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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행문

100일간의 세계 일주 11 (남아공 케이프타운)

by 아~ 네모네! 2025. 1. 9.

1월 8일  항해 1(남아공 포트엘리자베스에서 케이프타운으로)

   아침에 빨래감을 잔뜩 내놓고 세제를 찾으니 없다. 이 구석 저 구석 찾아도 없다. 세탁실에 가봐도 없다. 지난 번에 세탁하고 두고 왔나보다. 에고~ 세 명 모두 골빈당이 됐나 보다.
  어제 케이프 타운에 미리 간 사람이  카톡을 올렸다. 1인당 100불에 희망봉, 테이블 마운틴, 펭귄 서식지까지 갔다 왔다는 것이다. 그래서 희망봉 옵션 투어를 취소하려고 바우처를 가지고  5층으로 내려갔다. 취소료 50% 9만원를 물고도 이게 더 낫다.
  오늘도 유카씨의 '남아공이 직면한 환경 문제'에 대한 강연을 들으러 갔다.
  광물 채굴로 마을이 생기고 철도가 놓이면서 야생 동물의 서식지가 파괴됐다. 하지만 적극적 보호 활동으로 코끼리 수가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코끼리는 하루에 150kg을 먹기 때문에 식생이 파괴된다. 코끼리가 농장도 파괴하여 총살하는 경우도 있다.
  리카온들이 광견병에 전염되어 수가 줄었다. 그래서 야생 들개에게 광견병 주사를 놓았다. 리카온은 로드킬로도 많이 죽었다.
   크루거 국립공원에도 광물 운반을 위한 철도가 있다. 코끼리가 기차에 치어 죽는 경우도 있다.
  후쿠무리라는 표범은 한 쪽 눈을 잃은 표범이다. 9살 때 젊은 수컷에 의해 무리에서 쫒겨났다. 마을 쪽으로 와서 가축을 잡아 먹다가 아이들의 안전을 위해 총살됐다. 인간과의 충돌도 심각한 문제다.

  지역민들에게 환경과 영어 교육을 하고 있다. 보호구역 근처에 살아도 입장료가 없어서 사자를 못 본 아이들이 많다. 사파리 운전기사나 하우스 키퍼를 할 수 있게 지원한다. 가축을 잃었을 때 손해 배상을 해주기도 한다.
  근친교배를 막기 위해 헬기로 다른 지역으로 이송하기도 한다. 인간의 이런 노력이 일마나 도움이 될까? 지구를 거꾸로 돌릴 수 없듯 불가항력인지도 모른다.
  잠비아의 치타도 거의 멸종 됐다. 치타를 다른 지역으로 옮겨 번식시키기도 했다. GPS를 활용하여 위치 파악을 한다. 보호구역을 벗어나면 다시 돌려보낸다. 코끼리의 속도를 파악하여 밀렵이 있다는 것도 알아낸다. 코끼리가 과도하게 달리는 것은 밀렵군에게 쫓기고 있는 것이다.
  나이 많은 수컷에게 위치 추적기를 부착하는데 헬기에서 마취주사를 총으로 쏜다. 코끼리가 마취되면 이빨에 줄을 묶어 10여 명이 잡아당겨 옆으로 눕힌 후 위치 추적기를 붙인다. 배터리는 2~3년마다 교체해 주어야한다. 날씨가 더우면 코끼리가 위험하므로 계속 물을 뿌리면서 작업한다. 작업 후 해독제를 놓고 코끼리가 일어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돌아온다.

  많은 지원을 부탁한다는 말로 강연을 끝냈다. 엽서를 사면 유카씨가 싸인도 해준다고 하니 많은 사람이 엽서를 들고 줄을 서 있다. 나도 오늘 살 걸 괜히 지난 번에 샀나 보다.

  점심 식사 후 성진이 아빠를 만났다. 내일 케이프타운 관광에 대해 얘기하다가 어제 일본 사람이 여권을 잃어버려 하선했다는 말을 들었다. 이 소리를 들으니 정신이 번쩍 난다. 소매치기를 당했는데 그 가방에 여권이 들어있었단다. 요즘 제 정신이 아닌데 정신 바짝 차려야겠다.
  다음은 영어회화를 배우러 갔다. 오늘은 하우스키퍼와 대화 하는 법을 배웠다.
Can you clean my cabin, please?
Can you change my sheets, please?
Can you empty my bin, please?
방을 캐빈이라고 하나보다.

