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째 이런 일이!
2000. 12. 30. (토)
자양중학교
이현숙(李賢淑)
지난 27일부터 2박 3일간 지구과학연구회에서 주최하는 제주도 지질답사에 참여하였다. 아침 8시 비행기를 타기 위해 7시까지 김포공항 국내선 청사 3층으로 모이라고 해서 5시 30분에 집을 나섰다. 우리 집은 서울에서 동쪽 끝이고 김포는 서쪽 끝이니 그 정도는 잡아야 갈 수 있었다.
7시가 다 되어 청사 3층으로 올라가니 같은 학교에 있는 허미숙 선생님은 보이지 않고 다른 선생님들만 모여 의자에 앉아 있었다. 나는 이번에 세 번째 참가하는 까닭에 아는 얼굴도 더러 있어서 인사를 하고는 명찰을 받아 옷에 붙이고는 의자에 앉아 기다렸다. 기다리다가 허미숙 선생님이 나타나지 않아 아침을 먹고 올 지도 모르겠다 싶어서 2층으로 내려가 샌드위치를 먹고 올라오는데 허미숙 선생님과 이규석 회장님이 같이 올라오고 있었다. 인사를 하고는 아침을 먹었느냐고 물으니 안 먹었단다. 다시 내려가 허미숙 선생님이 샌드위치를 먹는 동안 기다렸다가 다시 올라오니 사람들은 잔뜩 모여 있는데 8시가 다 되어도 여행사 직원이 안 나타난다. 일단 내려가 보자고 2층으로 내려가는데 앞서 간 사람이 우리가 예약했던 좌석이 모두 대기 표로 팔려나가고 우리 좌석이 없다는 것이다.
우째 이런 일이 일어났단 말인가? 우리는 아연 실색하여 다시 3층으로 올라왔고 연구회 회장단은 대책회의를 한다고 다른 곳으로 옮겨가고 우리끼리 앉아서 여행사 직원이 우리 돈 900만원을 받아 가지고 날랐다는 둥, 여행사에서 전화를 안 받는다는 둥, 집으로 다시 가야한다는 둥 말이 많았다. 한참을 기다리니 회장님이 오셔서 여행사 사장이 잠시 후에 오기로 했다면서 모든 경비는 여행사에서 해결해 주기로 했다고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였다. 하지만 이미 우리가 타야할 비행기는 날아갔고 연말까지 모든 표가 예약되어있다는 것이다. 어쩔 수 없이 1시에 떠나는 부산행 비행기를 타고 부산에 가서 3시 30분 제주행 비행기를 타기로 하였다. 아침부터 식사도 못하고 달려온 선생님들은 기운이 빠져서 의자에 앉아있으니 회장님이 이렇게 3시간이 넘도록 앉아만 있을 수도 없으니 공항 고등학교에 가서 세미나를 하고 점심 식사를 하고 오자고 제의하셨다.
모두 나와서 셔틀버스를 타고 국제선 청사에서 내려 공항 고등학교로 줄줄이 걸어갔다. 시청각 실로 올라가니 석유난로를 피운 지 얼마 되지 않아 냄새가 많이 났다. 그래도 우리는 아무 불평 없이 앉아있었고 회장님은 다시 나와 지난 10년 동안 한 번도 이런 일이 없었는데 비행기 좌석을 80개씩이나 구할 수 없어서 여행사에 맡겼더니 이런 일이 생겼다고 지구과학연구회는 교육청에서 300만원이나 지원 받는 잘 나가는 연구회라고 다시 사과의 말씀을 하셨다. 회장님이 이렇게 나오시니 감히 아무도 불평 한 마디 하지 않았다. 이어 강원대에서 근무하시는 이문원 교수님이 나오셔서 이번 연수에 강사로 불러줘서 영광이라고 겸손의 말씀을 하시고는 제주도 지형의 특성에 관해서 설명하셨다. 제주대에서 근무하실 때 많은 연구를 하셔서 제주도에 대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많은 지식을 가지고 계신 것 같았다. 다른 선생님들의 말씀을 들으니 제주도에 관해서는 Bible에 해당하시는 분이라고 하였다. 간단히 세미나를 마치고 다시 공항 고등학교를 나와 길 건너에 있는 닭갈비 칼국수 집에 가서 부대찌개를 먹었다. 다들 배가 고픈 터라 정신없이 퍼먹고 커피까지 한 잔씩 얻어먹고는 다시 공항으로 향했다. 공항에서 비행기 표를 받아드니 이제 정말로 가나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김포공항을 떠나기 싫은지 비행기는 이리 저리 빙빙 돌다가는 1시 30분이나 되어 이륙하였다. 김포공항이 좁아서 활주로가 부족하다더니 정말 심각한 상태인가보다. 빨리 영종도 비행장이 완성돼 국제선이 이사를 가야만 이런 체증이 해소될 모양이다. 그래도 비행기는 아무 탈없이 구름 위를 날고 날아 2시 30분에 김해공항에 도착했다. 여기서 또 1시간을 빌빌거리며 시간을 보내다가 3시 30분 비행기를 타고 제주에 도착하니 4시 30분이 되었다. 제주공항에서 나오니 버스 기사가 아침 9시에 온다고 하여 하루 종일 기다렸다고 하며 반가이 맞이해 주었다. 5시에서 6시까지 자연사박물관을 견학하고 신 제주에 있는 뉴월드호텔에 짐을 풀었다. 호텔에서 저녁 식사를 하고는 9시부터 세미나가 있다고 하여 거리를 좀 돌아다니며 과자도 사고 귤도 사고 한 후 방으로 돌아왔다. 한 방에는 5명씩 묵었는데 우리 방에는 허미숙 선생님과 나, 그리고 한양부여고의 고숙영 선생님, 환일 고등학교의 이경옥 선생님과 한기애 선생님이 같이 묵게 되었다. 서로 인사를 하고 사 가지고 온 과자와 귤을 먹으며 환담하였다. 그런데 한 선생님이 샤워를 하러 화장실에 들어가 물을 트니 물이 나오는 소리가 어찌나 요란한지 귀곡성이 들리는 듯하였다. 그리고 환풍기가 돌아가는 소리는 또 어찌나 큰지 탱크 소리가 났다. 그래도 우리는 소리가 되게 웃긴다고 서로 깔깔대고 웃으며 학교 얘기, 새 교육과정 이야기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꽃을 피웠다.
