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행문

1999. 8. 2. 고씨동굴에 다녀와서

아~ 네모네! 2012. 10. 12. 20:30

고씨동굴에 다녀와서 

1999. 8. 2.

성수중학교

이현숙(李賢淑)

 

지난 719일에는 성수 중학교 학생 36명과 선생님들 7분이 고씨동굴 탐사 학습을 떠났다. 처음으로 야외 학습을 떠나는 것이라 걱정도 되고 기대도 되었다. 학생들은 희망자로 했는데 처음에는 별로 반응이 없어서 포기해야 되는 게 아닌가 걱정했는데 막판에 아이들이 몰려서 선착순으로 잘랐다. 돈까지 들고 와서 가고 싶다는데 사람이 꽉 차서 후보자 명단에 올려놓고 돌려보내려니 너무나 미안했다. 그런데 막상 출발하는 날 아침에 못 간다는 아이가 둘이나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너무 늦어서 그 때 연락할 수도 없어서 그냥 36명만 데리고 출발했다.

8시에 출발하기로 했기 때문에 아침 일찍 집에서 나와 건대역에서 2호선으로 갈아타려고 기다리고 있는데 누가 뒤에서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를 한다. 뒤돌아보니 나정원, 나정일 쌍둥이 형제가 교복을 단정히 입고 서 있다. 작년에 정원이는 가르치고 정일이는 안 가르쳤기 때문에 1년 동안은 쌍둥이 인줄도 모르고 지냈는데 올해 전철역에서 전철을 기다리는데 보니 똑같은 아이 둘이 서 있어서 쌍둥이인 줄 알았다. 언뜻 보면 똑같은 것 같아도 자세히 보니 정원이가 내 눈에 더 익었다. 뭔지는 모르지만 그냥 달랐다.

뚝섬 역에서 내려 학교 쪽으로 걸어가는데 웬 관광 버스 한 대가 학교 쪽으로 가고 있었다. 저 차인가 보다 생각하고 차를 자세히 살펴보니 완전 똥차였다. 얼마 못 가서 곧 서게 생겼다. 오늘 고생 꽤나 하겠구나 생각하며 걷고 있는데 그 버스가 다시 나오는 게 아닌가? ! 하고 안도의 한숨을 쉬고 교문을 들어서니 우리가 탈 버스는 벌써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이일섭 선생님도 벌써 와 계셨다. 둘이서 버스에 올라가 보니 기사 아저씨는 좌석에 앉아 쉬고 계셨다. 오늘 스케줄이 어떻게 되느냐고 묻기에 선돌을 보고, 고씨동굴을 본 다음 동강의 어라연까지 걸어서 갔다 오려고 한다니까 그렇게 하려면 더 일찍 출발해야지 이제 출발해 가지고는 밤 10시에도 오기 힘들다는 것이다. 어떻게 하나 하고 걱정을 하며 정 힘들면 어라연까지 가지 말고 후퇴해야겠다고 생각하며 다시 내려 왔다.

이일섭 선생님이 학생들 인원 점검을 하여 버스에 태우고는 815분에 출발하였다. 출근 시간이 되어서 시내에서도 밀리고 중부고속도로에서도 판교로 갈라지는 곳까지 차가 꽉 찼다. 마음은 급한데 버스는 꼼짝도 못하니 별 수 없이 준비된 유인물을 나눠주고 설명을 시작했다. 나도 별로 아는 것이 없으니 대강 대강 읽어 주는 수준으로 설명을 마치니 길도 뚫려 시원스럽게 달린다. 아이들도 소곤소곤, 종알종알 하면서 무슨 얘기들을 하는지 잠도 안자고 잘도 논다. 한참 잘 나가나 했더니 차가 또 선다. 무슨 일인가 하고 두리번거리니 호법 부근에서 사고 처리 관계로 지체라고 전광판에 나온다. 노루를 피하면 범을 만난다더니 갈수록 태산이다. 하지만 안달을 한다고 길이 뚫리는 것도 아니니 마음을 느긋하게 먹고 한잠 자려고 눈을 감아 보지만 잠도 안 온다. 아예 포기하고 마음을 비우니 곧 차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영동고속도로 쪽으로 빠져 나오며 보니 중부선 쪽에서 아직도 견인 작업을 하고 있었다. 중부야 잘 있거라 나는 간다 하며 원주로 향해 달리다가 여주 휴게소에서 잠시 쉬고 만종분기점에서 중앙 고속도로로 빠져 쉴 새 없이 달려 선돌에 도착하니 벌써 12시가 다 되었다.