  다음에는 세네갈 남자 '라티르 시'의 강연을 들었다.  그는 전에  엘리베이터에서도 만나고 계단에서도 만났다. 우리가 한국사랑이라고 하자 '안녕하세요?' 하며 인사도 했다. 부인도 옆에서 도와 주고 있다. 라티르는 일본말로 강연한다. 부인이 일본 사람인 듯하다.

  그는 고레섬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포트엘자베스는 만델라의 고향이다. 고레섬은 1978년에 유네스코 세계 유산으로 등록 됐다. 수도는 다카르다.  고레섬은 다카르 항구에서 15분이면 갈 수 있다. 인구 1500명이고 총 길이는 긴 쪽이  900m, 좁은 쪽이 300m다. 그는 이 섬의 페리 선착장에서 태어났다. 고레섬에 살 때 물고기를 사본 적이 없다. 낚시해서 먹거나 잠수해서 잡아 먹았다.

  오른쪽이 자신이 다닌 학교이고 왼쪽이 고등학교다. 95%가 이슬람 교도이고 5%가 기독교도다. 하지만 아무 갈등 없이 함께 축제를 즐긴다.
  공용어는 프랑스어지만 28개의 언어를 쓴다. 이 섬은 노예무역의 3대 거점이었다. 1404년 포르투갈 배가 처음 정박했다. 아프리카의 최서단에 있어서 유럽과 가까위 교통의 요지가 됐다. 하지만 어부들도 사용하는 섬이었다. 포르투갈 네델란드, 영국, 프랑스가 이 섬을 지배했다. 1815년 프랑스의 식민지가 됐다. 요새에는 대포가 있었는데  어렸을 때 이 대포에서 놀았다.
  1848년에 노예제도가 폐지 될 때까지 400년간 노예무역이 있었다. 건강한 사람부터 끌려갔다.
  1960년 프랑스로부터 독립했다. 지금도 세네갈은 화폐를 프랑스에서 만들어 온다.
  노예의 집 1층에는 노예를 가두었고 2층에는 프랑스 사람이 살았다.

  1층은 각방으로 나누어 체중과  체력, 성별로 나누어 수용했다. 건강 정도는 이빨을 보고 구분했다. 이 건물에는 돌아오지 않는 문이 있는데 한 번 나가면 못 돌아온다. 노예들이 한 방에 몇 층으로 짐짝처럼 실렸다. 도망가지 못 하게 묶었고 가족도 다른 방에 수용되어 다른 나라로 팔려갔다.

  오바마도 돌아오지 않는 문을 방문했다. 어렸을 때 여기를 방문한 미테랑 대통령과 요한 바오로 2세도 만났다. 노예들은 아두 작은 창 밖에 없는 어두운 방에 갇혀 있었다. 만델라도 이 방을 보고 눈물을 흘렸다.

  노예섬의 나디르 단장이 이 사실을 세계에 알렸다. 그는프랑스 군인으로 2차 대전에 참여했다. 프랑스에 있던 자료를 보고 고레섬에 와서 현장을 보고 알렸다. 지금은 박물관이 되었다. 그는 사람들에게 '용서하되 결코 잊지 말라.'고 말했다. 이 분은 영웅 같은 분이다. 자기는 어려서부터 이 분의 말을 들으러 박물관에 갔었다. 일본에서 오래 살면서 가이드로 일하며 고레섬을 알렸다.
  자신이 어렸을 때 루이비통 가방을 든 프랑스 부부가 왔다. 가이드로서 이들에게 안내를 해줬다. 그들은 노예의 집을 나오면서 프랑스 사람으로서 사죄하고 싶다고 말했다. 보통 적은 돈을 받고 일 했는데 큰 돈을 주었다. 너무 큰 돈이라 놀랐다. 어머니에게 드렸더니 돌려주라고 했다. 부부가 같이 식사를 하자고 해서 자기 집에서 같이 식사를 했다. 같고 싶은 게 뭐냐고 하기에 축구화를 갖고 싶다고 했다.  얼마 후 축구화와 옷, 학용품이 왔다. 자신이 태어나 살고 있는 곳에 대해 얘기하고 싶었다. 앞으로도 세계 평화를 위해 일하고 싶다.
  일본의 전통 음악을 하는 형 같은 분이 어머니 1주기를 맞아 고레섬에  와서 진혼 연주를 해줬다. 자기는 동생으로서 30년간 일본에서 지내며 평화를 위해 노력했다.

