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행문

1998. 11. 19. 채란여행

아~ 네모네! 2012. 10. 12. 20:27

 

 

 

 

 

채란 여

1998. 11. 19

성수중학교

이 현 숙

채란 여행이라? 그런데 이런 말이 도대체 사전에 있기나 있는지 모르겠구나. 난을 캐러 가는 여행이니까 이렇게 써도 되겠지. 어제는 대학 수학 능력 시험을 보는 날이다. 올해는 중학교 선생님들이 본부 요원만 하고, 시감을 하지 않아서 쉬는 선생님들 여덟 명이 변산 반도로 난을 캐러 가기로 하였다. 산에서 한번도 난을 본 적이 없던 터라 호기심이 발동하여 한 번 따라가 보기로 하였다. 445분에 학교에서 출발하기로 해서 345분에 일어나 옷을 주섬주섬 입고는 우선 옥상으로 올라갔다. 새벽 4시쯤에 유성우가 절정을 이룬다고 방송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북두칠성의 국자 뒤쪽을 아무리 쳐다봐도 불빛이 많아서 그런지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이럴 때 민방위 소등 훈련이라도 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날도 춥고, 시간도 없고 해서 다시 내려와 세수하고 옷을 있는 대로 다 껴입었다. 한참 자는 남편에게 미안하여 조심조심 대강 짐을 챙겨 집을 나섰다. 애들이 어렸을 때는

여자가 애는 안보고 어딜 쏘다니느냐?”

애들이 좀 크니까

여자가 살림은 안하고 어딜 쏘다니느냐?”

하고 구박하더니 요새는 어디 가겠다고 하면

언제 남편 허락 받고 다녔어?”

하면서도 굳이 반대는 하지 않는다. 나이가 들어서 마음이 너그러워진 것인지, 아니면 날로 쭈그러드는 마누라 얼굴을 보아하니 얼마 못 살 것 같아서 선심을 쓰는 것인지 몰라도 하여튼 근래에 들어와서는 상당히 유해진 편이다. 올 가을 들어 가장 추운 날이라 바람이 매섭게 몰아쳤다. 하늘에서 땅의 일을 손바닥 보듯이 다 내려다보고 있어서 그런지 시험만 본다 하면 따뜻하던 날씨도 갑자기 표독스러울 정도로 돌변한다. 택시를 기다리며 무심코 하늘을 보니 밝은 별똥별 하나가 하늘에 긴 선을 그리며 지나간다. 새벽이라 택시가 총알같이 달려서 학교 오는데 10분밖에 안 걸렸다.

 

445분에 출발한다고 했는데 학교에 도착하니 420분밖에 안됐다. 택시에서 내리니 교문 앞에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가 수험생이 오나 하고 쳐다본다. 수험생을 격려해주려고 나온 학교 후배들인가 보다. 또 운동장에 서서 하늘을 쳐다보아도 역시 별똥별은 보이지 않고, 유도부실 위에 기울어져 가는 오리온자리의 삼태성이 초롱초롱 빛나고 있었다. 너무 추워서 별똥별 보는 것은 포기하고 유도부실 앞에 세워 놓은 봉고 차에 들어갔더니 언제부터 히터를 틀어놓았는지 훈훈했다. 조금 있으니 조풍호 선생님이 추운데 차 마시라고 하면서 녹차를 갖다 준다. 마음 씀씀이가 여자인 나보다 한결 따뜻하다. 따끈한 차로 몸을 녹이고 있는데 조풍호 선생님이 나와서 차를 후문 쪽으로 옮겼다. 송희석 선생님은 아침에 오기 힘들다고 아예 학교에서 잤단다. 조금 있으니까 윤순자 선생님이 오셔서 잠실로 향해 출발했다. 잠실에서 양운용 선생님을 태우고 다시 가락시장 쪽으로 향했다. 너무 빨리 가서 그런지 아무도 나와 있지 않았다. 황선오 선생님 댁에 가서 직접 모시고 온다고 황선오 선생님 댁으로 가서 문 앞에 차를 대고 기다리며 또 하늘을 쳐다보아도 역시 안 보인다. 황선오 선생님이 나오셔서 다시 가락시장 쪽으로 오니 김숙임 선생님이 와 있었다. 다 타고 기다려도 김영수 선생님이 안 나타난다. 늦잠 자나 보다고 집으로 전화를 하니 받지를 않는다. 괜히 자는 남편 깨우지 말자고 전화를 끊고 조금 기다리니 남편 차를 타고 나타난다. 이런 새벽에 차 태워다 주는 남편이 어디 있느냐고 시집 참 잘 갔다고 다들 놀려댄다. 여기서 판교 구리 고속 도로를 타고 중부 고속 도로로 들어가 남쪽으로 내려가면서도 다들 유성우를 보겠다고 머리를 의자에 기대고 열심히 하늘을 쳐다본다. 윤순자 선생님은 밤새 한잠도 못 잤다고 주무시겠다고 하길래 나도 창 쪽으로 자리를 옮겨 앉아 북두칠성 오른쪽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남으로 남으로 향했다. 가끔씩 별똥별이 떨어질 때마다

