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2017. 5. 14. 그 친구 너머에 문학이 있었네

아~ 네모네! 2017. 5. 26. 15:24

그 친구 너머에 문학이 있었네

아 네모네 이현숙


   중학교 2학년 때 한 반이던 친구가 있었어요. 그 친구는 전라도 장흥에서 서울로 유학 온 친구였죠. 2학년 때는 별로 친하게 지내지 않았어요. 그런데 그 친구 엄마가 그 해에 암으로 돌아가셨어요.

   우연히 3학년 때 또 같은 반이 되었어요. 그 친구는 나보다 키가 컸지만 내 뒤에 서서 내 뒷 번호가 되었죠. 그 때는 학년이 올라가면 아이들을 키 순서대로 세운 다음 번호를 매겼어요.

   번호대로 앉다보니 자연스럽게 짝이 되었죠. 그 친구는 마음이 허전해서 그랬는지 날보고 자기 집에 가자고 했어요. 그 친구 집은 용두동에 있었는데 언니, 오빠, 동생과 함께 일하는 사람을 두고 살았어요.

   언니는 모든 집안일을 관리하며 동생들을 돌보고 있었고, 큰 오빠는 서울 공대에 다니고 있었는데 그 집에 가면 우리 집과는 다른 세상 같았어요. 큰 오빠는 TVAFKN을 보면서 낄낄거리며 웃곤 했는데 영어로 하는 코미디를 어떻게 알아듣고 웃는지 신기했어요.

   한쪽 벽에는 음반이 가득했는데 난생 처음 그 집에서 전축으로 음악을 들었어요. 푸치니의 나비부인, 비창, 토스카 등 난생 듣도 보도 못한 음악을 함께 들으며 이런 세상도 있구나 했어요.

   다른 벽의 책장에는 책이 가득 꽂혀 있었는데 세계문학전집이 눈에 들어왔어요. 책이라고는 교과서와 참고서 밖에 없었던 나는 눈이 뒤집히는 것 같았어요. 나는 친구에게 이 책들을 빌려 읽었는데 마른 땅에 봄비가 내리듯 스펀지에 물이 스며들 듯 폭풍 흡입했어요.

   그 때 읽은 안나 카레리나, 폭풍의 언덕, 싯딸따,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은 제정신을 잃게 했어요. 그 속에 빠져 들어 정신없이 읽다보면 엄마가 와서 등짝을 후려치곤 했어요. 몇 번을 불렀는데 대답을 안 했다는 거예요. 사실 제 귀에는 전혀 들리지 않았죠.

   오랜 기간 동안의 갈증이 해소되는 것 같았어요. 계속 읽고 싶은데 숙제 해야지, 시험공부 해야지 걸림돌이 많아 실컷 읽지 못하는 것이 아쉬웠어요. 시험 때면 일주일씩 이 친구 집에 머물며 같이 공부하고, 같이 자고, 같이 학교에 갔어요. 시험이 끝나는 날이면 책을 잔뜩 빌려서 집으로 돌아왔죠.

   고등학교 1학년 여름 방학이 되자 이 친구는 전라도 자기 집에 가자고 했어요. 친구와 함께 기차를 타고 하루 종일 달렸어요. 아무리 달려도 펼쳐지는 산과 들을 보며 아하~ 세상은 산과 들로 이루어졌구나 했어요. 서울서만 지내던 나는 온 땅이 도시로 이루어진 줄 알았어요.

   기차역에 내리자 택시가 와서 기다리고 있었어요. 캄캄한 밤에 고개를 넘고 넘어 산길을 달려 장흥읍에 있는 친구 집에 들어갔어요. 친구 집에는 아버지와 새어머니가 있었어요.

   새어머니는 일하는 아주머니에게 애기들 이불 펴 주라고 하더군요. 다 큰 우리에게 애기라고 하는 것도 우습고 이불을 깔아주는게 참 이상했어요. 친구 집은 장흥에서 유지였는지 극장도 하고 대한 통운도 하고 택시회사도 운영하고 있었어요. 아버지 직함이 십여 가지라고 하더군요.

   한 달 동안 그 집에 머물며 같이 공부하고 대흥사도 놀러가고 해수욕도 다녔어요. 탐진강에서 보트도 탔는데 그 친구에게 처음으로 보트 젓는 법을 배웠어요. 그 때는 모두 비포장 길이라 그 집 택시를 타고 털털거리며 다녔죠.

   한 번은 그 집 산소를 돌보는 사람이 사는 제각에 갔는데 그 집 마당에서 하늘을 보는 순간 깜짝 놀랐어요. 하늘에 빈틈이 없었어요. 무수한 별과 은하수가 하늘을 가득 채우고 있었어요. 하늘에 별이 그토록 많은지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하긴 전기도 수도도 없으니 밤이 되면 칠흑 같은 어두움이 내려앉았죠. 우리가 후레쉬를 가져갔는데 그 집 아이는 이게 신기한지 자꾸 들여다보더니 입으로 후후 불었어요. 아무리 불어도 꺼지지 않자 계속 들여다보더라고요.

   고등학교 2학년 여름방학이 되자 또 자기 집에 가자고 했어요. 이때도 한 달간 장흥에서 지냈죠. 집 앞에 보이던 억불산에도 올라갔는데 길이 없어서 팔과 다리를 온통 가시에 찔렸던 기억이 나네요.

   졸업할 때가 되자 이 친구는 이대에 간다고 나보고 같이 이대에 가자고 했어요. 집이 가난하여 언니는 대학도 못 갔는데 사립대에 갈 엄두도 낼 수 없는 나는 국립대에서도 가장 싼 사대에 갔어요.

   눈앞에서 멀어지니 마음도 점점 멀어지더군요. 소식이 점점 뜸해지고 결혼하여 각자 살다보니 연락도 끊겼죠. 들리는 소문에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고 하더군요. 우연히 졸업생 주소록을 보다가 그 친구 미국 주소가 있어 편지를 보냈어요. 하지만 이사를 갔는지 주소가 잘못 되었는지 아무 연락이 없더군요. 지금은 어디서 어떻게 지내는지 살아있기나 한지 문득 문득 그리워지네요

  그 친구 너머에는 문학이 있고, 음악이 있고, 예술이 있었어요. 지금 이렇게 글을 쓰는 것도 어쩌면 그 친구 뒤에 있던 문학이 내게 다가와 뿌리 내렸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어요.

   우리가 살면서 무수히 많은 사람을 만나는데 그 사람과 함께 수만 년의 역사와 문화, 수천 명의 사람이 함께 오는 게 아닐까요? 오늘 내가 만난 이들 너머에는 또 어떤 새로운 세상이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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