9시가 다되어 1층에 있는 커피숍으로 내려오니 난방이 잘 안되어서 그런지 썰렁하였다. 그래도 선생님들의 열기는 대단해서 질문도 많고 설명도 많아서 11시 30분이나 되어 끝났다. 방에 돌아와 5명이 씻고 자리에 누우니 1시나 되었다. 다음 날은 6시에 기상으로 되어있어서 모두 빨리 잠을 청하려고 해도 자리가 바뀌어 잠들이 잘 안 오는지 뒤척뒤척 하였다. 그래도 어느 결에 잠이 들어 알람 소리에 잠이 깨니 6시가 다 되었다.
6시 30분에 아침 식사를 하고 7시 20분에 수월봉으로 출발했다. 수월봉에 도착하여 해변가로 내려가니 줄줄이 쌓인 지층에 크고 작은 돌멩이들이 박혀있었다. 선생님들은 어떻게 하여 이런 지형이 생겼을까? 이 돌이 어느 방향에서 날아왔을까? 등등을 토의하며 절벽에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지질강사인 숭문고등학교의 박정웅 선생님이 빨리 버스로 가자고 하니 겨우 떨어져서 버스로 향했다. 모슬포항에 도착하여 마라도 가는 배를 타고 마라도로 가면서도 이문원 교수님의 강의는 그치지 않았다. 수월봉을 바라보며 어떻게 하여 산 모양이 저렇게 되었을까? 평평한 봉우리는 어디서 생긴 것이고 그 위에 있는 뾰족한 봉우리는 어디서 만들어진 것이냐? 같은 봉우리인데 왜 한쪽은 검은색이고 한쪽은 붉은 색이냐? 등등의 질문을 던지시면서 쉴 새 없이 세미나를 계속하셨다. 이 사람은 이렇다 하고, 저 사람은 저렇다 하고 서로 자신의 생각을 얘기하면 맞는 사람에게 어떻게 그런 걸 알았느냐고 칭찬을 아끼지 않으신다. 참 이토록 가르침에 대한 열정이 넘치는 교수님에게 배우는 학생들은 어떤 학생들인지 정말 복도 많은 학생들이다.
마라도에 도착하여 먼저 내리다보니 교수님을 놓쳐서 섬만 한 바퀴 빙빙 돌다가 다시 배로 돌아왔다. 교수님 말씀대로 이 섬은 위에가 평평한 것이 수중에서 생성된 섬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다시 선착장으로 돌아와 배를 타고 보니 교수님이 아직 안 오셨다. 웬일인가? 하고들 기다리는데 민박집 화물차를 타고 몇 명의 선생님들과 같이 오시는 것이었다. 허미숙 선생님과 나는 우리가 교수님을 놓친 건 최대의 실수라고 하면서 앞으로는 절대 놓치지 말고 잘 따라다니자고 하며 모슬포 항으로 향했다. 모슬포 항에 도착하여 이번에는 송악산으로 올라갔다. 송악산 분화구를 바라보며 화산이 분출될 당시의 상황을 상상해보며 화산성 쇄설물을 하나씩 집어서 배낭에 넣었다. 나도 아이들에게 보여줄 욕심으로 검은색 돌과 붉은색 돌을 한 개씩 집어 주머니에 넣었다.
