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중 속 경주 여행
이현숙
기간 : 2024년 3월 25일 ~ 3월 26일
장소 : 경주
오랜만에 화요트레킹에서 경주 나들이를 떠났다. 경주 벚꽃은 아름답기로 소문 났다. 벚꽃 개화 시기가 늦어져 여기저기서 축제 기간을 연기한다고 한다. 하지만 벚꽃은 피거나 말거나 우린 출발이다. 집 나오면 무조건 좋다.
3월 25일 경주 남산
차에 오르니 대장님이 김밥, 전옥순 회장님이 스타벅스 샌드위치, 박선자님이 찹쌀떡, 신덕철님이 초콜릿, 부대장님이 사과 쿠키, 이복선님이 찰보리빵을 준다. 주는 족족 입으로 직행이다. 밑 빠진 독이라 그런지 무한정으로 잘도 들어간다.
조연희씨가 작은 병에 양주를 가져왔다. 한 방울씩 맛보라고 한다. 하순희씨가 "아우디!" 한다. ‘아줌마들의 우정은 디질 때까지’ 란다. 이 말대로 디질 때까지 화요반에 나올 수 있었으면 좋겠다.
조연희씨는 그렇지 않아도 예쁜데 손바닥만한 거울을 이리 보고 저리 보며 열심히 단장한다. 나와 동갑인데 10년은 젊어 보인다. 같은 여자인 내가 봐도 기분 좋은데 남자들이 보면 오죽하겠나.
수필 교실 선생님 생각이 난다. 내가 수필 교실에 처음 갔을 때 나를 보고 ‘저 여자는 생기기도 못생긴 주제에 뭘 믿고 화장도 안 하고 다니나.’ 생각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귀찮기도하고 이 얼굴에 찍어 바른다고 뭐가 달라지겠나 싶어 엄두가 안 난다.
경주에 도착하니 잔뜩 흐렸다. 하늘은 우거지상을 하건 말건 우리는 하하 호호 웃음꽃이 피었다.
서남산주차장에 도착하여 산행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비가 안 와서 여기저기 널려있는 부처님을 보며 호기롭게 올라갔다.
중간쯤 가니 비바람이 몰아친다. 금오봉 정상에서 인증사진을 찍고 비에 쫓기고 바람에 쫓겨 허둥지둥 내려왔다.
칠불암을 거쳐 차에 오니 옷이 홀딱 젖고 등산화에는 물이 가득하여 물에 빠진 생쥐 꼴이 되었다.
저녁 식사는 한우 갈비살을 먹었다. 신덕철님이 가져온 레드와인까지 곁들이니 입에서 살살 녹는다. 술기운에 추위도 싹 가신다. 이 맛에 술 마시나 보다.
식사 후 숙소에 도착하여 젖은 옷을 방바닥에 가득 넣어놓으니 완전 피난민 수용소가 되었다. 하순희씨가 준 신문을 구겨서 등산화에 쑤셔 넣었다. 신발 속 물기 제거에는 신문이 최고다. 더블베드가 있는 방 두 개에 화장실도 따로 있다. 각자 방에 누워 꿈나라로 여행을 떠났다.
3월 26일 석굴암, 불국사, 양동마을
아침에 버스에 오르니 정화자님 딸이 가져온 황남빵을 두 개씩 나누어 준다. 엊저녁에 경주 사는 큰딸과 사위가 숙소까지 태워다주며 회원들과 드시라고 사 왔단다. 이거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정화자님은 참 명품 사위 얻었다. 대장님이 방에 두고 온 것 없나 생각해보라고 몇 번씩 얘기하더니 김정순님이 안경을 두고 왔다고 달려간다. 아침 식사를 얼큰 순두부로 할 거냐, 초당이냐, 들깨냐 하고 고르느라 한바탕 난리를 쳤다.
한참 가다가 정상윤님이 빨간 바람막이 옷을 두고 왔다고 한다. 숙소에 전화하니 택배로 보낼 수 없다고 한다. 5만 원을 보내준다고 해도 시골이라 안 된다고 한다. 자녀를 보내서 찾아가란다. 서울 사는 자녀가 여기까지 옷 찾으러 오란 소린가? 기가 막힌다. 숙소에서 손님 물건 못 보내준다고 하는 곳은 처음 본다.
