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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행문

100일간의 세계일주 5 (싱가포르에서 포트루이스)

by 아~ 네모네! 2024. 12. 29.

100일간의 세계일주 5 (싱가포르에서 포트루이스)

12월 19일 (목)  싱가포르
  14층에서 아침식사 후 밖으로 나가보니 싱가포르 시내가 아련하게 보인다. 15층 갑판으로 올라가는 계단도 열렸다. 올라가 보니 많은 배들도 왔다갔다 하는 게 항구의 활기찬 분위기가 물씬 풍겨온다.

  10시가 되기를 기다려 옵션 투어 추기 신청이 가능한가 5층 프론트로 가보니 줄이 길다. 한참 기다려 물어 보려니 한국말 하는 사람이 없다. 일본 직원이 한국말 하는 사람을 불러와 포트루이스 추가 신청이 가능하냐고 물어보니 내일 아침이 되어봐야 알 수 있단다.
  다시 14층으로 올라가 싱가포르 시내를 바라보았다. 크루즈에 많은 깃발이 달려있어 태극기를 찾아 보니 없다. 서운한 마음이 들려는 순간 자세히 보니 각 나라의 국기가 아닌 것 같다. 일본 국기도 없다. 다시 한 바퀴 돌며 사진을 찍었다.

  12시 30분에 배안에서 같은 투어 옵션을 신청한 사람들끼리 모여 하선했다. 긴 통로를 지나 입국 심사를 받으러 갔다. 지문이 안 찍힐까봐 걱정했는데 무사통과 했다. 엄지나 검지 지문이 안 찍히는 사람은 돈을 많이 센 사람이라고 농담들을 한다.
  쇼핑몰을 지나 밖으로 나가니 현지 가이드가 버스로 안내한다. 11번이라고 쓰인 종이를 옷에 붙이라고 한다.

  버스를 타고 가며 가이드가 설영을 해준다. 싱가포르는 4개 국어를 쓴다. 국민소득 10만 5천불이며 아시아 최고로 부자 나라다.
  우선 중국식당으로 가서 점심을 먹었다. 이곳의 유명 맥주라는 타이거 맥주도 한 잔씩 준다. 그런데 맛이 그렇게 좋은지는 잘 모르겠다.
  식사 후 마리나베이 샌즈 호텔로 갔다. 이 호텔은 모세 샤파드가 설계했는데 카지노가 있다. 커다란 배 모양인데 쌍용건설이 건축했다.  스위트 룸만 570개인 네 번째 호텔을 지금 짓는 중이다.
  싱가포르는 1965년에 말레이시아로부터 독립 했다. 전체가 매립지다. 매립하고 30년을 기다려야 건물 지을 수 있는데 자갈, 모래, 흙을 외국에서 수입하여 매립했다. 싱가포르는 법이 엄하다. 만 18세에서 50세 까지 남자가 감옥에 들어가면 태형을 받는다. 작년에는 마약사범 12명이 사형 됐다. 국토이 87%가 국가 땅이고 사회주의 색채가 진하다.
  마리아베이 샌즈 호텔 전망대로 갔다. 56층이다. 전망대로 나가니 싱가포르 시내가 발 아래 펼쳐진다. 투숙객만 이용할 수 있은 공중 수영장도 보인다. 박물관과 두리안 모양을 한 예술의 전당, 조개비 모양의 식물원도 보인다. 수퍼트리가 있는 가든스 바이 더 베이도 멀리 보인다.

  여기서 내려와 가든스 바이 더베이 정원으로 갔다. 입장하려는 줄이 엄청 길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6층으로 올라가 공중에 매달린 스카이 워크를 걷는다. 쪄죽을 판인데 캐롤이 나오니 실감이 안난다. 성탄절은 아무래도 흰 눈이 덮혀야  제맛이다.
  스카이워크는 수퍼트리 사이의 구름다리로 연결되어 있다. 위에서 보는 수퍼트리는 더 멋지다. 이런 걸 만들어서 떼돈을 버니 아이디어가 얼마나 큰 자산인지 실감 난다. 아무 자원이 없는 우리 나라가 살 길은 인적 자원 뿐이다.

  스카이워크에서 내려와 폭포 돔으로 갔다. 가는 길에 보니 기다란 대나무 빗자루로 땅을 쓸고 있는 남자가 보인다. 우리나라 빗자루는 촘촘한데 이곳 빗자루는 엉성한 게 저래 가지고 뭐가 쓸릴지 의문이다.

  폭포돔은 커다란 식물원이다. 안으로 들어가니 거대한 인공폭포가 나타난다. 엄청 시원하다. 식물원은 항상 따뜻한 온실만 생각했는데 온실이 아니고 냉실이다. 식물원 안에는 식충식물도 보인다.

  식물원 안쪽의 길을 걷다보면 중간 중간 구멍도 있어 시원한 물줄기를 볼 수 있다.

  6시에 기념품 가게 앞에서 만나기로 해서 내려가보니 사람들이 별로 없다. 근처에 사자상이 있어 가보니 입을 쩍 벌리고 있다. 사자 입에 손을 넣고 사진을 찍고 있는데 이장형님이 자기도 찍어 달란다. 아프다고 소리를 지르며 연기도 잘 한다.

  여기서 나와 머라이언 베이로 갔다. 커다란 사자상의 입에서 거대한 물줄기가 뿜어져 나온다. 이 사자는 상반신은 사자이고 하반신은 물고기다. 인어(人魚)가 아니고 사자어(獅子魚)다. 사자 입에서 나온 물을 받아 먹는 시늉을 하며 사진을 찍으려니 여간 힘든 게 아니다. 시간 없다고 빨리 버스로 가자고 하는 바람에 번갯불에 콩 구어 먹 듯 돌아치다가 버스로 갔다.

