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하다! 장인순, 신난다! 신미자.
2001. 8. 21. (화)
자양중학교
이현숙(李賢淑)
8월 13일부터 16일까지 중등생물교육연구회에서 주관하는 울릉도 생태 조사에 참여하였다. 성수중학교에서 같이 근무하던 장인순 선생님과 지금 자양중학교에서 같이 근무하고 있는 신미자 선생님도 같이 참여하게 되었다.
그런데 아침 9시 반에 묵호에서 출발하는 배를 타려면 시간이 촉박하다고 13일 새벽 1시에 동성중학교 앞에서 출발할 테니 12일 밤 12시까지 모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12일 날은 남편 고등학교 동창들이 보신 산행을 한다고 가평군 용수리에 있는 조무락골에서 산행을 조금하고 골짜기에서 보신탕을 먹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날따라 차가 어찌나 밀리는지 용수골에서 4시도 안되어 출발했는데 집에 오니 11시가 다 되었다. 정신 없이 짐을 챙겨 동성중학교에 도착하니 12시가 조금 넘었다. 총무인 이상대 선생님에게 출석체크를 하고 차에 오르려는데 신미자 선생님이 자기 남편이라고 소개를 한다. 밤 늦게 출발하니 남편이 경기도 광주에서 여기까지 데려다 준 모양이었다.
‘참 천사표 남편이 여기도 있었구나!’
싶었다. 신미자 선생님 남편은 신미자 선생님 집에 갔을 때 사진으로 보았는데 사진으로 보나 실물로 보나 꼭 시나리오 작가 같은 독특한 분위기가 있었다. 신미자 선생님과 같이 자리에 앉아 조금 있으니 장인순 선생님이 허둥지둥 들어오며
“차를 가지고 왔는데 교문이 닫혀 있으니 어떻게 하나?” 한다.
“박우철 선생님께 얘기해서 교문을 열어 달라고 해봐요.”
했더니 배낭을 놓고 도로 내려간다. 한참만에 들어오며 교문 안에 들여놓았다고 한다.
원래는 1시에 출발 예정이었으나 선생님들이 다 왔는지 12시 40분쯤 출발하여 중부고속도로를 거쳐 영동고속도로로 들어섰다. 소사휴게소에서 잠시 휴식을 하였는데 잠에 취해서 내리지 않는 사람도 있고 그래도 내려서 커피를 사 먹는 사람도 있었다. 비몽사몽간에 헤매다보니 5시 반쯤 묵호에 도착하였다. 뱃멀미를 할까봐 출발 전에 귀밑에를 붙였더니 골이 핑핑 도는 게 도무지 정신이 없었다. 그래도 아침 식사를 하고 배에 오르니 출발하기가 무섭게 흔들흔들 하는 게 골이 핑핑 돌아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장인순 선생님과 나는 그래도 잘 참고 있었는데 신미자 선생님은 비닐 봉지를 꺼내려고 일어났다가 도로 주저앉는다. 내가 일어나서 꺼내주니 기어이 토하고 말았다. 이날 따라 파도가 높아서 여기 저기서 토하느라고 난리였다. 그래도 큰 탈 없이 도동 항에 도착하여 저동에 있는 천일 민박으로 이동하여 짐을 풀고 홍일점 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하였다. 귀밑에를 떼어도 여전히 골이 띵 한 게 정신이 없고 속이 메슥거려 다들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
