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시모는 행복 비타민
이현숙
1년에 두 번씩 클래시모에서 문화답사 여행을 떠난다. 올해 상반기는 만리포 옆 천리포에 있는 천리포수목원과 당진에 있는 아미미술관으로 갔다.
압구정 공영주차장에 도착하니 벌써 많은 회원들이 모여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김인혜님은 엊저녁에 미국에서 도착했다는데 새벽같이 나왔다. 그 체력과 열정이 놀랍다. 이런 분이 있어서 클래시모가 20년 이상 이어져 왔나 보다. 엄선미 총무님이 감기·몸살로 참석하지 못해 참 아쉽다.
버스에 오르자 유행순님이 간식 봉지를 한 개씩 나누어준다. 맨몸으로 나오기도 힘든데 언제 이렇게 간식까지 준비했는지 존경스럽다. 또 한 분은 깨강정을 나누어준다. 맨입만 들고나온 나는 완전 날로 먹는 것 같아 송구스럽다.
1. 천리포수목원
계절이 계절인지라 꽃구경 가는 사람들이 많은지 차가 엄청나게 밀린다. 수목원에 도착하니 예정보다 많이 지체되었다. 천리포수목원은 지난주에도 왔기에 더 친숙하게 느껴진다. 몇 년 동안 오지 못했는데 올해는 수목원 복이 터졌나 보다.
천리포수목원은 민병갈 박사가 조성한 것이다. 미국 펜실베이니아주에서 출생한 민병갈 박사는 40년 동안 한결같은 마음으로 충남 태안의 헐벗은 산림을 17,000여 종의 식물이 사는 세계적인 수목원으로 바꾸어 놓았다. 그는 1945년 미군 정보장교로 한국에 오게 되었다. 1979년 58세에 민병갈이란 이름으로 한국에 귀화하였다. 그가 국제적인 수목원을 만들 수 있었던 것은 오직 식물에 대한 열정과 헌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저세상에 가면 개구리가 되기를 원했던 그는 자신도 자연의 일부라고 생각하고 죽은 후 수목장을 통해 자연으로 돌아갔다.
전 재산을 수목원 조성 사업에 바쳤던 그는 2002년 4월 운명하는 그 날까지도 자신이 사랑하는 수목원의 수목들이 잘 자라기를 간절히 바랐다. 2002년 타계한 후 ‘숲의 명예전당’에 헌정되었다. 어찌 보면 한국인보다 더 한국을 사랑한 이분 때문에 우리가 이토록 아름다운 정원을 보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평생 독신으로 살아온 그는 이 수목원과 결혼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는 2002년에 81세로 이곳 태안에서 사망했다. 병약한 몸으로 서울에 있는 직장에 출근한 그는 수목원으로 내려와 하루 만에 병세가 악화되어 운명했는데 수목원 직원들이 멘 꽃상여를 타고 이곳 양지바른 언덕에 매장되었다. 10년 후 고인의 소망대로 화장한 후 한 줌의 재가 되어 나무 아래 묻혀 나무가 되었다.
입구로 들어가 호수 쪽으로 내려가니 호수에 비친 아름다운 건물이 보인다. 초가집 모양의 아담한 지붕이 정겹다.
왼쪽의 작은 정자로 가보니 앞에 작은 연못이 있고 연못 위에 빨간 꽃잎이 가득하다. 옆의 나무에서 떨어진 것 같아 언덕으로 올라가 보니 특이한 모양의 꽃이 잔뜩 달렸다. 명패를 보니 종벚나무다. 자세히 보니 정말 종처럼 생겼다.
조금 더 가니 가지가 셋으로 갈라진 나무에 하얀 꽃이 바글바글 달렸다. 삼지닥나무다.
물가에는 노란 동의나물도 보인다. 동의나물을 보면 동의보감이 떠오른다.
마취목은 잎에 독성이 있어서 말이 먹고 마취되어 전쟁에서 패했다고 해서 이름이 마취목이다.
설강화는 눈처럼 하얀 꽃잎에 물방울처럼 보이는 연두색 무늬가 있다. 이름 그대로 눈이 하강하여 생긴 꽃 같다.