  가이드의 설명이 이어진다. 이곳은 결혼하면 30평 아파트를 준다. 35세 이상이고 조부모, 부모, 자녀 3세대가 같이 살면 방 4개짜리 70평짜리 정부 아파트를 분양해준다. 그래도 결흔을 잘 안 한단다. 여기도 인구가 감소하나 보다. 싱가포르는 증여세와 상속세가 없어서 세계의 부호들이 많이 이민 온다.
  싱가는 산스크리트어로 사자, 포르는 거대하다는 뜻이다. 아마 옛날부터 사자가 많았는지도 모른다.
  항구로 돌아와 배에 오르니 내 집에 온 것처럼 마음이 편안하다. 오늘 원래 비 소식이 있었는데 비도 안 오고 구름이 껴서 그런대로 잘 마치고 돌아왔다. 김민재 소장님 말로는 이런 날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소장님은 여기서 한국으로 돌아간다고 하여 헤어지고 우리만 들어오려니 부모 잃은 자식처럼 갑자기 허전해지고 힘이 쭉 빠진다. 항상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 주는 해결사 였다. 저녁시간이 늦어서 14층에 가  부페로 저녁을 때우고 방으로 돌아오니 온몸이 만신창이가 된 듯 노곤하다.

  12월 20일 항해 1 (싱가포르에서 포트루이스까지)

  아침은 주로 14층에서 부페로 먹고 점심은 6층에서 양식으로, 저녁은 5층에서 양식으로 먹는다. 요즘 삼시 세 끼 꼬박 꼬박 진수 성찬으로 먹으니 왕비가 된 기분이다. 평소에는 거의 사료  수준으로 먹었는데 요리할 일도 없고 설거지 할 필요도 없으니 팔자 폈다. 그냥 먹고 냉큼 일어나서 나가기만 하면 되니 넘 좋다. 밥 중에 제일 맛 있는 밥은 남이 해주는 밥이라고 하지 않던가.

  흰구름이 로비에서 또 카드를 받았다. 이번에는 결혼 기념일 카드다. 12월 23일에 스시집에서 한턱 내겠다고 카드를 만들어 카톡방에 올렸다. 우리 셋에 민우씨까지 4명이다.

  복도를 지나다 보면 이 방 저 방 문앞에 산타 모양 인형도 걸려있고 트리도 걸려있다. 여행 중에도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은 참 행복한 사람들이다.

  식사 후 갑판을 도는데 퉁소 부는 할아버지가 보인다. 혼자 즐기는 모습이 좋아보인다.

  10시부터 옵션 투어 신청을 받는다고 하여 9시 30분에 5층 안내 데스크로 가니 사람들이 바글바글하다. 많은 사람들이 일찌감치 줄을 서서 번호표를 받았다. 우린 번호표라는 게 있는 줄도 몰랐는데 사람들 참 엄청 똑똑하다. 우리는 16번을 받아서 한 시간 정도 의자에 앉아 기다렸다. 옆에 앉은 일본 할머니가 일본 캔디라고 하며 사탕을 준다. 우리 모두 먹으라고 3개 씩이나 즌다. 일본 할어니들 참 친절하다.
  일본인 줄에는 큰 번호판을 들고 소리를 질러대는데 중국인과 한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줄에는 번호판도 잘 안 보여 연방 가서 몇 번이 하고 있는지 확인해야한다.
  온몸이 비틀릴 때쯤 우리 차례가 되어 3명이 세트로 들어갔다. 룸메이트라고 하며 한꺼번에 신청하겠다고 했다. 날쌘돌이 흰구름이 잽싸게 가서 한국인 직원 가현씨를 불러왔다. 가현씨의 통역으로 마다가스카르 1일 관광을 신청했다. 원래는 1박 2일로 바오밥나무를 보러가려고  신청 했었는데 짤렸다. 할수 없이 12월 31일 오전에 하는 극립공원 관광을 신청했다. 가현씨가 이건 영어로 하는 건데 한국인이 7명이나 되니 한국인 가이드를 붙여줄 지도 모른다고 해서 이걸로 신청했다. 1월 1일은 전통시장이 문을 닫는다고 하여 이날 국립공원을 본 후 시장까지 가보기로 했다. 여기서 분홍색 바우처를 받았다. 한국에서 신청한 옵션의 바우처는 연두색인데 배 안에서 받은 바우처는 분홍색이다
.

  그 다음 나만 떨어진 포트루이스 영어가이드가 하는 걸 신청하려했더니 이것도 꽉 차서 대기로 걸어놓았다. 2시간이나 걸려서 겨우 옵션 신청을 마치고 방에 와 금고에 바우처를 넣고 잘 잠궈 놓았다.
  점심 식사 후 방으로 돌아오니 전화벨이 울린다. 누군가 영어로 말할까봐 겁을 잔뜩 먹고 수화기를 들며 "여보세요."했더니 다행히도 가현씨다. 우리가 신청한 마다가스카르 영어 관광에 한국인 가이드가 가지 못 하니 1월 1일에 하는 한국어 관광으로 바꾸겠느냐고 한다. 그러려면 빨리 내려가서 바꾸라고 한다. 우리는 어쩔까 하다가 그냥 31일에 가기로 했다.
  갑판을 돌고 갑판 의자에 앉아 어제 관광한 것을 블로그에 올리고 있는데 금형씨가 카톡 전화를 했다. 빨래하러 가자는 것이다. 방에 와 빨래감을 가지고 세탁실에 가서 세탁기를 돌려놓고 다시 방으로 왔다. 잠시 쉬다가
빨래를 꺼내러 갔다. 각자 자기 옷을 꺼내어 털었다. 나는 평생 털지 않고 그냥 널었는데 이번에 금형씨에게 털어야 한다는 걸 배웠다. 방에 와 빨래줄을 매고 주렁주렁 매달았다. 4시 15분에 일본 사람이 '나의 라이프 스토리'라는 강의를 한다기에 동시통역기를 가지고 교실로 가니 강사가 아파서 휴강이란다. 에고~. 모처럼 공부 한 번 해보려고 했더니 도통 도와주지를 않는다.

  흰구름은 방에서 쉰다고 하여 강의 끝나고 5시 30분에 흰구름과 식당 앞에서 만나기로 했다. 우리가 방에 가면 흰구름이 깰 것 같아 7층 창가 의자에 앉아 핸드폰을 보며 시간을 죽였다.
  5시 30분에 식당 앞에서 흰구름을 만나 식당으로 들어갔다. 일본 할아버지 세 명과 합석하게 됐다. 어디서 왔냐고 해서 한국에서 왔냐고 했더니 서울서 왔느냐고 한다. 그렇다고 했더니 수원시와 복정시가 자매결연을 맺었다고 한다. 우리는 복정역을 생각하며 복정은 시가 아니고 동인데 이상하다 생각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하보니 일본에 복정시가 있나보다.