  고레섬에 있는 이 동상에서 남자는 쇠사슬을 끊는 형상이고 어머니는 아들은 안고 있는 형상이다. 아프리카는 큰 소리로 잠베를 통해서 소통한다. 그래서 이들은 그렇게 소리를 지르나보다.
  아프로큐바, 브라질 삼바, 살사도 아프리카에서 유래한다. 둥근북이나 사각북은 아프리카에서 전래된 것이다. 반항하기 위한 춤이나 리듬이 문화로 전해지게 되었다, 랩과 탭댄스도 몰래 숨어서 하는 그들의 소통 방법이었다. 고레섬은 가장 슬픈 역사를 가진 섬이지만 세계 평화를 전하는 섬이다. 그는 세계 평화를 위해 자신이 직접 젬베 연주를 하며 노래도 했다.

  다음은 아프리카의 산족 문화에 대한 강연을 들었다. 이디스라는 여자의 강연이다. 30만년전부터 호모 사피엔스가 등장했고 14만년 전부터 산족이 나타났는데 이들은 작고 피부가 흰 편이었다. 강수량이 남부가 더 많았고 동물도 남부에 많았다. 초기 인류가 살았더 중부 아프리카는 건조했다. 산족은 남부로 이동했고 다른 인류와 단절됐다. 10만 년이 지난 후 다시 다른 인류와 합쳐졌다. 그래서 호모 사피엔스의 DNA를 가지고 있다.
  초기 인류는 7만 4천년 전부터 다른 대륙으로 이주하였다. 토바 화산이 폭발한 후에 화산재가 넓은 지역을 뒤덮었기 때문이다.
  산족은 초기 인류의 한 가지를 이루고 있다. 산족과 비 산족은 4만년 전에 다시 만났다. 칼라하리, 보츠와나에서 7만년 전 의식에서 사용했던 돌을 발견했다. 돌에는 불에 탄 흔적도 있었다.

  현재 산족이 사용하는 수렵 도구는 7만년 전 사용한 도구와 같다. 화살촉도 작고 화살도 작았는데 그걸로 독화살을 쏘았다. 독화살을 쏜 후 몇 시간씩 따라갔다.
  초딜로 언덕에 100만개 이상의 그림이 남아있는데 26000년  된 나미비아의 동굴벽화도 있다.
  사회적, 종교적 의식으로 치료도 했다.초월적 상태에서 선조들과 소통한 후 자연으로 약을 찾아 나섰다. 힐링 댄스도 추었다다.
  그들은 농사를 짓지 않는다. 수렵만 한다. 그릇도 만들지 않았다. 여자들은 수렵은 하지 않았지만 과일, 베리, 알 등을  채취했다. 여자들이 식량의 삼분의 2를 담당했다. 단백질은 곤충이나 수렵한 동물로 채웠다. 이들은 집을 짓지 않는다. 단지 건기에만 물 근처에서 25명 정도가 한 집에서 산다. 하지만 곧 새로운 곳으로 이주한다.
  아이들이 성장하면 성인식을 치룬다. 성인식이 끝나면 조직의 일원이 되고 결혼도 할 수 있다. 1960년대에 나미비아 정부가 많은 땅을 보호구역으로 지정하여 90%의 땅을 잃었다. 교육도 받지 못해 힘든 삶을 살고 있다. 현재 몇 천명 밖에 남지 않았다. 그들은 바다가 있는 줄도 모른다. 칼라하리 사막에서만 살았다.

  
오늘은 공부를 너무 많이 했더니 머리가 터질 지경이다. 과부하가 걸렸다. 하루 종일 요동이 심해서 이리 비틀 저리 비틀 만취한 사람처럼 걸어 다녔다.

1월 9일 남아공 케이프타운

  흰구름은 여권 팬티를 입는다. 팬티에 주머니가 달려서 거기에 여권을 넣으면 안전하단다. 난 그런 거 있는지도 몰랐다. 어제 일본 사람이 여권 잃어버렸다는 소리를 듣고 긴장했나보다.
  배에서 나가 현지 가이드 안태형씨를 만났다. 안태형씨는 여기서 22년 살았다고 한다. 희망봉을 향해 조금 달리니 하얀 지붕의 건물이 보인다. 월드컵 경기장이다. 현지인들은 월드컵 경기장을 흰 코끼리 또는 전기 먹는 하마라고 부른다. 전기를 너무 많이 소비하기 때문이다.

  라이온즈 헤드의 엉덩이 부근에서 패러글라이딩 하는 모습도 보인다. 씨포인트 포마데는 걷기 좋은 곳이다. 12사도 봉우리가 보이는 비치에서 잠시 쉬었다.

