴 들으면 배부른 소리 한다고 할 것이다. 죽일 년이라고 할지도 모른다. 놀더라도 너무 티 나지 않게 남의 눈치 봐 가며 안노는 척 놀아야겠다.

놀면서 에너지를 축적했다가 뭔가 하고 싶은 일이 생기면 총력 질주하여 남은 에너지를 다 써 활 활 타고 재만 남기고 싶다. 남은 재마저 바람에 날리고 흔적도 없이 깨끗하게 사라지면 얼마나 좋을까?

 

<독후감>

가장 뛰어난 중년의 뇌를 읽고

 

이현숙

 

이 책을 쓴 바버라 스트로치는 캘리포니아 버클리 대학교를 졸업하고 뉴스데이, 타임스지에서 과학 및 의학소식을 담당했으며 현재 뉴욕 타임스에서 의학 및 건강 전문기자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책머리에 장 장 17쪽에 달하는 서문을 써서 바뀌고 있는 중년의 풍경을 그렸다. 인류역사상 오랜 기간 동안 중년이 무시되었지만 그것은 중년이 너무 짧았기 때문이라 한다.

하지만 그리스 시대에는 중년의 원숙함이 존경을 받았다. 50세가 되어야 배심원이 될 수 있었는데 고대 그리스인들의 평균수명은 서른 살이었다.

1세기 전만 해도 선진국 사람들의 평균수명이 47세였는데 지금은 78세가 되었다. 중년의 시간이 몇 배로 늘어난 것이다.

우리가 대부분 중년에 다다르면 자신이 변했음을 느낀다. 나도 수영회원 카드를 지하철 카드 대는 곳에 대고 카드리더기가 작동하지 않아 당황하는가 하면 상갓집에 갈 봉투에 축 결혼이라고 쓰기도 했다.

그런데 이 책을 보니 중년의 뇌는 형편없이 망가져 가는 것이 아니라 젊었을 때보다 더 좋아진다는 것이다. 중년의 뇌는 더 똑똑하고, 더 침착하며, 더 행복하고, 온갖 것들을 그냥 안다. 우리 뇌는 중년이 되면서 재조직되기 시작한다. 한 마디로 중년의 뇌는 다 자란 뇌다.

중년의 뇌는 다양한 기능 변화를 보이는데 쇠퇴하는 기능이 있는 반면 절정에 다다르는 기능도 있다. 기억하는 부품은 닳지만 주위세상과 일, 재정에 관해 판단하는 능력은 신장된다. 더 중요한 것은 중년으로의 진입이 더 행복한 시간으로 가는 여정이란 점이다.

복잡한 인지 기술을 측정하는 검사에서 최고의 수행력을 보인 사람들의 나이는 40세에서 65세였다. 윌리스 연구에서 나온 데이터에 의하면 논리, 어휘, 언어, 기억, 공간정형이라는 네 가지 중요영역에서 중년에 이른 연구 참여자들이 얻은 점수는 그들 자신이 20대에 얻은 점수보다 높게 나왔다. 최고 수행력에 도달하는 시기는 남성들은 50대 후반이었고, 여성들은 기억과 어휘에서 남성들보다 점수가 높았으며 60대까지 계속해서 상승했다.

중년의 뇌는 속도가 느려지기는 하지만 속도 이외의 능력이 높아져 일을 더 잘 할 수 있다. 이것은 중년에 이르러서야 모든 조각들이 하나로 합쳐지기 때문이다.

편도는 뇌의 원시적인 부분이다. 편도는 뇌의 양쪽에 하나씩 들어있는 아몬드 모양의 조직이라 이름도 라틴어의 아몬드에서 유래했다. 스탠퍼드의 심리학자와 MIT 뇌영상연구팀이 젊은이와 중년의 뇌를 스캔해본 결과 나이가 들면서 놀라울 만큼 중년의 편도가 부정적인 것에 덜 반응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하지만 젊은 사람들은 부정적인 것에 더 많이 반응했다. 젊은이들의 자살률이 더 높은 것도 아마 이런 이유 때문인가 보다. 왜 나이가 들면 긍정적인 면에 집중하게 되는 것일까? 그것은 전환이 노화 자체에 기인하기 때문이다.

나 자신도 젊었을 때가 훨씬 부정적이었다. 그만 살고 싶고, 자살하고 싶었던 것도 30대가 가장 심했던 것 같다. 폐경이 되고 호르몬 변화가 생겨서 그런지 오히려 지금은 훨씬 안정적이고 긍정적으로 변했다.

요새는 결혼식장에 가서 음악에 맞춰 입장하는 신부를 보면 왠지 애처롭고 가슴이 아파온다. 이들이 앞으로 겪어야할 많은 일들과 힘든 여정을 생각하면 부러운 게 아니라 안쓰럽다. 지금도 젊었을 때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다. 다시는 그 격변의 현장에 들어가고 싶지 않다.

8천 명에 달하는 미국인을 10년 동안 연구한 결과 95%에 달하는 사람들이 중년의 위기를 겪기는커녕 오히려 안녕의 느낌이 증가했다. 여성들은 폐경기가 이제까지 묘사된 것처럼 땀과 슬픔의 바다가 아니라 하나의 구원임을 알았다고 한다.

캔터키 대학교의 과학자 데이비드 스노든과 동료들은 1986년 이래 678명의 수녀들을 대상으로 연구했다. 이 수녀들은 모두 사후에 뇌를 기증하기로 했다. 연구 결과 20대에 자서전을 쓰며 복잡하고 낙관적인 생각을 가득 담아 공들여 문장을 썼던 수녀들이 수 십 년 뒤 치매에 걸릴 위험이 더 낮았다.

베르나데트 수녀는 28년 동안 학교에서 선생님으로 재직했다. 그녀는 81, 83, 84세에 치른 인지시험에서 모두 최우수 성적을 거두었다. 그러다 85세에 심장마비로 숨졌다.

그녀의 뇌를 분석한 결과 무게는 정상이었지만 알츠하이머가 심하게 퍼져있었다. 해마와 신피질, 이마엽까지 온통 엉겨 있었다. 신피질에는 플라크까지 잔뜩 끼어 있었다. 이것은 알츠하이머의 정도를 판단하는 척도상 가장 심각한 수준인 6단계였다.

뇌의 치매를 시사하는 모든 물리적 징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뇌를 보호해준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녀가 썼던 알찬 문장들이었을까? 그녀의 뇌를 해부하는데 참여했던 연구원은 베르나데트 수녀의 뇌는 다른 수녀들 보다 회색질이 많았다고 한다. 이 회색질이 여분의 뇌력을 발휘한 것인지도 모른다.

이 여분의 뇌력 생산에 가장 크게 기여하는 요소는 바로 교육이다. 중국에서 이루러진 대규모 연구에서도 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 치매에 걸릴 위험이 두 배나 높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또한 운동이 뇌를 단련시킨다는 결과도 나왔다. 쳇바퀴를 하루에 2만 번씩 몇 주간 돌린 생쥐와 운동을 하지 않은 쥐의 뇌를 현미경으로 관찰했다. 그 결과 운동을 한 쥐의 뇌세포에 훨씬 많은 새로운 뉴런들이 생겨났다.

수 십 년 동안 과학자들은 운동, 특히 유산소 운동이 심장에 좋은 만큼 뇌에도 좋지 않을까 짐작해왔다. 운동은 뇌의 혈류량을 증가시켜 뇌세포에 많은 혈액을 보냄으로 많은 뉴런들이 생성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뇌에 좋은 음식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연구 결과 활성산소 흡수 능력이 좋은 것에는 말린 자두, 건포도, 블루베리, 불랙베리, 딸기, 시금치 등이다. 동물연구에서 빅포드는 말린 시금치를 먹은 나이든 쥐들이 평범한 사료를 먹은 쥐들보다 훨씬 더 빨리 새로운 과제를 학습하는 것을 발견했다. 블루베리나 시금치가 보강된 먹이를 먹은 쥐들은 뇌세포 손실이 적었고 뇌졸중을 겪은 뒤 움직임의 회복도 빨랐다.

이 책의 많은 내용을 보며 새로운 희망이 생겼다. 열심히 운동하고, 글 열심히 쓰고, 좋은 음식을 먹으며, 긍정적으로 살면 노후까지도 건강한 뇌를 유지하며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사형수

이현숙

 

나는 사형수다.

아니 모든 생물은 사형수다.

지구라는 창살 없는 감옥에 갇혀 한발작도 나가지 못한다.

언제 사형이 집행될지는 모르지만 죽는다는 사실은 확실하다.

 

오른쪽 옆구리가 뜨끔뜨끔 아프면 간에 있는 혹이 암으로 발전했나?

소변이 진하게 나오면 간염이 재발했나?

소화가 안 되면 위암인가?

대변이 검게 나오면 대장암인가?

머리가 지끈지끈 아프면 뇌졸중인가?

 

살만큼 살았구만 몸이 조금만 이상해도 전전긍긍한다.

우리 집에서 일을 도와주던 할머니 말로는 환갑까지가 자기 명()이고 그 후의 삶은 다른 사람이 남긴 삶을 사는 거라고 했다.

환갑이 지난 지 2년이나 됐으니 나는 젊은 나이에 죽은 사람들의 생명을 덤으로 얻어 사는 것이다. 내 것 다 챙겨먹고 덤까지 먹었으면서 더 먹겠다고 아등바등하는 나는 도둑년이다.