오후에는 봉래폭포까지 걸어갔다가 다시 바닷가로 나와 내수전까지 갔다오니 정신이 좀 났다. 저녁 식사 후 모두 한 방에 모여 인사도 하고 세미나를 하였다. 울릉도의 지형적 특성에 관해 이상대 선생님이 발표를 하고, 울릉도 식물에 관해 김병연 선생님이 채집해 온 식물을 직접 보여주며 설명을 하였다. 이동영 선생님은 울릉도의 동물상에 관해 발표하고, 박우철 선생님은 멸종 위기의 야생 동식물 보호 방안에 대해 발표하였다. 세미나를 모두 마치고 방에 돌아와 샤워를 하고는 모두 지쳐서 쓰러졌다. 우리 방에는 장인순 선생님, 신미자 선생님, 나, 그리고 신림 고등학교의 박경희 선생님이 같이 생활하게 되었는데 모두 성격이 원만하고 쾌활해서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다음 날은 아침 일찍 도동으로 이동하여 성인봉에 올랐는데 처음에는 날씨가 흐려서 좋았으나 중턱쯤 오르니 구름이 점점 짙어지더니 기어이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중간에 팔각정이 있었는데 한 학생이 음료수를 팔고 있었다. 반소매에 반바지를 입고는 춥다고 발을 동동거리며 입이 시퍼렇게 되어 떨고 있었다. 혼자 있느냐고 했더니 삼촌 집에 놀러왔다가 삼촌을 도와드리고 있는데 삼촌은 조금 위에 있다는 것이다. 신미자 선생님과 나는 떠는 아이가 안되어 보여서 음료수를 하나 사먹고 기다려도 사람들이 안 오기에 그냥 더 올라갔다. 과연 한참 올라가니 텐트를 치고 한 남자가 또 음료수를 팔고 있었다. 아래 있는 학생이 조카냐고 했더니 그렇다고 하였다. 그런데 삼촌은 긴 팔에 긴 바지에 잔뜩 껴입고 있었다. ‘원 세상에 조카는 추워서 동동거리고 있는데 삼촌은 혼자만 잔뜩 껴입고 있다니! 저렇게 무정한 삼촌이 있나?’ 싶었다.
“조카가 밑에서 추워서 발을 동동 구르고 있어요.” 하니까
“곧 내려갈꺼예요.”한다.
말은 그렇게 하지만 그 음료수를 다 팔아야 내려갈 것 같았다.
우리는 빨리 팔고 내려가라고 또 음료수를 사 먹고 정상으로 향했다. 구름은 온 산을 뒤덮어서 아무 것도 보이지 않고 우리는 구름 속의 신선이 된 기분으로 계속 걸음을 재촉했다. 빗발은 점점 굵어져 우리는 비옷을 꺼내 입었다. 정상 10m라고 쓴 곳에 오니 또 대학생 같은 남자가 음료수와 라면을 팔고 있었다. 정상에 올라가니 아무 것도 보이지 않고 한 남자아이가 앉아있었다. 성인봉이라고 쓰여진 바위 옆에서 사진을 한 장씩 찍고 또 일행을 기다려도 아무도 나타나지 않는다. 비는 계속 오고 춥기도 해서 그냥 다시 내려오는데 우리 일행 중 한 여선생님이 올라온다. 우리는 먼저 내려가겠다고 하고 다시 내려오니 대학생이 음료수라도 먹고 가라고 한다. 신미자 선생님이 계속 음료수를 먹고 와서 배가 불러서 도저히 못 먹겠다고 하니 라면이라도 먹고 가라고 한다. 비를 맞으며 장사를 하는 학생이 안 됐어서 또 음료수를 사 먹고 나리분지를 향해 내려왔다. 얼마나 내려왔는지 정신 없이 내려오다 보니 넓은 분지가 나타났다. 여기가 나리분지인가 했더니 나리는 없고 달맞이꽃만 잔뜩 피어있었다. 아마 달맞이 분지인가보다 하며 더 내려오니 나리분지라는 곳에 오기는 왔는데 도무지 눈을 씻고 봐도 나리가 없었다. 나리분지에는 나리꽃이 쫙~ 깔렸을 줄 알았는데 아무것도 없어서 너무 아쉬웠다. 나리분지에서 점심 식사를 한다고 했는데 어느 집인지 알 수가 없어서 그럴듯한 큼직한 식당에 들어가 혹시 여기 단체 손님 예약하지 않았느냐고 하니 했다고 한다. 그래도 미심쩍어서 무슨 이름으로 예약했냐고 물으니 이상대라고 한다. 여기가 맞구나 싶어서 방에 들어가 양말을 벗고 쉬며 일행이 오기를 기다렸다. 한 시간 정도 기다려도 사람들은 오지 않고 배는 고파서 단체 손님이 뭘 시켰느냐고 물으니 산채비빔밥이라고 한다. 우리는 먼저 달라고 하여 밥을 먹고 있는데 박우철 선생님이 나타난다. 곧 이어 다른 선생님들도 줄줄이 들어오고 장인순 선생님도 땀 범벅이 되어 나타난다. 아침에 집에서 나설 때 큼직한 빨간 수건을 두르고 나오기에
‘논매러 가는 것도 아닌데 웬 저렇게 큰 수건을 두르고 가나?’