  Maidens cove에서도 쉬었다. 이곳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신학대학이 있다.
  출발하려는데 한 사람이 자기 남편이 안 왔다고 한다. 이 기회에 갈아보라고 농담들을 한다.
  바다의 하얀 바위에는 까만 가마우지들이 쉬고 있다. 하웃 베이는 나무 항구라는 뜻이다.
  일자리를 구하러 길거리에 나와 있는 사람들이 있다.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의 내용을 적은 종이를 손에 들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일용직 근로자들이 많은데 여기도 그런가 보다.

  채프맨즈 로드를 달렸다. 100년 된 길인데 죄수들을 동원하여 공사를 했다. 이 길에서 벤즈와 BMW 광고를 찍었다. 차를 타고 가다가 떨어졌는데 벤즈 때문에 살았다는 광고다. 그 때 광고 모델이 90세인데 아직 살아있다. BMW도 찍었는데 우린 안 떨어진다고 하며 벤즈를 이겼다고 BMW라고 했다. 전망대에 섰는데 멋진 차가 있다. 포드 코브라라고 한다. 쿠바 갔을 때 올드카를 타고 머플러를 휘날리며 해변길을 달렸던 기억이 난다.

  해군 기지도 지났는데 여기서 케이프타운까지 기차가 다닌다.
병사들이 이 개를 태우자 요금을 내라고 했다. 그래서 병사들이 요금을 내고 개를 태웠다. 그러자 기차 회사에서 해군만 탈 수 있다고 했다. 병사들은 상관에게 얘기해서 이 개를 해군으로 만들어 태우고 다녔다. 이 개가 죽자 해군장으로 치러줬다. 그 개의 동상이 바닷가에 있다.
지나다 보니 미나리라는 한인 가게가 보인다. 안태형씨와 같은 교회 집사님이 운영한다고 한다.
  희망봉의 원래 이름은 케이프 오브 스톰 (폭풍 곶)이었다. 하지만 포르투칼 왕이 와보고 희망곶으로 바꾸라고 했다. 등대 밑까지 후니쿨라를 타고 올라간다.

  등대에서 보면 희망곶으로 가는 길이 아스라이 보인다. 20년 전에 왔을 때는 이 길을 걸어 희망곶으로 내려갔다. 길이 뻔히 보이는데 시간상 못 가는 게 참 아쉽다. 희망곶에서 사진을 찍고 다시 돌아오는 길에 개코 원숭이도 보았다. 개코원숭이는 에디오피아 갔을 때 떼지어 다니는 걸 봤다. 이 놈은 혼자 다니는 걸 보면 무리에서 쫓겨났나 보다.
  다음은 펭귄을 보러 갔다. 바닷가에 옹기종기 모여 있다. 알을 품고 주둥이를 하늘로 쳐들고 있는 놈들도 있다.

  갈매기가 날아와 알을 훔쳐다가 모래밭에서 쪼아 먹고 있다. 눈 뜨고 코 베 가는 세상이 아니고 눈 뜨고 알 뺏어가는 세상이다.

  여기를 떠나 달리다가 안태형씨가 시원한 토마토를 준다. 부모님이 키우신 것이라는데 완전 꿀맛이다..
  좀 더 오다가 상어 감시 초소 (shark spotters)가 있는 곳에서 섰다. 그 안에 있는 사람이 바다를 내려다 보고 있다. 해수욕장에 있는 사람들의 안전을 위해서다.

  테이블 마운틴에 도착하여 케이블카를 탔다. 65명 타는 어마무시하게 큰 케이블카다. 금상첨화로 무료 와이파이도 된다. 이 케이블카는 바닥이 360도 돌아간다. 면목동 촌년 완전 출세했다. 정상에는 안개가 가득하여 눈에 뵈는 게 없다. 꿈속에서 걷는 기분이다.

  내려오면서 보니 작은 섬이 보인다. 로빈섬이다. 여기에 만델라가 18년 갇혀 있었다고 한다. 그는 총 28년을 이 섬 저 섬에 갇혀 지냈다. 족장의 아들로 후에 대통령이 되었다.
  항구로 돌아오다가 보캅마을을 지났다. 노예들이 살던 곳인데 예쁜 색으로 장식해 유명 관광지가 되었다. 지금은 매년 정부에서 칠을 해주고 있다.

  항구로 돌아와 출국심사를 받고 배에 올랐다. 오늘도 여권 잃어버리지 않고, 다치지 않고 무사귀환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