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행문

2009. 8. 20. 덕유산 종주

아~ 네모네! 2012. 10. 15. 16:48

 

 

 

 

 

 

 

 

 

 

 

 

 

 

 

썩었니?

 

기간 : 2009820~ 821

장소 : 덕유산

자양중학교에서 같이 근무하던 이애란, 석진미, 진영나 선생님과 이름도 거창하게 덕유산 종주에 나섰다. 말이 종주지 무주 리조트에서 곤돌라 타고 올라가 영각사로 내려오기로 하였다.

 

남부터미널이 정확히 어딘지 잘 몰라 일찍 집을 나섰다. 터미널에 도착하니 30분이나 미리 와 의자에 앉아 기다리는데 옆의 할아버지가 말을 걸어온다. 60대 중반은 되어 보이는데 어디 가냐는 것이다. 얼굴은 쭈그렁바가지가 되어 커다란 배낭을 지고 쌍지팡이 꽂고 있는 내 모양이 영 어설퍼 보였나보다. 덕유산 간다고 하니 그게 어디 있느냐고 한다. 무주에 있다고 하며 올 해 환갑이라고 했더니 그 나이에 그렇게 다니니 복 많다고 한다. 자기는 몇 살이나 돼 보이냐고 해서 조금 깎아 내 나이 정도 보인다고 했더니 자기가 오빠란다. 웬 오빠? 하며 속으로 웃고 있는데 이애란 선생님이 나타난다.

거기는 화장실 앞이라 다른 쪽으로 옮겨가 기다리니 곧 영나씨와 진미씨가 나타난다. 들기도 힘든 배낭을 짊어지고 버스에 오르니 기사 아저씨가 표 검사를 한다. 무주리조트 가냐고 했더니 우리 표를 보고 거기 가려면 무주까지 가는 표는 안 되니 빨리 가서 구천동까지 가는 표로 바꾸어 오란다.

사람도 몇 명 안 되니 배낭은 다른 좌석에 팽개치고 룰루랄라 콧노래를 부르며 바깥 경치 구경한다. 금산의 인삼랜드 휴게소에서 호두과자와 커피로 요기를 하고 다시 차에 오르니 날씨가 점점 맑아진다. 일기예보에서는 오늘 전국적으로 비가 온다고 했다. 우리는 덕유산에는 제발 비가 안 오기를 바라며 남으로 향했다.

리조트 앞 삼거리에 내리니 땡볕이 쏟아진다. 이거 곤돌라 타는 곳까지 가려면 산 채로 바베큐 되겠구나 하고 걱정하는데 마침 봉고차 한 대가 우리 앞에서 한 여자를 태운다. 애란씨가 날 보고 미인계를 써 보라고 하기에

리조트 쪽으로 가세요?”

하고 소리치니 그렇다고 타라고 한다. 우리는 이게 웬 떡이냐 싶어 얼른 올라탔다. 이 얼굴에 미인계가 통했을 리는 없고 아마 꾸부정한 할망구가 무거운 배낭 지고 있으니 불쌍해서 태워 줬나보다. 미인계보다 더 유용한 게 할미계인 모양이다.

곤돌라 타는 곳 갈림길에서 내려 지글지글 타는 아스팔트길을 걸어 올라가려니 골이 핑핑 돈다. 산행 시작도 하기 전에 탈진해 버릴 것 같다. 곤돌라 승강장에 오니 화단 가득 핀 활련화가 우리를 반긴다. 여름이라 곤돌라 타는 사람이 적어 가자마자 곤돌라에 올랐다.

곤돌라 안에서 목에 수건 두르고, 무릎에 아대 하고, 지팡이 조립하고, 장갑까지 끼고 나니 곤돌라가 안개 속으로 들어간다. 전투태세를 갖추고 설천봉 승강장에 내리니 안개가 자욱하여 설천하우스가 희미하게 보인다. 향적봉 가는 길로 들어서자 옥동자 보다 예쁜 동자꽃, 노란 꽃잎에 초록 암술이 박힌 뱀무, 작은 도라지 같은 모싯대가 어서 오라고 인사한다.