했더니 다 이유가 있었다. 그래도 몸이 안 좋다고 하면서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정상 정복을 한 의지가 대단했다.
점심을 일찍 먹은 사람은 먼저 출발하여 추산까지 걸어가고, 점심을 나중 먹은 사람은 음식점 차를 타고 간다고 하여 우리는 먼저 음식점을 나섰다. 추산에 가서 버스를 타려고 시골길을 마냥 걸어 추산에 도착하니 버스 시간이 많이 남았다. 그냥 천부까지 걸어가자고 하여 또 걸어서 천부에 도착하니 마침 떠나는 버스가 있어 다들 타고는 섬목으로 향했다. 섬목에서 배를 타고 죽도에 도착하니 섬 위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었다. 계단을 올라가니 과연 죽도라는 이름에 걸맞게 대나무가 많았고 죽도에서 바라보는 경치도 빼어났다. 우리는 섬을 한 바퀴 돌았는데 끝 부분에 와서 더덕 밭이 나타났다. 길은 더덕 밭을 빙 돌게 되어있었는데 먼저 간 박우철 선생님이 더덕 밭 옆의 지름길로 오라고 손짓하여 모두들 지름길로 오는데 어디서 갑자기 오토바이를 탄 청년이 나타나더니 길로 안 오고 왜 더덕 밭으로 오느냐고 소리를 고래고래 지른다. 우리는 거기도 길인 줄 알았다고 사과를 해도 성질을 있는 대로 부리며 악을 악을 쓴다. 우리는 뺑소니 치듯 관리사무소 쪽으로 걸어와 배를 타러 계단 길을 내려왔다. 정말 울릉도 사람 성질 한 번 대단하다.
배를 타고 저동으로 와서 숙소에 도착하니 다들 지쳐서 누웠는데 특히 장인순 선생님은 다리가 아파서 밥 먹으러도 못 가겠다고 사발면을 사다달라고 천 원을 준다. 나는 얼마나 아프면 저럴까 싶어서 그냥 돈을 받았는데 신미자 선생님은 그래도 밥은 먹어야 한다고 끈질기게 설득을 한다. 아마 음식점에서 차가 올꺼라고 기어이 장인순 선생님을 끌고 집 밖으로 나와 차를 기다리니 차가 안 온다고 하여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장인순 선생님을 이끌고 천천히 식당으로 향했다. 우리가 걷는 속도가 너무 느려 아무래도 앞사람을 놓칠 것 같아서 신미자 선생님보고 빨리 따라가서 식당을 알아놓고 식당 밖에 나와 있으라고 하고 나는 절뚝거리는 장인순 선생님과 천천히 걸어갔다. 이날 저녁은 회장으로 계신 경수중학교 서평웅 교장 선생님이 금일봉을 내셔서 회를 먹게 되었다. 여기서는 과일도 나와서 장인순 선생님은 오기를 잘 했다고 하며 잘 먹었다. 갑자기 40명이 들이닥치니 주인은 바빠서 어쩔 줄 모르고 박우철 선생님은 1시간이면 된다고 하더니 왜 이 모양이냐고 투덜투덜 하였다. 그래도 우리는 오랜만에 맛있는 식사를 하고는 다시 숙소로 돌아와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었다. 자기 전에 장인순 선생님은 신미자 선생님이 가져온 근육 이완제를 먹고, 박경희 선생님이 가져온 안티프라민을 다리에 바르고 잠을 청했다.
