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2017. 3. 19. 강이 노래하네

아~ 네모네! 2017. 3. 20. 15:39

강이 노래하네

아 네모네 이현숙

   대학교 1학년 때 지금의 남편과 팔당에 갔다. 배를 타고 강을 건너는데 중간쯤 왔을 때 노랫소리가 들린다. 돌아보니 한 ROTC생이 뱃전에 앉아 노래를 부른다. 생전 처음 듣는 노래인데 그 소리가 어찌나 애절한지 가슴이 저려온다. 듣고 있자니 강이 노래를 부르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원어로 불러서 가사는 전혀 알 수가 없고 그냥 목소리에 감정이 묻어나와 내 가슴으로 파고든다.

   그 후 며칠 동안 그 노래 곡조가 내 귀에 남아 앵앵거린다. 혼자서 그 곡을 흥얼거려본다. 그 곡이 무엇인지 궁금하여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그렇게 궁금증을 가슴에 묻어두고 사는데 얼마 후 라디오에서 이 곡이 흘러나온다. 귀가 번쩍 뜨여 노래를 빨아들이듯 흡입했다. 노래가 끝나고 해설이 나온다. 비제의 오페라 진주 잡이 중에서 귀에 남은 그대 음성이라고 한다.

   그 내용이 궁금하여 찾아보니

아직도 들리는 것만 같다네.

종려나무 가운데 숨어 살랑대는

그녀의 부드럽고 따스한 음성

마치 비들기의 노래 같네.

, 황홀한 밤이여!

성스러운 환희여

, 매혹적인 추억이여

미칠 듯한 광기여

달콤한 꿈이여

별이 반짝이는 빛을 보면

그녀의 모습 보이는 것 같다네.”

   지금은 만날 수 없는 옛 애인을 생각하며 부르는 애절한 노래다.

이 오페라는 실론섬을 배경으로 하는 작품이다. 자신의 마을을 방문한 브라만 여인을 보는 순간 그의 눈에는 또 다른 한 여인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는 예전에 브라만 여인을 사랑한 적이 있었다. 세월이 지나도 잊혀지지 않는 그녀의 얼굴과 지금도 들리는 것만 같은 그녀의 음성을 생각하며 탄식하는 내용이다.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인간의 언어란 무엇인가 생각한다. 나는 일자무식이라 원어의 뜻은 전혀 알지 못한다. 그런데도 이런 슬픔이 절절이 파고 드는 것은 무슨 조화일까? 가사의 내용을 전혀 몰랐는데 어떻게 노래하는 주인공의 마음이 그대로 전해졌을까? 어쩌면 인간의 언어란 단어의 뜻이 아니라 그 음성에 실려 있는 억양과 음색에 의해 전달되는 것이 아닐까?

   아니 성악이 아닌 기악곡도 작곡자의 감성이 그대로 전달되는 걸 보면 인간의 언어란 얼마나 빈약한 도구인가 싶다.

   똑같은 곡도 나이에 따라, 처한 환경에 따라 다르게 들리는 것은 우리의 마음 문이 달라지기 때문인 것 같다. 지금 내가 그 강에서 다시 그 노래를 듣는다 해도 그런 느낌은 아닐 것이다.

   감성이 풍부한 사춘기에는 꽃잎이 피어 꽃가루를 받아들이듯 모든 것을 받아들인다. 감성의 촉이 발달하여 미세한 변화도 감지한다. 스펀지가 물을 빨아들이듯 흡입한다. 세월이 흐르고 꽃잎이 닫혀버리면 주위의 자극을 느끼지도 받아들이지도 못한다.

   더듬이가 무뎌지고 피부가 굳어져 더 이상 자극에 반응하지 못한다. 몸은 늙어도 마음만은 청춘이라고 하는 것은 희망사항일 뿐이다. 꽃이 피어있을 때 꽃가루를 받아들여 열매를 맺듯 내 마음 꽃이 피어있을 때 모든 자극을 받아들인다.

   인간이 결혼하는 것도 비슷하지 않을까? 내 마음이 열려있는 순간에 내 옆에 있는 사람과 결혼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 사람이 특별히 잘나서도 아니고, 돈이 많아서도 아니고, 단지 내 타임에 맞춰 나타났기 때문에 그 사람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 순간 눈이 멀고 귀가 멀어 박색도 예뻐 보이고 초라하기 그지없는 사람도 멋져 보이는 것은 단순히 내 마음 상태가 열려 있을 때 그 상대가 들어왔기 때문이다.

   식물은 봄이 올 때마다 꽃을 피우고 꽃가루를 받아들여 열매를 맺는데 인간의 봄은 왜 한 번 밖에 없는 것일까? 죽었다가 다시 태어나면 또 꽃을 피울 수 있을까? 올 해 핀 꽃이 작년에 핀 꽃을 기억하지 못하듯 인간도 내세에 다시 태어난들 어찌 전생을 기억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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