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2021. 5. 28. 싱글벙글 아들곰

아~ 네모네! 2021. 5. 29. 12:56

싱글벙글 아들곰

이현숙

 

  나는 별로 사물에 대한 집착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만은 아닌 것 같다. 아들이 신혼 때 내 생일 선물로 사준 곰 인형이 있다. 20년 가까이 되어 먼지도 뒤집어쓰고 색깔이 바래서 볼품없는데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안방 화장대 옆 의자에 앉아 항상 우리 부부를 바라보고 있다.

  나도 아이들에게 인형을 사준 적이 없고 아들도 인형 같은 것은 산 적이 없는데 아마도 며느리의 아이디어가 아닐까 생각한다. 어찌 됐건 받는 순간 뜻밖의 선물에 나도 모르게 입이 귀에 걸렸다. 내 평생 처음 받는 인형이라 감개가 무량이다. 이 인형은 우리 아들처럼 몸도 뚱뚱하고 얼굴도 둥글넓적하여 꼭 아들을 보는 기분이다. 하루 종일 나갔다 돌아오면 빈 집에 이 녀석 혼자만 둔 것이 안쓰럽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다.

  아들이 고등학교 때 담임 선생님을 만나러 학교에 간 적이 있다. 선생님 말씀이 우리 아들이 수학여행 때 산 곰 인형을 집에 가져갔느냐고 묻는다. 아니라고 하니 수학여행 갔을 때 커다란 곰 인형을 들고 있었다는 것이다. 집으로 오며 오만 가지 생각이 오락가락한다. 인형도 좋아하지 않는 녀석이 웬 일로 인형을 샀을까? 혹시 여자 친구에게 갖다 줬나? 이미 내 아들이 아닌 걸 내가 여태 착각하고 살았나? 하며 온갖 억측을 했다.

집에 와서 아들에게

너 수학여행 가서 곰 인형 샀다며?” 하니 산 적이 없다는 것이다.

담임 선생님이 네가 들고 있는 거 봤다던데?” 하니까

아하~ 그거. 친구가 잠깐 들고 있으라고 해서 들고 있었던 건데?”한다.

어디까지 믿어야할지 모르지만 그냥 내 맘 편하게 믿기로 했다.

  고등학교 때만 해도 날씬하여 내가 봐도 핸섬보이였는데 지금은 너무 살이 쪄서 누가 봐도 미련 곰탱이처럼 보인다. 볼 때마다 한 숨이 나온다.

  자기가 봐도 곰 같아서 그런지  이메일 주소도 곰뮤직(gommusic)이다. 음악을 좋아해서 복음성가 CD를 엄청 사들였다. 그것도 해외직구로 마냥 사들이니 한 번은 세관에서 출두하라는 통지가 왔다. 너무 사들이니까 무슨 장사라도 하는 줄 알았나보다. 세금을 때려 맞지는 않았지만 지금도 음악에는 관심이 많은 것 같다. 클래식 기타를 낙원상가에서 사다가 혼자 연습하더니 교회에서 찬양할 때 연주하곤 했다.

  지금도 화장대 옆에 떡하니 자리 잡고 앉은 곰 인형을 볼 때 마다 마음이 흐뭇하다. 빙그레 미소 짓고 있는 얼굴을 보면 볼 때 마다 신통방통하다. 나만 그런 게 아닌지 손자 이안이도 이 곰 인형을 한참 가지고 놀았다. 우리 집에만 오면 이 인형을 손에 들고 돌아다녔다. 자기보다 근 10년은 더 오래된 형인데 말이다. 돌이 안 되었을 때는 툭하면 곰의 코를 물어뜯었다. 톡 튀어나온 것이 신기했는지 아니면 이빨이 나려고 잇몸이 근질근질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물어뜯었는데도 코가 빠지지 않고 지금까지 잘 붙어있다.

  오래되고 볼품없어서 갖다 버려도 좋으련만 무슨 미련이 있어서 안 버리는지 내가 생각해도 모르겠다. 그냥 아들 보듯이 바라만 봐도 좋다.

  사람은 누구나 어딘가에 애착을 가지고 사는 듯하다. 물건이건 사람이건 자신도 모르게 집착하는 게 있다. 아마도 인간의 본성인지도 모른다. 애착 중에서도 최고의 애착은 생명에 대한 애착일 것이다. 한 생명체에 오직 한 개 밖에 받지 못한지라 이걸 지키려고 죽기 살기로 악을 쓴다. 아무리 사소한 모기 한 마리도 잡으려면 어찌나 날쌔게 도망가는지 혀를 내두를 정도다.

  오늘은 코로나19 예방 접종을 받는 날이다. 오후 2시에 예약했는데 아직 시간이 안 되어 이렇게 헛소리를 늘어놓고 있다. 예방주사를 맞으려고 하는 거나 온갖 몸에 좋다는 약을 구해서 입에 쑤셔 넣는 거나 이런 내 모양이 우습기도 하다. 하긴 생에 대한 집착이 없다면 모든 생물은 오래전에 멸종되었을 것이다. 생에 대한 끈질긴 집착은 신이 준 가장 큰 선물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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