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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2022. 3. 28. 손자의 추억

by 아~ 네모네! 2022. 3. 28.

손자의 추억

이현숙

 

  오늘 아침에도 일어나자마자 KBS KONG을 튼다. 이재후 아나운서의 출발 FM과 함께가 나온다. 어떤 청취자가 자기 아들이 5학년인데 요즘 클래식 듣는 취미가 생겼다고 사라사데의 지고이네르바이젠을 틀어달라고 한다. 할아버지가 살아계실 때 즐겨 듣던 음악이라 한다.

  지고이네르바이젠은 고등학교 음악 시간에 처음 들었다. 그 선율이 어찌나 강렬한지 내 가슴에 박혔다. 그런데 선생님이 음악을 듣고 감상을 써보라고 했다. 강렬한 인상을 뭐라고 표현해야할지 막막했던 기억이 있다. 지금 다시 들어도 역시 강렬하다.

  듣다보니 그 할아버지는 참 세련됐다는 생각이 든다. 손자는 무엇을 통해 할아버지와의 추억을 떠올릴까? 어떤 말일 수도 있고, 음식일 수도 있고, 장소일 수도 있다. 그런데 음악을 통해 할아버지와의 추억을 생각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참 좋은 방법이다.

  실크로드 여행 갔을 때 한 고성으로 올라가는 중 할아버지와 손자가 손을 잡고 올라가는 것을 보았다. 나도 모르게 뒤에서 사진을 찍었다. 그 모습이 너무도 아름답고 애틋하게 보였다. 할머니와의 모습도 좋겠지만 할아버지와 손자의 모습은 더 가슴을 울린다. 내가 사진을 찍자 근처에 있던 사람이 영화 촬영중이라고 알려준다.

  할아버지와 손자는 깊은 인연이 있어야 만날 수 있다. 우리 아들은 결혼하고도 10년 동안 아이가 없었다. 나는 우리가 손자와 만나볼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우리가 죽은 후에 손자가 나올 수도 있겠지만 살아생전에 직접 얼굴을 대할 수 있다면 얼마나 더 좋겠는가 싶었다.

  나의 할아버지는 아버지가 어렸을 때 돌아가셔서 나는 할아버지를 보지 못했다. 외할아버지는 꽤 오래 사셔서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도 가끔 우리 집에 오셨다. 외할아버지가 오시면 엄마는 주전자를 들고 막걸리를 사러 갔다. 올 때는 소간도 사 왔다. 외할아버지는 소간을 안주로 막걸리를 맛나게 드셨다. 허연 수염에 뻘건 피가 묻어있는 모습이 조금 무섭기도 했다.

  외할머니는 엄마가 결혼도 하기 전에 돌아가셔서 못 보았지만, 친할머니는 93세까지 사셨다. 내가 7살 때 큰 집에 가서 1년을 지냈다. 할머니는 그때도 허리가 90도로 휘어지고 바짝 말라서 환갑도 못 사실 줄 알았다. 그래도 오래 사셔서 내가 결혼한 후까지 사셨다. 할머니에 대한 추억은 손에 손수건을 쥐고 수시로 눈물을 닦던 모습이다. 나도 나이가 들다 보니 수시로 눈물이 나온다. 날씨가 추우면 눈물이 줄줄 얼굴로 흘러내린다. 그리고 손에 걸레를 쥐고 항상 마룻바닥을 닦던 모습도 떠오른다. 엄청 깔끔하셨나 보다.

  큰댁에서 지낼 때 할머니를 화나게 한 적도 있었다. 친구들과 장난을 치려고 할머니가 화장실에 들어가서 볼일을 보는데 할머니 똥구멍을 찌른다고 긴 나뭇가지를 밖에서 안으로 넣어 휘저었다. 그때 시골 화장실은 밖으로도 통해서 거름을 쳐낼 수 있게 만들어져 있었다. 할머니가 뛰어나와 돌멩이를 들고 쫓아왔다. 나는 친구들과 뒷동산으로 도망쳐 간신히 피했다. 할머니도 이 일을 기억하고 있을까?

  우리 손자는 우리를 어떻게 기억할까? 우리가 아파트에 사니 이런 아름다운 추억은 없을 것이다. 딱히 기억할 만한 일도 별로 없을 듯하다. 거실에서 윷놀이하던 것이라도 기억하려나?

  대를 이어 내려가는 모든 생물은 조상의 DNA를 이어받으며 그 추억도 이어갈 것이다. 아마 이것이 인류의 가장 큰 유산일지도 모른다. 수백만 년을 이어져 내려오는 유전자의 조합이야말로 우리 안에 기억된 가장 큰 추억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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