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행문

2002. 5. 20. 동강탐사

아~ 네모네! 2012. 10. 13. 14:16

 

 

 

 

 

동강박사

2002. 5. 20. ()

자양중학교

이현숙(李賢淑)

 

생물교육연구회는 어제 또 내게 또 환상의 선물을 안겨 주었다. 매번 이렇게 좋은 선물을 받기만 해도 되는지 모르겠다. 나는 아무 것도 한 일이 없는데 좋은 곳을 찾아 사전답사하고, 모든 것을 예약하고 준비하여 오라고 메일까지 보내주니 그저 나는 다 된 떡을 먹기만 하면 된다.

 

이번 현장연수는 백두대간 식물자원 조사였는데 사실 내가 식물이라곤 아는 게 별로 없지만 그저 자연이 좋아서 기를 쓰고 따라갔다. 18일 토요일은 개교기념일이라 오전에 신미자 선생님과 국립과학관 가서 인체의 신비전시회를 보고 1250분쯤 출발 장소인 무학여고로 갔다. 교문을 들어서려는데 우리 학교에 근무하시던 이일동 교장선생님이 학생들에게 무슨 얘기를 하시고 안으로 들어가신다. 반가운 김에

교장선생님! 교장선생님!”

하고 소리를 지르니 뒤를 돌아보시며 반가이 맞아주신다. 교장실로 들어가려는데 낯익은 두 얼굴이 보인다. 한 분은 무학여고에서 근무하시는 유영미 선생님이고, 또 한 분은 동작고등학교에 근무하시는 최형돈 선생님이다. 우리는 교장실에 들어가 시원한 쥬스를 대접받고는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눈 후 제2교무실로 와서 서문여고의 전상원 선생님이 오시기를 기다렸다. 유영미 선생님이 대접하는 피자와 커피를 또 마시며 기다리다가 유영미 선생님이 전상원 선생님께 전화를 해보니 등나무 밑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조금이라도 빨리 출발하자고 서둘러 교무실을 나와 최형돈 선생님이 자기 차를 개포동에 갖다두고 가자고 하여 개포동으로 출발하였다. 토요일이라 길이 좀 막혔지만 최형돈 선생님이 요리조리 잘 피해서 막히지 않고 최형돈 선생님이 사시던 아파트까지 잘 가서 차를 두고는 유영미 선생님 차에 5명이 모두 타고 동강을 향하여 발걸음 아니 차 걸음도 가볍게 출발하였다.

 

