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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행문

2003. 8. 19. 북유럽 여행기

by 아~ 네모네! 2012. 10. 13.

 

 

 

 

비행기를 멈춘 사나이

2003. 8. 19.()

이현숙(李賢淑)

 

  이번 여름 방학에는 구의 중학교에서 같이 근무하던 기산희 선생님과 교총에서 주관하는 해외연수에 참가하였다. 기산희 선생님이 몇 년 전부터 북유럽을 가보고 싶다고 하여 이번 기회에 구의 중학교에 근무했던 사람들과 같이 가려고 했는데 모두들 이래저래 바쁘고, 아프다는 사람, 갑자기 수술한 사람 등등 다 빠지고 기산희 선생님과 단 둘이 가게 되었다.

 

<83일 일요일 날씨 : 맑음>

  3일날 750분까지 인천공항으로 모이라는 연락을 받고 5시 반에 일찌감치 일어나 졸린 눈을 비비며 공항으로 출발하였다. 남편이 태워다 준다고 하여 내심 미안하기는 했지만 사양도 않고 얼른 탔다. 어둠이 깔린 서울을 출발하여 영종도로 향했는데 면목동에서는 안 오던 비가 부슬부슬 내렸다.

  인천 공항에 도착하니 7시도 안되어 나는 배낭을 메고 안으로 들어가고 남편은 차를 대고 온다고 주차장으로 갔다. 출발 장소가 어딘가 하고 B구역과 C구역 사이로 가보니 여러 여행사에서 나와 손님들 체크를 하고 있었다. 죽 돌아보다가 OK투어가 보이기에 가보니 누구냐고 하여 이현숙이라고 했더니 없다고 하며 어디 가냐고 묻는다. 북유럽 간다고 했더니 아직 너무 일러서 담당 직원이 안 왔다고 750분에 오란다. 다시 입구 쪽으로 오니 남편이 차를 대고 들어오기에 같이 식당에 가서 전복죽을 먹고 나와서 남편은 돌아가고 나는 다시 OK투어가 있던 자리에 오니 우리의 가이드 조진영씨가 인원 점검을 하고 있었다. 내 이름을 말하고 명찰을 받아 배낭에 붙이고는 기산희 선생님은 왔느냐고 물으니 왔다고 한다. 안심을 하고 KAL 마일리지 카드를 만들러 마일리지 코너에 가니 기산희 선생님도 거기서 나오고 있었다.

  1020분에 출발한다던 비행기가 50분이나 되어 이륙을 하였는데 비가 오고 컴컴하던 하늘이 갑자기 햇빛 찬란한 하늘로 바뀌었다. 구름 위에 있으니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걱정이 없어서 좋았다. 얼마 후 비행기에서 밑을 내려다보니 동해바다를 건너는지 짙푸른 바다 위에 하얀 줄을 그으며 배들이 지나가고 있었다. 땅에서 하늘을 볼 때는 비행기가 하늘에 하얀 줄을 그으며 지나갔는데 비행기에서 보니 배들이 흰 꼬리를 달고 다니는 것이 묘했다. 구름을 바라보니 별별 기기묘묘한 형상들이 많았는데 상승기류의 습도와 상승속도에 따라 서로 다른 천태만상의 구름이 만들어진다는 걸 생각하면 참 자연이란 신비로운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1250분에 나리따 공항에 도착하니 날씨는 화창하여 눈이 부실 지경이었다. 입국수속 하는데 사람들이 어찌나 많은지 긴 줄을 돌고 돌아 수속하는 곳에 이르니 일시 체류자는 다른 코너에서 절차를 밟아야 한다고 하여 도로 나와 수속을 밟고 다시 긴 줄 뒤에 서서 또 돌고 돌아 입국 수속을 밟고 나오니 일본 현지 가이드 김영선씨가 나와 우리 짐을 모두 찾아 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나리따에서 동경까지 버스를 타고 이동했는데 몇 년 전 큐우슈우에는 와 봤지만 동경은 처음이라 호기심을 가지고 둘레둘레 바라보니 우리 나라와 비슷한 게 별 차이가 없어 보였다. 단지 버스의 운전석이 오른쪽에 있고 차들이 좌측통행을 하는 게 눈에 좀 설었다. 200년 전까지는 교또가 수도였는데 동쪽으로 옮기고 이름을 동경이라고 했단다. 우리 서울이 500년 도읍지인걸 생각해 보면 역사가 짧은 도시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고속도로 전광판에 글씨로 되어있지 않고 지도 모양으로 되어 정체 지역을 붉은 색깔로 표시한 것이 우리 고속도로와 좀 달랐고 150CC이상이면 오토바이도 고속도로를 탈 수 있어서 고속도로에 오토바이들이 다니고 있었다. 오후 315분쯤 톨게이트에 도착했는데 ETC와 일반으로 되어있어 저게 뭔가 했더니 ETC는 차가 그냥 통과해도 자동으로 계산되어 월말에 계산서가 온다고 하였다. 우리 나라도 그렇게 하면 톨게이트에서의 정체가 많이 완화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4시쯤 명치신궁에 도착했는데 들어가기 전 문 왼쪽의 약수터에서 손을 씻고 들어가 동전을 던지고 손뼉을 세 번 치고 참배를 하는 아버지와 아들의 모습들이 보였다. 아들 딸 잘 되게 해달라고 비는 모습은 세계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명치신궁을 나와 황거라는 곳에 갔는데 여기는 현재 천황이 사는 곳이라고 하였다. 황궁 주위에는 외자와 내자라는 이중의 인공호수로 둘러싸여 있었는데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한 것이라고 하였다. 호수 주위에는 울창한 나무들이 자라고 물위에는 백조도 돌아다니고 있어 무척 평화로워 보였다.

  황거에서 나와 아사쿠사 관음사에 갔는데 여기도 손을 씻는 약수터가 있었고 비둘기들이 날아와 물을 먹는 모습이 보였다. 1톤이 넘는다는 큰 종이 입구에 매달려 있고 큰 향로가 있었는데 이 향연기를 쐬면 병이 났는다고 향을 쐬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기산희 선생님과 나도 연기를 쐬었다. 관음사에서 나와 저녁식사를 하고는 도청사를 보러갔는데 제1청사에 전망대가 있어서 동경 시내를 바라볼 수 있게 되어있었다. 동경의 야경도 서울의 야경과 큰 차이가 없었다. 청사에서 나와 다시 버스를 타고 나리따로 이동하여 HOLIDAY INN호텔에 도착하니 9시가 넘었는데 하늘에는 가는 눈썹 같은 초승달이 지고 있었다. 그런데 방에 들어오니 먹을 물이 없었다. 참 일본은 물 인심도 고약하다고 불평들을 하며 복도에 있는 얼음 기계에서 얼음을 뽑아다가 녹여서 먹었다. 이 날은 새벽부터 일어나 설친 관계로 정신없이 골아 떨어졌다.