캄캄한 어둠 속에서 한 치 앞을 몰라 더듬더듬 앞으로 나아가는 내 모양이 처량하다. 언제 어디서 죽음의 화살이 날아올지 몰라 이리저리 돌아보는 내 모양이 우습다.

 

이렇게 죽음을 두려워하는 걸 보면 죽을 날이 가까워지기는 가까워 졌나보다. 어차피 밑져야 본전, 아니 남는 장사인데 맘 편하게 살 수는 없을까?

 

소리로 말하다

이현숙(현아)

 

아침 설거지를 하는데 라디오에서 비제의 진주잡이중에서 귀에 남은 그대 음성이 흘러나온다. 이 노래는 대학교 1학년 때 처음 들었다.

팔당에 놀러갔을 때다. 배를 타고 강 건너로 가는데 한 ROTC생이 뱃전에 앉아 이 노래를 불렀다. 난생 처음 듣는 이 노래가 어찌나 내 심금을 울리는지 내 가슴에 박혔다. 사람이 아니고 강물이 노래하는 것 같은 착각에 빠졌다.

그 후 그 노래가 무엇일까 계속 궁금했다. 며칠 후 라디오에서 그 노래가 흘러나왔다. 귀를 쫑긋 세우고 볼륨을 높인 후 끝까지 들었다. 아나운서의 멘트가 나온다.

지금까지 비제의 진주잡이 중에서 귀에 남은 그대 음성을 테너 유시비오링의 노래로 들으셨습니다.”

그 노래가 불어인지 이태리어인지 나는 모른다. 가사는 한 마디도 알아듣지 못했다. 하지만 가슴을 파고드는 아픔은 절절이 차고 넘쳤다. 우리는 언어로 말한다. 아니 소리로 말한다.

짐승들도 우리말을 소리로 듣는 게 아닐까? 무슨 말인지 사람의 소리에 묻어 나오는 억양과 감정으로 그 뜻을 헤아리는 지도 모른다. 우리가 단 한 마디도 못 알아들으면서 노래를 듣고, 연주를 듣는 것처럼 말이다.

바이올린이나 피아노곡을 들으면서도 기쁨과 슬픔, 절망과 희망을 느낀다. 그 소리의 어떤 면이 우리 감정을 그토록 순식간에 뒤바꿔 놓는 것일까? 소리가 우리 귀청을 울리는 강도와 모양에 따라 뇌에 전달되는 신호가 달라질 것이다. 그 신호에 따라 우리 뇌는 움직이고 그 움직임에 따라 우리 감정이 변하는 지도 모른다.

소리는 에너지다. 큰 소리는 공기를 강하게 흔들어 유리창을 깨고 심한 경우 귀청을 찢는다. 이 에너지가 우리 뇌를 흔들고 우리 감정을 변화시킨다. 그 에너지로 새들도 의사소통을 하고 식물들도 음악을 들려주면 더 건강하게 잘 자란다.

모든 생물은 소리로 말한다. 인간이 바벨탑을 쌓다가 언어가 혼잡해져 탑 쌓기를 그치고 사방으로 흩어졌다고 한다. 하지만 인간은 언어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소리로 말한다.

그래서 우리는 어느 누구와도 어떤 생물과도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 인간이 큰 코끼리를 맘대로 부리고 돌고래를 춤추게 하는 것도 다 소리로 말하기 때문이다.

   

~ 네모네!

 

이현숙(李賢淑)

 

면목 중학교에서 근무할 때다. 하루는 수업을 마치고 계단을 내려오는데 3학년 담임선생님이 뒤따라 내려오면서

선생님, 별명이 뭔지 아세요?” 한다.

모르겠는데요?” 하니까

아네모네래요.” 한다.

나는 예쁜 아네모네 꽃을 상상하며 아네모네요?” 하니까

아네모네가 아니고, ~ 네모네! .” 한다.

순간 네모꼴을 이루고 있는 내 얼굴이 생각나서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사실 혼자서 거울을 보았을 때는 그렇게 까지 심각한 줄 몰랐다. 그 후에 전철을 타고 의자에 앉아서 앞의 유리에 비친 내 얼굴과 옆 사람들의 얼굴을 비교해 보았더니 정말이지 완전 메주다. 메주라고 안하고 발음이라도 좋게 아~ 네모네! 라고 붙여준 아이들이 고맙기도 하다.

 

그 후 아이들은 나를 4각형이라고 부르더니 그것도 더 줄여서 각형이라고 불렀다. 특히 전영훈이라는 학생은 나만 보면 한 손은 귀 옆에 수직으로 대고, 한 손은 턱 밑에 수평으로 대고 문질러 대면서

각형” “각형

하고 놀려댔다. 한 번은

각형이 뭐냐 듣기 좋게 아네모네라고 해라.”

했더니 그 다음부터는 더 신이 나서 나만 보면 양손을 얼굴에 대고 문지르면서

~ 네모네!” “~ 네모네!”

하면서 아주 신이 나서 춤까지 춘다. 어떤 때는 슬그머니 화가 나다가도 건강이 넘쳐서 소리 질러 대는 모습이 보기 좋아서 나도 같이 문질러 댄다. 특히 내 동생의 아들 정민이가 중3 가을에 백혈병이 걸려서 고등학교도 못 가고 고생한 걸 생각하면 힘이 뻗쳐서 날뛰는 아이들이 그렇게 좋아 보일 수가 없다.

악을 쓰고 떠드는 소리가 지상 최고의 음악으로 들릴 때도 있다. 펄펄 끓는 물을 끓지 못하게 손으로 찍어 누르려고 하는 내 모양이 너무도 어리석게 보인다. 힘이 넘쳐 끓어오르는 아이들을 내가 어떻게 누를 수 있겠는가?

지금도 집 근처 학교 운동장에서 아이들의 떠드는 소리와 뻥 뻥 공 차는 소리가 들린다. 병들어서 놀지 못하는 아이들도 많은데 얼마나 행복한 아이들인가? 이렇게 학교에 나와 뛰어 노는 아이들은 이미 부모에게 99%는 효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 네모네!’는 비록 짝퉁 아네모네이긴 하지만 나를 가장 잘 표현한 말이자 내가 가장 좋아하는 별명이다.

 

같이 놀자요

이현숙(현아)

 

요즘 매주 수요일마다 딸네 집에 가서 아이들과 논다. 딸이 수요일마다 다니는 곳이 있어 남편과 둘이서 아이들도 볼 겸 같이 놀다가 저녁까지 먹고 온다.

외손녀 송희는 요즘 한창 말이 늘었다. 아이들이 자랄 때 어휘력이 느는 걸 보면 경이로움을 느낀다. 언제 그 많은 단어들이 입력되어 술술 풀어내는지 신기하기 그지없다.

그런데 가만히 듣다보니 좀 어색한 표현을 쓴다. 말끝마다 자를 붙이는 것이다. 이거 하자요, 저거 하자요, 같이 놀자요. 왜 그럴까 생각해 보니 요즘 존댓말을 배우는 거 같다. ‘자를 붙이면 존댓말이 된다는 걸 알았나보다.

아이들이 말을 배울 때 나름대로 머릿속에서 어떤 구조를 생각하는 모양이다. 우리 아들이 어려서 누나와 함께 용마산에 올라갔다. 아들도 그때 한창 말을 배우는 중이었다. 산으로 들어서더니

엄마는 앞장서서 가고, 누나는 뒷장 서서 가. 나는 속장 서서 갈 테니까.”

그 말을 듣자 웃음이 절로 났다. 속이 안쪽이란 개념을 익혀 이런 말을 만들어낸 것이다.

어려서는 무슨 의문이 그토록 많은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질문을 해댄다.

우리 딸은 어느 날 문득 초승달을 보자 엄마 달이 깨졌네.” 하고

아들은 하늘의 별을 보다가 엄마 왜 별은 안 떨어져? 본드로 붙였어?” 했다.

끊임없이 질문을 퍼부어대던 아이들이 이제 다 커서 어른이 되었다. 어른이 되면 그 많던 호기심과 의문이 다 어디로 달아나는 것일까? 호기심이 다 해결된 것 같지는 않고 물어봤자 대답이 신통치 않으니 포기한 것 같다.

아니면 세상만사 하도 신경 쓸 곳이 많으니 웬만한 호기심은 다 묻혀 버렸는지도 모른다. 세파에 시달려 지치고 무디어져 호기심과 신기함이란 촉수가 다 닳아 떨어졌는지 나이가 들수록 매사가 시큰둥하고 그저 그런 것이 도무지 모든 일에 흥미가 없다.

내 자신도 이제 세상만사 다 그런 거지 뭐.” 하면서 도무지 알려고 하는 노력도, 배우려고 하는 열정도 다 식어 버렸다. 아마도 싸늘하게 식어 재만 남으면 그 순간 내 생명이 끝날지도 모른다.

좀 더 젊게 좀 더 건강하게 오래 살려면 끝없는 호기심과 열정으로 나 자신을 불태워야 할 것 같다.

 

둥구나무의 일기

이현숙(현아)

 

오늘도 내 발치에서 동네 아이들이 소꿉장난을 합니다.

동네 어른들도 내 그늘에 앉아 부채질을 하며 담소를 나누는군요.

길 가던 나그네는 마을로 들어서기 전 잠시 숨을 고릅니다.

 

매미와 쓰르라미는 내 몸에 앉아 맴 맴 쓰르람 울어댑니다.

강아지는 더위를 피해 내 밑에서 늘어지게 낮잠을 잡니다.

새들도 내 품으로 날아들고 벌 나비도 쉬어 갑니다.