장수순두부집에서 아침을 먹고 석굴암 가는 길에 버스 안에서 대장님이 한마디 한다. 길이 꼬부랑거려 멀미가 날 수 있으니 눈 꼭 감고 집에 계신 낭군님을 생각하란다. 그러자 회원들이 남편 생각하면 더 멀미 더 난다고 한다.
석굴암에 가니 여기저기서 중국말이 들린다. 세계문화유산이라 다르긴 다르다. 고등학교 때 수학여행 왔을 때는 불상 뒤로 들어가 뒷벽에 새겨진 조각상까지 다 보았는데 지금은 유리로 막아놓아 아쉽다.
내려오다가 대장님이 통일기원종을 울렸다. 소리가 신비롭다. 천상에 사는 동물의 울음소리 같기도 하다.
불국사도 오랜만에 보니 새롭다. 일본 사람과 서양인들도 많이 보인다. 벚꽃은 별로 없어도 목련이 많이 피었다. 꿩 아니면 닭이라고 이것도 볼만하다.
차로 돌아오니 혜정씨가 부추떡을 준다. 부추떡이란 게 있는 줄 첨 알았다. 금방 쪄냈는지 따뜻하다. 혜정씨의 따뜻한 마음이 느껴진다.
상윤씨 바람막이는 대장님이 전화하여 착불 택배로 부쳐주기로 했다. 대장은 아무나 하나? 연희씨가 상윤씨에게 잃어버린 거 찾으니 좋겠다고 하며 물건 잃으면 남편 잃은 거보다 더 서운하다고 한다. 19년 전 남미 갔을 때 산 거라고 하는데 참 다행이다.
쌈밥집에 가서 점심을 먹고 첨성대를 본 후 월정교 쪽으로 갔다. 이건 언제 만들었는지 처음 본다. 형산강에 다리를 놓고 지붕까지 만들어 근사하다. 다리 위에는 신라 복장을 입고 사진을 찍는 젊은이들이 보인다.
징검다리를 건너 대릉원 주차장으로 가 버스에 올랐다.
다음은 양동마을을 보러 갔다. 양동초등학교가 있다. 1909년에 개교한 학교다. 한일합방 이전에 이 산골에 학교가 있었다는 게 놀랍다. 한때는 학생이 천 명이었는데 지금은 70명이란다. 교문 앞 길가에 학생들의 시화전이 열렸다. 탕후르에 관한 글도 있다. 우리 손자 이안이도 탕후르를 좋아하는데 아이들 입맛은 다 같은가보다.
고택이 아름답다. 마을 안으로 걷다 보니 연밭이 있다. 유머 감각이 뛰어난 연희씨가 또 한마디 한다. 연밭에 가면 예쁜 연도 있고 미운 연도 있고 온갖 잡연이 다 있다는 것이다.
여기저기 실컷 구경하고 별별 폼을 잡으며 사진도 찍어댔다.
버스에 올라 의자에 드러누워 한잠 자고 나니 문경 휴게소다. 화장실에 다녀오니 혜정씨가 또 부추떡을 준다. 이번에는 서울서부터 준비해온 조청까지 준다. 훨씬 맛있다. 다들 맛있다고 하며 잘도 먹는다. 떡을 다 먹고 나자 ‘솔의 향’이란 음료도 준다. 솔 향기가 그윽하다. 솔의 향이란 음료는 듣도 보도 못 했는데 혜정씨 덕에 생전 처음 부추떡도 먹어보고 술의 향도 마셔보니 촌년이 출세했다. 연희씨는 사랑한다고 일어서서 하트도 그리며 좋아 죽는다. 연희씨는 얼굴도 예쁘고 몸매도 예쁜데 하는 짓도 예쁘다.
이번 여행은 우중 속 여행이었지만 우리 마음은 햇살 속 행복 여행이었다. 이틀 동안 잘 먹고 잘 놀고 많이도 웃었다. 경주에는 벚꽃이 안 피었어도 우리 마음속에는 벚꽃이 활짝 피었다. 다음 여행이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기행문'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24. 6. 21. 독일여행 (2) | 2024.07.13 |
---|---|
2024. 6. 6. 지리산 기행문 (10) | 2024.06.13 |
2023. 12. 29. 남미여행 5 (2) | 2024.02.24 |
2023. 12. 29. 남미여행 4 (4) | 2024.02.24 |
2023. 12. 29. 남미여행 3 (4) | 2024.02.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