 

<84일 월요일 날씨 : 맑음>

  아침에 일어나 산책을 하고 아침식사를 하고는 9시에 셔틀버스를 타고 공항으로 이동하였다. 우리 일행은 가이드까지 포함해서 14명밖에 안되니 기다리는 시간이 짧아서 좋았다. 공항에 도착하여 비행기를 기다리는 게이트에서 수염이 덥수룩한 사람을 보더니 기산희 선생님이

아니 저 사람 김덕수씨 아냐?” 한다.

그래서 그쪽을 보니 과연 TV에서만 보던 풍물패 김덕수씨가 일행들과 서있었다. 사람들이 반가워서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를 하니 김덕수씨도 손을 들며

안녕하세요?” 하고 답례를 한다.

화면에서 볼 때는 무척 커 보였는데 실제로 보니 자그마한 키에 몸집도 별로 크지 않았다. 우리가 탄 비행기는 SAS(스칸디나비아 항공)이었는데 SAS생각이 나서 별로 기분이 좋지는 않았지만 내부시설은 최첨단이었다. 비행기에 카메라가 장착되어 비행기 앞쪽과 아래쪽의 전경을 볼 수 있고 여러 가지 영화도 개인별로 골라볼 수 있게 의자마다 소형 TV가 붙어있었다. 정글북, 미녀와 야수 등등 몇 개의 영화를 보아도 해는 지지 않고 중천에 떠서 눈이 부시게 우리를 내리쬐고 있었다. 지구가 자전하여 해는 점점 서쪽으로 가고 있지만 우리가 서쪽으로 날아가며 계속 해를 따라가고 있으니 해가 질 수가 있느냐 말이다. 지구와 같은 속도로 날아간다면 해는 영원히 지지 않고 우리는 영원히 오늘이라는 시간 속에 갇혀버리는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까지 생겼다. 아니 지구보다 더 빨리 달린다면 해가 동쪽으로 질 것이고 그러면 타임머신을 탄 것처럼 시간을 거슬러 올라갈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지구가 쉴새없이 자전하기 때문에 지구 전체가 골고루 더워져서 우리는 따뜻하게 살 수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고 지구가 자전하지 않는다면 한쪽에서는 뜨거워 타 죽고 반대쪽에서는 얼어죽을 것이니 참 지구가 자전하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또 지구가 공전하지 않는다면 지구가 태양의 인력에 끌려 들어가 순식간에 타버릴텐데 일정한 속도로 공전하고 있어서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참 우주의 질서란 신비롭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별짓 별짓 다해도 시간은 안가고 좁은 의자에 앉아 큰 칼 찬 춘향이 모양 꼼짝 못하고 앉아있으려니 내가 무슨 별난 것을 보겠다고 이 고생을 하나? 하는 생각이 들고 괜히 왔다는 생각도 들었다. 지겨워서 몸을 비비꼬다가 기산희 선생님이 가져온 만행(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라는 책을 보았는데 저자의 진리를 향한 끝없는 집착과 험난한 여정이 가슴 저리게 와 닿았다. 부유하고 평탄한 가정에서 태어나 부러울 것 없이 사는 사람도 영혼의 갈증을 해소하지 못해 고민하는 인간은 과연 어떤 존재인가? 하는 생각이 떠오르고 평생을 바쳐 진리를 터득한 사람은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11시 반에 동경을 출발한 비행기가 오후 11시 반이나 되어 코펜하겐에 도착했는데 현지 시간으로는 오후 4시 반밖에 안됐다는 것이다. 이것은 축지법(縮地法)이 아니라 축시법(縮時法)이로구나 하는 생각이 들고 참 오늘은 길기도 하구나 하는 생각이 또 들었다. 나무로 된 공항바닥을 밟으며 촉감이 좋다고 감탄을 하면서 한참을 걸어나와 조진영씨 주위에 모여 갈아탈 비행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사람 수를 세어보니 두 명이 모자랐다. 535분 비행기로 갈아타고 헬싱키로 가야하는데 두 남자가 없어진 것이다. 조진영씨가 어디 갔느냐고 물으니 짐 찾으러 갔다는 것이다.

아니! 짐은 헬싱키로 곧장 가는 것인데 이거 큰일났네!” 하며 사방으로 찾아다녀도 보이지를 않는다. 비행기 출발 시간은 다가오고 사람은 안 나타나고 조진영씨는 애가 타서 어찌할 줄을 모르다가 사람들이 방송을 하면 어떻겠냐고 하니 방송실에 가서 한국말로 방송을 하였다. 그리고 공항사람들에게 두 남자가 밖으로 나갔는데 비행기표가 없어서 못 들어오는 것 같다고 하니 여기저기 연락을 해보고는 과연 그런 사람이 있어서 찾았다고 하였다. 우리는 일단 안심을 하고 비행기에 오르고 두 남자는 출발시간보다 10분이나 지나서 공항 안에서 돌아 다니는 소형차를 타고 아슬아슬하게 탑승을 하였다. 우리는 너무도 반가워서 박수를 치며

비행기까지 멈춘 사나이들은 정말 대단한 사람이야!” 하며 농담을 하였다.

  이 후로 이 두 사람은 여행을 마칠 때까지 비행기를 멈춘 사나이로 별명이 붙여졌다. 조진영씨는 너무도 걱정을 하다가 이 사람들이 나타나자 눈시울까지 붉어졌다. 참 학생들만 인솔하기 힘든 줄 알았더니 선생님들도 마찬가지였다.

  710(핀랜드 시간은 810)에 헬싱키에 도착하니 여전히 해는 질 줄 모르고 따갑게 내리비치고 있었다. 그런데 여기는 입국 심사도 없고, 짐 검사도 없고 그냥 짐 들고 밖으로 나오니 너무 간단해서 싱겁기까지 하였다. 여기 가이드는 황대신이란 분이었는데 태권도 사범을 하시고 한인협회 회장이라고 하였다. 9시에 CUMULUS호텔에 도착하여 짐을 풀고는 이날도 모두 피곤에 지쳐 방에 들어가자 마자 잠자리에 들었다.