우리는 문막휴게소에서 잠시 쉬었다가 새말 인터체인지를 빠져나갔는데 나가자마자 구제역 방지 소독약을 뒤집어쓰게 되었다. 요새는 어디를 가나 곳곳에 분무기를 설치해놓고 오는 차마다 물세례 아니 약세례를 퍼붓는다. 그래도 돼지들이 생매장 당하는 시국인지라 얼른 창문을 닫고 약물 샤워를 하고는 다시 동강의 문희 마을을 향해 출발하였다. 차는 유영미 선생님 차이지만 최형돈 선생님이 워낙 찦차 운전에 베테랑인지라 시종일관 최형돈 선생님이 핸들을 잡고 우리는 졸며 놀며 수다를 떨며 미탄을 지나 진탄나루 입구에 도착하니 울퉁불퉁한 비포장길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여기서부터는 차 타고 가는 것도 그야말로 장난이 아니었다. 앞의 의자를 단단히 부여잡고 가면서 요동치듯 신나게 흘러 내려가는 강물을 바라보니 2년 전인가 3년 전인가 이 길을 갈 때 홍수로 길이 끊겨 무거운 짐을 지고 지글지글 끓는 자갈밭을 하염없이 걷던 생각이 떠올랐다. 그때는 정말 어찌나 뜨겁고 힘들었는지 그야말로 돌아가실 지경이었는데 지금 생각하니 그것도 하나의 아름다운 추억으로 변해 있었다. 자갈밭 길을 한참 가노라니 멀리 우리 일행의 차들이 보이고 강가에 매여있는 정무룡씨 배도 보이고 사람들이 배에 오르는 모습도 보였다. 다들 빨리 왔는지 우리가 제일 꼴찌로 도착했을 때는 슬슬 어두움이 강으로 내려오고 있었다. 구면인 얼굴들도 많아 서로 인사를 나누고는 짐을 들고 배에 오르니 정무룡씨는 강을 가로질러 매어놓은 줄을 슬슬 당기며 강을 건너갔다. 강 건너편에 배를 대고 모래톱에 내리니 강아지 두 마리가 짖지도 않고 꼬리를 흔들며 우리를 반긴다. 사람이 그리워 처음 보는 사람도 이렇게 반기는 모양이다. 하긴 주인도 평소에는 영월에 나가 살고 손님이 있을 때나 온다니 사람이 얼마나 그립겠는가? 백룡산장의 주인인 정무룡씨는 백룡동굴을 발견한 사람으로 백운산의 자와 자기 이름의 자를 따서 백룡동굴이라고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백룡동굴은 쇠창살로 막고 막고 또 막아 외부인의 출입이 전혀 불가능하게 되어있었다. 지난번에 왔을 때 슬라이드로 보여줬는데 정말 기기묘묘한 종유석과 석순, 석주가 줄줄이 늘어서 있었다. 이 동굴은 언제나 개방될지 개방되면 얼른 뛰어와 일착으로 들어가 보고 싶다. 다들 산장으로 들어가 늘쌍 하던 대로 아무 방으로나 들어가 짐을 풀었다. 처음에는 방을 지정해주지 않는 것이 이상하더니 나도 이 체제에 적응이 되었는지 이게 더 편하고 좋다. 저녁을 먹기 전에 삼겹살을 굽는다고 불을 피워 철망에 돼지고기를 얹고는 평상에 상추, 깻잎, 취나물과 쌈장을 놓고는 서서 이쪽 저쪽 왔다갔다하면서 한 입씩 먹는 것이 서울 어느 일류음식점에서 먹는 것보다 맛이 기막혔다. 얼추 다 먹어 가는데 난데없는 소나기가 쏟아져 모두들 비닐하우스로 피신을 하였다. 비닐하우스 속에 들어가니 백 명은 들어갈 수 있을 정도의 넓은 자리와 상이 마련되어있었다. 우리는 총 27명밖에 안되니 한쪽에 모여 앉아 서로 인사도 하고 이 얘기 저 얘기 하다보니 정무룡씨가 방금 장만한 취나물이며 콩나물, 감자 졸임, 된장찌개 등등으로 저녁상을 차려준다. 박우철 선생님과는 얼마 전부터 아는 사이인지 여기오면 누가 주인이고 누가 손님인지 구분이 안 된다. 저녁을 먹는 중에도

우르릉 쾅쾅! 번쩍 번쩍!

하며 하늘과 땅이 뒤집어지듯이 천둥과 번개가 치니 모두들

여기는 안전하냐?”

배가 떠내려가는 거 아니냐?”

건너편에 세워 둔 자동차가 떠내려가면 어떻게 하느냐?”

월요일 아침에 학교도 못 가는 거 아니냐?”

하면서 걱정들을 하였다. 그것은 나중 일이고 우선 눈앞의 음식이 맛있다고 모두 주워먹고는 빗줄기가 조금 약해지자 숙소로 들어갔다. 신을 밖에 두면 젖을까봐 신문지를 깔고는 거실 바닥에 모두 신을 들여놓았다. 화장실도 밖에 있고 화장실 불은 정육점 불같이 시뻘개서 화장실 가기가 싫었지만 그래도 끝까지 참을 수는 없어 화장실에 가는데 어째 등골이 오싹한 게 으시시하였다. 하나밖에 없는 세면실에서 30명 가까이 되는 사람이 세수를 하려니 고양이 세수하듯 콧잔등에 물만 바르고는 방에 들어와 누우려니 잠 안자는 사람은 슬라이드를 볼 테니 거실로 나오라고 하였다. 슬라이드를 보기 전에 박우철 선생님이 내일 일정에 대해 설명을 했는데 무슨 리에서 무슨 리로 해서 어찌어찌 하겠다는 소린지 모르겠는데 하여튼 말이 끊어지지 않고

…………해서 …………는데 ……하고

하면서 10분은 계속됐다. 나중에 질문 없냐고 하니까 생물연구회 회장으로 계신 경수중학교 서평웅 교장선생님께서

질문 있습니다.” 하시더니

설명은 도대체 언제 끝나는 거요?”