솔로몬이 성전을 지을 때 사용했다는 히말라야시다는 백향목이라고도 불린다. 성경에는 백향목이라고 나온다.
민병갈이 노년에 기거하던 후박집 앞에는 큰별목련이라고 하는 라즈베리 펀이 있다. 이 나무가 ‘어머니 나무’라는 별명을 갖게 된 것은 그의 어머니 에드나가 이 목련을 유난히 좋아했기 때문이다.
수목원에서 나와 천리포횟집으로 가서 간자미 매운탕을 먹었다. 생선이 싱싱해서 그런지 맛이 깔끔하니 맵지도 않고 엄청 맛있다. 점심 식사 후 2층 카페에서 커피타임을 갖고 천리포 해변을 걸었다. 해변에는 어디서 고사목이 흘러왔는지 멋진 자태를 뽐내고 있다.
2. 아미미술관
천리포를 떠나 시간 관계상 개심사는 생략하고 당진에 있는 아미미술관으로 향했다. 아미미술관은 아미산(蛾眉山) 자락에 있다. 산의 능선이 여인의 아름다운 눈썹을 닮아서 붙여진 이름이다. 또한 프랑스어의 아미(ami)는 친구를 뜻한다. 친구처럼 가깝고 친근한 미술관이라는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
아미미술관은 폐교된 유동 초등학교를 활용해 서양화가 박기호와 설치미술가 구현숙 부부가 가꾸어 만든 사립미술관으로 생태미술관을 지향하고 있다. 이 미술관은 그 풍경만으로도 방문해 볼 가치가 있다. 미술관을 둘러싸고 있는 돌담과 학교 운동장에 새로 가꾼 푸른 잔디, 하얗게 칠한 외벽을 따라 올라간 덩굴이 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현재 ‘충돌하는 세계’라는 주제로 세종대 교수를 역임한 김종학 화가의 작품이 전시 중이다.
미술관 안으로 들어서자 하얀 고양이 사진이 있는 안내문이 보인다.
‘저는 정원 지킴이 스노우입니다. 꽃밭에 들어가거나 꽃을 꺾지 말아 주세요.’ 하고 점잖게 부탁한다.
건물의 문 앞에 도착하니 핑크빛 닭털이 멋지게 매달려 있다. 참신한 아이디어가 돋보인다. 현관 안에도 온통 화사한 닭털이 늘어져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복도 천장에도 무수한 닭털이 매달려 있는데 닭 수백 마리 죽어 나갔을 것 같다.
김종학 화가의 거미라는 작품은 유럽 여행 중 가방을 도난당한 경험을 바탕으로 만든 것인데 거미줄을 쳐놓고 기다리던 거미에게 잡힌 듯한 충격을 나타낸 것이다.
온통 하얀색으로 칠해진 나무와 공으로 장식된 방은 한 마디로 설국에 들어온 듯한 착각이 든다.
정원에 있는 유럽 분꽃나무는 이름 그대로 분 냄새가 난다. 옛사람들은 참 이름도 재미있게 잘 붙였다.
미술관 앞마당에는 잔디가 어찌나 고운지 초록색 카펫을 깔아놓은 것 같다.
모두 너무나 멋진 풍경에 사진을 찍느라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 아주 땅바닥에 철퍼덕 주저앉아 조팝나무를 찍는 회원도 있다.
마당의 탁자에는 이곳 지킴이 고양이들이 낮잠을 즐기고 있다. 평화로운 풍경이 우리 마음도 평화롭게 만든다.
마당 한쪽에 핀 왕벚꽃은 그야말로 절정이라 너도나도 사진찍기 바쁘다.
최철성님의 노련한 진행과 김민영님의 발 빠르고 손 빠른 진행으로 모든 일정이 순조롭게 잘 진행되었다. 모든 회원들의 협조로 행복하고 즐거운 하루를 보냈다. 클래시모는 나에게 행복 비타민이다. 무지크바움에서 진행할 때도 그렇고 문화여행도 그렇다. 음악을 들어도 좋고, 졸고 앉아있어도 행복하다. 오늘은 행복 비타민을 한 사발 먹은 기분이다. 다음 문화 기행이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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