 

<85일 화요일 날씨 : 맑은 후 비 온 후 다시 맑음>

  5시에 일어나니 마침 해가 솟아오르고 있었다. 수영장과 사우나가 있다는 소리를 들은 터라 기산희 선생님과 같이 6시에 수영장에 내려가니 아무도 없어서 둘이서 신나게 노는데 한 여선생 님이 나타난다. 우리는 수영을 잘 못해서 순 개폼으로 놀고 있었는데 이 선생님은 수영한지 15년은 된다면서 머리를 내놓고 여유 있게 수영을 하였다. 폼이야 어쨌든 그래도 신이 나서 놀다가 사우나에 들어가 몸을 데우는데 웬 양동이에 국자 같은 것이 담겨 있었다. 이게 뭐지? 하고 들여다보다가 밖으로 나와 샤워를 하고는 아침을 먹으러 갔다. 아침 운동도 한 터라 정신없이 집어 먹고는 방에 가서 짐을 챙겨 9시에 호텔을 출발하였다.

  핀랜드는 전국민이 500만 명, 헬싱키 인구는 50만 명이라고 하였다. 인구 1000만이 넘는 서울에서 복작대다가 이렇게 한적한 곳에 오니 마음도 느긋하고 평화로워지는 게 인간성이 달라지는 듯 하였다. 핀랜드는 국민소득이 25천불이나 되고 교육제도도 선진국 수준이라 졸업하면 전원 취업이 된다고 하였다. 또 학력에 관계없이 모두 월급이 같고 인간평등 사상이 강하다고 하였다. 주산업은 산림산업인데 자작나무로 가구를 만들어 수출하고 나무즙으로는 자일리톨 껌을 만들어 수출한다고 한다.

  915분쯤 전통 사우나를 하는 곳에 들렀는데 큰 호수 가에 나무 집을 짓고 돌을 달구고 있었다. 여섯 일곱 시간 돌을 달군 후 양동이에 물을 담아 끼얹으면 김이 가득 차서 사우나를 한다는 것이다. 아하! 그래서 돌 옆에 양동이가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우나를 하다가 더우면 호수에 들어가 수영을 하고 또 들어와 사우나를 하고 하며 즐긴다는 것인데 호수 주변 경관이 아름다워 그야말로 한 폭의 그림을 보는 듯했다.

  사우나장을 출발하여 이번에는 주말 농장이란 곳에 갔는데 여기는 사회복지 시설이 잘 되어 65세에 정년 퇴직을 하면 이렇게 주말 농장에서 노후를 즐긴다는 것이다. 말이 주말농장이지 채소밭은 별로 없고 온통 꽃밭이었다. 이집 저집 구경을 하다가 한 할머니가 사는 집에 들어갔는데 집안으로 들어오라고 하여 안에 들어갔더니 안에도 어찌나 아름답고 아늑하게 만들어 놓았는지 거기서 살고 싶은 마음이 들 지경이었다. 우리가 밖으로 나오니 할머니는 오래 된 앨범을 들고 좇아 나와 자기 어렸을 때 사진을 보여주며 설명을 하느라고 신이 났다. 이 할머니는 아버지가 외교관이라 어렸을 때는 중국에서 살았다고 하였다. 한참을 할머니 얘기를 듣다가 다시 나와 헬싱키 올림픽 경기장으로 갔다.

  그런데 여기는 지하를 회사 사무실로 임대하여 임대료를 받아 경기장 관리를 한다고 하였다. 우리도 이런 식으로 관리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경기장 앞에는 파보누르미 동상이 있었는데 이 사람은 올림픽 마라톤에서 12개의 메달을 딴 사람이라고 하였다.

  올림픽 경기장을 나와 시벨리우스 공원으로 갔는데 시벨리우스 공원은 생각보다 규모는 작았지만 세계 각국의 사람들이 모여 시벨리우스 얼굴 조각 앞에서 사진을 찍느라고 줄을 서야할 지경이었다. 우리도 사진을 찍고 이번에는 암석교회로 갔는데 암석교회는 말 그대로 암석을 파내어 교회를 만든 곳이었다. 교회 안에 들어가니 파이프 오르간을 연주하고 있었는데 암석과 구리판에서 메아리가 생겨 웅장하고 신비로운 소리를 내었다. 의자에 앉아 소리를 듣다가 나와 점심을 먹으러 식당으로 향했다.

  식당에 들어가니 할머니가 써빙을 하는데 외손자가 돕고 있었다. 외손자는 10살 정도 되어 보였는데 부끄러운지 음식을 가지고 오면 가만히 서 있었다. 그래서 우리가 받아 식탁에 놓으면 다시 쟁반을 들고 가곤 하였다. 그래도 할머니는 외손자가 대견스러운지 얼굴에 만족한 웃음이 그치지 않았다.

점심을 먹고 마켓광장에 갔는데 여러 가지 물건을 파는 노점상들이 모여있었다. 사람들은 여기 저기 구경하며 물건들을 샀는데 나도 곧 외손자가 태어날 몸이라 그런지 애기용품에만 눈이 갔다. 그래서 손으로 짠 작은 모자를 하나 샀다.

소망아 빨리 나와서 이 모자 써봐라!” 하며 어린 소망이가 모자 쓴 모습을 떠올리니 나도 모르게 웃음이 번졌다.

  2시 반쯤 원로원 광장을 보고 광장 옆에 있는 마틴 루터 교회와 헬싱키 대학을 보았는데 도서관에서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들이 퍽 진지해 보였고 무엇보다 도서관 안에 삼성 컴퓨터가 설치되어 반가웠다. 헬싱키 대학에서 나와 실자라인(SILSA LINE)이란 유람선을 타러 갔는데 어찌나 큰지 12층까지 있고 엘리베이터가 10개라고 하였다. 헬싱키에서 스웨덴의 스톡홀름까지 가는데 21실로 1급 호텔같이 시설이 좋고 깨끗하였다. 면세점도 여러 개 있었는데 여기 저기 둘러보다가 사위가 부탁한 아바의 CD가 있어서 하나 샀다. 생선요리가 푸짐한 저녁 식사를 마치고 갑판에 올라가니 바람이 어찌나 센지 다시 들어와 이번에는 SPAR에 갔다.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나가니 여러 개의 욕조가 있었는데 남녀가 섞여 들어있어 선뜻 들어가지지 않았다. 기산희 선생님이 못 들어가겠다고 하여 다시 들어와 사우나를 하다가 내가 용기를 내어 다시 가보자고 했더니 나 먼저 가란다. 자기는 내가 안 들어오면 나오겠단다. 그래서 용기를 내어 다시 나와 여기 기웃 저기 기웃 하다가 아이들만 있는 곳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기산희 선생님도 나와서 같이 욕조에 들어와 등 맛사지 발 맛사지를 하고 미끄럼도 타고 한참 놀다가 방으로 돌아왔다.

