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전긍긍
이현숙
건대병원에 조직검사 결과를 보러가는 날이다. 수년 전부터 허벅지에 사마귀가 났다. 모양도 동그랗고 색깔도 흰색이라 내버려 뒀더니 저절로 없어졌다. 그 후 똑같은 자리에 다시 까만 사마귀가 났다. 이번에는 모양도 불규칙하고 자꾸 커진다. 언젠가 TV에서 피부암은 이렇게 검고 모양이 불규칙하다는 것을 본 기억이 난다.
은근히 걱정되어 동네 파부과에 갔다. 의사가 보자마자 큰 병원에 가서 조직검사를 해보는 게 좋겠다고 한다. 건대병원에 알아보니 예약이 많이 밀려 3주 후에 오란다. 3주 후에 가서 조직검사를 했다. 2주 후에 와서 실밥을 뽑고 검사 결과도 보라고 한다.
3일 후 동네 병원에 갔더니 소독을 해주면서 검사할 때 피가 많이 났나 보다고 한다. 나야 뭐 누워서 마취하고 떼어냈으니 피가 얼마나 났는지 알 수 없다. 다시 3일 후 또 소독하러 갔다. 소독 후 연고를 발라주고 이제 집에서 약 바르고 드레싱을 하라고 한다. 조직검사를 하면 물이 닿지 않게 조심해야 하는 게 아주 번거롭다. 2주간 안 씻을 수는 없으니 아쿠아드레싱 밴드를 붙이고 조심조심 닦는다.
검사 결과를 보러 건대병원에 가니 검버섯 종류인데 나쁜 것은 아니라고 한다. 십년감수에서 벗어난 듯 안도의 한숨이 푸욱 나온다. 그냥 놔둬도 되고 제거해도 된다고 해서 그냥 놔두겠다고 했더니 47000원 환급도 해준다. 지난 번 수납할 때 제거할 비용까지 받았나 보다. 이럴 땐 어쩐지 공돈 받는 기분이다.
검사 결과를 보러 갈 때면 항상 긴장된다. 소가 도살장에 끌려가는 듯도 하고 사형 선고를 받으러 가는 것 같기도 하다. 하긴 사형선고는 이미 받은 것이다. 모든 생물은 태어나는 순간 사형 선고를 받는다.
천하를 호령하던 진시황도, 삼천갑자 동방삭도 다 죽었다. 진시황은 불로초를 구하려고 온 세상에 방사(신선술을 닦는 사람)을 보냈다고 한다. 하지만 그도 50세에 죽었다.
삼천갑자 동방삭은 그를 잡으러 온 저승사자를 요리조리 피하면서 18만 년을 살았다고 한다. 1 갑자는 갑자년에서 계해년까지 60년이다. 그러니까 삼천갑자라고 하면 60년×3000=180000년이 된다. 하지만 저승사자는 탄천에 앉아 물에 숯을 씻으며 동방삭이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탄천을 내가 어렸을 때는 숮내라고 불렀다. 동방삭은 숯을 씻어 희게 만든다는 말에 내가 삼천갑자를 살았어도 이런 멍청한 놈은 처음 본다고 입 빠른 소리를 했다가 자신의 존재가 탄로 나서 저승사자에게 끌려가고 말았다. 천하의 동방삭도 피하지 못한 죽음을 일개 아녀자인 내가 어떻게 피하겠는가. 죽음은 따 논 당상인데 어찌하던지 늦춰보려고 안간힘을 쓰는 내가 한심하다.
몸에 좋다는 건 다 찾아 먹고 조금이라도 더 건강을 유지해 보려고 1주일에 세 번씩 침 맞으러 다닌다. 꼬빡 앉아 1시간씩 침을 맞으려면 보통 힘든 게 아니다. 오가는 시간, 기다리는 시간, 침 맞는 시간까지 세 시간이나 걸린다. 그래도 잘 살아보겠다는 일념으로 열심히 다닌다. 정말 웃기는 짬뽕이다.
사람은 일평생 살면서 이런저런 일로 전전긍긍 하며 살아간다. 몸이 아파서도 그렇고 경쟁에서 뒤처질까 봐 불안해한다. 사회에서 따돌림 받을까 봐, 사랑하는 사람에게 버림받을까 봐 기타 등등 걱정이 끊이지 않는다. 이런 삶을 벗어날 수는 없을까. 단 하나의 탈출구는 죽음뿐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 죽음을 피하려고 온갖 짓을 다 하고 있으니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젊은 사람들이 이 꼴을 보면
'보아하니 살 만큼 살았구먼. 그냥 대충 살다 죽지 왜 저러나.' 할 것 같다.
전전긍긍하는 내 꼴을 보면 닭장 속에 긷힌 닭들이 생각난다. 예전에는 시장에 가면 닭장에 살아있는 닭을 잔뜩 잡아넣고 팔았다. 손님이 오면 한 마리 잡아내 모가지를 비틀고 칼로 심장을 푹 찔러 피를 뺀 후 뜨거운 물에 담갔다가 털을 뽑고 잘라 주었다. 이 꼴을 보는 다른 닭들의 심정이 어땠을까. 그야말로 전전긍긍 피를 말리는 삶을 살았을 것이다.
이런 닭의 처지나 지구라는 공간에 갇혀 살다가 저승사자에게 잡혀가는 우리 처지나 다를 바가 없다. 나는 오늘도 마음을 졸이며 전전긍긍의 삶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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