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2018. 2. 9. 보이지 않는 끈

아~ 네모네! 2018. 5. 25. 13:10

보이지 않는 끈

아 네모네 이현숙

 

지나예요.”

   남편의 핸드폰에서 웬 여자 소리가 들린다. 나도 모르게 귀를 쫑긋 세운다. 그 여자는 지금 뭐하느냐, 저녁에 뭘 할 거냐?’ 코맹맹이 소리를 한다. 남편이 지금 집사람과 차 타고 어디 가는 중이라고 말하자 뚝 끊는다.

   누가 뭐래지도 않는데 남편은 친구가 잘 아는 술집 여자인데 손님이 없으면 술 먹으러 오라고 가끔 전화를 한다고 변명을 한다. 사실 말이 내 남편이지 밖에 가면 누구 남편인지 어찌 알까? 내 곁에 있을 때만 내 남편이라고 생각하라는 말도 있다. 그 말이 백 번 옳은 것 같다. 두 발 달려서 맘대로 돌아다니는 동물을 어찌 통제할 것이며 밖에 나가 무슨 짓을 하고 다니는지 어찌 안단 말인가? 그저 내 귀에 들어오지 않기만 바랄 뿐이다.

   남편 친구들이 동남아 여행을 가는데 한 친구가 방패막이를 하나씩 나누어 주었단다. 뭔 소린가 했더니 콘돔을 하나씩 주었다는 것이다. 세상이 이 지경이라도 내 남편 만은 순정파겠지 하고 믿는 어리석은 사람은 그 아내뿐일 지도 모른다.

   사실 부부로 만난다는 것이 보통 인연은 아니다. 대학교 1학년 겨울인가 싶다. 같이 산에 다니던 선배가 있었다. 친척집에서 지냈는지 집을 봐줘야하니 날 보고 놀러 오란다. 별 생각 없이 가르쳐 주는 대로 그 집을 찾아갔다. 선배 혼자 있었다. 갑자기 어색해졌다. 선배가 나를 껴안으려 하자 나도 모르게 밀치고 밖으로 나와 버렸다. 그 후 서서히 멀어졌던 것 같다.

   첫 부임지 용산 중학교 근무할 때다. 총각 선생님이 남산의 한 여관에 가면 경치가 기막히다고 가보잔다. 순간 이건 뭐지? 하다가 내가 순수하지 못해서 엉뚱한 생각을 하나보다 하며 또 털레털레 따라갔다. 방에 들어가자 그 남자가 목욕을 하고 나오더니 나를 침대에 눕히려한다. 나는 밀어내며 결혼하지 않은 사람이 부부행위를 하는 건 죄악인 것 같다고 했다. 나를 강제로 가질 수는 있겠지만 이런 사람하고는 결혼할 수 없다고 했다. 그 사람은 순순히 물러섰다.

   지금의 남편과 그의 집에 인사를 하러 대전에 갔다. 인사를 한 후 부여로 놀러갔다. 낙화암 근처 여관에 들어갔다. 남편이 가까이 오자 나도 모르게 긴장하여 결혼도 안 했는데 굳이 이렇게 할 필요가 있느냐고 완곡히 거절했다.

   내가 결혼 할 때까지 처녀막이 온전히 유지된 것은 어쩌면 내가 만난 남자들이 너무도 신사적이라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내가 광대뼈도 튀어나오고 사각턱을 가진 ~ 네모네라서 남자들이 참을 수 없을 만큼 자극을 받지 않는 덕일 수도 있다. 이럴 땐 못 생긴 덕을 톡톡히 본 것 같다. 처녀막이 온전하다고 순결을 지켰다고 볼 수는 없겠지만 그 시절 생각으로는 잠자리를 같이 했다면 무조건 결혼했을 것이다. 아마도 앞의 두 남자는 나의 인연이 아니었나보다.

   이렇게 생각 없는 행동은 50살이 넘어서도 있었다. 중국의 쓰꾸냥 산에 갔을 때 여자 두 명에 남자 세 명이 갔다. 두 남자와 한 여자가 전진 캠프로 떠나고 한 남자와 나는 베이스캠프에 머물렀다. 하루 종일 기다리려니 심심했다. 이 남자가 계곡 안으로 트레킹을 가자고 한다. 나는 또 좋다고 따라나섰다. 텐트와 이틀 치 식량을 지고 계곡을 따라 마냥 걸어갔다. 해가 기울 즈음 냇가에 텐트를 치고 저녁밥도 해 먹었다.

   한 텐트에 들어가 머리를 반대 방향으로 두고 침낭 속으로 들어갔다. 하루 종일 사람 하나 만나지 못한 고립무원에서 뭘 믿고 이런 짓을 했는지 모르겠다. 약간 걱정하는 마음도 일었지만 설마 하며 별 걱정 없이 잘 잤다.

   다음 날 아침 일어나 아침밥까지 잘 해먹고 다시 베이스캠프로 돌아왔다. 지금 생각하면 그 때 우리와 함께 베이스캠프에 머물던 가이드 총각이 우릴 어떻게 보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런데 그 때는 아무 생각도 못했다.

   한 여자가 평생 살면서 무수한 남자를 만난다. 어떤 남자는 그냥 스쳐가고 어떤 남자는 부부가 되어 평생을 함께 한다. 부부가 되기 위해서는 어떤 보이지 않는 끈이 서로를 잡아당겨주는 건지도 모른다.

   남편이 재수만 하지 않았다면, 내가 경암회라는 동아리에 들어가지만 않았다면 아마 지금의 남편은 만나지 않았을 것이다. 어쩌면 우리 아이들이 태어나기 위해 보이지 않는 끈으로 우리를 연결해준 게 아닐까? 어쩌면 다른 끈은 다 끊어버렸을 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