  방에 와서 수영복을 놓고 다시 갑판에 나가 해가 넘어가는 광경을 바라보다가 11시쯤 방에 돌아와 잠자리에 들었다. 배는 가는 것 같지도 않게 조용히 미끄러지듯 진행하니 조금도 요동함이 없어 편안히 잠자리에 들었다.

 

<86일 수요일 날씨 : 맑음>

  4시쯤 잠이 깨 밖을 내다보니 우리 배는 여전히 수면 위를 미끄러지듯 흘러가고, 벌써 해가 뜨려는지 하늘이 불그스름하게 밝아오고 있었다. 5시가 되어 갑판으로 올라가니 바람이 어찌나 센지 날아갈 지경이었는데 후미로 가보니 우리 팀 몇 명이 벌써 나와 일출을 보고 내려가고 있었다. 우리도 갑판에서 사진 몇 장 찍고는 내려와 식당으로 가니 벌써 많은 사람들이 식사를 하고 있었다. 식사를 마치고 방에 들어와 짐을 챙겨 7층으로 내려가니 많은 사람들이 모여 하선을 기다리고 있었다.

  9시 반쯤 실자라인에서 내리니 현지 가이드 방혜선씨가 나와 우리를 맞이해 주었다. 모두들 소지품을 주의하라고 하며 어제 다른 팀에서 배낭채로 잃어버렸다고 하였다. 관광지에는 외국인 소매치기들이 많아서 종종 짐을 잃어버린다고 하였다. 10시쯤 바사 박물관에 도착했는데 여기도 관광객이 많아 소지품 주의 하라고 또 얘기하며 박물관 안으로 들어갔는데 커다란 바이킹 배가 있었다. 이 배는 1623년에 3년에 걸쳐 만든 배인데 처녀 출항에서 겨우 1.5km 가서는 침몰했다고 한다. 그 후 333년간 물 속에 잠겨 있다가 인양되었는데 인양 후 18년 동안 방부처리를 하고 그 후에 박물관을 짓고 전시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 배는 왕이 지은 배라 그런지 장식이 호화롭기 그지 없었다.

  박물관에서 나와 중국식으로 점심 식사를 하고 구()시가지 구경을 하였다. 시가지 구경을 마치고 시청사를 보러갔는데 여기에서는 해마다 노벨상 수상자들을 위한 만찬회가 열린다고 하였다. 우리 나라 김대중 대통령도 여기서 만찬회에 참석을 하였단다. 그런데 시청사 건물 방 문 위에는 하나같이 사람들의 얼굴이 붙어있었다. 이게 누구 얼굴이냐고 가이드가 사람들에게 묻자

역대 시장!”

청사 지을 때 기부금 낸 사람!” 등등 별 대답이 다 나왔지만 모두 틀렸단다.

공사할 때 일한 노동자들이란다. 참 정말로 인간 평등이 실현되는 나라나는 생각이 들었다. 시청사에서 나오니 잔디밭에 누워 일광욕하는 사람들과 다이빙하는 아이들이 많아 구경을 하다가 5시쯤 공항으로 향했다.

  5시 반쯤 공항에 도착하여 비행기표를 받으니 게이트 번호가 없었다. 왜 없냐고 했더니 전광판에 나오니 그걸 보고 가면 된다고 한다. 얼마 후 5A라고 해서 그쪽에 가서 한참 기다렸더니 또 거기 직원이 1번 게이트로 가라고 한다. 수시로 상황에 따라 게이트를 바꾸는 모양이었다.

  다시 비행기를 타고 노르웨이의 오슬로에 도착하니 9시가 되었다. 그래도 해는 지지 않아 사방은 대낮 같이 밝았다. 여기서도 아무 검사 없이 공항을 나오니 노르웨이 가이드 손여영씨가 나와 기다리고 있었다. 공항 출구에는 우리말고도 다섯 개 팀이 더 오는지 여섯 명의 한국 여행사 가이드들이 피켓을 들고 서 있었다. 호텔에 도착하여 늦은 저녁 식사를 하고 방에 들어와 오늘도 피곤한 몸을 침대에 싣고 잠이 들었다.

 

<87일 목요일 날씨 : 맑음>

  아침에 일어나 산책을 하고 식당으로 오니 손여영씨가 들어오며 정몽헌씨가 자살하였다고 알려주었다. 모두들 충격 받은 얼굴로 웬일이냐며 놀라와하였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버스에 오르니 손여영씨가 프린트 한 것을 들여다보며 노르웨이 인구가 얼마고 오슬로 인구가 51만 명이고 어쩌고저쩌고 한참 설명을 하더니 가이드 한지 얼마 안돼서 잘 모르니 잘못하는 게 있어도 이해해 달라고 미리 양해를 구하였다.

  우리가 탄 버스에는 좌석 옆에 휴지통이 붙어있고 천장에는 작은 망치도 붙어있었는데 비상시 유리를 깨고 탈출할 수 있게 되어있었다. 우리 나라 지하철에도 이런 게 있었으면 대구참사 같은 대형사고는 막을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버스를 타고 가면서 보니 노르웨이에는 웬 터널이 그리도 많은지 세기도 힘들 지경이었다. 어떤 터널은 24.5km나 되는 것도 있다고 하였다.

  9시 반쯤 바이킹 박물관에 도착했는데 여기는 세 척의 배가 전시되어있었다. 세 척 모두 무덤으로 쓰인 배라고 했다. 이 배들을 인양하여 전시하는데 까지 21년이 걸렸다고 하니 문화재를 아끼는 서양사람들의 정성을 알만도 하였다. 그리고 배 안에는 여왕이 타는 마차도 있었는데 죽은 사람이 무슨 마차를 타겠다고 이런 것까지 만들어 넣었는지 영생을 믿는 것은 동양인이나 서양인이나 동일한 것 같았다.