야생화에서 눈길을 떼지 못하며 20분 정도 오르자 희미한 안개 속에 향적봉 탑이 보인다. 향적봉 표지석에서 사진을 찍으려는데 먼저 찍는 여자 아이가 춥다고 빨리 찍으라고 엄마에게 보챈다. 1614m까지 갑자기 올라왔으니 기온이 10이상 뚝 떨어져 추울 수밖에 없다.

추위에 쫓기듯 향적봉 대피소로 내려와 햇반과 즉석 짜장을 데워 점심을 먹고 커피까지 느긋하게 즐긴 후 1시쯤 삿갓골재 대피소로 출발했다. 가는 길에도 구절초, 산 오이풀, 짚신나물, 진범, 물레나물, 며느리밥풀꽃 등이 만발하여 꽃구경에 세월 가는 줄 모르겠다. 안개 속에 가물가물 사라지는 능선 길은 미지의 세계로 통하는 문인 듯 신비감을 더한다.

지금은 진범의 계절인 듯 산행 처음부터 끝까지 진범이 만발했다. 꽃송이가 꼭 오리를 닮은 것이 다닥다닥 붙어 예쁘기 그지없는데 어쩌다 진짜 범인이 되어 진범이란 이름이 붙었나 모르겠다. 산수국은 거의 졌는지 가끔 보였는데 가운데 좁쌀같이 작은 것이 진짜 꽃이고 밖의 나비처럼 아름다운 것은 헛꽃이라 한다. 꽃이 너무 작아 벌 나비의 눈길을 끌지 못할 것 같으니까 바깥쪽에 화려한 가짜 꽃을 만들어 붙인 수국의 지혜가 놀랍다. 바위에 악착같이 달라붙어 꽃을 피운 바위채송과 바위취도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는 모습이 안쓰럽다.

중봉을 지나 덕유평전에 이르니 늦게 핀 원추리가 안개 속에서 요염한 웃음을 짓는다. 가끔씩 안개가 바람에 날려가 버리면 멀리 우리가 가야할 무룡산과 삿갓봉이 아득히 보인다.

동엽령에서 바나나와 인절미로 요기를 하고 무룡산으로 향하는 길에는 잔대와 어수리, 더덕꽃이 수줍은 듯 풀숲에 숨어 있다. 잔대와 모싯대, 어수리와 궁궁이의 차이점을 이야기하며 갈 길을 재촉하는데 멀리서 우르릉 우르릉, 천둥소리가 울린다.

비바람이 몰아치기 전에 대피소에 가려고 발길을 재촉하지만 무룡산도 못 가 가는 안개비가 몸을 적신다. 무룡산 정상에 오르니 앞서 가던 부부가 사진을 찍고 있다. 부부의 사진도 찍어주고 우리도 모처럼 네 명이 함께 출석부 사진을 찍었다.

무룡산에서 내려와 삿갓골재 대피소까지 가는 길에는 야생화고 사진이고 모두 생략하고 비에 쫓기듯 정신없이 내려왔다. 구름이 잔뜩 끼고 안개가 자욱하니 6시도 안 되었는데 사방에 어둠이 깔린다. 날씨가 어두워지니 앞에서 오는 사람도 없고 뒤에서 오는 사람도 없어 산짐승이 나타날까봐 은근히 겁이 난다. 나는 연두색 비옷을 입었는데 뒤에서 오는 애란씨가 애벌레가 기어가는 것 같다고 우스갯소리를 한다. 나는 속으로 애벌레면 얼마나 좋겠냐 애벌레가 아니고 노벌레다 하며 발걸음을 재촉한다.

6시가 넘어 대피소로 들어서니 산장지기가 어서 오라고 문까지 나와 반가이 인사한다. 예약한 사람 중 우리가 마지막으로 도착했단다. 우선 탈의실로 가 젖은 옷부터 갈아입으라고 해서 탈의실로 가니 넓은 마루방에 커튼으로 가리고 옷을 갈아입게 만들어 놓았다. 3년 전인가 동생 부부와 같이 왔을 때는 탈의실도 없고 시설이 엉성했는데 리모델링을 했는지 깨끗하고 바닥에 보일러를 깔아 난방도 된다.