  한국말로 마더가 뭐냐, 화더가 뭐냐 한참 얘기하다가 요코하마에서 탔느냐고  하여 그렇다고 했더니 어디를 봤느냐고 한다. 우리는 번역기를 꺼내 붉은 벽돌 창고도 가고 삼계원, 스카이 가든도 갔다고 하며 금형씨가 거기서 찍은 사진을 보여줬더니 끄떡끄떡한다. 흰구름이 나를 가리키며 후지산에 갔다고 하니 한 남자가 자기집에서 후지산이 보인다고 하며 집에서 찍은 사진을 보여준다. 흰구름이 금형씨와 나를 가리키며 킬리만자로도 갔다고 하니 흰구름에게 왜 같이 안 갔느냐고 한다. 흰구름이 숨이 헉헉 차는 모양을 하자 웃으며 알았다는 표정이다.
  파러글라이딩 하는 그림을 그려  보여주면서 자기네는 이걸 징글 라이더라고 하는데 한국에선 뭐라고 하느냐고 묻는다.

  한참 얘기하다가 나를 보고 선생이었느냐고 한다. 퇴직한지 20년이 넘었는데 아직도 꼰대 냄새가 나나보다 에이고 두야.
  8시에 12층에서 망원경으로 믁성, 화성, 금성을 본다기에 올라가 봤더니 망원경이 안 보인다. 날씨가 안 좋아서 취소했나보다. 목성은 맨 눈으로도 보이는데 왜 취소했나 모르겠다. 시원한 바람을 쏘이며 글을 쓰다가
방으로 돌아왔다.

12월 21일 항해 2 (싱가포르에서 포트루이스까지)

  아침을 먹으러 14층에 가니 밖이 캄캄하다. 매일 같은 시간에 오는데 이상하다 했더니 밖에 비가 오는 듯하다. 자세히 보니 식탁에 빨간 카드가 놓인 곳이 많다. 예약 된 곳인가 하고 카드가 없는 곳에 얁았다. 나중에 보니 시각을 한 시간 늦추라는 안내 카드다. 도둑이 제 발 저린다고 하더니 괜히 지레 겁을 먹었다.

  곳곳에 의자를 탁자에 걸쳐 놓은 곳이 있어 탁자를 보니 천장에서 물이 떨어진다. 바닥으로 떨어지는 곳에는 매트도 깔아놨다.

  식사 후 요가를 하러 갔다. 한국말로 통역해주는 자리에 앉으려고 미리 갔더니 전 타임이 아직 안 끝났다. 밖에서 기다리다가 안으로 들어갔다. 오늘도 사람이 무지 많다. 싱가포르에서 탄 사람들까지 추가 되서 더 많은 것 같다.
  요가 선생님을 따라 몸을 풀었다. 중간에 선생님이 티 셔츠를 껴 입는다. 앞에는 갈비뼈와 척추, 골반 뼈가 그려져 있고, 뒷면에는 척추와 골반 뼈가 그려져 있다. 선생님이 직접 그렸다고 한다. 이 선생님은 접골사 일도 한단다. 그래서 뼈 모양을 훤히 꿰고 있나보다.

   예쁘게 잘도 그렸다. 이걸 입고 설명하니 더 이해가 잘 된다.

  방에 와서 햇빛 알러지 약을 처덕처덕 바르고 선글라스와 모자를 쓴 후 7층 갑판으로 나갔다. 올해  들어 알러지성 비염도 심해지고 햇빛 알러지도 심해졌다. 매일 눈약, 코약, 입약에 피부약까지 바르려니 여간 번거로운 게 아니다. 이래서 늙으면 죽어야 한다는 말이 생겼나보다. 노화에 의한 병은 약이 없다. 죽는 게 약이다. 배의 뒷 부분 젖은 곳에 통제선을 쳐 놓았다. 할수없이 돌지를 못 하고 왔다 갔다 했다.

  안으로 들어오니 사진전을 하고 있다. 해저 쓰레기와 해저 생물들의 사진이 전시되어 있다.

  방에 와서 쉬다가 6층 식당으로 갔다. 로비 옆에 수건으로 만든 각가지 동물들을 전시해 놓았다. 거북이, 개구리, 코끼리, 토끼, 강아지, 원숭이 등 다양하게 잘도 만들었다. 입꼬리가 자동으로 올라간다.

  1시에 하는 살사교실에 참가하려고 가는데 바다가 보이는 방 문이 열려있다. 엄청 밝아서 불을 켤 필요가 없겠다. 우리 방은 안쪽에 있어서 창문 하나 없는 창고 같다. 24시간 불을 켜고 산다. 돈이 좋기는 좋다. 금형씨 왈 저런 방에 있으면 밖에 잘 나가지 않을테니 운동이 안 된다는 것이다. 내 생각엔 너무 밝아서 방에서도 선글라스 끼어야 할 것 같다. 우리에게 저런 방은 신포도다.
  살사교실에 가니 미키가 다가와 오늘부터는 짝을 이루어 춤을 춘단다. 나는 원체 몸치라서  포기하려고 했는데 흰구름과 금형씨는 해보자고 한다. 짝을 바꿔가며 해야 하니 더 버버거린다. 대충 시간을 때우고 옆에서 하는 영어교실로 갔다. 시간이 좀 겹치기는 하는데 중간에 들어갔다. 양다리 걸치기도 힘들다. 오늘도 이 사람과 저 사람과 횡설수설했다.

  방에 와  쉬다가 풍선으로 산타 만들기 하는 곳으로 갔다. 흰 풍선 두 개를 다른 크기로 분 다음 긴 풍선으로 머플러를 만든다. 그 다음 얼굴과 몸통에 그림을 그린다. 풍선이 미끌거려 마음 먹은대로 칠하기가 힘들다. 다른 사람들이 그리는 걸 보고 컨닝했다. 아들이 왜 그림을 못 그리나 했더니 내 탔이다.

  저녁 먹을 때 같은 식탁에 앉은 일본 할아버지는 매일의 선내신문을 파일에 넣어 모으고 있다. 우리 셋은 그 날자가 지나면 곧장 쓰레기통으로 직행시켰는데 말이다. 엄청 꼼꼼한 할아버지인가 보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니 연주자들도 산타 모자를 썼다.

