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행문

2002. 1. 10. 천수만 철새 탐사

아~ 네모네! 2012. 10. 13. 14:12

 

살이 타는 밤

2002. 1. 10. ()

자양중학교

이현숙(李賢淑)

 

지난 12월 서울 중등생물교육연구회에서 주관하는 철새 및 갯벌 탐사에 성수중학교에서 같이 근무하던 장인순 선생님, 정미영 선생님과 같이 참여하였다.

 

27일 아침 8시에 출발한다고 하여 7시가 넘어 집에서 나와 전철을 타러 용마산 역으로 가다가 생각하니 늦을 것 같아서 다시 아랫길로 내려와 택시를 타고 동성중학교 앞에 도착하니 740분밖에 안 되었다. 운동장 여기 저기 둘러봐도 버스가 보이지 않고, 갈 사람들도 아무도 안 나타나기에 내가 뭘 잘못 알았나 싶어서 수위실에 물어보니 잘 모르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공문 복사한 것을 보여주니 박우철 선생님께 전화를 해 보고는 8시가 되면 버스가 올 꺼라고 알려준다. 잠시 더 기다리니 다른 선생님들이 하나, 둘 나타나고 더 기다리니 버스 한 대가 들어온다. 우루루 달려가 버스에 올라 자리를 잡고 앉으니 사람들이 속속 도착하고 박우철 선생님 아들 수영이와, 이상대 선생님 딸 세림이도 올라온다. 수영이와 세림이는 아마 선생님들보다 더 탐사활동에 많이 참여했을 것이다. 그래서 들어오는 선생님마다 이 아이들과 인사를 나눈다. 생물 교육연구회 회장이신 서평웅 교장선생님이 앞자리에 앉으시자 수영이는 대뜸 옆에 앉아 교장 선생님과 게임을 하며 노는데 참 서교장 선생님은 어쩌면 그렇게 애를 잘 데리고 노시는지 정말 감탄스러울 정도였다.

수영이가

닭이 넘어지는 소리를 두 글자로 하면?” 하니까

글세 뭐라고 하나? 꽈당! 인가?” 하니까 수영이는

!” 하면서 틀렸다고 한다.

그럼 뭔가?” 하시다가

닭 꽝!” 하니까

딩동댕!” 하면서 맞는다고 한다. 내가

손주 있으세요? 어쩌면 그렇게 잘 데리고 노세요?” 하니까

내가 이게 전공이예요. 정년 퇴직하면 놀이방 차릴 꺼예요.”

하시며 웃으신다. 서교장 선생님은 언제 뵈어도 푸근한 동네 아저씨 같이 마음이 편하다. 울릉도 갈 때 같이 가고 이번이 두 번째인데 소박한 그 모습이 그 진실된 인격을 나타내는 것 같다.

할아버지와 손자같이 다정한 두 사람의 놀이에 정신을 팔다보니 어느덧 드넓은 천수만이 나타나고 우리의 버스는 해미천 옆 비포장길로 들어서고 있었다. 천수만 옆 논에는 큰기러기가 떼를 지어 앉았고, 물 위에는 청둥오리들이 동동 떠서 놀고 있었다. 얼마를 더 가니 노랑부리저어새가 무리를 지어 앉았는데 저어새는 먹이를 찾을 때 부리를 이리저리 저어서 이름이 저어새가 되었단다. 참 옛 사람들은 이름도 소박하게 잘도 지었다. 한참을 더 가다가 버스를 세워놓고 다들 내려서 새를 관찰했는데 장인순 선생님과 정미영 선생님은 필드 스코프까지 가지고 와서 본격적으로 관찰하였다. 나도 옆에서 같이 보았는데 필드 스코프로 보니 청둥오리 궁댕이가 어찌나 큰지 빵빵하게 터질 지경이었다. 탱탱한 궁댕이를 물위로 하고 물에 쳐 박혀 먹이를 찾는 모습은 싱크로나이즈를 하는 선수들처럼 그렇게도 예쁠 수가 없었다. 정신없이 보고 있는데 이번에는 흰꼬리수리 새끼를 찾았다고 해서 또 들여다보니 꼭 쥐 뜯어먹은 것 같은 털을 한 새가 얼음 위에 앉아있는데 한 눈에 보아도 어리버리한게 새끼 티가 났다. 황조롱이는 제자리에 떠서 파르르 떨 듯이 나르고, 수리는 하늘의 제왕같이 위엄 있게 하늘을 가르고 있었다. 농병아리는 특히 잠수를 잘했는데 물 속으로 들어가 빠져 죽었나? 하면 저만치 가서 톡 튀어나온다. 건대에 있는 일감호에도 이 새가 있어서 볼 때마다 저게 뭔가? 했었는데 이번에 확실히 알았다. 농병아리는 물갈퀴가 없다고 하는데 어떻게 하여 저렇게 잠수도 잘하고 수영도 잘 하는지 신기하기만 했다. 수면에서 뛰어가는 모습을 보면 세상 사는 맛이 나는지 아주 신이 났다. 정말 다른 동물들이 신이 나서 노는 모습을 보면 이 세상은 살 맛 나는 곳임에 틀림이 없다.

 

천수만에서 빠져나와 점심을 먹고 간월도에 가서 붉은부리갈매기와 검은머리갈매기를 보고 꽃지 해수욕장으로 갔다. 꽃지 해수욕장 모래밭에도 작은 새들이 떼지어 앉아있었는데 내 짐작으로 물떼새가 아닌가 싶었다. 꽃지 해수욕장에서 모래밭을 뛰어다니며 신나게 놀다가 승언리에 있는 두에기농원에 짐을 풀었다. 각자 자기 마음대로 아무 방에나 들어가 짐을 풀었는데 우리 방에는 여섯 명이 들어갔다. 이렇게 질서 없이 아무렇게나 하는 것 같은데 신기하게도 아무 무리 없이 잘 돌아가는 게 이 생물교육연구회의 특징이자 장점이다. 다들 누가 뭐라고 하지 않아도 물이 흐르듯 자연스럽게 흘러간다. 아마도 오랜 세월의 경륜이 밑거름이 되어서 이렇게 잘 돌아가는 것 같다.