단지 취사장에 물이 안 나와 60m 아래 있는 샘터에 가서 먹을 물을 떠와야 하는 게 문제라면 문제다. 비는 쏟아지는데 영나씨와 진미씨가 우산을 받고 물을 떠오더니 다시는 못 가겠다고 한다.

젖은 옷을 널어놓고 취사장에 내려가 뜨끈한 라면으로 몸을 녹이고 올라오니 다들 담요를 깔고 자리에 누워 있다. 우리도 물티슈로 고양이 세수를 하고 이도 못 닦고 잠자리에 들었다.

남자들만 있는 팀은 아래층에서 자고, 부부 팀은 이층에 여자들과 같이 배정했다. 아래 위 양쪽에서 남자들이 코를 골아대니 잠으로 빠져들지 못한다. 그래도 나는 자다 깨다 하며 선잠을 잤는데 애란씨는 밤새 한 잠도 못 자고 날밤을 새웠다고 다시는 산장에 안 오겠단다. 아무래도 아가씨가 되어 남자들 코 고는 소리에 적응이 안 되나 보다. 애란씨는 저렇게 요란하게 코를 고는데 부부 팀의 여자는 어떻게 남편과 얼굴을 맞대고 자는지 신기하다고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사람은 살다보면 다 적응하기 마련인가보다.

6시에 일어날 계획이었지만 애란씨가 잠을 이루지 못하고 앉아 있어 둘이서 5시에 일어나 코펠을 들고 물을 뜨러 내려갔다. 계단 길을 계속 내려가니 샘터에 양동이 두 개를 묻어 놓고 물이 고이게 해놓았다. 어제 쓴 코펠을 닦아 물을 뜨고 물병에도 물을 채워 계단을 올라오려니 이거 장난이 아니다. 아래에 양수기를 설치하여 샘물을 위로 끌어 올려주면 얼마나 좋을까 하며 대피소로 올라오니 마당에 물탱크가 놓여있다. 하지만 빗물이라고 쓰여 있고 음료수로는 쓸 수 없다고 적혀 있다.

취사장에 들어와 아침과 점심 때 먹을 햇반을 데우고 미역국을 끓이는데 진미씨가 들어온다. 가장 영계인 영나씨가 제일 잘 잔다. 영나씨는 나와 18년 차이니 옛날 같으면 딸 같은 나이다. 영나씨는 제주도가 고향인데 애란씨를 부를 때는 애란언니, 석진미 선생님을 부를 때는 석언니라고 부른다. 그런데 발음이 조금 되어 썩언니로 들린다. 언뜻 들으면 썩었니?’ 하는 것 같다.

미역국에 밥 말아먹고 빗물로 설거지와 양치질을 하고 자리에 돌아와 정리하고 나니 8시가 다 되었다. 어제 내린 비로 공기 중의 먼지가 모두 내려왔는지 산 아래 운해가 그림 같이 펼쳐있다. 삿갓봉으로 오르는 길에도 온갖 야생화가 만발하여 꽃 보랴 운해보랴 지루한 줄 모르겠다. 삿갓봉 정상에 오르니 사방이 탁 트여 발아래 무수한 산들이 엎드려 있고 운해 위로 솟은 산들은 다도해의 섬처럼 아름답다.

어제부터 걸어온 능선 길과 향적봉을 넋을 잃고 바라보다 다시 남덕유로 향했다. 뒤에서는 향적봉이 잘 가라 손짓하고 앞에서는 남덕유와 서봉이 어서 오라 손을 내민다. 물에 젖은 물봉선은 떨어질 듯 매달렸고 가시투성이 수리취도 물을 흠뻑 먹고 고개를 숙였다.