  밥 먹고 방으로 가니 우편함에 쪽지가 꽂혔다. 꺼내보니 포트루이스 추가 신청해 놓은 것이 확정됐다는 것이다. 7색 언덕과 럼주 공장에  가는 거다. 팔자에 없는 럼주 먹게 생겼다.
  다음은 한국어 자막이 나오는 '오리엔트 특급' 영화를 봤다. 예전에 봤던 것 같은데 다시 봐도 재미있다.
  영화를 보고 방에 와서 아까 만든 산타 풍선을 문 앞에 붙였다. 몇 십년 만에 크리스마스 장식을 해보니 기분 짱이다.

12월 22일 (일) 항해 3 (싱가포르에서 포트루이스까지)

  요즘 매일 어마무시하게 먹어 댄다. 작작 먹어야지 이렇게 먹어대다간 크루즈 끝날 때 쯤엔 위가 늘어나서 엄청 위대(胃大)한 인간이 될 것 같다.
  식사 후 요가를 하러 갔다. 요가를 하며 보니 벽에 책꽂이가 있고 한국말로 된 책도 있다. 밑에는 5일 안에 반납해 달라는 안내문도 있다.

  요가 선생님은 일본어로 한다. '으찌, 니, 싼, 시'를 수 없이 반복한다. 어렸을 때 이 말을 썼던 기억이 난다. 하나, 둘, 셋, 넷이라고 하지 않고 일본말로 했었다. 해방 된지 얼마 되지 않아 일본말을 많이 썼던 것 같다.
  요가를 마치고 서고에 가서 무슨 책이 있나 보니 종의 기원도 있고 파친코도 있다. 뭘 볼까 하다가  김형석이 '100년을 살아보니'를 뽑아왔다. 100살까지 살고 싶은 마음이 있나보다.

  방에 가서 쉬다가 번역기를 가지고 마다가스카르에 대한 강의를 들으러 갔다. 30년 이상 국제 개발 경험이 있고 마다가스카르에서 장기간 체류하고 있는  호세 루이스란 사람이 하는 강의다. 이 분은 '아쿠아 데 코코' 재단을 운영하고 있는데 이것은 '코코아의 물'이란 뜻이다. 60세로  스페인 사람이다. 그라나다에서 태어났다. 그라나다에 간 적이 있어서 친근감이 느껴진다. 가족 모두 인도주의 사업에 공헌하고 있으며 그는 6남매 중 막내다. 자신은  네 명의 자녀를 두었고 수의학을 전공했다.

  전 세계로 다니며 많은 사람을 돕고 싶다며 봉사에 관심이 있으면 도전해 보라고 한다. 처음에는 수의사로 봉사하려고 캄보디아로 갔다. 폴포트 정권하에 있었는데 그 때 인구의 반을 죽였다. 그 후 르완다로 이동하여 봉사했고 2000년경 마다가스카르로 갔다. 마다가스카르는 3200만명이 산다. 자기는 22개의 프로젝트를 운영하고 있으여 220명의 스텝과 함께 6000명 이상에게 혜택을 주고 있다.  스페인과 캄보디아, 마다가스카르의 학생들을 연결해 서로 사귀게 해주고 있다.

  '원 헬쓰'라는 프로젝트에서는 교육, 건강, 영양, 환경에 대해 봉사하고 있다.
1. 교육
  낙후 된 곳에 학교를 짓고 있으며 두 개의 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광산에서 미카를 캐기 위해 땅을 파는 일은 임금이 비싼데 구멍이 좁아서 주로 어린이가 한다. 미카는 미네랄이란 뜻이고 핸드폰 만드는데 사용한다. 이 일을 하는 아동들의 노동을 막기 위해서라도  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2. 건강과 영양
  마다가스카르에서는 14나 15세부터 아기를 낳는다. 이들에게 기생충약과 맑은 물을 제공한다. 아버지들에게는 자전거 수리도 가르친다.

3.  환경 보호
  마다가스카르에서는 레무스, 카멜레온, 바오밥, 여우 원숭이 등을 보호하고 있다. 맹그로브 숲도 보호하고 있는데 이 나무는 해안의 침식 방지에 중요한 역활을 한다. 매년 3만 그루를 심고 있다.

4. 개인적 지원
  길거리 소녀와 눈 먼 소년을 키워서 대학도 보내고 공연도 가르쳐 공연도 한다. 마다가스카르 남부는 40년간 바가 오지 않아 손으로 땅을 파서 물을 얻고 있다. 학교에 다니는 700명의 학생들은 노동도 하지 않고 미카 광산에도 가지 않는다
.

  마다가스카르어로 땡큐는 미사우차, 돈은 불라 또는 자라라고 한다. 여행자는 바사하라고 부른다. 살라마는 안녕하세요, 굳바이는 베로마, 전통 복장은 람바라고 한다. 음식은 루마사바라고 하는데 소고기와 쌀로 만든다. 하지만 카사바만 먹는 곳도 있다. 모처럼 강의를 듣자니 졸음이 쏟아진다. 옆의 일본 할머니들은 잠에 취해 완전히 고꾸라졌다.
  점심  식사 후 포트루이스 옵션 투어 신청을 하러 갔다. 금형씨와 흰구름이 신청한 옵션이 고속도로 공사로 취소되어 다 같이 7색 언덕과 폭포 관광으로 변경했다. 혼자서 럼주 공장 가는 줄 알았는데 셋이 함께 가게 되서 천만다행이다. 10년 묵은 체증이 쑥 내려간 것 같다. 바우처를 받아서 방의 금고에 잘 넣어 두었다.
  다음은 일본어 교실에 갔다. 간단한 인사와 자기 소개를 배웠다. 자기 이름을 일본어로 써 보라고 자음과 모음을 적은 종이를 주었는데 도저히 못 적겠다. 마침 미키가 옆에 있어서 가르쳐줘서 간신히 적었다. 다른 일본 할머니에게 우리가 적은 것을 보여주니 "이금형, 이대근, 이현숙." 하면서 잘 읽는다. 신기하다.