 

철새에 관해서는 월계중학교 정진문 선생님이 설명을 해 주시고, 갯벌에 대해서는 동성중학교에 있는 박우철 선생님이 많은 설명을 해 주셨다. 다른 것은 다 잊어버렸는데 하여튼 갯벌은 소중한 재산이라는 것만은 내 마음 깊이 남아있다. 이제 바다를 막아 간척지를 만드는 일은 그만 두었으면 좋겠다. 저녁을 먹기 전에 잠시 바닷가에 나가 뭐가 있나? 하고 돌아다녔는데 위협적인 색깔의 말미잘, 소라껍질을 쓰고 다니는 집게, 불가사리, 다슬기 등등 많은 생물이 살고 있었다. 한 선생님이 작은 바위를 들어내자 게들이 바글바글 한 게 완전 게판이었다. 관찰을 마치고 농원으로 돌아오니 저녁 먹기 전에 요기하라고 생굴무침과 술을 한 잔씩 주는데 시골 인심이 어찌나 후한지 굴무침을 한 들통을 갖다 놓고는 맘대로 퍼먹으라고 하였다. 우리는 배고픈 김에 대접으로 굴을 퍼서는 무한정으로 먹었다. 저녁 먹으러 오라고 안 했으면 아마 한 통을 다 먹었을 것이다. 저녁을 먹고 각자 방에 들어가 온갖 수다를 떨다가 자려고 자리에 누웠는데 우리 옆방에서는 방이 뜨겁다고 난리가 났다.

우리가 무슨 영창대군이냐?”

아주 태워 죽이려고 하느냐?”

하며 뜨거워서 못 자겠다고 야단이다. 우리는 다행히도 가장자리 방이라 그렇게 뜨겁지는 않았는데 가운데 방은 엄청 뜨거웠나보다. 이 얘기 저 얘기 하다가 어렴풋이 잠이 들었는데 새벽이 되자 옆방에서는 일찍 일어나 들락날락 하는 소리가 들렸다. 우리도 일어나 세수를 하고는 아침밥을 먹으러 갔다. 식당에 가니 벌써 많이들 모여 아침 식사를 하고 있었다. 우리도 부지런히 아침을 먹고 짐을 챙겨 버스에 오르니 옆에 앉은 남자 선생님들이 잘 잤느냐고 묻는다. 그랬더니 우리 옆에 앉은 선생님이

아주 살이 타는 밤이었어요. 세상에 태어나서 그렇게 뜨거운 방에서 자보기는 처음이에요.” 한다.

참 얼마나 뜨거웠으면 저런 생각이 들었을까 싶고 시골인심이 후한 건 좋은데 너무 후하구나 싶었다.

 

두에기농원을 떠나 이번에는 용신리 갯벌로 갯벌 탐사를 하러 갔다. 나는 공문에 있는 대로 장화를 준비해가서 썬글래스와 장화로 중무장을 하고는 꽃삽과 비닐봉지를 들고 갯벌로 들어갔다. 물이 빠진 갯벌은 어찌나 넓은지 끝이 보이지 않았다. 대평원을 이룬 갯벌에는 어민들이 자기 땅을 표시하느라고 막대기를 세우고 깃발을 달아놓아서 우리는 그 밖에서 갯뻘을 파며 생물을 관찰했다. 한참 땅을 파며 바지락이며 동막, 백합 등을 캐고 있는데 한 어부가 들어오며

나가요! 나가요!”

하며 소리소리 지른다. 우리는 자기 땅도 아닌데 왜 그러냐고 했더니 여기도 자기 땅이고 종자를 뿌려놨으니 빨리 나가라고 악을 악을 쓴다.

우리는 할 수없이 더 밖으로 나가 또 땅을 파며 이것저것 잡다가 멀리 물이 서서히 들어오는 것을 보고 물에 쫓겨 바닷가로 나왔다. 모두들 신에 갯뻘 흙이 묻어 떡이 된 신발을 털고 버스에 오르니 벌써 12시가 넘었다. 태안에 있는 한식부페에서 3000냥하는 점심을 배부르게 먹고는 이번에는 신두리해수욕장에 있는 사구를 보러갔다. 신두리해수욕장에는 남편과 함께 두 번 왔었는데 우리는 입구에서 왼쪽으로만 가서 보고는 되게 껄렁한 모래언덕 하나 가지고 거창하게 떠든다 하고 생각했었는데 이번에는 오른쪽으로 꺾어져 들어가니 몇km에 걸친 모래언덕이 사막과 같이 넓게 펼쳐져 있었다. 사구에 대해서는 경기상고의 유영미 선생님이 설명해 주셨는데 신두리 사구는 우리나라의 사하라사막이라고 하였다. 사하라사막은 못 봤지만 오르내리는 광활한 모래언덕은 자연의 위대한 힘을 실감케 했다.

이렇게 구석구석 끌고 다니며 온갖 것을 보여주고, 먹여주고, 재워주는 재미에 생물 전공도 아닌 내가 기를 쓰고 생물교육연구회를 따라다니게 된다. 다음 방학에는 또 어디로 우리를 데려다줄까? 하고 벌써부터 마음이 설레고 다음 탐사를 기다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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