  바이킹 박물관에서 나와 비겔란드 공원에 갔는데 이곳은 비겔란드의 조각품이 전시된 공원이었다. 나라에서 32만평의 땅을 주고 여기에 이 사람의 조각품을 전시하도록 했는데 비겔란드가 40년 동안 2만여 개의 작품을 만들어 전시하였단다. 그런데 비겔란드의 요청에 따라 입장료를 받지 않기 때문에 누구나 언제든지 관람할 수 있는 야외 조각공원이었다. 비겔란드는 목수의 아들로 태어나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제로 한 조각품을 많이 만들었다고 하는데 공원 전체를 이 사람이 설계하고 작품을 전시하였다고 한다. 비겔란드는 이 공원의 작품을 모두 만들고 죽었는데 이 공원은 그가 죽은 후 개장되었다고 하였다. 그리고 해시계는 유일하게 남의 작품이었는데 해시계 받침대는 비겔란드 어머니의 묘비로 쓰려고 했다가 못 쓰고 여기에 전시되었다고 하였다. 이렇게 심혈을 기울여 하나의 위대한 작품을 남기고 간 사람들을 보면 부럽기도 하고 한 번 사는 인생인데 그냥 편안하게 살다 죽지 왜 사서 고생을 하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공원에서 나와 홀멘콜렌에 있는 스키 점프대를 보고 한식으로 점심 식사를 했는데 오랜만에 된장찌개에 김치까지 나오니 다들 정신없이 퍼먹었다. 점심을 먹고 국립 미술관에 갔는데 여기는 뭉크의 작품이 전시되어있었다. 뭉크의 작품에서 눈에 익은 건 쥐약을 먹은 듯 일그러진 얼굴의 어린이 모습을 그린 절규라는 작품이었다. 뭉크는 15살도 되기 전에 어머니를 잃고 그 후 누나도 죽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죽음과 고뇌의 어두운 그림자가 그림에 배어있었다.

  미술관에서 나와 다시 버스를 타고 동계올림픽이 열렸던 릴리함메르로 출발하였다. 가는 길 가에서 체리와 딸기들을 사서 차에 올라와 맛있게 먹으며 호수를 따라 계속 버스는 달렸는데 웬 호수가 그렇게도 큰 지 몇 시간을 달려도 같은 호수라고 하였다.

  오후 4시가 넘어 릴리함메르에 도착했는데 긴 점프대가 눈에 띠었다. 점프대 옆에는 리프트와 걸어 올라갈 수 있는 계단도 있었는데 999개의 계단으로 되어있다고 한다. 우리는 리프트를 타고 올라갔는데 점프대 위에서 바라보는 릴리함메르는 끝없이 이어지는 능선이 아련하여 꿈속의 장면을 보는 듯 했다.

  5시 반에 릴리함메르를 출발하여 다시 버스를 타고 가면서 손여영씨가 그리그의 솔베지쏭을 들려주었는데 그리그의 나라에서 들어서 그런지 더 가슴 저리게 와 닿았다. 솔베지라는 여자가 페르기트라는 남자를 사랑했는데 페르기트는 평생동안 방황하며 돌아다니다가 나중에는 솔베지에게 돌아와 그녀의 품에서 죽는다는 내용인데 민스트라는 마을에 실제 인물이 있었다는 것이다. 노래 속에는 솔베지의 애절한 마음이 절절이 넘쳐나고 있었다.

  솔베지송을 듣다보니 어느 덧 우리의 버스는 오따에 있는 오따 호텔로 들어서고 있었다. 그런데 이 호텔의 엘리베이터는 희한해서 문이 손으로 여는 여닫이 문이었다. 손으로 열고 들어가 버튼을 누르면 덜커덩하고 출발했다가 설 때도 덜커덩하고 섰는데 중간에 멈출 것 같아 속이 조마조마 하였다. 그래서 처음에만 타고 그 후로는 줄곧 계단으로 걸어다녔다. 그래도 주변 경관은 좋아서 뒤에는 산이 서있고 앞에는 강이 흐르고 있었다. 저녁을 먹고는 산 쪽으로 산책을 하다가 들어와 남편과 통화를 하고는 잠이 들었다.

 

<88일 금요일 날씨 : 맑음>

  아침에 일어나 이번에는 강가로 산책을 했다. 다리를 건너 마을 쪽으로 가보니 동네 어귀에 우체통들이 모여 있었다. 이렇게 해 놓으면 우체부 아저씨들이 훨씬 편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을 따라 올라가다가 다시 호텔로 돌아와 식사를 하고 8시에 오따를 출발하여 스타브 교회를 보고 브릭스달 빙하로 향했다. 가는 길에 공사로 일방 통행을 시키는 곳이 여러 번 있었는데 모두 여자들이 빨간 원이 그려진 종이를 들고 정지 신호를 하고 있었다. 우리 나라에서는 모두 남자들이 하는데 여기는 모두 여자들이 하고 있었다. 노르웨이에서는 여자들도 모든 직종에서 남자와 동등하게 활동한다고 한다.  

  12시에 브릭스달에 도착하여 점심식사를 하고 빙하까지 가는데 마차를 타고 가는 사람도 있고 차를 타고 가는 사람들도 있었다. 우리 일행은 마차를 타고 가자고 하고 손여영씨는 3일 전에 말이 놀라 뛰는 바람에 한국인 세 명이 다쳤다고 찜찜해 하였다. 그래도 우리는 마차를 타고 싶다고 하니 그러면 3시까지 기다려야한다고 하였다. 그래도 좋다고 하여 결국 2시간을 기다려 마차를 탔는데 마부도 역시 여자였다. 우리는 마차에 타고 편안히 가는데 마부 아가씨와 말은 하루 동안 몇 차례나 오르내렸는지 땀이 비오듯했다. 그걸 보니 차를 탈 걸 그랬나 하는 생각이 들고 말과 아가씨에게 너무 미안했다. 마차에서 내려 빙하 쪽으로 올라가니 빙하의 색깔이 어찌나 아름다운지 쪽빛이란 게 이런 게 아닌가 싶었다. 그냥 푸르다고 하기에는 너무도 신비롭고 깊고 그윽한 색깔이었다. 한참을 들여다보면 빙하 속으로 빨려 들어갈 것 같은 깊은 색깔에 매료되어 얼마를 바라보다가 내려오는데 헬멧을 쓰고 아이젠을 찬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여기는 가이드의 안내로 장비도 빌려주면서 빙하를 오르게 해주는데 약 10만원 정도만 내면 된다는 것이다. 나도 해보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았지만 우리 일정상 포기를 하고 내려오려니 아쉬운 마음에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조금 내려오는데 웬 헬기 한 대가 계곡에 계속 떠서 무엇인가 찾는 듯 했다. 헬기 안에 있는 사람은 문까지 열어놓고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는데 내려와서 손여영씨에게 물으니 프랑스 사람 한 명이 급류에 휘말려 수색 중이라는 것이다. 내려올 때도 마차를 탈 계획이었지만 헬기 소리에 말이 놀라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 그냥 걸어 내려가자고 하여 모두들 걸어 내려왔는데 한참 내려오다 생각하니 마부 아가씨에게 팁을 안 준 생각이 났다. 미안한 마음은 절실했지만 다시 올라가기에는 이미 너무 많이 내려와 그냥 내려왔다. 힘들여 일했는데 무척 아쉬워할 아가씨 마음을 생각하니 내 마음이 더 아팠다. 다음부터는 정신좀 잘 차려야겠다.