 

지금 내 방에서 노는 아이들도 금방 어른이 될 겁니다.

어른이 되면 다들 시집 장가를 가겠지요.

그들의 아이들이 또 줄줄이 태어날 겁니다.

 

오늘도 나는 묵묵히 서서 흘러가는 사람의 강을 바라봅니다.

 

가까이 하기엔 너무 괴로운 당신

이현숙

 

지난여름 딸이 이사를 하려는데 날짜가 맞지 않아 5일정도 우리 집에 와 있었다. 외손자 건희와 외손녀 송희랑 노는 것도 만만치 않다.

햇살이 따가워 껍질이 벗어질 지경인데 놀이터 가잔다. 가자는데 안 갈 수도 없어 밖으로 나가니 완전 찜질방이다. 이런 살인적인 더위에도 아이들은 잘도 논다. 밧줄 잡고 기어 올라가 뜨끈뜨끈한 미끄럼틀을 타고 내려온다. 사가정공원 계곡물에서 또 한바탕 놀더니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단다. 결국 아이스크림을 한 개씩 입에 물고야 집으로 들어온다.

  낮에는 그런대로 같이 놀만한데 밤이 더 문제다. 할머니하고 잔다고 두 녀석이 내 양옆에 눕는다. 건희는 그래도 오빠라고 좀 점잖은데 송희는 대책이 없다.

불을 끄니 벽에 걸린 그림이 무섭단다. 그건 예수님 그림이라고 하니

나 예수님 싫어.” 한다.

할 수 없이 일어나 액자를 떼어 다른 방에 갖다 놓았다. 조금 있더니 곰 인형이 싫단다. 또 일어나서 베란다에 내다 놓았다.

가만히 누워있더니 마루에서 나는 텔레비전 소리 때문에 집중이 안 된단다. 자는데 무슨 집중이 필요한지 모르겠다. 아무래도 잠이 안 오는지 마루로 쪼르르 나가더니

할아버지 텔레비전 소리 때문에 집중이 안 돼요.” 한다. 남편이 소리를 모기소리만큼 줄이니 들어와 다시 눕는다. 조금 있더니 또 뛰어 나간다. 또 집중이 안 된다는 것이다. 남편은 할 수 없이 텔레비전을 끈다.

방에 와 자리에 눕더니 이번에는 자기가 내는 문제를 맞히란다.

“1번 문제 : 스폰지밥의 제일 친한 친구는?”

“2번 문제 : 핑핑이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은?”

“3번 문제 : 징징이가 제~일 싫어하는 사람은?” 하며 끝없이 이어진다.

전부 자기가 보는 만화영화 내용이다. 그러니 맞출 수가 있겠는가?

결국은 자기가 답을 다 맞힌다.

  어쩌다 건희가 미국 택시는 베이지색이라고 하자 자기가 그거 타 봤다고 우긴다. 건희가 너 미국 간 적 없다고 하자 무조건 타 봤다는 것이다. 이래서 사위는 자기 딸이 깡패란다.

하도 지쳐 눈좀 감고 있으려면 금방 알아채고

할머니 눈 감으면 안 되죠.” 하며 눈도 못 감게 한다. 우여곡절 끝에 잠이 들면 또 사방팔방으로 돌아다니며 내 얼굴을 발로 차고 다리를 얹어 놓고 생난리다. 5일이니까 참았지 하루만 더 있었으면 완전 돌아버릴 뻔 했다.

  그런데 가고 나니 왜 이리도 허전한지 하루로 못 되어 보고 싶다. 방이 갑자기 넓어진 것 같고, 깔고 자던 요도 갑자기 커진듯하다. 이래서 인간은 간사하다고 하나보다. 손자가 오면 반갑고 가면 더 반갑다고 하는 말이 있다. 할머니들이 얼마나 힘들면 이런 말이 생겼을까?

하지만 힘든 걸 감수하면서도 자꾸 보고 싶은 것은 어쩔 수 없는 천륜인가 보다. 손녀는 한 마디로 멀리 하기엔 너무나 보고 싶고, 가까이 하기엔 너무 괴로운 당신이다.

 

알라스카의 눈사람

현숙이

 

알라스카에 있는 북미 최고봉 매킨리 산에 갔다. 40kg이나 되는 짐을 썰매로 끌고 배낭에 지고 개고생하며 걸었다. 1718일 동안 빙하 위에서 텐트 치고 살았다. 눈밭에서 세수도 못하고 머리도 못 감고 거지 중에 상거지 꼴이 되었다. 눈을 퍼서 녹여 밥도 짓고 이도 닦았다. 5000m 높이까지 가느라 초죽음이 되어 눈이 퀭하니 들어갔다.

  마지막 날 사력을 다해 랜딩 포인트로 내려왔다. 먼저 도착한 기아팀은 경비행기를 타고 앵커리지로 날아갔다. 랜딩 포인트에 도착하는 순서대로 대기표에 이름을 적어 놓고 경비행기가 오기를 기다린다. 빌렸던 설피는 반납하고 산더미 같은 짐을 쌓아 놓고 비행기를 기다리는데 한 번 간 비행기는 함흥차사로 소식이 깡통이다.

햇볕은 따갑고 나무 한 그루 없는 설원에서 오후 내내 기다렸다. 하늘은 눈이 시리도록 푸른데 계곡에 안개가 가득하다. 비행기에게 안개는 쥐약이다. 앵커리지 가면 샤워하려고 샤워 순서까지 정해 놓고 기다리는데 태고의 정적만 감돌 뿐 비행기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온 신경을 귀에 모으고 아무리 기다려도 무서우리 만큼 무거운 침묵만 감돈다.

이렇게 애를 태우며 기다리는데 경기연맹의 유대장님이 눈을 뭉쳐 눈사람을 만든다. 동그란 초콜릿을 박아 눈을 만든 다음 가는 막대를 잘라 눈썹과 코, 입도 만들었다. 조금 긴 막대를 꽂아 두 팔을 들고 만세를 부르게 했다. 왼쪽 눈은 파란 눈이요, 오른쪽 눈은 빨간 눈이다.

짓누르던 침묵을 깨고 현 상황을 즐기는 모습이 보기 좋다. 눈사람을 보기만 해도 얼굴 가득 미소가 번진다. 그 후 23일 폭설에 갇혀 꼼짝 못하고 있는 동안 이 눈사람을 볼 때마다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요즘은 눈사람 보기도 힘들다. 학원 다니느라 너무 바빠서 그런지 더 재미있는 놀이가 많아서 그런지 눈덩이를 굴리는 아이들 모습을 볼 수 없다. 눈이 내리기가 무섭게 염화칼슘을 뿌려 녹여 버리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아니면 대기가 오염되어 눈이나 비가 더럽다는 생각이 머리에 박혀 있을 수도 있다. 눈을 뭉치고 굴리고 눈, , 입 만드는 게 힘들어서 그런가? 아무튼 눈사람은 우리에게 영원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실제 상황의 눈사람은 없어져도 우리 마음속의 눈사람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이 세상은 언제 보려나?

 

이현숙(소연)

 

2호선 열차로 갈아타려고 건대입구역 승강장에 서있다.

이 역사의 지붕은 가운데가 뚫려있다.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린다.

멍하니 천장을 바라본다.

뚫린 지붕 사이로 가는 빗줄기가 파고든다.

 

눈을 내려 주위 사람들을 돌아본다.

모두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있다.

밖에서는 비가 오는지 눈이 오는지 도무지 관심이 없다.

 

전철이 들어온다.

문이 열린다.

여전히 화면만 바라보며 열차에 오른다.

 

회사에 도착하면 하루 종일 컴퓨터 화면만 들여다 볼 것이다.

퇴근길에는 또 핸드폰에서 눈을 떼지 못할 것이다.

 

현실은 잊은 채 가상의 현실만 바라본다.

가상의 현실만 바라보다가 저 세상으로 가버리는 건 아닐까?

아름다운 이 세상은 언제 보려나?

 

웬수 같은 술

이현숙(소연)

 

이모는 술과 노래를 즐겼다. 아궁이 앞에서 불을 때면서도 부지깽이로 장단을 맞추며 노래를 불렀단다.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술이 점점 늘더니 급기야 알코올중독이 되었다.

수시로 나가서 술 먹고 거리에 쓰러져 잠이 들었다. 이모부의 잔소리가 심해지자 아주 집을 나가 버렸다. 상심한 이모부는 목을 매어 자살하고 말았다.

외할아버지도 친정어머니도 술을 즐겼다. 이런 유전인자 때문인가 막내 동생도 알코올 중독이 되었다. 동생 남편은 이걸 고쳐보려고 때려도 보고 달리도 보고 몇 년간 무지 애를 썼다. 눈탱이가 밤탱이 된 동생을 보면 나도 가슴이 아팠다. 하지만 할 말이 없었다. 속으로만 살기 힘들면 안 살면 되지 왜 때리고 야단이야 하며 툴툴 거렸다.

아이들도 돌보지 않고 술에 취해 인사불성으로 쓰러지는 일이 잦아지자 동생 남편이 이혼을 제기했다. 나에게 미리 전화가 왔었다. 나는 언니로서 좀 더 참아달라고 애원하기는커녕 못 살겠으면 이혼해야지 별 수 있냐고 하였다. 결국 동생은 친정집으로 혼자 와 버렸다.

동생은 술을 더 마셨고 병원에 수시로 입원과 퇴원을 거듭했다. 이 꼴을 본 아버지는

아이고 내가 왜 이리도 복이 없나? 마누라는 일찍 죽고 딸은 이혼하고

하며 한탄을 했다.