세 번째 날은 아침부터 해가 번쩍 나서 동향(東向)인 우리 방은 아침부터 해가 들어와 도저히 늦잠을 잘 수가 없었다. 신미자 선생님은 얼굴에 수건을 두르고 자다가는 왜 이렇게 해가 드냐고 눈 부셔서 잠도 못 자겠다고 툴툴거리니 박경희 선생님이 썬글라스를 쓰고 자라고 한다. 그랬더니 정말로 썬글라스를 쓰고 자는 게 아닌가? 내 참 썬글라스 쓰고 잠 자는 사람 첨 봤다. 이날 아침에는 장인순 선생님이 정말 꼼짝도 못하겠다고 사발면을 사다달라고 하였다. 신미자 선생님과 나는 아침 식사를 마치고 슈퍼에 가서 사발면을 사 가지고 와서 뜨거운 물을 부어주었다. 이날은 걸을 사람은 걷고 차를 타고 움직일 사람은 차를 타고 이동한다고 하여 모두들 차를 타고 태하령으로 향했다. 태하령이라고 해서 고개를 넘나보다 생각은 했지만 세상에! 그토록 험한 고개는 처음 넘어봤다. 한계령이나 정선의 만항재는 정말 저리 가라였다. 차가 곧 계곡으로 쳐 박히는 것 같아 정말 내려서 걸어가고 싶었다. 길옆에는
‘곡예운전(청룡열차, 부메랑운전) 금지!’
라는 현수막까지 걸어놓았다. 앞의 의자를 붙잡고 안간힘을 쓰며 얼마를 가니 드디어 평지가 나오고 길도 좀 넓어졌다. 여기가 태하리라고 하였다. 태하리를 지나 한참 더 가서 북면 현포리에 가서 차가 멈추고 다들 내리라고 하였다. 장인순 선생님은 앞의 손잡이를 굳게 잡고 안 내린다고 도리도리를 하였다.
“여기서 아주 내리는 게 아니고 잠시 내려 바다를 보고 다시 탄대요.”
하니까 그제서야 손잡이를 놓고 순순히 내린다.
잠시 바다를 보고 다시 차를 타고 태하리 바닷가에 가서 붉은 색의 황토로 이루어진 황토 굴을 보고 일부는 차를 타고 태하령 꼭대기에서 하차하기로 하고 일부는 태하리에서 해변 길을 걸어 구암까지 가기로 하였다. 그런데 걷겠다던 신미자 선생님은 날쌔게 차에 오르고 장인순 선생님은 걷겠다고 내리는 것이 아닌가?
“아니 어쩌려구?”
하는 소리가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장인순 선생님의 강철같은 의지가 대단해서 잘 생각했다고 하였다. 다들 차를 타고 가고 남자 넷 여자 넷만 남았다. 우리는 일단 황토굴 위쪽의 향나무 자생지를 보고 가자고 산을 기어올라갔다. 조금 올라가다가 장인순 선생님은 천천히 갈 테니 먼저 가라고 하여 우리는 어차피 다시 내려올 테니 올라올 수 있는 데까지만 오라고 하고 먼저 올라갔다. 처음에만 급경사이지 조금 올라가니 경사도 완만하고 길도 폭신폭신해서 걷기 좋았다. 그런데 꼭대기에 올라가니 안개가 자욱하여 향나무는 보이지 않고 등대와 관리사무소만 보였다. 등대 밑은 깎아지른 절벽이라 영화 빠삐용의 한 장면을 연상케 했다. 관리사무소에는 하얀 복실 강아지가 있었는데 우리들이 다가가자 사람이 그리웠는지 꼬리를 흔들며 반가워했다. 우리는 강아지가 귀여워 건빵도 주고 쵸콜렛도 주었다. 그랬더니 우리 뒤를 계속 졸졸 따라다녔다. 우리는 또 등대 안으로 들어가 나사형의 좁은 계단을 올라가 보았다. 등대를 밖에서는 여러 번 보았지만 속에는 처음 들어가 봤다. 등대 속에는 큰 등과 복잡한 기계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었다. 계단을 다시 내려와 관리사무소를 나서는데 복실 강아지가 우리를 계속 따라왔다.
“복실아 빨리 집에 가라.”
하며 발을 굴러도 자꾸만 따라 내려왔다. 나중에는
‘제가 집에 갈 수 있으니까 따라오겠지’
하고 그냥 두었더니 한참 오다가는 되돌아 올라갔다. 또 한참을 내려오니 장인순 선생님이 내려가고 있었다. 거의 다 올라왔다가 길이 어두워 보여서 그냥 내려온다고 하였다.