강에 서 있는 거대한 돌을 보고 이일섭 선생님은 규모가 상당히 크다고 감탄하는데 아이들은 소 닭 보듯 별 반응이 없다. 이거 내가 관찰 대상을 잘못 잡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1210분쯤 고씨동굴 앞에 도착하여 점심을 먹고 1시부터 2시까지 동굴을 보았는데 열심히 쳐다보는 아이들도 있고 친구와 장난치는 아이들도 있고 했지만 그래도 좁은 틈 사이로 열심히 비집고 다니며 관찰하다 보니 어느덧 출구가 보인다.

215분에 고씨동굴을 출발하여 동강이 있는 거운리에 도착하니 245분쯤 되었는데 기사 아저씨는 4시에는 출발해야 한다고 다시 다짐을 한다. 알았다고 대답을 하고는 아이들과 어라연으로 향했다. 처음에는 좀 가다가 되돌아와야지 하는 생각도 했었는데 아이들의 걸음이 어찌나 빠른지 선두가 보이지도 않게 내뺀다. 결국 삼선암의 배타는 곳까지 다 와 버렸다. 그래도 나누어준 유인물을 보며 이게 물 솜방방이 맞냐 안 맞냐 하면서 열심히 들여다보는 아이들을 보니 기특했다. 자갈밭에서는 열기가 피어올라 온몸이 그대로 익어 버리는 것 같았다. 삼선암 앞에서 배를 타고 하선암에 올라갔더니 이거 보려고 여기까지 온 거예요? 하면서 아이들이 허탈해 하는 눈치다. 내가 보기에는 멋있는 것 같은데 아이들은 경치에는 별 관심이 없는 것 같았다. 하긴 나도 중학생 때에는 자연이 아름답다는 것을 별로 느끼지 못했으니 당연한 일이다. 그래도 댐이 완성되면 영원히 못 보는 곳이니 잘 보라고 하고는 사진을 찍어 주고 발길을 돌리는데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선생님들은 양산이라도 있어서 썼는데 아이들은 내리는 비를 그대로 다 맞고 다시 거운리로 향했다. 그렇게도 푹푹 찌더니 비가 한 줄기 쏟아지고 나자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자연은 참으로 오묘해서 너무 뜨거우면 물을 막 증발시켜 구름을 만들어 해를 가리고, 추워지면 다시 비를 쏟아 해가 나게 하여 뜨뜻하게 만든다. 세상을 이렇게 만드신 하나님은 다른 것은 잘 몰라도 참으로 인정이 많은 분인 것 같다.

이번에도 아이들은 번개같이 달려가고 보이지를 않는데 조금 오다 보니 1학년 2반에 있는 재웅이가 넘어져서 팔이 아프다고 팔을 잘 못 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팔이 부러진 게 아닌가 걱정이 되어 영월에 가서 병원에 가 보자고 하며 같이 오는데 점점 나아지는지 팔을 펴고 흔들며 걸어간다. 그래도 걱정이 되어 병원에 가서 X-ray를 찍어 보자고 했더니 괜찮다고 그냥 가겠다고 한다. 빗속을 부지런히 걸어 버스 있는 곳까지 오니 6시가 다 되었다. 그 때까지 기다리고 있는 기사 아저씨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죄송하다고 사과를 하고는 아이들에게 음료수를 사 먹이고 615분에 출발하였다.