나이 90이 되도록 마음 고생하는 아버지가 안쓰럽다. 그랬다고 동생을 우리 집에 오라고 할 맘은 추호도 없다. 어쩌다 전화만 와도 또 무슨 사고 쳤나 하고 가슴이 덜컹 내려앉는다.

이 웬수 같은 술은 도대체 누가 만들었을까? 한 번 술이 들어가면 브레이크가 파열된 자동차처럼 통제 불능으로 달려간다. 도저히 멈출 수가 없나보다. 이것도 일종의 병이다. 뇌에서 무슨 효소가 너무 많이 나와서 그렇다고도 한다.

하지만 술도 적당히 마시면 약이 된다고 한다. 그러니 술은 사람에 따라 웬수가 되기도 하고 은인이 되기도 한다. 우리 큰아버지는 매일 막걸리 몇 잔씩 드시는데 지금 98세다. 아버지도 매일 막걸리 드시는데 90세인 지금까지 치매도 없고 오토바이 타고 잘 다니신다.

내 동생에게도 술이 은인이 될 수는 없을까? 그런 날이 오기를 손꼽아 기다린다.

 

가슴살을 떼어 간 듯

 

아네모네 이현숙

 

언니의 결혼식 날이다. 하필 대학교 중간고사가 있는 날이다. 학교 간다고 가방 들고 나오는 나의 등에

너는 언니 결혼식 날도 학교 가냐? 무슨 정승 판서라도 할꺼냐?”

하며 쏘아대는 엄마의 목소리가 등에 꽂힌다.

강의실에 들어가 빨리 쓰고 결혼식에 가려는데 조교가 영 나타나지 않는다. 시간은 다가오고 할 수 없이 포기하고 그냥 결혼식장으로 갔다. 나중에 교수님께 말씀드리고 보고서로 대신해 달라고 떼 쓸 용기도 없던 나의 학점은 D가 나왔다.

허둥지둥 결혼식장에 도착했다. 동원예식장이었던 것 같다. 언니는 눈처럼 하얀 웨딩드레스를 입고 꽃가마에서 내려와 선녀같이 걸어 들어간다. 언니를 보는 순간 가슴에서 생살을 도려내듯 싸늘한 칼날의 느낌이 스친다.

엄마 뱃속에서 떨어진 이후로 함께 자고 함께 놀고 함께 공부하던 언니가 나를 영원히 떠난다는 생각에 가슴에 구멍이 뚫린 듯 찬바람이 휭 휭 들어온다.

  결혼식을 마치고 이모들과 다른 친척들이 집으로 몰려와 한바탕 놀고 저녁이 되자 모두 돌아갔다. 사방에 어둠이 몰려오자 갑자기 아버지가 눈물을 흘린다. 항상 내성적이고 감정을 드러내는 일이 없던 아버지다. 엄마도 깜짝 놀라면서 시집 와서 아버지 우는 것 처음 본다고 하였다. 잔칫집은 갑자기 초상집으로 변한 듯 울음바다가 되었다.

첫 딸을 보내는 아버지 마음은 당해본 사람이 아니면 어느 누구도 모를 것이다. 그 후로도 아버지 우는 모습은 본 적이 없다. 친정 엄마가 돌아가셨을 때도 어쩔 줄 모르고 당황하기는 해도 눈물은 보이지 않았던 것 같다.

내가 결혼식을 마치고 신혼여행 갔다 와서 문득 아버지 울던 생각이 났다. 동생에게 내 결혼식 마치고 와서도 아버지가 우셨냐고 물으니 안 울었단다. 조금 서운한 생각이 들었다.

  인간은 어머니 뱃속에서 나와 탯줄이 잘리는 순간부터 상실감을 느낀다고 한다. 어쩌면 아담과 하와의 몸속에서 죄를 짓고 에덴동산에서 추방당했을 때부터 인지도 모른다. 문득 문득 스며드는 상실감은 태고적부터 비롯되었을 것이다. 죽으면 간다고 하는 천국이 에덴동산인지도 모른다.

모든 사람은 평생 동안 무수한 사람과 만나고 헤어지며 수많은 상실감을 맛본다. 기르던 동물이 죽거나 키우던 화초가 죽어도 아픈 상처를 받는다.

죽음의 문을 넘어 가면 그곳에서 다 함께 다시 만나 즐거움을 나눌 수 있을까? 정말 천국과 지옥으로 나누어져 서로 다른 곳으로 간 사람은 영원히 만나지 못하는 것일까? 언니는 천국에 있을까? 엄마도 천국에 있을까? 지옥에 있다면 나는 어디로 가야하나?

 

경로증 없는 경로

 

아네모네 이현숙

 

건대역에서 전철을 갈아타기 위해 2호선 쪽으로 올라왔다. 항상 내가 타는 위치인 2-1로 가니 웬 여자가 나를 힐끔 쳐다본다. 내 나이를 가늠해보는 것이다. 2-1은 경로석 표시가 있는 곳이다.

마음속으로 이 인간에게 경로석을 양보해야하나 말아야하나 한참 고민하고 있을 것이다. 나도 경로석 위치에 있다가 더 나이든 사람이 오면 슬그머니 다른 쪽으로 이동한다. 그럴 틈도 없이 전철이 들어오면 빈자리와 노인 수를 맞춰본다. 빈자리보다 노인이 많으면 아예 반대편 문 쪽으로 가서 읽을 책을 펴든다.

나는 경로증도 없으면서 경로석을 좋아한다. 경로석이 아닌 곳에 서 있다가 젊은 사람이 벌떡 일어서는 꼴을 몇 번 당하고 나니 그쪽으로 가기가 겁난다. 공연히 젊은 사람에게 부담을 주는 것 같아 내가 부담스럽다.

경로가 아닌 주제에 경로석에 앉아 있으려니 좀 눈치가 보이기는 한다. 전철이 설 때마다 나보다 나이 많은 사람이 타지 않는지 살펴야한다. 나이 든 사람이 타면 저 사람이 나보다 나이가 많을까 적을까 얼굴의 주름살을 살펴본다.

사실 요새는 나이보다 젊어 보이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얼굴만 보아서는 알 수가 없다. 그러니 나보다 훨씬 더 들어 보이는 사람이 타면 일어서지만 웬만하면 그냥 버틴다. 나는 나이보다 더 늙어보여서 웬만하면 경로인 줄 안다. 누가 경로증 보자고 하는 사람도 없으니 말이다.

남편은 일반석을 좋아한다. 경로석이 비어 있어도 젊은 사람 쪽 의자에 앉는다. 나는 젊은 사람이 경로석에 앉을 수도 없는데 늙은이가 거기 앉으면 어쩌라는 소리냐고 핀잔을 준다.

사실 젊은 사람들도 하루 종일 직장에서 시달리니 엄청 피곤할 것이다. 나처럼 백수에 손주도 안 보는 사람이 서서 다녀야한다. 그래도 빈자리가 있으면 잽싸게 그곳으로 달려가는 버릇이 아주 몸에 뱄다.

오랜 세월 전철을 타다보니 눈치 150이 되어 어느 칸이 헐렁한지 어느 시간이 여유 있는지 직감으로 안다. 이 정도 점수면 죽어 저승 갈 때도 눈치껏 잘 통과할 것 같다.

사실 경로(敬老)라고 하면 존경받는 노인을 말한다. 그런데 내가 나를 보면 존경 받기는커녕 경멸 받게 생겼다. 두 다리 멀쩡하여 서서 갈만도 한데 굳이 빈자리를 찾아 헤매는 내 모양이 추하다 못해 모멸감이 느껴질 때도 있다.

가끔 경로석 자리를 놓고 큰소리가 날 때도 있다. 젊은 사람이 경로석에 앉았다가 나이 드신 분에게 호통을 듣고 쫓겨나기도 한다. 너무 호되게 야단을 쳐서 곁의 사람이 민망해지기도 한다.

참다운 경로가 되려면 젊은이들에게 존경 받을 말과 행동을 해야 한다. 젊은 사람들에게 존경해 달라고 애원하지 말고 존경을 받을 만한 인품을 갖춰야겠다. 몸도 마음도 건강한 참다운 경로가 되고 싶다. 앞으로 경로증 나올 때까지 명실 공히 존경받는 경로가 되도록 노력해야겠다.

 

하나님도 참 너무 하시네

 

이현숙

 

연잎 밥을 먹는다. 쫄깃쫄깃 고소하고 달콤한 맛이 일품이다. 내 생전에 이렇게 맛있는 연잎 밥은 처음이다. 앞에 앉아 맛있게 먹는 남편을 보니 미안한 생각이 든다.

이 연잎 밥은 내가 만든 것이 아니다. 같이 산에 다니는 미혜씨가 만들어 준 것이다. 엊그제 미혜씨가 갑자기 전화를 하여 연잎 밥을 가져오겠다는 것이다. 수지 사는 것을 아는지라 여기까지 뭐 하러 오느냐고 하니 그쪽 부근에 갈 일이 있으니 가는 길에 갖다 주겠다는 것이다.

  칼바람이 부는데 우리 아파트 앞까지 와서 전화를 한다. 내려가니 퍼렇게 언 얼굴로 주차장에 서 있다. 잠깐 들어오라고 해도 곧 가야한다고 쇼핑백을 건네주며 먹는 법을 일러준다.

