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행문

2004. 5. 22. 쇠섬에 가고 싶다. (문학기행)

아~ 네모네! 2012. 10. 13. 14:29

<기행문>

쇠섬에 가고 싶다

2004. 5. 22. ()

이현숙(李賢淑)

쇠섬?

쇠섬(金島)인가? 쇠섬(牛島)인가?

 

안면도에 쇠섬이라고하는 작은 섬이 붙어있다. 난생 듣도 보도 못한 이 섬에 어떻게 가게되었냐 하면 사연인즉 이렇다.

 

롯데문화센터 권남희수필교실 회원들이 지난 20일 안면도로 문학기행을 떠난다고 했을 때 사실 몇 번씩 갔다온 안면도에는 별로 가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수필교실 회원들은 어떻게 하고 다니나 궁금하기도 하고 팬션이란 곳이 어떻게 생겼나 보고싶기도 해서 한 번 따라가 보기로 마음 먹었다.

그래서 그날 아침 일찌감치 배낭을 지고 잠실로 향했다. 잠실역에 내려 문화센터로 올라가려고 하는데 이영실씨가 전화를 했다. 위로 올라가지 말고 다람쥐인지 너구리인지 상 앞으로 오라는 것이다. 그래서 밖으로 나가 둘레둘레 주위를 살피며 걸어가는데 어디서

이현숙씨~” 하고 부르는 소리가 난다.

소리나는 곳을 바라보니 이영실씨 차에 권남희 선생님과 허해순씨가 타고 있었다. 배낭을 트렁크에 싣고 호텔로 들어가 화장실에 들렀다가 나오니 영실씨는 차에 앉아있고 두 사람은 밖에 나와 다른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잠시 기다리니 전수림씨 차가 도착하여 우리는 잠실을 출발해서 송파 IC로 해서 외곽순환도로로 들어가 달리다가 서해안 고속도로로 들어섰다. 평일이지만 많은 차들이 동맥 속의 적혈구 같이 빽빽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우리도 이 흐름에 합류하여 함께 흘러가면서 이 얘기 저 얘기로 졸음을 달래다가 홍성 IC로 빠져 나갔다. 전수림씨는 분명 우리 뒤에 출발했는데 언제 우리를 앞질렀는지 벌써 도착하여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 차가 앞서고 전수림씨는 우리 뒤를 따르는데 한용운선생 생가라는 이정표가 나타나자 권남희 선생님이

명색이 문학기행인데 한용운선생 생가 정도는 들려야하지 않을까?” 하신다.

이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영실씨는 좌회전 차선으로 차선을 바꾼다. 앞을 보니 무슨 사당 같은 건물과 육중하게 무게를 잡고 있는 기와집이 나타난다. 우리는 저게 한용운선생 생가인가 보다고 하며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내려보니 이것은 한용운 생가가 아니고 김좌진 장군 생가였다. 우리들은 조금 실망했지만 그래도 어차피 내린 김에 한 번 둘러보자고 안으로 들어갔다.

우리에게는 김좌진 장군보다는 홍길동 같은 김두한이 더 친숙하고 가깝게 느껴진다. 아마 책이나 드라마에서 김두한을 더 많이 다루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여기저기 둘러보니 김좌진 장군이 노비를 모두 해방시키고 가산을 털어 독립운동을 했다는 안내문과 유물들이 남아있었다. 과연 그 지방의 유지답게 집터도 넓고 집도 당당한 풍채를 자랑하고 있었다.

김좌진 장군이야 좋은 일 해서 후세에 이름을 남기고 우리 민족의 영웅으로 추앙을 받겠지만 그 부인은 얼마나 외롭고 쓸쓸하고 가슴 아픈 일생을 살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고 그저 내 남편은 너무 잘 나지도 말고 너무 못 나지도 말고 딱 중간만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좌진 장군 생가를 나와 이번에는 한용운 생가를 찾아가려는데 이정표가 보이지 않아 엉뚱한 길로 들어섰다가 시골 아낙에게 물으니 김좌진 생가로 다시 나가 은행나무를 쭉 따라가라고 가르쳐준다. 가르쳐 준대로 은행나무 가로수만 따라가니 과연 나지막한 산 아래 한용운 생가가 나타났는데 한용운 선생은 김좌진 장군 같은 부자가 아니었는지 집터도 자그마하고 집도 아담했다.

마루에는 방명록이 있었는데 특이하게도 남기고 싶은 한마디를 쓰는 칸이 있어 나는 이 산골에서 어린 소년이 성장하여 그렇게 큰 인물이 되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산골소년 출세했네라고 썼다.