  일본어 회화를 마치고 그 자리에서 하는 건강체조 교실도 참여했다. 몸이 불편한 사람들도 가능하다고 하더니 의자에 앉아서 구부렸다 폈다 하며 시늉만 내는 운동이다. 여기서도 요가 선생닝이 가르치는데 까만 뼈다귀 옷을 입었다. 이것도 본인이 만든 것 같다. 어깨에는 빨간 천도 붙였다.

   바로 옆에서 살사교실이 있어 살사 선생님이 안 온다. 혹시나 하고 앞의 칠판으로 가보니 배의 요동이 심해서 휴강한다고 적혀있다.
   오늘은 진동이 가장 심하다. 갑판도 나갈 수 없게 문을 막아놨다. 가끔씩 지진이 난 것처럼 흔들린다. 계단을 걸으려면 술에 취한 사람처럼 이리 비틀 저리 비틀 한다. 싱가포르에서 말레이 반도와 수마트라섬 사이로 항해할 때는 잔잔했는데 아마 인도양으로 나왔나보다. 배의 곳곳에서 삐그덕 거리는 소리도 들린다. 민우씨 말로는 남극 갈 땐 이보다 더 심하다는데 걱정된다.그 때는 바닥에서 일어나지도 못 할 것 같다.
  다음은 민우씨가 기획한 '한국 노래 부르기'를 보러갔다. 민우씨가 다운 받은 노래들을 불렀는데 헤어진 연인에 대한 노래가 많다. 첫사랑을 잊지 못하나 보다.

  요즘 연신 마담 소리 들으며 마님 대접 받고 산다. 나는 원래 무수리과라서 적응이 안 된다. 음식은 쥐방울 만큼 주면서 접시는 엄청 크다. 작은 접시에 담으면 설거지 하기도 좋고 들고 다니기도 수월할텐데 폼생 폼사인가 보다.

  저녁 식사 후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라는 영화를 보러 갔다. 잘 모르는 영화인데 한국어 자막이 나온다고 해서 봤다.
  라이프 잡지사에서 16년째 근무 중인 월터 미티는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상상을 통해 특별한 순간을 꿈 꾼다. 폐간을 앞둔 라이프 사에서 마지막호 표지 사진을 찾아 오라는 미션을 준다. 숀이라는 전문가가 보낸 25번 사진인데 숀이 보낸 상자 안에는 월터에게 생일 선물로 보낸 지갑 밖에 없다. 월터는 숀이 실수로 사진을 안 보낸 줄 알고 숀을 찾아 그린란드와 아이슬란드, 아프가니스탄의 히말라야 산맥까지 찾아 헤멘다. 그린란드와 아이슬란드의 기막힌 정경이 펼쳐진다. 그린란드 갔을 때 바다에 가득찬 빙산과 아이슬란드 갔을 때 외계 행성 같은 황량한 자연이 떠 오른다. 천신만고 끝에 히말라야 고산에서 눈 표범을 찍고 있는 숀을 만나 25번 사진이 없다고 하자 그 지갑 안쪽에 들었다는 것이다. 집에 와 그 사진을 찾아서 보지도 않고 해고 당한 라이프사에 제출했다. 나중에 라이프사 마지막 잡지의 표지에 실린 사진을 보니 월터 자신의 모습이었다. 별 기대도 하지 않고 보았는데 기대 이상으로 괜찮았다. 그런데 극장이 하도 추워서 산채로 냉동 인간 될 뻔 했다. 다음부터는 패딩 입고 봐야겠다.

12월 23일 (월) 항해 4 (싱가포르에서 포트루이스까지)

  밤새 배가 흔들린다. 벽에 걸려있는 옷걸이가 흔들 흔들 한다. 큰 파도와 부딪칠 때는 쿵~ 소리도 들린다.
  아침 식사 후 요가를 하러 갔다. 일찌감치 줄을 서 있다가 재빨리 들어가 한국말 소리가 잘 들리는 곳에 앉았다. 우리 옆의 두 사람은 어느 나라 사람인지 몰라도 연달아 두 번을 하려고 나가지 앉고 앉아있다.
  요가 선생님은 오늘도 뼈다귀 티셔츠를 입는다. 까만 셔츠인데 이건 자신이 만든 게 아니고 산 거라고 한다.

  요가를 마치고 오전에 마땅히 할 것이 없어서 방에 와 쉬었다.
티스토리가 안 열려서 7층으로 내려가 공유기 근처에 앉아도 안 열린다. 어제 것도 올리지 못 했는데 답답하다. 다른 인터넷은 되는데 왜 안 열리는지 모르겠다. ㅠ ㅠ.
  밖을 보니 사람들이 갑판에서 걷고 있다. 방에 와서 금형씨와 함께 7층으로 내려가 갑판 돌기를 했다. 걷다보니 배의 오른쪽에서 물줄기가 뿜어져 나온다. 배에 모인 빗물을 내보내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뭐라고 안내 방송이 나오는데 액서사이즈 밖에 안 들린다. 무슨 훈련을 하는지 승무원들이 구명조끼를 입고 나온다. 잠시 후 출석을 부르는지 손을 들며 대답을 한다.

  오늘은 오랜만에 해가 번쩍 났다. 끝없는 수평선에 우리 배의 흰 꼬리만 보인다. 오늘은 어제보다 요동이 덜 하다. 하긴 파도 치는 물 위에 떠 있으면서 흔들리지 않는 게 오히려 이상하다.

  걷다보니 숨 쉴 때마다 왼쪽 가슴이 결리고 아프다. 겁이 덜컥 난다. 이러다 심장 마비로 죽으면 동행인을 비롯해 여러 명 곤란하게 만들텐데 죽어도 크루즈 끝나고 집에 가서 죽었으면 좋겠다. 의자에 앉아 한참 쉬고 나니 서서히 가라앉는다.
  블로그가 안 열리니 할 일이 없다. 선상 데이터가 4기가 남았다. 10기가에 13만원이니 이러다간 100일 동안 100만원 나가게 생겼다.
  이른 점심을 먹고 살사 교실에 갔다. 파트너를 바꾸기 싫어서 금형씨와 나는 둘이서 끝까지 했다.
  살사를 마치고 항로와 항해에 대한 강의를 들으러 갔다. 승무원이 직접하는 강의다. 해류에 대한 얘기도 했는데 아프리카의 동쪽은 난류가 흐르고 서쪽은 남극에서 오는 찬 한류가 흘러서 기온이 낮다.

