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행문

2004. 10. 25. 욕지도 매물도

아~ 네모네! 2012. 10. 13. 14:33

<기행문>

그 섬에 가고 싶다

이현숙(李賢淑)

지난 주 목요일에는 롯데트래킹 사람들과 12일로 매물도 욕지도 여행을 떠났다. 매물도라면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지만 욕지도란 듣도 보도 못한 이름이라 호기심과 기대에 부풀어 따라 나섰다. 그런데 매물과 욕지가 무슨 뜻인지는 몰라도 발음상 매물도에 가면 물건 매매가 활발할 것 같고, 욕지도에 가면 욕지거리를 들을 것 같았다.

 

21일 아침 여섯 시에 롯데 너구리상 앞에서 만나기로 했기에 다섯 시에 일어나 잠자는 남편에게 미안해서 거실 화장실 불만 켜놓고 어슴푸레한 안방에서 대강 되는 둥 마는 둥 찍어 바르는데 남편이 잠이 깼는지

모양 고만 내고 빨리 가쇼~” 한다.

그래서 미리 챙겨둔 배낭에 물과 과일을 넣고는 번개 같이 집을 나섰다. 신호등을 건너와 신호 대기 중인 택시를 타니 새벽인지라 나는 듯이 달려 12분 만에 잠실에 도착하였다. 조금 이른 탓인지 대장님의 봉고가 보이지 않아 두리번거리는데 저쪽에 이순희님과 이증자님이 보인다. 반가와 가까이 다가가니 그렇지 않아도 자기네도 불안하여 대장님께 전화했더니 지금 오시는 중이라고 하셨단다.

조금 기다리니 대장님 봉고가 도착하고 회원들도 모두 도착하여 짐을 싣고는 안으로 들어와 자리를 잡았다. 은주씨는 총무인 관계로 조수석에 안고 나는 멀미를 잘하여 대장님 뒤에 자리 잡았는데 이규화씨도 멀미가 난다고 언니 이규옥씨와 내 옆에 나란히 앉았다. 그 뒤에 이순희님과 이증자님, 이태희씨가 앉고 정상윤씨는 잠을 잔다고 제일 뒤로 갔다.

 

롯데 앞을 출발한 우리 차는 새벽안개를 가르며 남으로 남으로 달렸다. 중부 고속도로를 타고 조금 내려가는데 갑자기 대장님이

왼쪽 보세요~”

하고 소리쳐서 동쪽 하늘을 바라보니 붉은 눈썹 같은 해가 솟아오르고 있었다. 붉은 눈썹은 붉은 송편으로 되더니 곧 밀전병 같이 둥글게 변했다. 우리 대장님은 한 개라도 더 보여주고 싶어 항상 온 신경을 쓰시는지라

저거 봐요~”

소리만 나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야 후회가 없다. 그런데 뜨는 해를 보면 한 인생의 출생을 보는 듯 감격스럽고 지는 해를 보면 한 인생의 마감을 보는 듯 비장한 감회에 휩싸이게 된다. 나도 지는 해와 같이 조용하고 아름답게 생을 마감했으면 좋겠다.

 

한참을 달리는데 대장님 전화가 울린다. 이번 여행에는 청주에 사는 이옥경씨도 동행하기로 하였는데 어디쯤 오느냐고 묻는 모양이었다. 대장님은 옥경씨에게 서청주 톨게이트로 오라고 하고는 옥경씨가 춥겠다고 마구 밟아댔다. 과연 서청주 톨게이트로 나가니 옥경씨가 얼굴이 파랗게 얼어 우리를 향해 달려왔다.

앞에 앉았던 은주씨가 뒤로 가고 옥경씨가 조수석에 앉아 우리는 다시 통영을 향해 달리다가 덕유산 휴게소에서 콩나물해장국으로 언 몸을 녹였다. 대장님은 아침 식사도 안하고 잠시 눈을 붙이고는 우리가 들어가자 곧 출발하였다. 저렇게 몸을 안 돌보고 쉴 새 없이 일을 하니 몸이 저렇게 마르는구나 싶고 대장님이 오래도록 건강해야 우리도 오래도록 신나게 돌아다닐 텐데……. 하는 생각도 들었다.