집 옆으로 돌아가니 우물이 있었는데 아직도 맑은 물이 가득 고여있었다. 우물 옆에는 두레박도 놓여있어 우리들은 물을 퍼올려 서로 끼얹어 주며 손을 씻었다. 그런데 물이 어찌나 차고 시원한지 등목이라도 하고 싶을 지경이었다. 이렇게 깊은 산골에서 춘하추동 바뀌는 자연을 바라보며 자랐으니 어찌 우리 강산을 사랑하는 애틋한 마음이 가슴 깊이 자리잡지 않았을까?

한용운 생가를 나와 길가에 차를 세우고 바람에 일렁이는 보리밭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다가 돈나물을 발견하고는 내일 아침에 무쳐 먹자고 뜯기 시작했다. 나도 같이 뜯다가 옆을 보니 네잎 크로바가 보였다. 그래서 한 개 떼어내고 자세히 보니 여러 개가 보였다. 그래서 우리 회원 모두 한 개씩 주려고 여덟 개를 뜯어 차에 올랐다. 차에 올라

~ 제가 행운을 나누어 드리겠습니다.” 하며 한 개씩 주니 모두 기뻐하며 어디서 뜯었느냐고 묻는다. 나물 옆에서 뜯었다고 하니 영실씨가 네잎 크로바는 행운을 뜻하는데 세 잎 크로바는 무엇을 뜻하는지 아느냐고 묻는다. 나는 화요트래킹의 이영균 대장님에게 이미 들은 바가 있어

행복!”

하고 말했더니 맞다고 하며 사람들은 곁에 있는 행복은 모르고 행운을 잡으려고 애를 쓰며 인생을 허비한다고 하였다. 정말 누가 만든 말인지는 몰라도 분명 행복한 사람이 만들었을 것이다.

 

여기 저기 들르다보니 점심 때가 훨씬 지나 모두 배고프다고 빨리 점심 먹으러 가자고 하였다. 점심은 간월도에서 굴밥을 먹기로 했기 때문에 이번에는 곁눈질 한 번 안하고 방조제를 지나 쏜살같이 궁리로 달렸다. 간월도 앞에 있는 여러 식당을 기웃거리다가 영실씨가 어제도 여기서 굴밥을 먹었는데 괜찮다고 하여 해순이네 식당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허해순씨가

! 정말 내 이름하고 똑 같네!” 한다.

그런데 해순이가 해순이네 집에 들어가면 공짜로 밥을 주나 했더니 그렇지는 않았다.

시장이 반찬이라고 영양굴밥을 양념 간장에 싹싹 비벼 모두 비우고는 밖으로 나와 우리의 목적지인 안면도로 향했다. 연육교를 지나 안면쪽으로 가다가 창기삼거리에서 황도쪽으로 좌회전하여 나문재라는 안내판을 따라 갔다. 나는 나문재라는 고개가 있나보다 하고 속으로 생각했더니 영실씨가 그게 아니고 나문재라는 풀이 있다고 하며 가다가 나문재 풀이 나오면 가르쳐 주겠다고 하였다. 과연 조금 가니 둑방에 붉은 빛의 풀이 땅에 쫙 깔려있었는데 그게 나문재라는 것이다. 쇠섬에도 나문재가 많아 그 풀의 이름을 따서 팬션 이름도 나문재라고 했다는 것이다. 정말 예쁜 이름이라는 생각이 들고 그 이름 만큼 팬션도 아름다우리라는 기대가 생겼다.

비포장길을 한참 달려 염전 사이로 들어가 고개를 넘어가니 갑자기 세 채의 아름다운 집이 나타났는데 주변 경관과 어우러진 건물이 어찌나 아름다운지 유럽의 바닷가 휴양지에 와 있는 것 같았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니 침대며 말린 꽃과 조각품들이 어찌나 고상하고 아름다운지 갑자기 내가 귀족으로 승격된 것 같은 착각에 빠졌다. 창문으로 바라보이는 이름 없는 작은 섬은 우리의 넋을 빼기에 충분했고 모두들 탄성을 질렀다. 사실 내가 호텔이란 곳에 별로 가보지는 못했지만 지금까지 가본 어느 호텔보다도 가장 아름답고 고급스러웠다. 침대에도 누워보고 의자에도 앉아보고 하다가 섬을 한 번 둘러보자고 하여 다 같이 나와 섬 둘레를 돌아보니 여러 가지 야생화와 이름 모를 풀들이 우리를 반겨주고 숲속 오솔길은 우리의 마음을 한없이 순수하게 만들었다.