  우리 배는 1995년 이탈리아에서 만든 배다. 배의 속력은 노트로 니타내는데 1노트는 1.852km다. 배의 이동 거리는 마일로 나타내는데 1마일이 1.852km다. 육지에서 1마일은 1.6km인 것과 차이가 있다. 선체가 앞뒤로 움직이는 것은 피칭이라고 하고 좌우로 움직이는 것은 롤링이라고 한다. 배가 움직이는 것은 균형을 잡기 위한 것이므로 좋은 현상이다. 안 움직이는 것이 더 큰 문제다. 세월의  강에 떠서  흘러가는 우리 인생이 흔들리는 것도 인생의 균형을 잡으려는 자연스런 현상인지도 모른다.
  그 밖에도 오염수 처리 방법과 바닷물을 단물로 만들어 쓰는 법을 설명했다. 또한 항해 도중 태양이 수직으로 비쳐 그림자가 전혀 생기지 않는 곳을 지나게 될 것이라고 했다.

  배에 달고 다니는 깃발도 여러가지 의미를 나타내는데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코드가 있다고 한다. 우리 배에 달린 깃발도 이런 코드였나보다.

  일본어교실에 가니 어제 공부한 것 복습 시키는데 하나도 남김없이 싹 지워졌다. 어제 숙제로 내준 이름 쓰기로 명함을 만들었다. 작은 종이에 이름을 쓰고 무늬를 그렸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름을 쓴 게 아니고 그린 거다. 내가 쓴 글씨가 너무 가늘다고 부산 아저씨가 긁게 그려줬다.

  가현씨와 미키는 아이 돌보미가 됐다. 덕분에 아기 엄마와 아빠는 맘 놓고 공부할 수 있다.

  다음은 '고래와 바다의 세계' 강의를 들으러 갔다. 강사는 중국에서 해양 보호를 위해 일 하는 사람이다. 이 단체에서는 산호를 심는 일도 한다.

  돌고래가 내는 소리도 들려주었는데 먹이를 찾을 때와 소통할 때 소리가 다르다고 한다. 소리에 아주 민감한데 건설 소음 때문에 먹이가 있음에도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는 경우도 있다. 서로 다른 그룹은 소통하는 방법, 먹이 사냥하는 방법 등이 다르다. 같은 그룹은 평생 이어진다.
  돌고래와 고래 보호를 위해서 해양공원에 가지말라, 돌고래 쇼도 보지 말라고 부탁한다. 핑거 엽서도 판매하니 지원해 달라고도 한다.

  저녁에는 흰구름이 한턱 쏜다고 스시집으로 갔다. 지난 번에 신세 졌다고 민우씨도 초대했다. 초밥 열 개 놓고 5000엔이다. 세금과 봉사료 15% 붙으면
5750엔이다. 5만원이 넘는다. 가성비 꽝이다.

  저녁을 먹고 영화 물랑루즈를 보러갔다. 물랑루즈는 붉은 풍차라는 뜻이다. 물랑루즈 카페 앞에 커다란 붉은 풍차가 있다. 이 카페예서 공연하는 배우를 보고 첫눈에 반한 작가 청년의 애절한 사랑을 그린 영화다. 글쎄다. 요새도 이런 사랑이 있을까. 어쩌면 진실한 사랑은 가상의 현실 속에서만 존재하는지도 모른다.

12월 24일 (화) 항해 4 (싱가포르에서 포트루이스까지)

  정섭씨가 밤을 준다. 커다란 밤이다. 깨고 보니 꿈이다. 나이가 젊으면 태몽이라고 하겠지만 이 나이에 남편도 없는 과부가 애 낳을 일도 없는데 아무 짝에도 쓸데 없는 꿈이다.
  자리에서 일어나 화요반 카톡방을 보니 정섭씨가 회원들에게 나누어 준 떡이 올라와 있다. 화요반 사람들은 이것 저것 참 많이드 가져와 나눠준다. 나는 맨날 맨 입만 가져가서 날로 먹는다. 얼굴에 철판을 깔았나보다.
  식사 후 갑판 돌기를 하고 마다가스카르의 아이와 '여성들의 협력'이란 사진전을 보러갔다. 갱도 속에 내려가 일하는 소녀도 보이고 벽돌을 열 장씩 머리에 이고 가는 아이들도 있다.나는 다섯 장도 못 일 것 같다.

  다음에는 다양한 크리스마스 행사를 하는 곳으로 갔다. 우선 바디 페인팅 하는 곳으로 가니 여러가지 문양을 보여주며 어떤 걸로 하겠느냐고 한다. 루돌프가 예뻐 보여서 우리는 이걸 팔에 그려달라고 했다.

  다음은 바닥에 놓인 산타 모자에 고리를 던져 넣기를 했다. 금형씨가 가장 많이 넣었다. 금형씨는 못 하는 게 없다.

  고리 던지기를 마치고 캐롤  갔다. 가사가 영어로 나와서 그렇지 익숙한 곡이라 따라부를만 했다. 미키도 여기서 우리와 같이 열심히 불렀다. 미키는 한국어 통역사라서 한국인 있는 곳에 항상 함께 한다.

  캐롤 부르기가 끝날 후 카드 만들기를 했다. 나는 메리크리스마스와 해피 뉴이어만 썼는데 흰구름은 미대 출신이라 그런지 트리도 예쁘게 그려 넣는다. 만든 카드를 트리에 매단 후 함께 사진도 찍었다.

  오후에는 극장에서 성탄 공연을 했다. 피아노 4중주, 피아노 독주, 플룻 독주, 악단의 드럼 연주와 노래 등 다양한 공연을 펼쳤다. 배가 흔들리니 천장에 매달린 조명장치도 계속 흔들흔들 한다. 무대 뒷 배경도 엄첨 화려해서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저녁 식사 후 밤에는 수영장에서 크리스마스 파티를 했다. 가짜 양초로 별도 만들고, '2024  X-MAS!'도 만들었다.

  산타와 루돌프가 나와서 승객들과 춤도 추고 사진도 찍었다.