 

통영에 도착하니 미리 예약된 배의 선장님이 나와 반갑게 맞아준다. 우리는 화장실에 들렀다가 얼른 배를 타고 출발을 했는데 갑자기 이증자씨와 이은주씨가 안 보인다는 것이다. 그랬더니 이순희님 말이 아까 충무김밥 사러 간다고 했다는 것이다. 대장님이 시간을 절약하려고 선장님께 미리 전화를 하여 김밥 10인분을 사서 배에 실어 놓으라고 했는데 은주씨가 자느라고 못 들은 모양이었다. 김밥 사지 말고 빨리 오라고 전화를 하니 벌써 5인분을 쌌다는 것이다. 그것만 가지고 오라고 하고는 배를 돌려 다시 부둣가에 대고 기다리니 잠시 후 둘이서 물과 김밥 주머니를 들고 나타난다.

우리 배는 다시 출발하여 파도를 가르며 매물도를 향해 달렸다. 배가 십 인승의 작은 고깃배라 그런지 작은 파도에도 요동을 쳤다. 파도에 몸부림치는 배 위에서 옷을 있는 대로 껴입고 잔뜩 웅크리고 앉아 충무 김밥을 먹으려니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정신이 없었다. 그래도 다들 배고팠던지 말 그대로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뚝딱 해치우고는 파도에 몸을 싣고 바람과 싸우며 달렸다. 뱃머리에 올라앉아 밧줄을 잔뜩 부여잡고 달리려니 말 탄 듯도 하고 파도가 끊임없이 나에게로 달려드는 모습이 어서 오라고 품을 열고 맞이하는 듯도 했다.

그런데 이날은 태풍의 여파로 파도가 세서 그런지 뱃머리에 부딪친 파도가 부서질 때마다 무지개가 나타났다 사라지곤 하였다. 순식간에 나타났다 사라지는 무지개를 바라보니 영원이란 세월 속에 사는 우리 인생이 저 무지개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지개를 바라보다가 문득 타이타닉이 생각나 뱃머리에 서서 영화의 여주인공 같이 해보고도 싶었지만 일어섰다가는 그대로 바닷물로 직행하게 생겼는지라 꾹 참았다.

 

이렇게 달리고 달려 1시간 반쯤 달리니 멀리 등대섬과 대매물도 소매물도가 눈앞에 나타났다. 우리는 우선 등대섬에서 내려 등대를 향해 올라갔는데 남쪽이라 따뜻해서 그런지 온갖 야생화가 섬 가득 피어 우리를 반겼다. 등대섬 꼭대기의 등대에서 바라보니 넘실대는 푸른 바닷물이 끊임없이 섬을 핥아내고 있었다. 이렇게 수십 만 년 동안 핥아대니 딱딱한 바위도 어쩔 수 없이 닳고 닳아 구멍이 뚫리고 절벽이 생겨 기암괴석을 이루게 되었나보다.

등대 바위에서 내려와 다시 배를 타고 개구리 바위, 손바닥 바위를 보고 좁은 동굴 속으로 들어갔는데 좁은 틈으로 배가 들어가려니 넘실대는 파도에 요동치다가 바위에 부딪쳐 박살이 날 것 같았다. 하지만 우리의 선장님은 베스트 드라이버라 한 번도 바위에 닿지 않고 무사히 빠져 나왔다.

동굴에서 나와 소매물도 선착장에 내리니 몇 채의 집들이 있고 해녀도 있어 문어와 멍게를 잡아 올려 팔고 있었다. 우리는 문어를 먹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저녁에 충무에서 회를 먹기로 했기에 그냥 산으로 향했다. 소매물도 정상에서 바라보는 등대섬은 또 다른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거기서 그 분위기에 젖어 마냥 바라보고 싶었지만 또 볼 것이 있다는 대장님의 독촉에 쫓기다시피 다음 바위를 향해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겼다.

아슬아슬한 바위 위에 올라 단체 사진을 찍고는 배 시간에 맞추느라 정신없이 부두로 돌아오니 때마침 충무에서 들어오는 여객선이 들어오고 화요반의 이금형님이 친구들과 내리는 모습이 보였다. 우리는 너무도 반가와 손을 흔들어 환영했다. 매점에서 맥주를 사 다시 우리의 작은 배에 올라 맥주를 먹으며 충무로 돌아오는데 이번에도 파도는 또 우리를 향해 달려들었다. 매물도는 점점 멀어져 가는데 하늘에는 하얀 반달이 잘 가라고 배웅하고 있었다.