하신다. 도대체 자와 마침표가 없으니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고 농담을 하셔서 모두들 배꼽을 잡고 웃었다. 어차피 내일 가봐야 확실한 계획이 잡힐 것 같으니 모두들 내일 날씨를 보고하자고 하여 설명은 끝이 나고 슬라이드를 보는 데 별별 식물들이 다 나타나고 다들 잘도 아는데 나는 다알리아나 칸나 등 집에서 키우는 식물 밖에 아는 게 별로 없었다. 내일은 부지런히 따라다니며 배워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잠자리로 돌아오니 11시가 넘었다. 우리 방에 있는 네 여자들은 코 고는 사람도 없고 모두들 조용조용하여 아무 무리 없이 잠이 들었는데 한 잠 자고 나니 무슨 새소리가 그리도 많은지

재잘재잘!‘ 찍찍 짹짹!”

시끄럽게 떠들어대는 새들의 수다에 잠이 깨었다. 시계를 보니 5시가 조금 넘었다. 남들이 깰까봐 그대로 누워 있다가 5시 반쯤 되어 화장실에 갔다가 강가로 나가니 하늘은 곧 물이 쏟아질 듯이 시커먼 구름을 잔뜩 머금고 낮게 드리워있었다. 강가에서 혼자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식당에 가보니 아무도 없어서 다시 들어오는데 박우철 선생님이 잠이 깼는지

김밥을 싸야 하는데 식당에 사람 없어요?” 한다.

아니 27명분 밥을 싸려면 얼마나 시간이 걸리는데 이제 말하나? 하여튼 천하태평인 사람이다.’ 하는 생각을 하며 다시 들어와 세수를 하고 방에 오니 모두들 일어나 방 정리를 하고 있었다. 이불을 개고 조금 있다가 다시 식당에 가보니 정무룡씨와 부인이 있기에 김밥은 언제 싸냐고 물으니 비닐하우스 속에 있으니 좀 도와달라고 한다. 비닐하우스 속에 들어가니 김밥 속이 모두 준비되어 있고 일부는 벌써 김밥을 싸 놓았다. 비닐 장갑을 끼고 몇 개 마는데 다른 선생님들이 와서 자기가 말겠다고 하여 나는 김밥을 썰려고 하니 정무룡씨가 김밥에 들기름을 바르고 자르라고 일러준다. 잘라서 쿠킹호일에 싸라고 쿠킹호일 크기까지 자상하게 일러주는 데 무슨 남자가 주부 경력 30년인 나보다 나았다. 한쪽에서는 김밥을 만들고 나는 자르고 또 한쪽에서는 쿠킹호일 자르고 또 한쪽에서는 쿠킹호일에 싸고 이렇게 분업을 하다보니 금방 일이 끝났다. 김밥을 상자에 모두 넣고 아침 식사를 마친 후 다시 배를 타고 강을 건너와 세워둔 차를 타고는 어제 오던 비포장 길을 또 털털거리며 되돌아나가 포장길에 도착하니 차가 기름 위를 미끄러지는 것 같이 잘 나갔다. 오늘도 최형돈 선생님이 핸들을 잡고 요리조리 잘도 간다. 최형돈 선생님은 동강에 백 번도 더 왔다고 하는데 정말 구석구석 모르는 데가 없었다. 그래서 우리들이 동방박사가 아닌 동강박사라고 별명을 붙였다. 그런데 이 선생님은 동강만 잘 아는 게 아니라 우리나라 아니 세계 구석구석 모르는 데가 없고, 차면 차! 음식이면 음식! 도대체 모르는 게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동강박사 만물박사라고 감탄을 금치 못했다.