  다음은 살사 선생님을 따라    따라 하지를 못 해서 어리버리 휘젓다가 방으로 돌아왔다. 오늘은 2층 침대로 이사 했다. 1주일씩 돌아가며 침대를 바꾼다. 총 14번 바꿔야 한다.

12월 25일 (수) 항해 5 (싱가포르에서 포트루이스까지)

  오늘은 조금 일찍 식사하러 올라갔더니 수영장에서 맨손 체조를 하고 있다. 대충 따라하고 식사하러 갔다.
  식사를 마치고 요가를 하러 갔다. 요가 선생님은 오늘도 뼈다귀 티셔츠를 입었다. 오늘은 뼈에 분홍색으로 근육까지 그렸다. 배에서 허벅지 쪽으로 연결하는 근육을 장요근이라고 하는데 이게 약해지면 다리를 못 올린다고 한다. 많이 앉아 있으면 이 근육이 약해진딘다.

  요가를 마치고 갑판을 돌았다. 배 주위를 뱅뱅 돌다보면 어항 속의 금붕어가 된 기분이다. 하지만 어찌보면 배 밖으로 나간다고 해도 지구라는 큰 어항에 갇혀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오늘은 성탄절이라 크리스마스 파티가 있다. 선장과 산타, 루돌프가 나와 흥을 돋운다. 루돌프가 빨간 상자를 가지고 나오더니 선장님이 그 안에서 종이를 꺼낸다. 행운권 추첨이다. 아이디 번호가 찍힌 종이다.

  아무리 뽑아도 당사자가 없다. 어림잡아 한 20명 뽑았을 때 겨우 당첨자가 나타났다. 하긴 승객이 1800명이나 되는데 거기 모인 사람은 100명 정도 밖에 안 되니 18명은 뽑아야 한 명 나올 것이다. 선장님은 눈까지 감고 진지하게 뽑는다. 천신만고 끝에 한 명이 당첨됐다. 그런데 경품이 무엇인지 그 자리에서 주지 않는다. 뭔지 궁금하다.

  경품 추첨이 끝나고 밴드에 맞춰 가수가 노래하고 사람들은 신나게 춤을 춘다. 내 생애 최고로 화려한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있다.

  점심을 먹으며 신문을 보니  옵션 신청을 받고 있다. 우리 셋은 월비스베이 헬기 투어를 신청했지만 다 떨어졌다. 하지만 월비스베이가 나미비아라는 생각을 못 하고 맹추 같이 멍하니 있었다. 오늘 가서 신청하려고 하니 다 꽉 찼단다.  대기자 명단에 10군데 올려놓고 왔다. 하지만 별 가능성이 없어 보인다.
  오후에 일본어 교실에 가서 일본 노래를 배웠다. 말도  못 하는데 노래라니 기막히다. 나중에 공연이 있을 때 노래를 한다고 하는데 아무래도 일찌감치  포기해야겠다.
  다음은 살사를 하러갔다. 오늘은 짝을 이루어 한 사람이 다른 사람 손을 잡고 돌리는 걸 했는데 제대로 돌리지를 못 하니 손이 비틀어지고 난리가 났다. 에고~
  5츠에서 저녁식사 후 14층 가서 과일 먹고 갑판을 돌고 왔다.

12월 26일 (목) 항해 6 (싱가포르에서 포트루이스까지)

  오늘도 요가 끝나고 갑판을 돌았다. 망망대해라는 것이 실감난다. 지나가는 화물선도 없다. 새 떼가 순간적으로 나타났다 사라진다. 근처에 섬은 안 보이는데 어디서 왔을까?
  엊저녁에 TV를 보니 피스 보트 직원이 수평선까지 거리가 얼마나 되느냐고 묻는다. 나는 한 300km 되는 즐 알았더니 고작 20km라고 한다. 그래서 배가 멀리서 나타날 때 수평선 끝으로 올라오는 돛대의 끝을 보았나보다. 돛대 끝이 먼저 보이고 선체가 서서히 나타나는 걸 보고 지구가 둥글다고 생각한 옛 사람들의 지혜가 놀랍다. 끝없는 수평선을 바라보며 물멍을 때린다. 어쩌면 지구는 커다란 물방울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구(地球) 즉 둥근 땅이 아니고 수구(水球)다.

  갑판에는 항상 일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페인트도 칠하고 유리창도 닦는다. 수많은 사람들의 노고 덕에 우리는 쾌적한 삶을 누리고 있다. 평생 쌀 한톨도 만들지 않고 먹어대기만  하는 나는 참 양심도 없는 인간이다.
  10층 사람들은 10시에 모리셔스 입국서류를 작성하라고 해서 7층으로 가니 길게 줄을 서 있다. ID 번호 2500번 이상은 오른쪽 줄로 가라고 해서 가보니 가현씨가 보인다.가현씨를 보니 안심이 된다. NO에 체크 여섯 개 하고 싸인하니 끝이다. 괜히 쫄았더니 싱겁게 끝났다.
  점심 식사를 좀 빨리하고 한국 노래 부르기를 하러 갔다. 민우씨가 만든 자주 프로그램이다. 민우씨가 몇 곡한 후 금형씨가 불렀다.끝내주게 잘 한다. 박수 갈채가 쏟아진다.

  오후에는 8층에서 영어 회화와 일본어 회화를 배웠다. 이 배에서 8층이 가장 춥다. 냉장고 속에 들어 앉은 것 같다.

  몸도 녹일 겸 갑판을 돌고 살사 댄스를 배웠다. 살사도 8층이지만 몸을 움직이는 거라 별로 춥지 않았다.

  살사가 끝난 후 'UN에서 배운 아수라장의 리더십' 이란 강의를 들으러 갔다. UN에서 근무한 오시다리 켄로씨의 강의다.
  UN에 근무하면 국제공무원이라고 하며 국제 여권을 준다. 여권에는 국적이 표시되어 있지 않다. 77명의 스텝이 같은 여권을 가지고 있다. 수단에서 활동하며 찍은 동영상도 보여주었다. 주로 식량 지원을 한다. 오시다리씨가 이 단체의 대표다. 난민센터에 사는 600만명의 사람들에게 식량을 지원한다. 하지만 영원히 지원할 수는 없다. 난민들이 스스로 개척해 나가길 원한다. 수단은 아프리카에서 가장 넓은 나라다. 오시다라씨는 가족들과 헤어져 혼자 수단에 살고 있다.