충무에 돌아와 미륵도 미래사의 삼나무 숲을 걷다가 절에 들어가 어둠이 깔리는 절의 정취를 맛보고는 무진장 횟집에서 회를 먹었는데 이곳은 이름 그대로 회와 스끼다시가 무진장으로 나왔다. 우리는 배고픈 김에 모두 포식을 하고 거제대교 근처의 비치파크 호텔에서 여정을 풀었다. 세 명은 찜질방에서 잔다고 가고 한 방에 세 명씩 널널하게 이불을 펴고는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 날은 새벽 4시 반에 일어나 520분에 호텔을 나와 통영 식당에서 맛갈진 아침 식사를 하고는 650분 발 욕지도행 유람선에 올랐다. 배에 오르니 동쪽 하늘이 붉으스레 물들더니 구름 위로 주홍빛 해가 삐쭉이 머리를 내밀었다. 해는 바닷물까지 온통 붉게 물들이며 떠올랐고 붉은 빛 갑판에서 우리 회원들은 운동을 한다고 난간에 발을 얹고 스트레칭도 하고 빙빙 돌며 조깅도 하였다.

다른 손님이 없으니 갑판은 온통 우리들 차지가 되어 이쪽저쪽 사진도 찍으며 맘껏 놀다가 일부는 선실로 내려가고 나와 옥경씨는 계속 갑판 위에서 여기 저기 바라보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옥경씨는 10여 년 전부터 일중산악회에서 대장님과 산행을 했는데 결혼하여 청주로 이사 가는 바람에 근 2 년 만에 대장님과 만나게 되었다고 하였다.

 

한 시간 반 정도 지나 욕지도에 도착했는데 욕지도는 꽤 큰 마을이 있고 밭도 많았는데 특히 고구마 밭이 많았다. 우리는 부두 넘어 반대쪽 마을까지 가서 그쪽 바다를 바라보고는 욕지도의 최고봉인 천왕봉 등산을 하였다. 천왕봉은 그리 높지는 않았지만 산 위에서 바라보는 남해 바다는 한 폭의 동양화를 바라보는 듯 아름다웠다.

천왕봉에서 간단히 간식을 먹고는 다시 내려와 화려한 외출 촬영장소인 삼여 전망대로 갔는데 대장님 말씀이 는 나무가 없이 돌로 된 섬을 말한다고 하였다. 과연 바다에는 돌로 된 섬 세 개가 나란히 물에 잠겨 있었다. 전망대를 본 후 또 볼 것이 있다고 대장님은 부지런히 차를 달려 비포장 길로 들어서더니 차를 세워두고 풀숲의 작은 오솔길로 들어간다. 우리도 발에 불이 나듯 따라가니 황토로 지은 아담한 집이 나타나고 그 뒤로 넘어가니 또 다른 절경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바다를 향해 떨어질 듯 기울어진 바위를 지나 다시 황토집으로 돌아오니 삭발을 한 모녀가 살고 있었는데 마당에는 야곱의 우물도 있었다. 야곱의 우물이라고 이름 지은 걸 보면 기독교도 인 것 같은데 삭발을 한 것은 스님 모양이라 좀 묘했다.

뱃시간이 얼마 안 남았다고 뛰다시피 차로 돌아와 부두로 돌아오니 때 맞춰 우리가 탈 배가 들어오고 있었다. 화장실 갈 틈도 없이 숨 가쁘게 배에 오르니 배는 뱃고동 소리를 지르며 충무를 향해 출발하였다. 이 배는 갑판 위에 천막을 치고 식탁과 의자까지 설치해 우리들은 선상파티를 하자고 규옥씨가 맥주를 내었다. 대장님은 주무신다고 선실로 내려가시고 우리 여자들끼리만 위하여를 외치며 맥주를 마시고 오징어 안주와 과자를 먹었다.