찜통에 물을 넣고 끓이다가 김이 오르면 겉 포장지를 벗기고 넣어 20분간 익히라는 것이다. 나머지는 냉동실에 넣었다가 두고두고 먹으라고 친절히 일러준다. 하나하나 연잎에 싼 후 예쁜 한지로 정성스럽게 포장하여 십자로 잘 묶은 연잎 밥은 무슨 궁중요리 같이 생겼다.

  다음 날 미혜씨가 가르쳐 준대로 김에 쪄서 접시에 올려놓고 연잎을 열었다. 보들보들한 찰밥에 밤 대추 호두 은행 잣 등 온갖 견과류를 넣어 오색찬란한 밥이 그야말로 명품 연잎 밥이다.

맛나게 먹는 남편의 얼굴을 보는 순간 하나님도 참 너무 하시네.’하는 생각이 든다. 순간의 선택이 10년을 좌우한다는 광고가 있었는데 이건 순간의 선택이 평생을 좌우한다.

어떤 사람은 부인 잘 만나 평생 호의호식하며 호강하고 사는데 내 남편 같은 사람은 평생 험한 음식 먹고 대접도 못 받고 산다. 하나님은 여러 가지 좋은 점을 골고루 섞어 주면 좋으련만 미혜씨 같은 사람에게는 온갖 좋은 점을 다 몰아주고 나 같은 사람에게는 한 가지도 좋은 점이 없으니 참 너무하시다.

마누라 한 번 잘못 만나 평생 고생하는 내 남편은 참 마누라 복도 지지리 없는 인간인가보다. 미혜씨는 얼굴도 클레오파트라 뺨치게 예쁜데다가 피부도 백옥 같아 카메라를 들고 있으면 자꾸 찍고 싶어진다. 같은 여자가 봐도 이 지경인데 남자들은 오죽할까?

마음씨도 어찌나 고운지 말 그대로 비단결같이 곱다. 야들야들하니 애교도 만점이다. 남편을 어찌나 지극정성으로 모시는지 남편이 무엇이 먹고 싶다고 하면 시간 불문 장소불문 불원천리 달려가서 재료를 구해다가 해 먹인다. 남편이 힘들까봐 혼자서는 해외여행도 안 간다.

  나는 어떤가? 생긴 것도 박색인데다가 성질도 지랄 맞다. 요리라고는 젬병이라 잘 하는 게 하나도 없다. 요리하기도 싫어해서 시장에서 만든 반찬을 사다 놓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국도 한 번에 한 솥 가득 끓여서 1주일씩 먹인다. 어쩌다 남편이 뭐라고 하면 난~~ ~ 하고 나자빠지거나 당번을 바꾸자고 대든다. 남편은 빨래 당번이고 나는 밥 당번인데 이걸 바꾸자고 협박을 하면 아무 소리도 안 한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밥 당번이 훨씬 힘들다. 밥은 뭐 해먹을까 생각해야지 시장 봐야지 요리해야지 보통 골치 아픈 게 아니다. 밥은 하루에도 몇 번씩 차려야 하지만 빨래는 며칠에 한 번만 해도 되고 아무 생각 없이 빨기만 하면 되니 얼마나 쉬우냐 말이다.

  김장이란 건 언제 해봤는지 기억도 없다. 수년간 남들이 김장했느냐고 물을 때마다 안한다고 했더니 미장원에서도 주고, 자주 가는 음식점에서도 주고, 교회 장로님도 주고 사돈댁에서도 준다. 어떤 해에는 김장한 것 이상으로 많다. 게으른 년도 죽으라는 법은 없나보다.

그것뿐이 아니다. 원체 쏘다니기를 좋아해서 툭하면 해외여행 간다고 몇 주일씩 집을 비운다. 남편은 먹는지 굶는지 반찬도 안 해놓고 그냥 간다. 그런데 다녀오면 죽지 않고 멀쩡히 살아있다.

이렇게 기생충 모양으로 살다보니 양심에 좀 찔리기는 한다. 남편이 퇴직하고 나이가 많아지니 더 미안하다. 소파에 앉아 TV를 보는 남편의 구부정한 등을 보면 내가 잘 해먹이지 못해서 저런가 하는 생각도 든다.

  늙은 여자에게 꼭 필요한 것 세 가지는 첫째 건강, 둘째 돈, 셋째 친구라고 한다. 늙은 남자에게 꼭 필요한 것 세 가지는 첫째 마누라, 둘째 부인, 셋째 집사람이란다. 그런데 나 같은 마누라에게도 해당되는 소린지 모르겠다. 앞으로는 남편에게 필요충분조건을 다 만족시켜주는 일등 마누라가 되었으면 좋으련만.

 

엮는 글

이현숙

 

많은 생각들이 물거품처럼 솟아올랐다가 사라집니다. 모든 생각이 망각의 강으로 흘러갑니다.

  등산을 하다가 스쳐지나가는 풍광이나 수줍은 듯 숨어 핀 야생화를 보면 카메라를 들이댑니다. 그 풍경을 두고 가기 아까워 카메라에 넣어 갑니다. 어찌 보면 사진을 찍는 사람들은 욕심쟁이인지도 모릅니다. 그냥 보는 것만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집에 가져가고 싶어 합니다.

  사진을 찍듯이 글을 씁니다. 사색의 강에서 흘러가는 사물을 건져내어 글로 붙잡아 둡니다. 글을 보면 사진을 보듯이 그 때의 생각과 감정이 되살아납니다. 세월의 강에서 흘러가는 나의 존재를 이 세상에 남겨두고 싶어 글을 씁니다. 나는 사라져도 내 글은 여기 남아 내 후손에게 보여주고 싶습니다. 그들에게 내 생각과 내 감정을 전하고 싶습니다.

  산은 나의 애인입니다. 나를 들뜨게 하고 환희에 사로잡히게 합니다. 하얀 설국에서 희열을 맛봅니다. 산의 품에 안길 때마다 이 세상에 나오길 참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글은 나의 반려자입니다. 내가 늙고 병들면 애인은 나를 떠날 것입니다. 나는 타다 남은 재를 바라보며 추억에 잠겨 살겠지요. 반려자인 글은 나를 떠나지 않고 내가 늙어 죽도록 함께 할 것입니다.

  한 곳에 박혀 찰나의 삶을 사는 우리는 글을 통해 세계 방방곡곡의 사람과 만나고 우리의 후손들과도 영원한 만남을 이룰 수 있겠지요?

  우리 모두의 작은 마음을, 이 짧은 순간의 생각을 이 책에 모았습니다. 먼 훗날 누군가 우리글을 본다면 아~ 이 때 우리 조상들은 이런 생각을 하며 이런 느낌으로 세상을 살았구나 하겠지요?

  이 책이 나오기까지 지도해 주신 선생님과 글 친구들에게 감사드립니다. 

2012년 봄 미래수필 문학회

회장 이현숙

 

병연씨 보시오.

  이현숙

이보시오 삿갓양반 요새 당신 묘에 가 봤소?

10여년 전만해도 당신 묘를 찾아 가려면 비포장 길로 얼마를 털털거리며 들어갔소. 계곡 옆 잡초 속에 묻힌 초라한 묘가 당신 것인지 알아보기도 힘들었소.

며칠 전 롯데트래킹 회원들과 영월에 있는 마대산 가는 길에 당신 묘소에 가보니 많이 변했더이다. 깔끔하고 깨끗한 계곡에 공원을 만들고 당신 묘도 왕릉만은 못해도 그럴듯하게 잘 가꾸어 놓았소. 상석도 널찍한 자연석을 가져다 놓았고 비석도 큼직한 돌로 거창하게 세워 詩仙 蘭皐 金炳淵之墓라고 큼직하게 써 놓았소. 이 묘비명 마음에 드시오?

당신 묘가 있는 영월군 하동면은 아예 이름도 김삿갓면으로 바꾸고 당신의 유적지를 발굴하여 난고 김삿갓 문학관까지 지어놓았소. 공짜면 들어가려고 했는데 입장료가 1000원이라고 해서 안 들어갔소. 미안하오.

  공원 입구 주차장에는 삿갓 모양의 조형물이 서 있고 계곡에는 붓과 벼루 모양으로 만든 다리가 놓였더이다. 다리를 건너 묘 쪽으로 걸어가니 당신의 살던 집과 묘를 찾아내고, 당신이 남긴 시를 수집하여 김삿갓의 유산이란 책도 만든 박영국 선생 공적비가 보이더이다. 당신이 이렇게 알려지게 된 것은 다 이 사람 덕이니 나중에 만나거들랑 감사의 인사나 하시오.

당신 묘를 지나 계곡으로 오르다가 오른쪽 능선을 타고 오르니 처녀봉이 나오더군요. 당신도 여기 올라가 봤소? 무슨 처녀가 그리도 콧대가 높은 지 올라가는데 숨 끊어지는 줄 알았소. 아무래도 이 처녀는 콧대가 너무 높아 여태 시집을 못 간 것 같소. 당신의 그 신랄한 풍자시로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 놓지 그랬소. 그러면 벌써 시집가서 할미가 되었을 텐데 말이요.

처녀봉에 오르니 몇 백 년은 된 것 같은 노송이 있었소. 우리는 노송의 기를 받으려고 얼싸안고 사진을 찍었소. 당신도 이 소나무 보았소? 정말 멋지게 생겼더이다.

여기서 마대산 정상 쪽으로 조금 가니 그 방향에 총각봉이 있다고 써 있고 오른쪽 능선 아래로 가면 약수터가 있다는 표지판이 있더이다. 당신 이 물 먹어봤소? 나는 내려가기 싫어서 그냥 통과했소.