송악산에서 내려온 우리는 다시 버스에 올라 산방산 밑에 있는 미도 식당에 들러 점심 식사를 하였다. 아침을 먹은 지 7시간이나 지나도록 아무 것도 먹지 못한 우리는 정신없이 퍼 넣었다. 점심 식사를 마치자마자 곧 용머리로 향했다. 그전에 관광으로 왔을 때는 그냥 경치만 보면서 삥삥 돌아 나왔는데 이번에는 지층을 하나하나 관찰하며 돌다보니 확실히 사물은 아는 것만큼 보인다는 생각이 들었다. 용머리를 돌아 나오며 산방산을 바라보니 맨 꼭대기에 불쑥 솟은 바위가 보였다. 나는 바다로 나가 돌아오지 않는 남편을 기다리는 망부석 같다고 했더니 한 선생님은 고릴라 같다고 하였다. 또 버스를 타고 산방산 밑을 돌아 나오며 보니 두 바위가 서로 마주보고 있는데 꼭 서로 얼싸안고 있는 부부같이 보였다. 이 바위들의 이름이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나는 망부석과 부부바위라고 명명하였다. 산방산을 떠나 화순에 있는 신기 현무암을 보러갔다. 바닷가의 새카만 현무암은 그 모양이 어찌나 우락부락한지 금방 화산활동이 있었던 것같이 생생해 보였다. 화순을 떠나 이번에는 서귀포 층을 보러 천지연 폭포로 향했다. 폭포에는 가지 않고 주차장 옆 해변가로 내려가 바위에 드러난 사층리와 생흔화석을 보고 이암 속에 박혀 있는 조개 껍질 화석도 관찰했다. 말로만 듣던 조개화석을 현장에서 직접 보니 옛날 지질시대에 살던 조개와 직접 만나기라도 한 듯 반가웠다. 우리는 어두워져서 더 이상 보이지 않을 때까지 암석들을 쳐다보다가는 버스에 올라 다시 제주로 향했다.
이틀에 볼 것을 하루에 보느라고 지칠 대로 지친 우리는 버스에 오르자 모두 꿈나라로 들어갔다. 하지만 조금 졸고 나더니 또 토의가 시작됐다. 박정웅 선생님이 이것저것 설명해 주다보니 어느덧 호텔에 도착하고 우리는 방에 들어갈 틈도 없이 모두 식당으로 직행했다. 이날은 세미나는 생략하고 친교의 시간을 갖는다고 하여 우리는 친교고 뭐고 지쳐서 그냥 샤워를 마치자 곧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 날은 7시에 아침 식사를 하고 8시에 호텔을 출발하였다. 이날은 첫날 볼 예정이었던 별도봉으로 향했다. 별도봉은 말이 봉이지 전혀 봉우리 같이 생기지 않았다. 사라봉과 화북봉은 확실히 봉우리 같이 보이는데 그 가운데 오목한 부분이 별도봉이라는 것이다. 오목한 안부같이 보이는 이 곳을 왜 별도봉이라고 했는지 의아해 했는데 바닷가로 내려가니 확실히 두 개의 능선이 있고 하나의 봉우리였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이 바닷가에 있는 응회암에는 커다란 화강암이 군데군데 박혀있었다. 이것을 보면 현무암층 밑에 화강암층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고 이로서 제주도의 지각은 한반도 지각과 연결돼 있음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돌멩이 하나를 보고 수십 킬로 밑의 땅 속을 상상하고 대륙과의 연계성을 알아내는 지질학자들은 정말 신기하리만큼 상상력이 뛰어난 사람들인 것 같다. 별도봉을 떠나 이번에는 만장굴로 향했다. 만장굴은 세 번째인데 왜 벽에 줄무늬가 생겼는지, 왜 천장이 돔과 같이 둥글둥글하게 올라갔는지 몰랐는데 이것은 용암이 차서 흐르다가 가스가 모여 둥근 돔을 만들고, 천장에서 떨어진 바위가 용암에 흘러가다가 못 가고 멈춘 후 그 위에 다시 용암이 떨어지며 거북 무늬를 만들었을 것이라는 것이다. 이 교수님의 설명을 듣다보면 화산 폭발 당시의 현장에 서 있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곤 했다. 만장굴을 나와 민속촌에서 점심식사를 하고는 섭지 코지로 향했다. 섭지 코지에서 바라보는 일출봉은 뚜렷한 퇴적층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일출봉에서 바라보는 가파도는 갚아도 되고 마라도 된다는 옛말대로 넉넉한 인심을 보여주듯 평평한 대지를 이루고 있었다. 일출봉을 떠나 해녀촌에서 회를 먹으며 20만원도 안 냈는데 웬 회인가 했더니 여행사에서 준 위약금으로 먹는다는 것이다. 참 돈 버는 방법도 정말 가지가지다. 김포공항에서 몸을 뒤틀며 기다릴 때는 괴로웠지만 그래도 덕분에 맛있는 제주도 회를 먹게 됐으니 우리는 만족한 마음으로 횟집을 나왔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나오니 동쪽하늘에서는 목성과 토성이 인사하고 서쪽하늘에서는 눈부신 금성과 상큼한 초승달이 우리를 배웅하고 있었다. 몸과 마음이 모두 흡족하도록 포식한 우리는 다음에도 꼭 지질답사에 참여하자고 하며 제주공항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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