월성재에서 물 한 모금 마시고 다시 오르는데 범의 꼬리가 고추 서서 반긴다. 작은 앵두 같은 애기나리 열매도 영롱한 빛을 발하며 자태를 뽐낸다. 야생화는 보면 볼수록 앙증맞고 자신에 차 있다. 열매 또한 보석보다 찬란한 광채를 뿜는다. 세상에 나보다 예쁜 사람 아니 예쁜 꽃 있으면 나와 보라고 큰 소리 치는 듯하다. 야생화가 보석보다 더 아름다운 것은 순간에 사라져 버리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노루오줌은 붉은 빛을 띠고 외로이 서 있다. 이걸 볼 때마다 노루는 붉은 오줌을 누나? 하는 생각이 든다. 아마 노루오줌 같은 냄새가 나는 지도 모른다. 마지막 힘을 다해 깔딱 고개를 오르니 드디어 지글지글 타는 태양 아래 남덕유 정상이 나타난다. 뒤돌아 멀리 향적봉을 바라보니 우리가 걸어온 길이 끝도 없이 이어진다. 그저 바라만 봐도 흐뭇하고 뿌듯하다. 이 맛을 못 잊어 사람들은 그 힘든 과정을 마다 않고 산에 오르나보다. 정상에서의 포만감을 만끽하고 영각사길로 하산을 시작했다.

서봉을 거쳐 육십령으로 가는 길은 두 번 가 봤지만 영각사길은 처음이다. 영각사로 가는 길은 철계단의 연속이다. 몇 개의 철계단을 내려가니 한 남자가 대포 같은 카메라를 들고 있다. 사진 촬영하려고 혼자 왔나보다. 우리를 보더니 어느 것이 남덕유 정상이냐고 묻는다. 제일 높은 철계단 위라고 가르쳐 주고 하산을 계속했다.

아홉 개의 철계단을 내려오니 돌계단의 연속이다. 계곡물에 발 담그고 점심을 먹으려고 하염없이 내려오는데 웬 남자가 아들과 올라온다. 얼마나 가야 물이 있느냐고 물으니 조금만 가면 계속 물이 있단다. 과연 얼마 후 계곡물 소리가 들리더니 맑은 물이 흐른다. 적당한 자리를 찾아 발을 담그니 무거운 발이 갑자기 없어진 듯 가벼워진다. 인터넷에서 뽑아온 버스 시간표를 보니 1455분으로 되어 있어 한참 더 놀려고 하다가 버스 정류장 근처에 가서 놀자고 하산을 서둘렀다.

하산 길에도 괘불 주머니, 이질풀 등이 잘 가라고 인사한다. 영각사 탐방 지원센터에 오니 직원이 나와 수고했다고 인사하며 5분만 더 가면 버스 정류장이라고 친절하게 알려준다. 탐방 지원 센터의 버스 시간표를 보니 1415분에 함양 가는 버스가 있다. 우리는 서둘러 내려오며 인터넷의 시간표만 믿고 놀다가 두 시간 반이나 더 기다릴 뻔 했다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6시간의 산행 끝에 영각사 버스 승강장에 오니 한 청년이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우릴 보더니 삿갓골재 대피소에서 같이 묵었다고 하며 자기는 7시경 출발하여 1시 반쯤 여기 도착했단다. 이곳의 버스 정류장은 물레방아 모양으로 예쁘게 지어 놓았다. 문득 함양의 상림에 갔을 때 최초의 물레방아가 함양에 만들어졌다는 안내판을 본 기억이 난다.

20분 정도 여유가 있어 영각사를 둘러보니 인적이 없는 조용한 절집이 우리를 맞이한다. 구광루의 운치 있는 창문과 양 옆의 나무 조각 꽃무늬 둥근 창이 특히 아름답다. 극락전과 화엄전까지 둘러보고 약수까지 마신 후 버스 승강장으로 돌아오니 곧 버스가 도착한다.

시외버스를 타고 함양에 도착해 서울 가는 버스 타는 데를 몰라 어리버리 하고 있는데 같이 온 총각이 슈퍼에 들어가 묻더니 앞 서 간다. 우리는 임시 가이드를 졸졸 따라 버스 터미널로 와 시원한 아이스크림을 물고 동서울행 버스에 올랐다.

버스를 타고 달리며 우리가 걸었던 덕유산의 종주 능선을 바라보니 생각할수록 우리들이 대단하고 신통방통하다. 다음에는 상고대 가득한 겨울 종주를 하고 싶다.

덕유야 남덕유야 우리 한 번 더 품어줄 수 있겠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