능선을 따라가니 전망바위가 나오고 거기서 더 가니 마대산 정상 표지석이 있었소. 전망바위가 총각봉인지 마대산 정상이 총각봉인지 모르겠소. 이거 어디 되겠소? 처녀봉은 멋지게 표지판을 해놓았는데 총각봉은 이름도 없으니 남자 체면이 말씀이 아니오.

당신 지금 세상에 태어나지 않은 게 천행인 줄 아시오. 요즘은 남자들 대접이 말씀이 아니오. 당신처럼 처자식 돌보지 않고 삿갓이나 쓰고 돌아다니다가는 당장 이혼감이요.

나이든 여자에게 꼭 필요한 세 가지는 첫째 건강, 둘째 돈, 셋째 친구라고 하오. 나이든 남자에게 꼭 필요한 세 가지는 뭔지 아시오? 첫째 부인, 둘째 마누라, 셋째 집사람이라오. 그런데 그런 부인을 팽개치고 가출했단 말이오?

그래도 아들 하나는 잘 두었더이다. 당신이 화순의 한 집 사랑방에서 객사한 후 3년이 지나서 당신을 찾아 불원천리 헤매던 둘째 아들 익균이가 여기까지 찾아갔소. 당신 유해를 수습해 영월까지 운구하여 이곳에 묘를 썼으니 이런 효자가 어디 있소.

  당신이 스무 살 때 영월 동헌에서 열린 백일장에서 장원급제 했지요? 할아버지 김익순의 죄상을 신랄히 비판한 사실에 마음이 너무 괴로워 가출한 것까지는 그런대로 이해할만 하오. 하지만 할아버지인 줄 모르고 그랬으니 누가 뭐라 하겠소. 모르고 지은 죄는 죄가 아니라고 하지 않소. 그러니 잠시 후 집으로 들어갔어야 옳죠. 평생을 그렇게 돌아다닌단 말이오?

어머니가 아무 말도 안 해 주었으니 할아버지가 홍경래의 난 때 그에게 항복한 죄인인 줄 어찌 알았겠소. 사실 병법 중의 최고수는 삼십육계 줄행랑이라 했소. 질 것 같으면 도망가고 그도 저도 못하겠으면 항복을 해서 무고한 백성들 생명 구해 주는 것이 지도자의 길인지도 모르오.

당신 부인 심정 생각해 봤소? 당신이 20살에 장원급제 한 후 22살에 방랑길에 나섰으면 부인도 20대였을 텐데 그런 여인을 청상과부 신세를 만들었으니 당신 지은 죄가 너무 크오. 할아버지에게 지은 죄보다 부인에게 지은 죄가 더 큰 것이오. 또 아이들은 어떻소? 아들이 세 명이라고 했는데 도대체 몇 살에 결혼했기에 그 나이에 애가 셋이란 말이오.

그 어린 아이들 데리고 평생 고생하며 키웠을 부인에게 지금이라도 저승에서 잘 해주시오. 아이들은 아비 없는 자식 같이 얼마나 기죽어 살았겠소. 아이들에게도 사죄하시오.

할아버지를 만나니 잘 했다고 칭찬하더이까? 나 같으면 나쁜 놈이라고 따귀를 올려붙였을 것이오. 내 손자가 내게 욕 좀 했기로서니 평생 집도 절도 없이 떠돌아다니는 것은 내가 원하는 바가 아니오. 말이 좋아 방랑시인이지 솔직히 말하면 거렁뱅이 아니요? 할아버지 마음이 얼마나 아팠겠소. 지금이라도 잘못했다고 무릎 꿇고 비시오.

  정상에서 내려오는 길에 김삿갓 주거지가 있더이다. 당신이 가족과 살던 집이라는데 다 쓰러져 가던 집을 영월군에서 2002년에 복원하였소. 집 앞에는 무쇠 솥도 걸려있고 굴뚝에서는 연기도 나는 것이 누군가 사는 것 같았소. 담벼락에는 장작도 패서 가지런히 쌓아 놓았소. 아마 당신 사당을 지켜주는 사람인지도 모르오.

본채 옆에는 난고당이란 사당을 만들고 당신 초상화를 벽에 걸어 놓았소. 초상화를 보니 당신 참 미남이요. 그런데 이 얼굴 정말 당신 얼굴 닮았소? 초상화 앞에는 긴 제단이 있고 흰 천으로 덮은 후 향로도 놓여 있소. 사람들이 향을 피울 때 향내가 좋더이까? 다 영월군수 잘 만난 덕이요. 매년 10월초에는 "난고 김삿갓 문화큰잔치"도 열린다고 하오.

  57세에 죽었으니 환갑 못 살았구려. 하긴 제대로 먹지 못하고 잠자리도 엉망이었을 텐데 그 정도 산 것도 다행이요. 나는 지금 63살이요. 많이 살았다구요? 그런 말마시오. 지금은 평균수명이 엄청 길어졌소. 당신도 지금 살았으면 더 많이 살았을 거요.

  지금은 당신 같은 방랑객을 노숙자라고 부르오. 노숙자가 쓰러져 있을 때 119에 신고하면 병원에 데려다주고 공짜로 병도 치료해주고 밥도 먹여주지요. 독거노인에게 매일 도우미가 찾아가 빨래도 해주고 청소도 해주고 음식도 해주오. 매달 용돈도 몇 십만 원씩 주지요.

당신도 이런 세상에 살았으면 팔자 피는 건데 참 안됐소. 억울하면 다시 오시오. 다시 와서 시 한수 읊어보시오. 우리 어렸을 때는 이 시를 노래로 많이 불렀소.

 

죽장에 삿갓 쓰고 방랑 삼천리

흰구름 뜬 고개 넘어 가는 객이 누구냐

열두 대문 문간방에 걸식을 하며

술 한 잔에 시 한 수로 떠나~가는 김삿갓~

 

그런데 요즘은 이런 노래 부르는 아이들이 없소. 아마 다들 당신을 잊어가는 모양이요. 그래도 너무 서운해 하지 마시오. 당신은 없어도 당신 시는 우리 가슴에 영원히 남아 살아있을 것이오. 그리고 이런 시일랑 이제 그만 지으시오. 볼수록 처량 맞소.

 

새도 집이 있고 짐승도 집이 있어 모두 거처가 있건만

거처도 없는 내 평생을 회고해보니 이 내 마음 한 없이 서글프구나.

짚신 신고 죽장 짚고 가는 초라한 나의 인생 여정 천리 길이 머나먼데.

 

당신이 왜 집이 없소? 멀쩡한 집 놔두고 노숙자 되지 않았소? 이제 저승에서 어머니도 만나고 부인도 만나고 아들도 만났을 테니 온 가족이 모여 배불리 먹고 등 따시게 사시오.

  암튼 당신 덕에 마대산 산행 잘 하고 당신이 남긴 시도 잘 읽었소. 공원 곳곳에 당신 시를 많이 걸어 놓아, 오는 사람 가는 사람 다 읽도록 해 놓았더이다. 다시 한 번 부탁하는데 나중에 영월군수 만나거들랑 술 한 잔 거하게 대접하시오.

 

201112월 서울 면목동에 사는 노망난 할미가 헛소리 좀 했소.

고깝게 듣지 마시오.

 

영화 보기도 힘드네

 

현숙이

 

수필교실 수업에서는 책을 읽고 독후감을 쓰거나 영화감상을 하고 감상문을 쓰는 숙제가 있다. 지난 학기까지는 독후감뿐이었는데 이번 학기부터는 영화감상문도 된단다.

 

숙제도 할 겸 면목로터리 선생님들과 영화를 보러갔다. 사실 무엇이 재미있는지 잘 모른다. 그냥 우리가 만나는 시간에 적당한 것 중 여러 관에서 하는 걸 고른다. 우리는 경로가 많아서 영화비도 싸다. 50% 할인이 되니 8000원 짜리가 4000원이다. 경로가 5명 비경로가 2명뿐이다.

무얼 볼까 하다가 스티븐 스필버그가 감독한 틴틴 유니콘호의 비밀을 골랐다. 틴틴이 뭔지 유니콘호가 뭔지 듣도 보도 못한 소리지만 스티븐 스필버그가 만든 영화라 괜찮을 것 같아 이걸로 골랐다. 유니콘이 무엇인가 사전을 찾아보니 뿔이 하나인 전설의 동물이라고 한다. 돛단배 이름이 유니콘이다. 그러고 보니 그 배에 외뿔소가 조각되었던 것 같다. 하긴 유니크가 하나라는 뜻이고 혼이 뿔이라는 소리니 이게 합성되어 유니콘이 되었나보다.

  틴틴은 기자이름이다. 특종기사를 쓰고 싶어 하는 건 기자들의 공통된 특성이다. 그는 벼룩시장 같은 데서 멋지게 생긴 유니콘호의 모형 배를 1파운드에 산다. 사자마자 어떤 사람이 나타나 2파운드 줄 테니 팔라고 한다. 싫다고 하는 말이 떨어지기도 전에 다른 사람이 달라는 대로 다 주겠다고 한다. 그래도 거절하고 집으로 돌아와 거실 장식장 위에 올려놓았다.

그가 기르는 개 스노위와 고양이가 난리를 치며 싸우는 통에 모형배가 떨어져 돛대가 부러져 장 밑으로 굴러 들어갔다. 그가 없는 사이 누군가 침입하여 집을 온통 쑥대밭으로 만들고 모형배도 사라졌다.

