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2021. 6. 19. 아무도 모른다

아~ 네모네! 2021. 7. 1. 16:40

아무도 모른다

 

- 류시화의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를 읽고 -

이현숙

 

  책 제목에 이끌려 이 책을 선택했다. 책을 만들 때 제목을 잘 정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류시화의 책은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에 이어 이번에 세 번째다. 하나 같이 책 제목이 사람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류시화는 1959년 충북 옥천에서 태어났다. 경희대 국문학과를 나와 한국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어 문단에 등단했다. 50권의 도서를 출간했다는 데서는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그야말로 밥 먹고 하는 일이 글 쓰는 일밖에 없나보다. 생긴 것도 완전 예술가 냄새가 풀풀 난다.

 

  책에 두른 띠에는 신이 쉼표를 넣은 곳에 마침표를 찍지 말라는 글이 있는데 이 글은 이 책에 있는 내용이 아니고 다른 책의 제목이다. 이 글귀가 또한 사람의 눈길을 잡아끈다.

 

  책 표지도 특이하다. 앞날개를 펴야 완전한 그림이 된다. 이렇게 만드는 방법도 있구나 싶다.

 

  뒷표지도 뒷날개를 펴야 완전한 멧돼지가 된다. 나도 다시 책을 낸다면 이런 방법을 써보고 싶다.

 

  머리말도 특이하다. 시바신의 이야기를 들어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모든 작가는 전달자의 숙명을 짊어진 사람이라는 것이다. 늘 새롭고, 재미있고, 깨달음과 의미가 담긴 이야기를 들려줘야한단다. 그래서 독자가 첫 번째 이야기를 읽고 나면 그 다음 이야기도 읽고 싶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게 어디 쉬운 일인가? 이 중 한 가지도 갖추지 못한 것이 내 글이지 싶다.

  그는 우리는 저마다 자기 생의 작가라고 한다. 우리 생이 어떤 이야기를 써 나가고 있는지 그 이야기들이 무슨 의미이며 그 다음을 읽고 싶을 만큼 흥미진진한지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자기 자신 뿐이라고 한다. 그러면서 새 책을 냈으니 재미있게 읽어 달라는 인사말까지 한다.

  목차도 특이하다. 맨 꼭대기에 차례라는 작은 글씨를 쓰고 그 다음에 ‘1이라는 소리도 없고 1장의 제목도 없다. 그냥 ‘1’이다. 6장까지 총 40개의 글을 적당히 나누어 놓은 것 같다.

 

  에필로그도 특이하다. 새장에 갇혀 지내는 앵무새 이야기로 우리가 새장 안의 안락함에 취해 푸른 하늘의 기억조차 잊었다고 한다. 그는 한 권의 책이 출간되면 언제나 여행을 떠난다. 상인처럼 다음 작품을 준비하기 위해 이번에도 인도로 간다고 하면서 원하는 것이 있으면 말해달라고. 그러면 구해 가지고 오겠다고 한다. 나는 책도 안 내고 뻔질나게 해외여행 다니는데 양심이 찔린다.

  각 장의 시작도 두 페이지를 합쳐야 하나의 동물이 된다.

1장 큰 뿔 양

 

2장 멧돼지

 

3장 코뿔소 타기

 

4장 치타

 

5장 갈색꼬리감기 원숭이

 

6장 고릴라

 

  이 그림들은 미로코 마치코라는 일본 화가가 그렸는데 그는 1981년 오사카에서 태어났다. 2012늑대가 나는 날을 그려 그림책 작가로 데뷔했으며 제 18회 일본 그림책상 대상을 받았다. 화가와 함께 합작으로 책을 내는 것도 좋은 아이디어다.

 

비를 맞는 바보라는 글에서

  그는 대학교 졸업반 때 친구의 말만 믿고 싼 월세 방이 있다고 해서 경기도 외곽에 있는 종교 단체의 공동 거주지에 세를 들었다. 그곳에서 장발의 요상한 차림으로 시를 중얼거리며 다니는 그를 본 사람들이 그의 방으로 쳐들어왔다. 그가 자기는 시인이라고 하자 그들은 시인을 신으로 잘못 알아듣고 마귀야 물러가라고 외치며 쫓아냈다. 그 후로도 종종 갈 곳이 없어 이리 저리 방황한다. 비를 맞아가면서도 이 모든 것이 시를 쓰기 위한 좋은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불안과 고독도 내 글의 부사와 형용사가 될 것이라고 받아들인다.