! !”

! !”

하며 탄성을 지른다. 나는 유성우라고 해서 별똥별이 비오듯이 쏟아지는 줄 알았는데 가뭄에 콩 나듯이 가끔씩 떨어진다. 33년 후에나 또 볼 수 있다고 하여 내가 어떻게 여든 세 살까지 살겠나 싶어서 눈을 부릅뜨고 쳐다보았는데도 십 여 개밖에 못 보았다. 시간이 갈수록 북두칠성은 점점 하늘로 치솟아 오르고 별들은 서서히 빛을 잃어갔다. 오창 휴게소에 도착하니 눈이 내려 나무 위에 소복이 쌓여 있었다. 호도 까기 인형에 나오는 눈의 나라에 들어온 기분이었다. 오창 휴게소를 떠나 다시 달리는데 희미한 동편 하늘에 주황색 실오라기 같은 것이 보였다.

저게 무엇인가?’

하고 자세히 들여다보니 그믐달이 떠오르고 있었다. 마치 붉은 색 바다 위에 떠 있는 조각배같이 신비롭게 보였다. 계속 떠오르는 그믐달을 바라보며 졸다 깨다 하고 있는데 구름 사이로 뻗쳐 나오는 밝은 빛이 보였다. 구름이 빠져나가려는 빛을 막으려고 해도 막을 수가 없었는지 구름 사이로 치솟아 오르고 있었다. 해가 뜨려나보다 하고 자세히 쳐다보고 있으니 이글이글 타오르는 불덩이 같은 태양이 산 위로 서서히 솟아오른다. 보고 있자니 꼭 산에 불이 붙을 것 같았다. 해와 달의 각지름 (태양의 윗면 - - 태양의 아랫면이 이루는 각도 : 0.5)이 같아서 같은 크기로 보인다고 했는데 햇빛이 강해서 그런지 태양이 훨씬 커 보인다. 눈이 날리면서도 한동안 해가 보이더니 눈보라가 점점 강해지면서 해는 보이지 않고 온 세상이 흰색으로 변했다. 첫 눈 치고는 상당한 양이었다. 꽃구경, 단풍구경도 좋지만 뭐니뭐니 해도 설경이 최고다. 완전히 환상의 나라로 빠져 들어가는 것 같았다. 도대체 하나님은 어떤 분이기에 이토록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 내실까? 분명히 아름답고 선하신 분일 것 같다. 아름다운 데서 아름다운 것이 나오고, 선한 데서 선한 것이 나오니까 말이다. 고부에서 백반으로 아침 식사를 하고 내소사 앞에 도착하니 9시 반쯤 되었다. 내소사는 볼 생각도 안하고 다짜고짜 야산으로 들어가 난부터 찾는다. 나는 난인지 풀인지 구별도 못하니 남들이 캐는 것 구경이나 하면서 따라 다니다가 나중에는 나도 비슷한 것으로 하나 캐 보았더니 뿌리가 난 뿌리였다. 캐는 도구도 안 가져가서 나무토막으로 캐려니 힘이 너무 든다. 변형된 것이 좋은 것인데 주로 바위틈에서 자란 것이 변형이 잘 된다고 절벽 쪽으로만 간다. 깍아지른 절벽에 대롱대롱 매달려 난을 캐는 모양을 보면 참 인간의 집념이란 대단하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나중에 보니 조풍호 선생님은 트위스트 춤을 추듯 비틀려 돌아가는 난을 캐어 가지고 오셨다. 난 캐다 걸리면 한 촉에 5천원씩 벌금을 내야 한다고 하여 배낭 속에 잘 숨겨 가지고 내려왔다. 김영수 선생님은 누구도 주고 누구도 주고 한다며 두 배낭이나 캤다. 송희석 선생님도

