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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2021. 5. 17. 우리는 사형수

by 아~ 네모네! 2021. 5. 21.

우리는 사형수

이현숙

 

  한 달 가까이 위장병으로 고생중이다. 음식을 먹으면 위장이 돌처럼 딱딱해 지는 느낌이다. 계속 트림이 나오면서 소화가 되지 않는다. 의사는 자리에 누우라고 한 후 여기 저기 꾹꾹 눌러보며 특별히 더 아픈 곳이 있느냐고 한다. 없다고 하니 약을 지어준다. 가타부타 무슨 병인지 말도 없다. 3일치 약을 먹어도 나아지지 않아 또 갔다. 별로 차도가 없다고 하자 약을 좀 바꿔보자고 하며 또 3일치 약을 준다. 역시 이번에도 별 효험이 없다.

  이러기를 3주째 계속하자 체중이 3kg이나 줄었다. 매운 음식이나 기름진 음식을 먹지 말라고 해서 주의를 한다. 아니 먹으라고 해도 먹을 수가 없다. 눈이 퀭하니 들어갔다.

  다시 병원에 가니 나이 들어 체중이 줄어드는 것은 좋지 않고 연세도 있으니 내시경 검사를 하자고 한다. 암이 아닌가 은근히 걱정이 된다. 6년 전 위내시경 검사를 할 때 수면으로 하면 보호자가 와야 한다고 해서 그냥 했더니 꽥꽥 거리고 한 바탕 고생을 했던 기억이 떠올라 수면으로 하겠다고 했다. 하는 김에 초음파 검사도 하자고하여 간에 있는 혹도 볼 겸 그러마고 했다. 간에 있는 혹은 지름이 8cm나 되는 커다란 혹이다. 간에 큰 혹이 있다고 미리 얘기했다.

  문진표를 작성하다 보니 보호자가 꼭 와야 한다고 쓰여 있고 보호자의 서명도 해야 한다. 남편에게 미안하다. 남편은 자기가 보호를 받아야할 사람인데 무슨 보호자냐고 엄살을 부린다.

  전날 저녁부터 금식을 하고 병원에 갔다. 11시 예약인데 사람이 어찌나 많은지 12시가 되어도 대기 상태다. 남편은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울며 겨자 먹기로 앉아있다. 간호사에게 보호자가 꼭 있어야하냐고 물으니 그렇다고 한다.

  그런 남편을 보니 내가 먼저 하늘나라로 가면 어떻게 살아갈까 걱정이 된다. 좀 힘들긴 하지만 열심히 검사를 받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남편까지 가면 그 때는 검사고 뭐고 다 집어치우고 그냥 하늘나라에서 초대장이 오면 기꺼이 가야겠다는 생각이다.

  1시간 이상을 기다리다가 초음파실로 들어가 복부 초음파를 찍었다. 의사는 숨을 참고 배를 부풀려야 잘 보인다고 연신 부풀리라고 한다. 바로 누워라 옆으로 누워라 하며 한참을 보더니 가타부타 말도 없이 내려오라고 한다. 간의 혹도 큰 변화가 없나보다.

  다음은 내시경실로 가라고 한다. 내시경실로 올라가니 앞의 사람이 진행 중이다. 여기서 또 기다렸다. 한참 후 간호사가 나와 안으로 들어오라고 하더니 엉덩이에 주사 한 방 놓고 혈관에도 주사를 놓는다. 주사 바늘을 뽑지 않고 그대로 꽂아 놓는다. 약이 서서히 들어가게 하나보다.

  다음에는 시럽이 든 약 봉지를 주며 마시라고 한다. 뭔 약인지는 몰라도 달달하니 먹을 만하다. 금방 꿀떡 삼켰더니 다음의 약 봉지를 주며 이건 삼키지 말고 삼키라고 할 때까지 입에 물고 있으라고 한다. 입에 물고 기다리니 안으로 들어와 침대에 모로 누우라고 한다.

  아기들 공갈 젖꼭지처럼 생긴 것으로 입을 틀어막더니 잠이 오면 자면 된다고 한다. 잠시 후 정신을 잃었나 싶더니 다 끝났다고 내려오라고 한다. 회복실 침대에 잠시 누워있었더니 간호사가 와서 내려와도 된다고 한다. 이 의사도 이러니저러니 일언반구도 없이 약 처방만 내려준다.

  별말 없는 걸 보면 암은 아닌가보다. 암인 것 같으면 조직검사를 했을 텐데 그런 말이 없다. 밖으로 나오니 남편은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다. 약국으로 내려가 약을 지었다. 약봉지를 보니 위염약이 들어 있다. 같이 집으로 오면서 남편이 먼저 가게 해달라고 빌었다.

  앞에서 걸어가는 남편을 보니 어깨는 구부정하니 위의 고개도 숙이고 아래 고개도 숙이고 그야말로 고개 숙인 남자다. 이런 인간을 보호자라고 끌고 다녀야하나 싶다.

  우리가 일생을 살아오면서 평생 건강하게 살 수만은 없다. 밥 잘 먹고 잠 자다가 가는 사람은 천복을 받은 사람이다. 모든 인간은 언제 죽음이 덮칠지 몰라 평생 동안 전전긍긍하며 살아간다. 모든 생물은 다 죽는다. 어느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우리 모두는 사형수다. 에덴동산에서 선악과를 따 먹은 순간부터 내려진 형벌인가 보다. 지구라는 감옥에 갇혀 죽을 날만 기다리며 사는 존재다. 사형이 집행될 날짜를 모르니 그나마 행복하다고 해야 하나? 모르는 게 약이라고 한 것은 이것을 두고 하는 말인지도 모른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내 영혼은 몸과 이별을 하려고 서서히 준비하고 있다. 이런 과정이 없다면 어찌 내 영혼이 육신을 떠나 참 자유를 얻을 수 있을까? 지극히 자연스런 과정인데 이걸 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 못할까? 다른 동물들도 이런 공포 속에 살아가는 것일까? 어쩌면 뱃속의 아기가 자궁 문을 통과하는 순간 기막힌 세상이 펼쳐지듯 우리도 죽음의 문을 통과하는 순간 새로운 낙원이 펼쳐질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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