그는 장 밑에 떨어진 돛대에서 비밀지도를 발견한다. 지도에 적힌 삼형제가 모이면 정오의 태양을 향해 함께 항해하는 세 개의 유니콘호에서 광채가 나리라.’는 메시지를 확인하고 그 종이를 지갑에 넣었다. 하지만 지갑은 소매치기에게 잃어버리고 말았다.

이 난리 통에 택배가 왔다고 초인종이 울린다. 문을 여는 순간 사카린이 보낸 괴한들에 납치되어 끌려간다. 사카린의 배에 옮겨져 갇히게 되는데 그의 강아지 스노위의 도움으로 묶인 밧줄을 끊고 같은 배에 감금된 주정뱅이 하독 선장의 방에 잠입한다.

그는 하독선장으로부터 그 지도가 17세기경 보물을 싣고 난파한 해적 왕 레드 라캄의 배 유니콘호의 위치를 가리키는 지도임을 알게 된다.

하독과 합께 구명선을 타고 탈출한 틴틴은 폭풍우 몰아치는 바다를 건너 모로코의 사막으로 간다. 하독 선장과 함께 보물을 찾아가는 그의 여정이 스릴 만점 재미만점이다.

재미는 있는데 스토리 따라가기가 힘들다. 곁에서는 유치원 어린이들이 단체 관람을 왔는지 까르륵 까르륵 웃는 소리가 그치지 않는다. 우리 노털들은 그저 멍하니 바라보기만 한다.

영화가 끝나고 나와서 들으니 어떤 선생님은 보다가 잤다고 한다. 이제 영화 보는 것도 쉽지 않다. 즐거움이 아니고 노동으로 변하고 있다. 영화 한 편 보고 나면 머리가 지끈 지끈 아프고 속이 메슥메슥하다.

나중에 더 나이가 먹으면 친구도 못 만난다고 한다. 귀가 안 들려 대화를 못하기 때문이란다.

몇 날 며칠 책 보는 것보다 두 시간 투자하여 영화 보는 게 편할 것 같아 영화감상문을 쓰겠다고 했는데 잘못 찍었다. 책은 보고 베끼면 되는데 영화는 보고 나면 생각나는 게 별로 없다. 그래서 스토리도 잘 못 쓰겠다. 다음에는 꼭 책 읽고 독후감 쓰는 걸로 해야겠다.

 

텐트 속 세계여행

 

이현숙

 

알라스카에 있는 북미 최고봉 매킨리에 갔다. 1718일 동안 빙하 위에서 텐트 치고 눈을 녹여 밥 해 먹고 국을 끓였다. 매킨리산의 베이스캠프인 매킨리시티에서 10일간 머물렀다. 경비행기 내린 곳에서 여기까지 오는데 5일 걸렸다. 그동안 40kg이나 되는 짐을 지고 썰매로 끌며 죽을 고생 했다. 한 마디로 인간 썰매 끌며 개고생했다. 메킨리시티에는 텐트로 만든 레인저 사무실도 있고 헬기가 내릴 수 있는 눈밭도 있다. 사무실에서는 매일 일기상황을 화이트보드에 적어 기둥에 걸어 놓는다.

 

서울서 떠날 때는 매킨리시티라고 해서 집도 많고 번화한 도시인 줄 알았다. 가보니 이건 말만 시티지 4328m 높이의 빙하위에 텐트 십 여동이 쳐진 캠프지다. 앞에는 헌터봉과 포레이커봉이 기막힌 자태를 뽐내고 뒤에는 400m 정도의 설벽인 윈드월이 우뚝 서있다. 눈을 잘라 만든 눈 벽돌로 울타리도 만들고 긴 탁자 같은 것도 만들어 부엌 대용으로 쓴다.

어떤 사람들은 집 앞에 눈사람도 만들어 놓고 어떤 집은 눈 벽돌로 아치형 문도 만들어 한껏 멋을 부렸다. 좋은 날씨를 기다리며 며칠씩 머물다보니 서로 친해져 이집 저집 놀러도 다니고 음식도 나눠 먹는다.

윈드월로 주마링 연습하러 가는데 기아 자동차 팀 텐트 앞에서 웬 미국 남자가 호떡을 먹고 있다. 기아팀의 대장이 만들어줬다는 것이다. 이게 코리안 팬케이크라고 하니 맛있다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한다. 다 먹고 손가락까지 쪽 쪽 빨아먹는다. 이 남자는 앵커리지에 산다고 하는데 부인, 사위 두 명, 조카 두 명 이렇게 여섯 명이 왔단다. 자기들은 알파인 가족이라고 자랑한다.

 

오늘은 대원들이 하이캠프로 떠나는 날이다. 안전벨트와 주마, 피켈 등으로 중무장하고 떠나는 대원들을 보려니 아들을 전쟁터에 보내는 어미처럼 가슴이 찡하다. 고산에 원정 와서 떠나는 대원을 보면 저 얼굴을 다시 볼 수 있을까 항상 마음이 불안 불안하다.

나는 체력도 딸리고 실력도 딸려 베이스캠프인 매킨리 씨티에 머물기로 했다. 속도가 한 없이 느린 내가 안자일렌을 하고 줄줄이 사탕같이 엮고 가다가는 네 명 모두 오늘 안에 못 가게 생겼으니 도저히 따라 붙을 수가 없다.

대원들이 떠난 후 빈 텐트를 청소하고 짐을 정리하는데 갑자기 휑하니 찬바람이 부는 듯 썰렁하다. 기아팀의 이길하씨는 고소가 심해 못 가고 혁이는 베이스를 지키라는 박전무님의 명령에 할 수 없이 머물렀다. 셋이서 쌍화차와 과자로 점심을 때웠다. 쌍화차를 내 텐트까지 배달해 주는 혁이의 마음씨가 고맙다. 나는 원래 무수리 과인데 룸서비스까지 받으려니 갑자기 왕비 과로 변신한 것 같다.

설벽에 매달린 대원들이 개미의 행렬처럼 작아지더니 드디어 구름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빈 텐트에 들어와 외손자 건희와 외손녀 송희에게 엽서를 썼다. 밖으로 나가니 외국 남자들 셋이서 부메랑을 던지며 놀고 있다. 우리 쪽으로 던질 때 부메랑을 보니 플라스틱이 아니고 실로 짠 것이다. 어디서나 즐기며 여유를 갖는 이들의 모습이 보기 좋다.

텐트 안에 있는데 밖에서 혁이가

설인이 나타났나?” 한다.

밖으로 나가니 웬 남자가 알몸에 검정 팬티만 입고 모자 쓰고 나타났다. 권총 하나만 차면 말 그대로 람보다. 그런데 권총이 없었기 망정이지 팬티에 권총 찾다가는 팬티까지 내려갈 판이다. 사람들이 다 쳐다보는데 눈밭에 뚫린 소변구멍으로 가더니 척 내리고 당당하게 볼 일을 본다.

혁이는 저녁 준비를 하는지 우리 텐트 앞 임시 주방에서 물을 끓이며 앉아있다. 레인저가 지나가자 혁이가 저녁 먹었느냐고 묻는다. 아직 안 먹었다고 하면서 네 친구들은 어디 갔느냐고 한다. 하이캠프에 갔다고 하니 너는 왜 안 갔느냐고 또 묻는다. 자기는 쿡이라고 하니 프로 쿡 같이 보인다고 비행기를 태운다. 커피 한 잔 하겠느냐고 하니 벌써 먹었다고 한다. 한국 인삼차 줄까? 하니 달라고 해서 네 개를 주었더니 고맙다고 가져간다.

그런데 잠시 후 또 와서 인삼차 잘 먹었다고 하며 김치는 없느냐고 묻는다. 없다고 하니 하이캠프에 다 가져 갔느냐고 묻는다. 한국 김치 좋은 건 어떻게 알았나 모르겠다.

  새벽 한 시 반이나 되어 화장실 갔다 오려니 옆의 텐트 사람들은 그때까지 밖에서 매트리스 깔고 술 마시며 얘기하고 있다. 내가 나오니 손을 흔들며 아는 척 한다. 여기는 밤 12시가 넘어도 훤한 것이 도무지 밤이 없다. 백야라는 말은 들었지만 이렇게 환한 줄은 몰랐다. 아무리 한 밤중이라도 별을 볼 수 없으니 공허하기까지 하다.

네 명이 콩나물시루처럼 꼭꼭 배겨 자다가 혼자 자려니 이리 뒤척 저리 뒤척 하다가 맨바닥으로 굴러간다. 바닥이 차가와 잠이 깨면 매트리스 밖으로 나가 있다. 일어나 대장님 카고백과 경기 연맹 사람들이 맡긴 짐으로 바리케이드를 치고 다시 잠이 들었다.

  눈을 녹여 물을 만들려면 한 짐을 가져와도 한 그릇 밖에 안 된다. 주방장 혁이는 주방 벽을 야금야금 뜯어내 녹이고 있다. 우리 벽이 너무 낮아지자 철수한 텐트의 벽을 뜯어다가 녹이고 있다. 젊고 체력 좋은 사람이 밥이나 하고 있으니 얼마나 갑갑할까 미안하기만하다.

아침 식사 후 갑갑증이 났는지 갑자기 썰매를 들고 언덕으로 올라간다. 눈썰매를 타겠다는 것이다. 한참을 올라가더니 썰매에 배를 깔고 신나게 내려온다.