  빙하 관광을 마치고 다시 버스에 올라 얼마를 오다가 우리 버스는 배를 타고 피요르드를 건너 레르달에 도착하였다. 레르달 호텔에 도착하니 호텔은 자그마했지만 피요르드 사이로 지는 해는 한 폭의 그림을 보는 듯 했다. 피요르드는 빙하의 침식으로 생긴 U자 계곡에 바닷물이 들어온 것이라는데 우리 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모양을 이루고 있었다. 바닷가에서 낚시하는 사람, 배를 띄우고 수영하는 아버지와 아들을 바라보니 세상 근심 하나 없는 낙원에 온 기분이었다. 저녁을 먹고 바닷가를 산책하다가 잔디밭 의자에 앉아 우리 일행들과 담소를 나눈 후 방에 들어와 6일 째 밤을 맞이하였다.

 

<89일 토요일 날씨 : 맑음>

  아직도 시차 적응이 안 됐는지 5시에 눈이 떠져 6시쯤 다시 밖으로 나가니 벌써 혼자 나와 낚시를 하는 아이, 모터보트 위에서 배를 손보는 할아버지, 아침 인사를 하는지 깍깍거리는 까마귀, 모두 일찍 일어나 아침을 깨우고 있었다. 7시에 호텔로 돌아와 아침 식사를 하는데 손여영씨가 와서 김천에서 부산 사이에서 열차 사고가 일어나 90명이 사망하였다고 하며 경상도 쪽에서 온 사람은 집에 연락좀 해보라고 하였다. 다행히 우리 일행에는 경상도 사람이 없어서 안심을 하고는 어제 프랑스 사람은 어떻게 됐냐고 했더니 신문에 수색중이라고 나온 걸 봐서 죽은 것 같다고 하였다. 프랑스 여자인데 빙하를 보러 왔다가 물가에서 급류에 휘말렸다는 것이다. 100년만의 더위로 빙하가 많이 녹아 유난히 물살이 세져서 이런 사고가 생긴 것 같았다.

  8시에 로비로 내려와 4유로를 주고 엽서 3장을 부치고는 830분에 다시 배를 타고 송네 피요르드 관광을 떠났다. 버스는 우리가 도착하는 곳으로 미리 가 있는 다고 하였다. 830분에 레르달을 출발하여 1140분에 구드방겐에 도착할 때까지 피요르드를 보았는데 아침 안개가 그윽히 깔려 신비로움을 더해주고 있었다. 웅장하고 깨끗하긴 했는데 기대치가 너무 높았었는지 그렇게 감동적이지는 않았고 잘 보려고 갑판 위 제일 앞에서 3시간을 있었더니 어찌나 추운지 완전히 동태가 되는 것 같았다. 구드방겐에 도착하니 우리의 버스는 벌써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버스에 타니 찜통 같은 버스가 덥기는커녕 따뜻해서 좋았다.

  잠시 후 플롬에 도착하여 부페로 점심 식사를 하고는 산악기차를 탔는데 협곡 사이로 통과하는 도중 초스포선 폭포라는 곳에 잠시 내렸다. 여기서는 빨간 드레스를 입은 훌드라라는 여자가 폭포 가운데서 춤을 추었는데 이 여자는 산 속에서 혼자 사는 목동 소녀로서 전설에 의하면 꼬리가 있고 이렇게 춤을 추어 남자를 유혹한다는 것이다. 꼬리를 달았는지 안 달았는지 긴 드레스를 입어서 보이지는 않았지만 폭포에서 나오는 듯한 웅장한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아가씨 모습에 젊은 남자라면 넋을 빼앗길 만도 하였다. 한 마디로 꼬리를 친다고 할 수 있었다. 기관사 아저씨의 호루라기 소리에 다시 정신을 차려 기차에 오르니 기차는 다시 산을 기어올라 몇 정거장 더 가서 멈췄다. 여기서 우리는 내려 다시 내려오는 기차를 타고 플롬으로 되돌아와 버스를 타고 베르겐으로 향했다.

  베르겐은 노르웨이 제 2의 도시로서 오슬로가 수도로 되기 전에는 베르겐이 수도였다고 한다. 베르겐에는 그리그가 살던 집이 있었는데 그리그는 베르겐에서 좀 떨어진 곳에서 태어났지만 주로 베르겐에서 작품 활동을 하고 죽기까지 베르겐에 살았다고 한다. 천식이 심해서 의사가 날씨가 좋은 곳으로 요양을 가라고 했지만 끝까지 베르겐에 남아서 작품 활동을 했다고 한다. 저녁 610분에 그리그의 집에 도착했는데 530분까지 관람 가능하여 안에는 들어가지 못하고 겉에서만 보았다. 그리그는 키가 153cm밖에 안되고 몸이 허약하여 평생 고생을 했다고 한다. 고종 사촌 여동생과 결혼하여 딸을 하나 낳았는데 10개월 되었을 때 죽었고 그 후에는 애기가 없어서 평생 둘이서 살았고, 두 사람의 돌무덤이 호수로 향한 암벽 위에 만들어져 지금도 호수를 바라보고 있었다. 작업실에 있는 의자도 어찌나 작은 지 어린아이 의자 같았고 콘서트 홀 옆에 있는 동상은 실물 크기로 만들었다는데 어찌나 작은지 어린 아이 같았다. 콘서트홀은 200석 규모의 작은 홀이었는데 이 홀 의자에 앉으면 호수가 바라보인다고 한다. 이렇게 아름다운 곳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평생을 같이 했으니 그런 아름다운 음악이 나올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그의 집으로 들어가는 길에도 오래된 고목이 울창했는데 그 길로 들어설 때부터 무엇인가 우리 마음을 사로잡는 독특한 매력이 있었다. 그의 음악에서 배어 나오는 신비로움과 아름다움이 그의 집에서도 그대로 배어 나오고 있었다. 안에 들어가 보지 못해서 아쉬웠지만 그래도 집을 바라본 것만으로도 가슴 가득 큰 감동을 받았다.