  리더란 상사나 나이 든 사람이  아니고 신뢰를 받는 사람이다. 모든 일은 현장에서 생각하고 현장에서 결정해야 한다. 미지의 것과 대처하려면 나쁜 결정이 결정하지 않는 것보다 낫다. 수단 국가에서 NGO 스텝들을 추방했을 때 현지인으로 채웠다.
'옳은 일을 하라.
지금 바로 일을 해라.'

  그는 스티브 잡스의 말을 좋아한다. '우리가 지시할 사람이 아니라 우리에게 지시해 줄 사람을 채용하라.'는 말이다.

  평화는 '나로부터 시작된다.'를 실천하자는 말로 강연을 끝냈다. 이런 사람들이 있어서 아수라장 같은 이 세계는 균형을 이루고 굴러가는 지도 모른다.

12월 27일 (금) 항해 7 (싱가포르에서 포트루이스까지

  아짐 식사하러 14층으로 올라가는데 엘리베이터 앞 시계가 5시 10분 밖에 안 됐다. 오잉! 저 시계가 고장 났나? 하며 한층 더 올라가니 거기 시계도 5시 10분이다. 아차, 어제 밤에 한 시간 늦춰야 하는 거였구나. 어제 식탁에 한 시간 늦추라는 안내문이 있었는데 신문에 그런 말이 없어서 그저께 놓은 안내문을 안 치웠나보다 하고 그냥 무시했다. 졸지에 새벽밥 먹게 생겼다.
  14층 식당에 가니 아직 음식도 내놓지 않았다. 물이나 받아가지고 내려오려는데 음식을 내놓기 시작한다. 오늘도 배 터지게 먹고 방에 와서 쉬다가 갑판 돌기까지 하고 요가를 하러 갔다. 요가 선생님은 오늘 종아리 근육이 그려진 스타킹을 신었다. 종아리 근육이 무릎 안쪽부터 발꿈치까지 아킬레스건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많이 걸은 날은 종아리 근육을 풀어야 한다고 근육 푸는 법을 알려줬다. 내일 모리셔스 입국해서 포트루이스에 가면 많이 걸을 테니 내일 이 운동을 하라고 한다.
  방에 오니 문앞에 붙여놓은 금형씨 풍선의 몸통이 바짝 쪼그라져 완전히 가분수가 되었다. 조금만 더 지나면 생을 마감하게  생겼다.

  내일 기항지 포트루이스와 모레 기항지 레위니옹에 대한 설명을 들으러 강당으로 갔다. 사람들이 꽉 찼다.
  모리셔스는 산이 아름답다고 한다. 마크 트웨인이 한 말 중 이런 말이 있다. "신은 모리셔스를 만든 후 천국을 만들었다." 모리셔스는 프랑스 식민지 였고 포트루이스는 1735년 프랑스가 건설했다. 그 후 영국 식민지가 되었다.
  7색 언덕은 차 타고 가야 하는데 햇빛이 비칠 때는 7색으로 보이지만 비가 오면 그냥  자주색으로 보인다. 샤마렐 폭포도 근처에 있다.

  다음은 레위니옹에 대한 설명을 했다. 레위니옹은 프랑스령이라 유로를 쓴다. 높은 산이 많고 날씨 변화가 심하니 우비를 준비해야한다. 항구에서는 걸어 다닐 수가 없고 셔틀버스를 타고 나가야 한다.

  도도새가 그려진 버번 맥주가 맛있다. 세 가지 색이 있는데 푸른색이 중간 맛이라 좋다. 도도새는 멸종되어 지금은 볼 수 없는 새다.
  설명회를 마치고 점심을 먹은 후 갑판을 돌았다. 12시 경인데 갑판을 뻥뺑 돌아도 햇빛이 전혀 들어오지 않는다. 해가 머리 꼭대기에 있는 것 같다. 오늘이 그림자 없는 날인가 보다.
  걷기를 마치고 방에 와서 문앞에 있는 금형씨 풍선을 수정하려고 떼는 순간 빵 터졌다. 오늘로 생을 마감했다. 내 풍선은 얼마나 버틸지 모르겠다.
  일본어 교실에선 노래 부르기를 하는데 영 따라할 수가 없어 동영상으로 찍어서 따라하니 훨씬 수월하다.

  다음은 살사를 하러 갔다. 연거푸 세 번을 돌리라는데 이걸 못 해서 이리 비틀 저리 비틀 하다가 끝났다. 살사인지 설사인지 영~ 못 해먹겠다.
  살사가 끝나고 7층 극장으로 '고동의 무대' 공연을 보러 갔더니 사람이 어찌나 많은지 문 밖에까지 가득 차서 뚫고 들어갈 수가 없다. 이런 경우 생방송으로 방에서도 볼 수 있게 해주면 좋겠다.
   방에서 쉬다가 저녁을 먹으러 5층으로 갔더니 마침 민우씨가 와 있다. 넷이서 한 식탁에 앉아 먹으니 편하다. 외국인과 같이 앉으면 말을 걸어올까봐 불안하다.
  디저트는 생략하고 14층 부페에 가서 먹었다. 맘껏 푸짐하게 먹을 수 있으니 좋다. 과일을 먹으며 남은 데이터 확인하는 법과 깉은 삼성 폰끼리 퀵 쉐어로 사진 보내는 법을 배웠다. 퀵 쉐어는 데이터를 쓰지 않으니 맘껏 보낼 수 있다. 도무지 핸드폰은 배워도 배워도 끝이 없다. 핸드폰이 진화하는 속도가 내가 배우는 속도보다 훨씬 빠르니 도저히 따라갈 수가 없다. 에고~
  요새 티스토리 앱이 열리지 않아 22일부터 오늘까지 글을 올리지 못 했다. 아들에게 카톡으로 물어보니 크롬으로 들어가서  pc버전으로 해보라고 한다. 겨우 겨우 시키는 대로 하니 열리기는 하는데 글씨가 너무 작아 보이지를 않는다. 손으로 확대를 한 후 사진을 붙이려면 확대하는 순간 그 위치로 커서가 옮겨가서 원하는 위치에 사진을 붙일 수가 없다. 글씨 크기도 바꿀 수가 없어 이도 저도 못 하고 있다. 속 터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