임계를 지나 도전리라는 곳에서 임도로 들어가 백두대간에 도전장을 던졌다. 비포장 임도에 들어가는 곳에는 차가 못 들어가도록 쇠막대로 가로질러 있고 자물쇠가 채워져 있었는데 박우철 선생님이 미리 교섭을 해놓고 열쇠를 받아와서 간단히 통과하였다. 초소같이 생긴 곳에 있던 사람이 나물 채취에 대한 주의사항이 적힌 프린트를 한 차에 한 장씩 주고는 4시 반까지 꼭 나와야지 안나오면 잠그고 퇴근한다고 공갈 반, 협박 반으로 신신 당부를 한다. 우리는 그러마고 하고는 임도를 따라 첩첩산중으로 들어갔다. 처음에는 길이 좋은 것 같더니 길이 점점 험해지고 이기령에서 차를 내려 아래쪽으로 내려가니 습지가 조성되어 다양한 동식물이 살고 있었다. 다릅나무, 당귀, 쥐오줌풀 등등 별아별 이름도 모르는 식물들이 자라고 있었는데 다들 사진을 찍으며 이게 뭐다.’ ‘이게 뭐냐?’ 하면서 진지하게 토론들을 하였다. 습지에서 발이 빠져가며 한참을 보다가 시간이 늦겠다고 하여 다들 나와서 또 출발을 하였다. 곳곳에 널린 게 나물이라 나물을 뜯는 사람, 더덕을 캐는 사람, 두릅을 따는 사람 등등 사람마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한 번 흩어지면 다시 모이는데 시간이 걸리고 없어진 사람을 찾느라고 박우철 선생님과 이상대 선생님은 애를 먹었다. 그래도 사람을 잃어버렸나?’ 하고 걱정을 하면 앞에서 나타나고, 뒤에서 나타나고 하여 모두들 무사히 임도를 헤쳐나갔다. 박우철 선생님 차를 따라가려니 길 가운데 자란 풀들이 차에 눌렸다 나오면서 꼭 푸른 똥을 싸는 것 같았다. 얼마를 더 가니 커다란 바위덩어리가 길에 떨어져 있었다. 박우철 선생님 차는 폭이 좁아서 통과했는지 아니면 그 후에 떨어졌는지 알 수가 없었다. 뒷차의 남자들까지 모두 나와서 길옆으로 밀어보려고 했지만 이 큰 바윗덩어리는 꿈쩍도 안 했다. 할 수 없이 포기를 하고 바위 옆으로 빠져나오려니 간이 쪼그라지는 듯 조마조마하였다. 곳곳에서 이런 바위들이 나타났는데 기특? 하게도 겨우겨우 차가 빠져나갈 만큼의 공간은 남겨놓고 있었다. 끝없이 이어지는 임도를 몇 시간씩 헤매다보니까 나중에는 같은 길을 계속 돌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착각에 빠졌다. 굽이굽이 이어지는 임도를 돌고 돌아 다시 도전리까지 오니 5시가 넘었다. 5시 반쯤 큰길가에 차를 세우고 여기서 일단 해산을 하기로 하였다. 서로 인사들을 하고 서울로 출발하였는데 일요일 저녁인 관계로 차가 밀려서 문막에 도착하니 8시 반이 넘어 여기서 저녁을 먹기로 하고 설렁탕을 한 그릇씩 먹고는 다시 서울로 서울로 밀며 밀리며 오는데 여주에 오니 석가탄신일이라고 연등행사를 하여 차가 꼼짝도 안 했다. 본의 아니게 연등행렬까지 구경을 하고 이천을 지나 성남 모란역에 도착하니 11시가 넘었다. 전철역에서 신미자 선생님과 작별을 하고 전철을 타니 어제 서울을 떠난 것이 아득한 게 몇 달은 지난 것 같았다.

 

다음에는 또 어떤 비경으로 우리를 안내할지 지금부터 벌써 기다려진다. 앞으로도 생물교육연구회가 영원토록 존재하여 이토록 소중한 선물을 계속 선사해주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