고속도로에서도 앞이 안 보이게 비가 쏟아졌다. 만종 가까이 오니 비가 그치는 듯하더니 영동고속도로에 들어서니 또 폭우가 쏟아졌다. 문막휴게소에서 쉬기로 하고 조심스레 달리는데 갑자기 버스 계기판에 빨간 불이 두 개나 들어오더니 계속 소리가 난다. 기사 아저씨도 당황하여 안전지대에 차를 세워 놓고 여기저기 들여다보아도 소리는 그칠 줄을 모른다. 할 수 없이 갓길로 살살 차를 몰고 문막휴게소에 들어가 아이들에게 불고기 버거와 콜라로 요기를 시키고, 기사 아저씨는 회사에 전화를 걸어 어떻게 하느냐고 물으니 거기서는 뭐라고 하는지 냉각수를 붓고 이것저것 만져 봐도 경고음은 멈출 줄을 모른다. 이거 버스가 못 움직이면 이 많은 아이들을 데리고 어떻게 하나? 하는 생각에 앞이 캄캄했다. 아저씨는 아무리 해봐도 대책이 없자 그냥 살살 가 보자고 출발을 하는데 가다가 갑자기 폭발이라도 하면 또 어떻게 되나 싶어서 간이 쪼그라드는 것 같았다. 한참을 그렇게 마음 졸이며 오는데 비가 그치고 소리도 멈췄다.

아이들이 너무 침체되는 것 같아서 방성희 선생님이 낱말 맞추기 퍼즐 답을 맞춰 주고, 잘 맞춘 조에 상품으로 과자도 주고, 또 장인순 선생님이 퀴즈를 내어 맞추면 상을 주고 하니 아이들이 서로 자기 시켜달라고 저요 저요.”를 외치는 바람에 버스 속은 다시 활기가 돌았다. 퀴즈를 마치고는 노래방을 하였는데 아이들이 어쩌면 그렇게도 노래를 잘하는지 시간이 금방 가고 서울에 들어서니 아이들은 벌써 강동구야 빨리 해하면서 시간이 짧은 것을 아쉬워하며 즐겁게 놀았다.

학교에 도착하니 10시가 넘었지만 아이들은 즐거운 마음으로 인사를 나누고 끼리끼리 흩어진다. 선생님들도 서로 인사를 나누고, 나는 장인순 선생님 차를 타고 전철역으로 향했다. 조금 가다가 장인순 선생님이 교장 선생님께 보고 해야죠하면서 핸드폰을 내준다. 어두워서 전화 번호가 안 보인다고 하자 자신이 직접 전화 번호까지 눌러 준다. 교장 선생님께 지금 학생들을 해산시켰다고 보고를 했더니 수고했다고 몇 번씩 말씀하신다. 나는 아이들을 데리고 너무 무리하게 스케줄을 잡은 게 아니냐고 걱정하실 줄 알았는데 그런 말씀은 한 마디도 없으시고 수고 했다고만 하시니 너무 고마웠다.

다음 날 아침 재웅이가 걱정되어 집으로 전화를 했더니 재웅이 어머니가 그런 일이 있었느냐고 하시며 그전에 한 번 넘어져서 팔을 다친 후로 가끔씩 그렇다고 하시며 잘 모르고 계셨다. 혹시 아프다고 하면 병원에 데리고 가 보시라고 말씀드리고 전화를 끊고 나니, 어제 올 때 정일이가 열이 나고 머리가 아프다고 한 생각이 나서 다시 정일이네 집에 전화를 하니 학생이 받는다. “정원이냐?” 했더니 정일이예요.” 한다. 어제 아프다고 하더니 괜찮으냐고 했더니 다 나았어요.” 한다.

안도의 한 숨을 쉬고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나는 참 다른 것은 몰라도 인복 하나만은 많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항상 나의 부족함을 채워 주는 사람들을 만나서 여태 잘 지내고 있다. 가는 학교마다 과학 선생님들이 너무 능력 있고 착해서 속을 썩여 본 적이 없다. 내가 너무도 부족하고 빈틈이 많으니까 하나님이 이런 사람들만 만나게 해 주시는 것 같다. 이래서 하나님은 항상 공평하시고 모든 것을 합하여 선을 이루시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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