나 이거 걸리면 집 팔아도 안돼.”

하면서도 배낭 속에다 꾸역꾸역 밀어 넣는다. 온 몸과 배낭에 눈투성이, 흙투성이를 해 가지고 내려와서 봉고 차에 들어가 히터를 최대로 틀고는, 몸을 말리면서 올라오다가 정읍에서 늦은 점심을 먹고 이번에는 양운용 선생님이 핸들을 잡았다. 다들 피곤해서 잠에 곯아떨어졌는데, 한참 졸다 깨어보니 양운용 선생님 혼자서 졸음과 씨름을 하며 운전을 하고 있었다. 졸리우면 쉬어 가자고 했더니 여산 휴게소로 들어간다. 5분만 자고 가자고 양운용 선생님도 눈을 감고 다른 사람들도 잠잔다고 내리지도 않는다. 김숙임 선생님과 나는 내려서 커피 한 잔씩하고 기사가 졸면 큰 일이라고 양운용 선생님도 한 잔 사다 주었다. 중부 휴게소에서 한 번 더 쉬고 서울에 도착하니 7시가 넘었다. 수능시험이 끝나서 그런지 서울에 도착한 후에 많이 밀렸다. 전철을 타고 집에 오니 딸은 아직 안 오고 남편 혼자 T. V.를 보고 있었다. 캐온 난을 마루에 쏟아놓으니 갑자기 웬 난 수집가가 됐느냐고 하면서 화분 세 개를 가져다가 정성껏 심고 물을 준다. 우리 집에는 난이 약 40개쯤 있는데 나는 물 한 번주지 않고 항상 남편이 물주고 거름주고 하면서 애지중지 키운다. 내가 가져간 난도 잘 살았으면 좋겠다. 잘 살고 있는 것을 캐다가 죽이면 내 죄가 얼마나 크겠는가? 그저 잘 자라주기만 바랄 뿐이다.

 

인간의 욕망이란 끝이 없어서 온 세상 물건을 다 갖다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다고 한다. 오직 무한하신 하나님으로 채워야만 채워진다고 하더니 과연 그런 것 같다. 그런데 난을 캐다가 집에서 애지중지 키우는 행위가 더 자연을 사랑하는 것인지 아니면 자연 속에 그대로 두는 것이 더 자연을 사랑하는 것인지는 몰라도 무엇이든지 소유하고자 하는 소유욕은 남녀노소 모두 같다. 내 아들만 합격하게 해달라고 비는 불자들이나 내 딸만 합격하게 해 달라고 새벽마다 비는 신자들이나 전혀 다를 바가 없다. 하지만 몸을 소유하고 있으니 소유욕이 없을 수 없다. 몸이 없으면 모든 것이 필요 없어지니 자연히 소유욕도 없어질 것이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모든 굴레에서 벗어나 참 자유함을 누릴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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