바닷가에 놓인 그네에서 그네를 타며 어린아이들 같이 마냥 즐거워하다가 언덕 위로 올라가니 거기도 아름다운 산책길에 자연 그대로의 정취가 흘러 넘쳤다.

 

섬을 한바퀴 돌아 다시 우리 방으로 돌아와 쉬다가 이번에는 허해순씨가 잘 아는 집으로 저녁식사를 하러갔다. 영목항 쪽으로 가다가 가경주라는 팻말이 있는 곳에서 골목으로 들어가니 바다가 나타나고 제일 안쪽으로 들어가니 식당 간판도 없는 평범한 어촌 집에서 저녁을 준비해 놓고는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회와 매운탕이며 야채까지 어찌나 싱싱하고 맛이 있는지 우리들은 그야말로 숨소리도 내지 않고 순식간에 먹어치웠다.

그런데 다 먹고 나자 정구필씨에게서 전화가 왔다. 지금 나문재에서 나와 이리로 오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식사가 끝났으니 이리 들어오지 말고 큰 길에서 기다리라고 하고는 정구필씨가 먹을 밥과 매운탕을 싸가지고 차를 타고 나왔다. 과연 큰 길에 나오니 정구필씨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정구필씨 차까지 세 대의 차가 나란히 다시 나문재로 돌아와 준비해온 술과 음식을 차려놓고 밤이 깊도록 노래와 이야기로 꽃을 피웠는데 전수림씨가 어찌나 노래를 잘 하는지 듣고 들어도 또 듣고 싶었다. 노래를 한바탕씩 하고는 첫사랑 얘기를 했는데 다들 감성이 풍부해서 그런지 아름다운 사랑의 추억들을 하나씩 가지고 있었다. 나는 B사감처럼 아무 경험도 없어서 별로 할 말이 없었다.

술과 이야기가 언제 끝날지 몰라 나는 슬그머니 일어나 세수를 하고는 방 한쪽 구석에 자리를 펴고 누웠다. 비몽사몽간에 들으니 술도 끝나고 얘기도 끝났는지 정구필씨를 어디다 재우느냐? 하며 왈가왈부 하더니 자리를 정했는지 잠시 후 조용해졌다.

 

화장실 드나드는 소리에 잠이 들었다 깼다 하기를 몇 번이나 반복하다가 날이 밝아 일어나니 구회남씨와 이영실씨가 옷을 입고 밖으로 나가려고 하였다. 정구필씨는 언제 가버렸는지 벌써 가버리고 없었다. 술끝도 깨끗하고 잠끝도 깨끗한 사람이구나 생각이 들었다.

나도 얼른 옷을 입고 따라나와 이번에는 어제와 반대 방향으로 한 바퀴 돌았다. 구름 사이로 해가 들락날락하며 바다에 붉은 물을 들였는데 구회남씨는 사진을 찍느라고 정신이 없고 이영실씨와 나는 또 섬을 한바퀴 휘휘 돌아 방으로 돌아오니 모두들 일어나 아침 준비를 하고 있었다.

허해순씨는 어제 저녁 식사하던 집에서 얻어온 조개로 맛갈스런 된장국을 끓이고 김과 김치를 반찬으로 깔끔하고 개운한 아침 식사를 마쳤다. 과일과 커피까지 완벽하게 훌코스로 아침식사를 하고는 마당에 나와 팬션과 바다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주인 부부의 배웅을 받으며 해미로 향했다.

해미에 도착하여 천주교 성지와 해미읍성을 돌아보았는데 읍성에서는 마침 관리소 직원이 나와 이런 저런 설명을 해주었다. 그런데 그녀는 해미에 대한 자부심이 어찌나 강한지 우리를 좇아다니며 설명을 계속했다. 긴 설명을 다 듣고 해미읍성을 출발하여 개심사에 들러 한바퀴 둘러보고는 주차장 옆의 식당에서 산채비빔밥으로 점심을 먹었다. 커피까지 뽑아 먹고는 오늘이 부부의 날이라고 하며 일찌감치 귀경길에 올랐다.

 

문학기행이란 어떤 것인지 확실히는 모르지만 어렴풋이 느낌은 왔다. 다음에는 좀 더 느낌과 정감이 넘치는 기행길에 올라 좀 더 재미있고 아름다운 글을 남겨야겠다. 그리고 쇠섬(金島)이라는 이름에 어울리지 않게 아름답고 편안한 쇠섬에 다시 한 번 가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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