우리는 태하리에 있는 성하신당을 구경하고 슈퍼에서 아이스크림도 사먹고 옥수수도 사먹으며 뙤약볕이 내리쬐는 시멘트 길을 터덜터덜 걸었다. 걷다가 앞서 가던 남자 선생님이 어떤 집 앞에 있는 아저씨에게 취나물 말린 것이 있느냐고 물으니 있다고 하여 우리는 한 보따리씩 사서 짊어지고는 다시 걷기 시작했다. 가는 길에 미개통 터널도 3개나 지나고 공사중인 급경사 길을 미끄러지며 내려갔다. 구암에 도착했을 때는 다들 지쳐서 식당 집 의자에 무너지듯 주저앉았다. 남양에서 점심 식사를 하기로 했는데 남양 가는 버스는 떠나고 한시간 이상 기다려야하게 생겼다. 이미 시간은 2시가 넘어 모두 허기가 져서 곧 쓰러질 지경이고, 식당 주인 아저씨에게 그 집 차로 남양까지만 태워달라고 해도 안 된다고 거절해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는데 한 아주머니가
“남양에서 식사를 할꺼면 그 식당차를 부르세요.”한다. 우리는
“아참! 그렇게 하면 되는데 왜 그 생각을 못했지?”
하며 이상대 선생님이 식당에 전화를 하니 잠시 후 곧 차가 왔다. 남양에 도착하여 식당으로 들어가니 먼저 식사를 마친 사람들이 우리가 들어가자 박수 갈채를 퍼부었다. 우리는 개선 장군이라도 된 듯 보무도 당당하게 자리에 들어가 허겁지겁 점심 식사를 하였다. 여기서부터는 각자 자유시간을 갖고 숙소로 오라고 하여 우리 방 식구 네 명은 도동에 가서 독도 박물관과 향토 자료관을 보고 케이블카를 타고 전망대에 올라가 오징어튀김도 먹으며 놀다가 홍합 밥으로 저녁식사를 하고는 택시를 타고 저동 숙소로 돌아왔다. 장인순 선생님은 거의 초죽음이 되어 꼼짝도 못하고 누워 다리를 벽에 대어 높이 받치고 누워있고, 신미자 선생님은 기운이 팔팔해서 고스톱을 하자는 둥, 카드를 하자는 둥 하다가 장인순 선생님과 내가 도저히 못한다고 하니 둘이서 하다가는 재미가 없는지 사다리 타기를 해서 과일을 사다먹자고 하였다. 장인순 선생님은 자기는 먹지도 않고 사러 가지도 않겠다고 해도 그런 건 없다고 무조건 그려서는 하나 고르라고 하였다. 장인순 선생님은 다행히도 2000원을 뽑았고, 박경희 선생님은 3000원, 신미자 선생님은 5000원, 나는 심부름이 걸렸다. 나는 머슴 체질이니까 얼마든지 갔다올 수 있다고 나가는데 마음씨 착한 신미자 선생님이 같이 간다고 따라 나선다. 둘이서 가게에 가서 포도와 복숭아와 사과를 사서 방에 가지고 와서 먹으려는데 서평웅 선생님 사모님이 수박을 먹으러 오라고 하신다. 그 방에 가서 수박을 먹고 와서는 또 포도를 씻어 장인순 선생님보고 먹으라고 하니 안 먹겠다고 한다. 신미자 선생님은 또 먹으라고 끈질기게 조른다. 포도를 잘 안 먹으니 이번에는 복숭아를 까서는 또 먹으라고 설득한다. 여기에 이르러서는 장인순 선생님도 어쩔 수 없이 일어나서 먹었다. 안 먹겠다고 버티는 사람과 끝까지 먹으라고 하는 사람의 싱갱이를 보며 참 인간은 별걸 가지고 다 씨름을 하며 사는구나 싶었다. 하긴 이렇게 서로 밀고 당기며 사는 동안 우리 인생은 권태를 모르고 한 평생이 지나가는 지도 모른다.
이렇게 마지막 밤을 웃음 속에 보낸 우리는 다음 날 아침 5시 반 배를 타기 위해 4시 반부터 일어나 짐을 챙겨 밖으로 나왔다. 동쪽 하늘에는 눈부신 목성과 금성이 우리를 배웅하고 우리는 아무 미련도 없이 뿌듯한 가슴을 안고 귀밑에를 붙이고는 도동 항으로 향했다. 숙소를 떠나는 내 머리에는 다른 생각은 없고 단지
”장하다! 장인순, 신난다! 신미자.“ 이 말만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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