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시모 2024년 3월 8일 브람스 특집 2
1. 진행자 : 최철성 회원
2. 감상곡
브람스 교향곡 4번, 바이올린 협주곡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 2번
(1부) 브람스 교향곡 4번, 바이올린 협주곡
19세기의 다른 교향곡 작곡가들과 마찬가지로 브람스 역시 베토벤이라는 거인을 피해갈 수 없었다. 광대한 우주의 소리를 담아낸 베토벤의 교향곡이야말로 독일 교향곡의 모범답안으로 여겨지던 당대의 분위기에선 신작 교향곡이 나오면 곧바로 베토벤과 비교될 수밖에 없었다.
브람스가 그의 첫 번째 교향곡을 완성하기까지 무려 20여 년의 세월을 투자했던 것도 무리가 아니다. 브람스의 첫 번째 교향곡은 유난히 베토벤의 교향곡을 닮았다. 이 곡에서 팀파니는 마치 베토벤의 교향곡 제5번의 운명의 동기를 닮은 리듬을 집요하게 반복한다. 그 때문에 당대의 뛰어난 피아니스트이나 지휘자이며 음악평론가인 한스 폰 뷜로는 브람스의 교향곡 제1번을 가리켜 ‘베토벤의 제10번 교향곡이라 불렀다.
이후 브람스는 교향곡 두 곡을 더 작곡했는데 그 중 교향곡 제2번은 브람스의 전원, 제3번은 ‘브람스의 영웅’에 비유되면서 여전히 베토벤의 교향곡과 유사하다는 혐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하지만 교향곡 제4번은 진정한 브람스만의 음악이며 아무도 이 교향곡을 베토벤의 작품에 빗대지 않았다. 이 교향곡을 채색하고 있는 클라리넷과 비올라의 중음역, 첼로와 호른의 저음역이 강조된 무채색의 사운드, 그 사이사이에 간간히 묻어나는 진한 고독감은 브람스 음악 특유의 깊이를 담고 있다.
1885년, 이미 세 곡의 훌륭한 교향곡을 통해 교향곡 작곡가로서의 능력을 입증해낸 브람스는 이제 인생의 말년에 접어들어 자신만의 음악적 깊이를 교향곡에 담아내고자 그의 마지막 교향곡의 작곡에 심혈을 기울였다.
마침내 교향곡 제4번이 완성되자 브람스의 옹호자였던 당대의 음악평론가 한슬리크는 이 작품을 가리켜 “어두움의 근원”이라 불렀다. 브람스의 단조 교향곡들 가운데 유일하게 피날레에서 장조의 환희로 변하지 않고 단조의 우울함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리라.
이로써 브람스는 ‘어둠에서 광명으로’ 향하는 베토벤 풍의 구도를 버리고 어둠으로부터 비극으로 침잠해 가는 자신만의 교향곡 모델을 확립하게 된 것이다.
(2부)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 2번
Piano Concerto No.2 in B flat major op. 83
이탈리아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브람스는 1881년 3월 빈 근교에 있는 프레스바움에 머물면서 새로운 피아노 협주곡을 구상해냈다. 여행에서 받은 인상과 샘솟은 영감을 토대로 대단히 빠른 속도로 작곡하여 불과 3개월 정도가 지난 뒤에 피아노 협주곡의 대부분의 파트를 완성할 수 있었고, 그 해 여름 무렵에 총보를 완성했다.
그리고 그는 ‘절친한 친구이자 스승인 에두아르트 막센(Eduard Marxsen)’에게 자신의 두 번째 피아노 협주곡을 헌정했다. 1881년에야 비로소 브람스는 자신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던 이 대가에게 만족스러운 음악을 처음으로 바쳤다는 사실은 브람스의 신중한 성격을 드러내기에 충분하다.
* 브람스의 생애
브람스의 아버지인 요한 야코프 브람스는 도시 음악가가 되기 위해 슐레스비히홀슈타인에서 함부르크로 왔다. 그는 여러 악기에 능했지만, 주로 호른이나 더블베이스를 연주했다. 그는 자신보다 17살 위인 재봉사 요한나 헨리카 크리스티아네 니센과 결혼했다.
요한 야코프는 아들의 첫 음악 교습을 맡았다. 브람스는 7살 때 오토 프리드리히 빌리발트 코셀과 피아노를 배웠다.
어린 브람스는 함부르크에서 몇 번 연주회를 연적이 있으나, 19세에 연주 여행을 하기 전까지는 피아니스트로서 그리 잘 알려지진 못했다. 나중에 그는 종종 자신의 작품을 독주나 반주 혹은 실내악 멤버로서 직접 연주하기도 했다. 그는 가장 어린 나이에 작곡을 시작했으나, 나중에 그의 초기 작품들은 대부분 유실되었다.
요아힘은 로베르트 슈만에게 브람스에 대한 소개장을 보냈다. 라인란트의 연주 여행을 끝내고 브람스는 기차를 타고 뒤셀도르프로 가 그곳 슈만 집안에서 환대를 받았다. 슈만은 이 20세 청년의 재능에 놀라 1853년 10월 28일 《음악신보Neue Zeitschrift für Musik》에 〈새로운 길Neue Bahnen〉이라는 제목의 기고문에서 브람스를 "이 시대의 이상적인 표현을 가져다 줄 젊은이"로 소개하여 관심을 일으켰다. 이 발표는 슈만의 지인 모임 바깥에서 비난을 받기도 했는데, 이는 자신의 작품과 기술을 완벽하게 만들려던 브람스의 천성적인 자기 비판을 더욱 강화시켜주었을 것이다. 슈만의 아내인 작곡자 겸 피아니스트 클라라 슈만과 가까워졌는데, 브람스는 14살 연상인 클라라에 평생동안 일종의 플라토닉한 연정을 품고 살았다. 브람스는 몇몇 여자들과 진한 정분이 있었고, 1859년에는 괴팅겐의 아가테 폰 지볼트와 약혼까지 이른 적도 있었으나 이내 파혼하여 평생 동안 결혼하지 않았다. 슈만이 자살을 시도하고 1854년 2월 본 근처의 정신 병원에 입원하면서 브람스는 클라라와 남편 슈만의 중개자가 되었으며, 슈만 집안을 돌보았다.
3. 감상문
브람스는 평생 슈만의 아내 클라라를 사랑했지만 그 사랑을 이루지 못했다. 결혼할 수 없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불행이라고 해야할까?
내가 아는 사람 중에 유부남을 사랑하여 임신까지 한 사람이 있다. 임신 사실을 알리자 이 남자는 떼라고 했다. 하지만 이 여자는 혼자서 애를 낳고 자기 호적에 올려서 잘 키우고 있다. 남편 없이 애를 키우는 이 여자를 볼 때마다 애처롭다. 아들은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했는데 아빠 없는 이 아이를 볼 때면 안쓰러운 생각이 든다.
하지만 아무도 사랑하지 않고 평생을 사는 사람이 더 불행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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