우리가 신나게 먹을 때는 옆에 사람이 있는 것도 안 보이더니 다 먹고 나니 옆의 탁자에서 고구마를 먹는 사람들이 보였다. 규옥씨는 턱을 받치고 앉아서 이 사람들을 쳐다보며 맛있겠다.’를 연발하니 그 사람들이 먹어보라고 고구마 한 개를 준다. 우리는 그것도 나누어 맛있게 먹고는 의자에 앉아 한결 얌전해진 바다를 바라보며 충무로 향하였다. 의자에 앉아 단조로운 바다를 보고 있으려니 나도 모르게 잠이 솔솔 왔다. 깜빡 졸다 깨니 우리의 배는 벌써 충무의 품으로 파고들고 있었다.

 

충무로 돌아와 이번에는 진주로 향하였다. 진주의 촉석루에 도착하여 문 닫기 전에 임진왜란 박물관을 보려고 부지런히 박물관 쪽으로 걸어가니 마침 금요일이라 밤 아홉 시까지 무료 개방이라는 것이다. 무료라니까 한결 더 구경할 맛이 나서 우리는 구석구석 이것저것 들여다보고는 남강의 의암을 보러 갔다. 논개가 왜장을 껴안고 빠져 죽었다는 의암은 오늘도 의연히 강물에 들어앉아 논개의 충절을 묵묵히 말해주고 있었다. 의암까지 보고 나니 사방은 깜깜하게 어두워지고 우리는 갈 길이 멀다는 생각에 서둘러 차에 올랐다.

대장님은 서울을 향해 북으로 북으로 달렸고 그런 대장님이 졸릴까봐 우리들은 잡담을 계속했는데 어린 시절 이야기가 나오자 옥경씨가 대장님에게 돌멩이 껴 앉고 잔 이야기를 하라고 한다. 우리는 무슨 이야기냐고 했더니 초등학교 5학년 때 동네 형들과 라디오 안테나를 만들어 금곡에 갔다는 것이다. 형들 말이 이거 가지고 시골 가서 동네 아줌마에게 라디오를 들려주면 공짜로 밥도 먹여주고 잠도 재워준다고 해서 갔는데 막상 가보니 시골이라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단다.

그것만 믿고 갔는데 소리가 안 나니 밥도 못 먹고 쫄쫄 굶다가 금곡릉으로 가니 벌써 해는 떨어지고 차도 끊어졌는데 하도 추워 나무를 해다가 큰 돌멩이를 달구어 그걸 끼고 잤다는 것이다. 참 개구리 소년 못지않은 대단한 아이들이었던 모양이다. 우리 조상들도 온돌을 깔고 돌을 달구어 추위를 이겼는데 그 조상에 그 후손이란 생각이 들고 참 현명한 아이들이다 싶었다. 그때부터 갈고 닦은 실력으로 우리들을 이렇게 데리고 다니니 우리는 참 복도 많구나 싶었다.

그 말을 듣고 있더니 이번에는 규옥씨와 규화씨가 어린 시절 얘기를 꺼냈다. 어려서 엄마와 두 자매가 화투를 쳤는데 엄마가 실력이 좋아 두 자매의 돈을 몽땅 따서는 돼지 저금통에 넣었다는 것이다. 두 자매는 어찌나 억울하고 분한지 밤에 몰래 돼지 저금통의 지폐를 모두 꺼내고 신문지를 돈 같이 오려서 넣었다는 것이다. 얼마 후 엄마가 돼지 저금통을 개봉하고 노발대발하시며

네 년들 짓이지?” 하고 야단야단 하셨다는 것이다.

그러자 대장님은 그때부터 돈 관리를 잘해 지금도 재복이 많은가 보다고 하였다.

그리고 두 자매는 엄마가 큰 단지에 머루주를 담아 땅에 묻었는데 그걸 살금살금 매일 홀짝 홀짝 마셨다고 하였다. 규옥씨는 그렇게 어려서부터 내공을 쌓아 지금도 술이 센 것 같다.

 

이런 저런 얘기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떠들다보니 어느 덧 서청주에 도착하여 옥경씨는 내리고 우리는 다시 중부고속도로로 들어와 다음 모임을 기약하며 서울로 서울로 향하였다.

지금 생각해도 매물도와 욕지도는 지상 낙원 같은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었고 기회가 닿으면 다시 가고 싶은 섬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