하이캠프에 있는 열여섯 명은 오늘 휴식 한단다. 내일은 날씨가 더 안 좋아지니까 오늘 정상으로 가라고 무전을 쳤지만 어제 너무 힘들었는지 그냥 쉬는 모양이다. 오후에는 텐트에 혼자 앉아 남편과 아들에게 또 엽서를 썼다. 텐트 위에 사르륵 사르륵 눈 내리는 소리는 매킨리의 숨결 같기도 하고 속삭임 같기도 하다.

기아팀의 이길하씨는 일주일째 거의 식사를 못했다고 하더니 오늘은 라면을 조금 먹는다. 밥 끓는 냄새만 맡아도 토한다고 한다. 꼭 입덧 하는 사람 같다. 그걸 보니 내가 처음 입덧 할 때 생각이 난다. 용산중학교 근무할 때인데 옆에 앉은 미술 선생님과 내가 거의 비슷한 때에 임신 했다. 나는 입덧이 그리 심하지 않았는데 미술 선생님은 교무실에 앉았다가도 수시로 화장실에 가서 토했다. 남들이 입덧도 심하다고 하기에 나는

그래도 입덧은 안 나네요.”

했더니 그게 입덧 나는 거지 뭐냐고 한다. 나는 입덧은 입이 덧나서 무슨 딱지가 생기는 건줄 알았다고 했더니 결혼한 여자가 입덧도 모르니 이건 해외토픽 감이라고 다들 박장대소했다. 이길하씨의 입덧이 계속 되는 관계로 저녁에는 우리 텐트에서 식사했다.

  오늘 아침에는 헌터봉도 포레이커봉도 흰 베일을 쓰고 얼굴 한 번 보여주지 않는다. 우모복과 텐트슈즈, 장갑과 고소모까지 쓰고 누워도 뼈 속까지 춥다. 아침마다 텐트 안 천장에서 우수수 우수수 얼음이 쏟아진다. 볼펜도 얼어 글쓰기도 힘들다.

소변을 보고 오려니 이길하씨가 버너를 켜고 있다. 배고파서 잠이 안 온단다. 이제 서서히 입덧이 끝나가나 보다. 텐트로 들어와 건빵과 수영씨가 준 육포, 배복순씨가 준 사과 말린 것 등을 먹었다. 내가 여기까지 오는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지원과 격려가 있었는지 고맙기 그지없다.

외국 남자 한 명이 어제 등정하고 내려오다 우리 팀을 보았다고 한다. 어제는 날씨가 좋아 등정이 가능했나보다. 하이캠프에 있는 우리 팀은 날씨가 안 좋아 오늘도 정상 공격에 나서지 못했다고 한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공격이란 단어는 좀 어폐가 있다. 사람이 어찌 산을 공격할 수 있을까? 계란으로 바위치기 하는 것과 같지 않을까? 그냥 매킨리의 품에 잠시 안긴다는 말이 더 좋을 듯하다.

혁이가 주방에 앉아 있으니 레인저가 놀러 왔다.

너희 친구들은 하이캠프에 있냐? 너는 쿡이냐?” 하며 말을 건다. 우리가 친구 기다리는 것은 온 동네 소문 다 났다. 혁이가 쿡인 것도 다 알려졌다. 레인저는 여기서 10, 하이캠프에서 7일간 있다가 내려간단다. 5명이 근무한다고 하여 인삼차 5개를 주며 건강에 좋다고 하니 섹스에도 좋으냐고 묻는다.

잠시 후 시베리아 할아버지가 놀러 왔다. 엘부르즈도 올라가고, 파미르 고원의 7000m 급 산에도 올라갔단다. 킬리만자로와 아쿵가구아에도 올라갔다고 은근히 자랑을 한다. 몇 살이냐고 물으니 예순 세 살이란다. 참 대단한 할아버지다.

혁이는 밥을 하다가 따분한지 주부 우울증 걸릴 것 같다고 한탄한다. 젊은 피가 끓는데 전업주부 노릇만 하고 있으려니 미칠 지경인가보다. 2주 째 씻지를 못하니 머리는 근질근질, 발가락도 간질간질, 온몸이 끕끕하다. 빈 텐트에서 혼자 생활하려니 독방에 갇힌 죄수가 된 기분이다. 9일째 이곳에서 머물려니 빨리 내려가고 싶은 마음뿐이다.

  밤새 폭설이 내렸다. 텐트가 무너질까봐 스틱으로 안에서 치고 밖에 나와 두드리느라 잠도 못 자고 날밤을 새웠다. 텐트가 무너지면 내 재주로는 다시 칠 수도 없어 밤새 털었다. 하이캠프에 있는 사람들은 고립됐다고 연락이 왔다. 수시로 곳곳에서 눈사태 나는 소리가 천둥소리 같이 요란하다.

일기예보 판을 보니 오늘도 눈이 6인치 더 온다고 한다. 앞으로 15cm가 더 온다는 소리다. 기온은 섭씨로 -23풍속은 시속 56~72 km라고 한다. 영하 23도의 추위에서 자동차 문 열어놓고 시속 70km로 달릴 때의 추위다. 대원들이 걱정된다. 눈이 멈추자 하이캠프에서는 전원이 하산하겠다고 연락이 왔다. 우리는 정상이고 뭐고 눈사태에 묻히지 말고 잘 내려오기만 빌었다.

오후에 알라스카 아저씨가 가족들과 돌아다니다가 우리에게 왔다. 또 호떡 생각이 나는지 기아의 팀장은 어디 있느냐고 한다. 하이캠프에서 지금 내려오는 중이고 우린 내일 내려간다고 했더니 유감이라고 하며 자기들은 지금 13일째 여기서 대기 중이란다. 우리는 10일째니까 이들이 왕고참이고 우리가 두 번째 고참이다.

경기연맹의 정대장님과 얘기하고 있는데 갑자기 튀어~” 하더니 아래쪽으로 달려간다. 뒤를 보니 산더미 같은 눈이 쏟아져 내려온다. 화장실에 있던 사람도 튀어 나오고 다들 아래쪽으로 달려갔다. 한참 뛰는데 뒤에서 눈이 멈췄다. 눈이 하늘로 치솟아 눈가루가 하얗게 쏟아져 내린다. 한참 눈가루를 뒤집어쓰고 나니 하늘이 보인다.

하이캠프에서 내려오고 있는 대원들이 눈사태를 만날까봐 또 걱정이 된다. 하지만 그 후에는 날씨가 좋아져 해가 났다. 하얀 설벽에 세 명, 네 명씩 줄을 지어 내려오는 우리 팀의 모습이 보인다. 정대장님은 대원들에게 주려고 보이차를 끓인다. 거의 내려왔을 때 보온병에 차를 담아 마중을 나갔다. 다들 지쳐서 초죽음이 된 얼굴이다. 우리 일중 팀이 제일 늦게 내려온다. 연희씨는 지쳐서 곧 쓰러질 것처럼 보인다. 내가 배낭을 대신 져줄까 했더니 그냥 오겠단다. 텐트에 도착해 아이젠을 벗겨 주고 배낭을 내려준 후 텐트에 누우라고 했다.

다음은 호선생님이 온다. 거의 제정신이 아니게 지쳐있다.

호선생님~” 하고 부르니 피켈을 내던지고 나를 잡고 운다. 너무 힘들었나보다. 나도 눈물이 쏟아진다. 보이차를 주니 조금 마시고는 텐트까지 힘겹게 걸어와 쓰러진다.

대장님은 제일 나중에 나타났다. 그래도 대장님은 리더라 그런지 울지도 않고 담담한 표정이다. 등정을 못한 아쉬움 때문에 표정이 어둡다. 그래도 나는 살아서 돌아온 것만 기쁘고 감사했다.

23일 만에 텐트에 사람이 가득 차니 사람 사는 집 같다. 등정은 못 했지만 한 명도 다치지 않고 무사귀환 한 것만도 그저 감지덕지할 뿐이다. 모처럼 네 명이 꼭 끼어서 따뜻하게 잘 잤다.

  1011일 동안 머무르던 텐트를 걷었다. 매킨리씨티를 떠나는 날이다. 말이 시티이지 텐트 밖에 없는 빙하위의 눈밭이다. 그래도 눈을 깊이 파서 만든 화장실도 두 개나 있는 호화로운 곳이다. 여기서는 플라스틱 똥통에 앉아 변을 보는 괴로움 없이 볼일을 볼 수 있다. 화장실은 겨우 엉덩이만 가릴 정도의 나무판으로 가리고 문도 없어 변기에 앉은 사람이 밖에서도 다 보인다. 그래도 전망은 일품이라 변기에 앉아 알라스카의 설산을 마음껏 감상한다.

아쉬움을 남기고 하산하려니 자꾸 뒤돌아보게 된다. 밑에서 올라오는 사람들의 표정은 지칠 대로 지쳐 무표정하다. 그동안 그토록 우리 애를 태우던 날씨가 하산하려니 활짝 개였다. 쌍두썰매를 끌고 내려가는 대장님과 연희씨가 연인처럼 아름답다. 그 밑으로 보이는 빙하는 말 그대로 얼음의 강이다. 골짜기로 굽이쳐 내려가는 모습이 정말 강 같이 생겼다.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돈다. 이런 아름다운 자연을 만들고 여기에 인간을 보내준 창조주에 대한 감사가 가슴 가득 차오른다. 이토록 아름다운 작품을 만든 분은 분명 아름다운 분일 꺼다.

 

알라스카 매킨리시티에서 열흘간의 텐트 생활은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텐트에서 보이는 설산과 그곳에서 만난 세계 각국의 사람들 모습은 내 기억에서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거기서 만난 각 나라의 사람들을 생각하면 텐트 속에 가만히 앉아 세계여행을 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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