 

인생 만트라라는 글에서

  산스크리트어에서 은 마음을 의미하고 트라는 도구이다. 즉 만트라는 마음도구이다. 특정한 음절이나 단어를 반복하면 강력한 파동이 생겨 그 마음이 초능력에 가까운 힘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사람마다 인생의 전환기에 그를 붙잡아 주는 만트라가 있다. 나의 만트라는 무엇일까? 나는 어떤 역경에 부딪치면 모든 것이 합하여 선을 이룬다.’는 성경 구절을 생각한다. 아마도 나의 만트라는 이 말씀인 듯하다.

 

살아있는 것은 아프다라는 글에서

  고통은 한계를 넘을 때 스스로 치유제가 된다고 하는데 그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라고 묻는다. 사람이나 짐승이나 극심한 고통을 이길 수 없을 때 기절하게 된다. 스스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죽음도 이런 장치가 아닐까? 더 이상 내 영혼이 이 몸에 깃들 수가 없을 때 내 영혼은 내 몸을 빠져 나가는지도 모른다. 이 몸은 어쩌면 또 하나의 자궁이 아닐까? 여기서 나가면 더 크고 신비한 세상으로 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라는 글에서

  그는 한 언론사에 들어가려고 필기시험을 대비해 밤새 예상문제집을 풀었다. 시험 당일 날 자신만만하게 시험장이 있는 학교의 교문으로 들어섰다. 화살표를 따라 강의실로 가니 텅 비어있었다.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어 정문으로 와 수위 아저씨에게 물었더니 시험은 어제였다는 것이다.

그는 인생이 첫 구간부터 막혔다는 불길한 생각을 떨쳐버리고 이것은 다른 인생을 살라는 신의 계시라고 받아들인다. 그것이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 그는 삶의 여정에서 막힌 길은 하나의 계시라고 생각한다.

 

마법을 일으키는 비법이라는 글에서

  작가는 글을 쓰는 사람이며 기다리는 사람은 웨이터이다. 이상적인 집필 환경을 기다리는 작가는 한 문장도 쓰지 못한 채 인생을 마친다고 한다. 진짜 작가는 그저 계속 글을 쓰는 사람이다. 우리는 어차피 천재가 아니다. 따라서 하고 또 하고 끝까지 해서 마법을 일으키는 수밖에 없다. 이 글에 공감한다. 아무리 허접한 글일지라도 계속 써야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책을 읽으며 정말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 에 대한 생각을 깊이 하게 되었다. 결론은 아무도 모른다.’가 아닐까?

  성수중학교 근무할 때 하루는 교감 선생님이 과학실에 와서 조용히 말한다. 먼저 교감선생님이 내 근무평점을 낼 때 연구점수를 잘못 계산하여 교감 연수 대상자 명단에서 빠졌다는 것이다. 이 해에 나는 다른 학교로 전근 가야할 상태였다. 그러면서 올 해 근무성적은 1등으로 주었으니 다음 학교에 가면 교장 선생님에게 잘 말씀드려 1등을 달라고 하란다. 그래야 다시 교감 연수 대상자가 된다고.

  다른 학교에 전근 가서 교장 선생님에게 그런 말은 하지 않았다. 무능한 자의 변명일지 모르겠는데 사실 굳이 교감을 하고 싶지도 않았다. 교감이 되면 방학 때 매일 출근해야하는 것도 그렇고, 교무실 한 복판에 앉아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받는 것도 부담스러웠다.

  그 후 정년을 7년 반 남겨놓고 명예퇴직을 신청했다. 두 아이를 모두 결혼시키고 나니 굳이 더 일하지 않아도 연금 받으면 굶어죽지는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 칠판을 향하여 16, 칠판을 등지고 32년 총 48년을 학교에서 살았다. 이제 학교 밖으로 나가 자유롭게 살고 싶었다.

  나는 남이 내 일에 간섭하는 것도 싫고 남의 일에 간섭하기도 싫어하는 성격이다. 만약 그 때 교감 연수를 받았으면 교감이 되어 스트레스 팍팍 받으면서 제 명에 못 죽었을지도 모른다. 아마도 내가 걸어온 길이 내게는 가장 좋은 길이었을 것이다. 이 길이 좋은지 나쁜지는 아무도 모른다. 아마도 신만이 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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