  그리그의 집을 나와 어시장과 독일 상인들이 살았다는 브뤼겐 거리를 보고 8시쯤 에드워드 그리그 호텔에 도착하였다. 이 호텔은 그리그의 명성에 걸맞게 가운데가 천장 벽 할 것 없이 유리로 된 특이한 건물이었고 전망도 좋은 곳에 자리잡고 있었다. 저녁을 먹고 주변을 산책했는데 한 치의 땅만 있어도 꽃을 가꾸는 노르웨이 사람들의 아름다운 마음이 느껴졌다. 이날은 노르웨이에서의 마지막 밤을 아쉬워하며 잠자리에 들었다.

 

<810일 일요일 날씨 : 맑음>

  아침 6시에 일어나 안개 낀 산을 바라보며 산책을 하다가 아침 식사를 하고 8시에 베르겐 공항을 향해 출발하였다. 가는 길에도 안개가 심해서 비행기에게는 안개가 쥐약이라는데 비행기가 뜰 수 있을까 걱정을 했더니 버스 기사가 이 정도면 뜰 수 있다고 하여 안심을 하고 공항으로 향했다. 930분에 코펜하겐으로 가는 비행기를 타는데 어찌나 작은지 비행기를 보자마자 기산희 선생님이

애개~!” 하고 소리를 지른다.

내가 봐도 정말 너무 작아 무슨 헬기 같았다. 그래도 너무 큰 것보다는 정이 가서 좋았다. 그래도 비행은 순조롭게 잘 되어 1130분쯤 코펜하겐 공항에 도착하였다.

  공항에 도착하니 천종업이란 총각이 꽁지머리를 하고 나타났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인건비가 너무 비싸 아예 머리를 기르기로 했다는 것이다. 1150분에 공항을 출발하여 점심을 먹고 시내 관광을 갔는데 우선 칼스버그 맥주 회사에 갔다. 여기는 미리 예약을 해야하는데 1인당 시음권 2장씩을 주었다. 나는 맥주는 별로 좋아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두 가지를 선택하여 조금씩 맛을 보았다. 남자들은 맥주 두 컵씩 먹고 나더니 지금까지 만난 가이드 중에 당신이 최고라고 극구 칭찬을 하였다. 그런데 맥주 공장에는 여러 가지 시설도 많았지만 말과 마차가 많았다. 웬 말이냐고 했더니 지금도 맥주 배달을 말로 한다는 것이다. 옛 전통을 소중히 간직하려는 유럽인들의 마음이 느껴졌다.

  맥주 회사에서 나와 프레드릭 베어성이란 곳에 갔는데 여기는 넓은 잔디밭에서 비키니 수영복만 입고 썬텐하는 사람들이 어찌나 많은지 눈을 어디로 돌려야할지 난감했다. 일년 중 여름 한 철만 해가 제대로 난다니 그 심정이 충분히 이해가 갔다.

  성에서 나와 이번에는 칼스버그 그립프텐 뮤지엄에 갔다. 여기는 우리가 많이 들어오던 드가, 세잔느, 피카소, 고갱등의 그림이 있었는데 우리 가이드가 미술을 전공하는 관계로 인상파에 대한 설명과 조소에 대한 설명을 자세히 해 주었다. 조각은 겉에서 안으로 깍아들어가는 것이고, 소조는 안에서 밖으로 붙여 나오는 것인데 조각과 소조를 합하여 조소라고 한다는 것이다. 이 박물관에는 밀레의 그림도 있었는데 저승사자에게 끌려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농부의 모습이 애처로웠다. 그림 설명을 모두 마치고 각자 자유로 4시까지 관람을 하라고 하여 조각품들을 둘러보았는데 로마시대의 원로들 같은 조각이 많았다. 그런데 모두 왼손을 아래쪽으로 하고 비스듬히 누워있었다. 기산희 선생님과 나는 왜 모두 왼쪽으로 누워있을까? 하고 생각하다가 오른 손으로는 음식도 먹어야하고 결재도 해야하니까 그런가보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그 표정을 보면 근엄한 모습, 우울한 모습, 사색에 잠긴 모습, 오만한 모습 등등 모든 사람의 표정이 제각각 다 달랐다. 딱딱한 돌을 가지고 그렇게도 다양한 표정을 만들어낸 조각가들의 손끝은 대체 어떻게 생겼을까 싶었다. 여기 저기 둘러보며 사진도 찍다보니 금방 4시가 되었다. 다 보지 못한 방이 있어 얼른 들어가 보려고 했더니 관리인이 문을 막으며 못 들어가게 한다. 참 서양 인심은 너무도 야박하다고 속으로 툴툴거리며 그래도 한국 인심이 좋다고 하면서 박물관을 나왔다.

  박물관을 나와 다시 버스를 타고 QUALITY호텔에 도착하니 420분밖에 안됐다. 방에 들어가 짐을 풀고 다시 나와 시내로 들어와 저녁을 먹고는 자유관광을 할 사람은 더 놀다가 각자 호텔로 돌아오라고 하여 다른 사람들은 다 들어가고 송곡여고 선생님 두 명과 우리 둘은 그냥 시내에 남았다. 여기 저기 돌아다니다가 시청앞에 도착하니 남미인들이 여러 가지 수제품을 늘어놓고 팔고 있었다. 이것저것 구경하다가 상점들이 있는 골목으로 들어가니 웬 남자가 팬티만 입고 꼼짝 않고 어떤 식당 앞에 서 있었다. 처음에는 마네킹인가 하고 자세히 보니 진짜 사람이었다. 그런데 앞에 모자를 놓고 모자 속에는 동전도 몇 개 놓여있는 것으로 보아 그런 눈요기로 돈벌이를 하는 모양이었다. 참 세상에는 별별 직업이 다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참을 가니 마술을 하는 사람,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 등등 별별 사람들이 다 있었다. 구경을 마치고 다시 나오는데 웬 청년이 붉은 악마 티를 입고 가는 게 아닌가? 반가워서

“HI! WE ARE KOREAN!" 했더니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제임스입니다.” 하고 한국말도 하는 게 아닌가? 우리는 되지도 않는 영어로 이것저것 물었더니 자기는 영국사람이고 한국에서 몇 년 살았다고 하였다. 그 청년과 헤어지고 다시 시청앞 광장에 와서 벤치에 앉아 사람들이 연주하는 것을 보다가 안델센 동상에서 사진도 찍고 놀다가 택시를 타고는 호텔로 돌아왔다. 호텔에 오니 9시쯤 되었는데 아직도 밖은 환한 지라 이번에는 바닷가에 가보자고 하며 밖으로 나왔는데 길을 잘못 들어 공항 쪽으로 가는 바람에 다시 얼마를 걸어 바닷가에 가니 캄캄하게 어두워졌다. 그런데 마침 둥근 보름달이 떠오르는 게 아닌가? 아니 동경에서는 초승달이었는데 벌써 달이 저렇게 됐나? 하고 생각하니 벌써 집 떠나온 지 한참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호텔로 돌아와 유럽에서의 마지막 밤을 아쉬워하며 잠자리에 들었다.

 

<811일 월요일 날씨 : 맑음>

  이 날도 아침 6시에 일어나 다시 바닷가로 산책을 나갔다. 나도 엔간히 발발거리며 다니길 좋아하는데 기산희 선생님은 나보다 더 했다. 한 명이 싫다고 하면 못 갈텐데 둘이 똑 같아서 열흘동안 정말 신나게 돌아다녔다. 우리 일행 중 아마 우리가 제일 본전 많이 뽑았을 것이다. 아침 바다는 어제의 밤바다와는 또 다른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무엇인가 평온한 감이 들고 새로 목욕한 아가씨처럼 신선한 맛이 있었다. 바닷가에는 아침 산책을 하는 할머니, 조깅을 하는 아줌마, 수영을 하는 사람들 등등 여러 모습의 사람들이 있었는데 참 희한한 꼴을 보게 되었다. 할머니고 할아버지고 바닷가에서 그냥 옷을 갈아입는 게 아닌가? 참 나도 늙었지만 젊은 사람도 아니고 다 쭈그러진 사람들이 홀랑 벗은 모양은 정말 별로 아름답지 않았다. 우리는 걸음을 늦춰 다 갈아입은 후 서서히 다가갔다. 그런데 이 사람들은 전혀 어색해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행동하는 것이 이거 우리가 이상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아침 산책을 마치고 호텔로 돌아와 식사를 하고는 시내 관광을 나왔는데 시청앞에 오니 우리는 어제 다 본 관계로 별 흥미가 없었다. 단지 안델센은 안델센이 아니고 앤덜슨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앤덜슨은 얼굴이 못 생겨서 아이들이 같이 놀아주지도 않고 완전히 왕따 였다고 한다. 그래서 그의 작품 미운 오리 새끼는 자신의 어린 시절을 나타낸 것이란다. 또한 평생 결혼도 못 했는데 인어공주는 여자를 동경하며 만든 작품이란다. 참 이런 걸 보면 사람이 못 생기고 왕따가 되는 것도 어떤 면에서는 축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가 잘 생기고 똑똑했으면 신나게 연애하고 노느라고 어디 작품 쓸 시간이나 있었겠느냐 말이다. 그런데 본의 아니게 왕따가 된 관계로 평생 혼자 지내면서 이런 불후의 작품을 남기게 된 게 아니냐 말이다.

  앤덜슨 상에서 다들 사진을 찍고는 이번에는 앤덜슨이 글을 쓰던 작은 집을 지나 여왕이 살고 있는 궁을 보러 갔다. 이 궁은 아말리엔 보 궁전이라고 했는데 궁전 같지 않게 아주 소박하였다. 여왕이 있는지 깃발도 있고 근위병도 보초를 서고 있었다. 개피언 분수는 공사중이라 보지 못하고 인어공주상을 보러갔는데 이 인어동상은 130년 전 칼스버그 회장이 인어공주 오페라를 보고 너무 감동하여 조각가를 시켜 그 때의 프리마돈나를 모델로 조각한 것이란다. 인어공주상은 물거품이 된 인어공주의 슬픈 이야기 때문인지 우수에 찬 모습으로 하염없이 바닷가에 앉아있었다.

  어공주상을 보고 점심을 먹으러 갔는데 오랜만에 또 한식집에 가서 된장국에 김치, 깍두기를 보자 모두들 말 그대로 환장을 하며 먹었다. 점심을 먹고 공항으로 오며 사람들이 먹다 남은 라면, 고추장 등을 가이드에게 주니 여행 끝나는 팀을 만나면 이게 좋다고 하며 넙죽 넙죽 잘도 받는다. 남이 먹던 게 싫을 수도 있는데 성격이 엔간히 좋은가보다.

  공항에서 수속을 마치고 들어와 면세점에 들렀는데 서울서 떠나올 때부터 우리 아들이 부탁한 게 있어 이걸 사러 다녔다. 그게 뭔가 하면 허리가 40인치나 되는 바지였는데 가는데 마다 찾아도 보이지 않았다. 이번에는 아예 집에서부터 가져온 끈을 들어 보이며

“DO YOU HAVE THIS SIZE PANTS?"

“DO YOU HAVE THIS SIZE PANTS?" 하면서 온 가게를 다 뒤져도 모두 고개를 가로젓는다. 나중에는 옆에서 보던 기산희 선생님이

아니! 삼십도 안된 사람이 그렇게 뚱뚱하면 어떡해요?”

살좀 빼고 이태원 가서 사라고 해요.”

해서 포기를 하고는 티 셔츠라도 사려고 돌아다녔다. 이번에도 배 둘레를 끈에 맞춰보며 고르고 골라 겨우 하나 샀다. 우리 아들의 남산만한 배를 보면 지금도 심란하다. 엄마 아빠는 안 그런데 어쩌다가 그렇게 됐는지 모르겠다. 빨리 뱃살을 빼고 고등학교 때의 SHARP한 얼굴로 되돌아갔으면 좋겠다.

  오후 3시 반에 코펜하겐을 출발한 비행기는 다음 날 오전 10시나 되어 동경에 도착했는데 이번에는 동쪽으로 온 관계로 7시간이나 더 지나있었다. 동경 나리따 공항에서 사람들이 두 남자에게 빨리 짐 찾으러 나가라고 농담을 하여 또 한바탕 웃었다. 우리는 공항 안에서 또 면세점 구경을 하며 몇 시간을 죽이다가 다시 비행기를 타고 인천으로 오니 6시가 넘어 어느덧 하루해가 지고 있었다. 마중 나온 남편과 아들 며느리의 환영을 받으며 집으로 돌아오는 나는 참 많은 것을 누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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